모던 팥쥐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모든 어린이들의 책읽기는 아마도 '전래동화'로 시작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시초가 됩니다. 마치 현실인 듯한 꿈만 같은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저는 이야기에 몰두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종이 한 장만 넘기면 생각지 못한 세상이 펼쳐지는 느낌이 좋았고, 다음 날에도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설레임에 행복했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책읽기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인생에서 책 외에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 되어 있을까.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미 이야기와 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전, 아마도 이야기에 빠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세상이 재미 없었을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난해진다-라는 근거없는 소문도 있기는 하지만요, 흐흐.

여전히 '이야기'를 사랑하지만 어렸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결말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백설공주는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콩쥐는 그 선함으로 드디어 복을 받았습니다. - 그런데 저처럼 이렇게 결말을 의심했던 사람이 또 있었나 봅니다. 이 작품은 이야기들의 행복한 결말을 의심하면서 다른 각도로 해석한 '현대판 전래동화'입니다.

여러분은 <콩쥐팥쥐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세요? 저는 사실 두꺼비가 콩쥐의 밑 빠진 독을 메워주었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아요. 콩쥐가 결혼한 사람이 양반댁 도련님인지, 혹은 사또였는지조차도요. 옛날 이야기들은 워낙 여주인공들이 지체높으신 분들과 결혼을 하니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 <콩쥐팥쥐전>에는 제가 몰랐던 비화도 있었나 봐요. 팥쥐가 젓갈로 담궈져 그 어미에게 보내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으엑. 이 책의 첫 번째 작품 <서리, 박쥐>는 <콩쥐팥쥐전>을 각색한 것입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죽은 의붓여동생.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 그 영혼을 불러오기 위해 한밤중에 학교에서 일어난 의식. 저처럼 겁 많은 분들은 절대로 밤에 이 이야기를 읽지 마시기를 권합니다. 흐익. 
  

<콩쥐팥쥐전>의 또 다른 이야기 <서리, 박지>처럼 <여우 누이>에서 따온 <자개함>, <우렁각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시시>, <개나리꽃>의 또 다른 <개나리꽃>,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옷을 생각나게 하는 <죽이거나 살리거나>, <십 년간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에서 얻은 <지팡이>까지 총 여섯 편의 환상적인 이야기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권장하고 싶은 것은, 하루에 한 가지 이야기씩만 읽으시라는 겁니다. 원작과 비교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맛보다보면 즐거운 일주일을 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여섯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개함>과 <죽이거나 살리거나>였습니다.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자개함>은 아련한 분위기가 정말 일품입니다. 초반에는 구미호가 간을 빼먹다는 전설이 생각나서 오싹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답니다. <죽이거나 살리거나>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일종의 '복수극'이지만, 주인공 강주 때문에 안타까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부분의 '엄마는 웃었어요' 가 계속 가슴을 울려서 이 이야기만 두 번을 읽었네요. 흐흑.

조선희 작가와는 첫만남이었는데, 과연 한국의 '온다 리쿠'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환상적인 이야기들도 그렇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발하는 분위기들이 굉장히 온다 리쿠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섭지만 아련하고, 오싹하면서도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저의 일주일을 설레임과 기대로 채워주었습니다. 읽는 맛 뿐 아니라 책 속의 삽화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오랜만에 전래동화를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 이야기들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으흥. 갑자기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이 책이 특별히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구요. 저는 '시'라는 아이에 대해서는 정말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시에 숨겨져 있는 심오한 의미를 저로서는 파악할 수 없다고 할까요. 앗, 그래서 저는 온갖 미사여구가 붙어서 문장의 의미를 알쏭달쏭하게 만들어놓은 책보다 칼같이 의미를 전달하는 책을 더 좋아하나봅니다. 느낌이 팍, 의미가 팍 오는 것. 그것이 저에게는 중요하거든요. 

저는 '시'는 주관적인 아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문학 작품이 그렇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겠사와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시'는 더 독특한 아이가 아닐까요. 학창시절부터 저는, 언어영역에서 시에 관한 문제가 나올 때마다 늘 궁금했었습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이 정말로 이렇게 의도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그것이 저에게는 늘 의문이었어요. 우리가 해석하는 것이 정말 작자의 의도에 맞는 것인가, 가령 그는 그냥 꽃 하나가 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썼을 뿐인데 괜히 우리가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자랑은 아니지만 전 언어영역은 참 잘했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한쪽 구석에서는 뭔가가 답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저 보고 느끼는 것이 좋지, 누군가의 해석이 덧붙여져 있는 시는 잘 읽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요 책은 작자가 시를 쓰고 작자가 그 배경을 밝히고 있네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들의 시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요런 책은 또 생소합니다. 이해하기도 한결 편하고요. 그런데 첫 번째 시가 <해부학 교실>이어서 그런지 어째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소소합니다. 의대생이었던 그, 세상을 조금 달리 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시를 구상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괴기스럽기도 하구요. 저의 편견일까요, 으힛. 

결론은, 기양 직접 읽어보고 느껴보시라는 겁니다. 시의 영역은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이 읽고 해석하는 게 진정으로 시를 느낄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 리뷰는 여기서 끝내렵니다. 비도 오고, 번개도 치고, 천둥도 번쩍하고. 오늘같은 날 시를 읽으면 딱 좋겠네요. 으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PT 문법문제 350 - 130점 더 올려주는
강성광 지음 / 제이플러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 다닐 때는 저도 시험이 무척 싫었습니다. 시험을 좋아하는 학생은 아마 지구 상에 단 한 명도..있을까요? 아무튼 저는 시험 때만 되면 조금 예민해지는 편이라 몸도 마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요,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시험도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두근두근, 긴장감, 무언가에 시간을 들여 노력했을 때 그 성과가 눈에 보이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시험 직전에는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리지만 그 느낌조차도 머리를 빨리 돌아가게 해주는 느낌이 들어 좋아한답니다. 제가 왜 이리 주저리주저리 시험에 대해 회상하고 있냐면요, 어떤 학습이든 시험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저는 일본어가 전공이라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주위 분들을 보면 대부분 일본과 일본어 자체에 흥미를 느껴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일본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같고 중국어보다는 배우기가 수월하다는 인식이 있어 처음에는 쉽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일단 형용사와 동사가 나오면 포기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활용 부분이 조금 헷갈려서 그렇지 그 산만 넘는다면 정말 재미있는 언어의 세계로 풍덩, 빠질 수 있는데 조금 안타까워요. 그 산을 넘으신 분들은 이제 더 높은 언어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시는 거죠.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 바로 시험에 응시하는 겁니다. 일본어 능력 시험에는 대표적으로 JLPT와 JPT가 있는데,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싫어하던 시험을 성장하고 나서는 스스로 보게 된다는 점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책들은 그런 시험을 위해 준비된 책들입니다. 130점 더 올려주는 문법문제, 숙어표현, 회화표현 요 세 종이에요. 이 세 가지 책들은요, 보시면 알겠지만 참 재미없게 생겼어요.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험을 위한 책이잖아요. 흥미 위주로 그냥저냥 재미있게 배우고 끝내기 위한 책이 아니라, 무조건 읽고, 쓰고 외워야 하는 용도로 제작된 책인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런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그림이라도 조금 넣고,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 세 종류의 책 중 제가 제일 마음에 든 것은 바로 [130점 더 올려주는 문법문제]입니다. 단순하게, 저는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고등학교 수준의 일본어만 매일 접하다 보니 예전보다 실력이 조금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괜한 오기가 발동해 일단 문제가 있으면 풀게 되는 겁니다. 문제를 풀고 나서 오는 성취감이랄까, 가슴 벅참이랄까, 그런 걸 느끼면 어쩐지 제가 살아있다는 느낌도 들고 아주 행복해져요.  바로 옆에 힌트가 될 만한 부분이 실려 있는 것 또한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지만, 사이즈도 그렇고 보기 편한 점도 제 마음에 쏙 듭니다. 

전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공부와 시험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얼마나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단순한 진리를 공부를 통해 점검해보는 거죠. 단순히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기 전에요. 그러니 일본어를 공부하시는 여러분,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지금 한 번 도전해보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성적이 잘 나오게 되면 아마 일본어의 매력에 더 흠뻑 빠지실 수 있을 거에요. 그 옆에 이 책들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으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
데이비드 헌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표지의 회색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주인공 케이가 명암만을 구분할 수 있는 색맹이었기 때문일까. 이 책은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내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다. 건조함과 고독함, 그리 강하게 불지 않는 바람을 맞으며 쓸쓸하게 거리를 거니는 듯한 분위기.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색맹의 여류 사진작가 케이가 조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라 료의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의, 내가 좋아하는 사와자키 탐정의 모습과 케이가 겹쳐보이는 것은 왜였을까. 흘러넘치지 않는 감정을, 그나마도 건조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의 분위기가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다. 

사진작가인 케이. 그녀는 [노출]이라는 작품집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가 찍는 대상은 아름다운 남창 팀. 그녀는 그를 통해 뻔한 것이 아닌 좀 더 깊숙한 그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를 만나기로 한 어느 날 저녁. 약속 장소에 팀은 나타나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쓰레기통에서 그의 머리가 발견된다. 흔히 일어나는 남창의 죽음이라 치부해버리려는 경찰에 맞서 수사를 시작한 케이는 이 사건이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관계했던 T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알아낸다. 과거의 범인이 다시 범행을 시작한 것인가, 단순한 모방살인인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과거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팀이 간직했던 비밀 또한 조심스레 옷을 벗기 시작한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이 이야기 역시 그리 독특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죽고 범인이 존재하고 그 내막을 파헤치기 위해 주인공이 움직이고. 결말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간단하게 매듭지어져, '우웅?'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줄거리가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분위기, 바로 그것이다. 모든 추리소설의 전개과정은 비슷비슷하다. 그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어떻게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은 분위기가 결정하는 게 아닐까. 가보지 않은 샌프란시스코는 역시 가보지 못한 뉴욕의 그것만큼이나 황량했다. 인간의 비틀린 욕망, 외로움, 고독감,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한 가닥의 온기. 지나치지 않게 절제된 감정 표현이 우선 일품이다. 

어느 새 다시 여름, 추리와 스릴러의 계절이 왔다. 그 동안 읽은 이야기들도 꽤 된다는 생각에 이제 웬만한 책에는 질리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내 취향의 분위기 있는 작품이 나와주어 무척 기쁘다. 이런 작품들 뿐이라면 앞으로의 여름은 대환영. 미국의 권위있는 '람다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주목할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는데 이번만큼은 그런 평가를 믿어봐도 좋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태훈의 랜덤 워크 - 영화와 음악으로 쓴 이 남자의 솔직 유쾌한 다이어리
김태훈 지음 / 링거스그룹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김태훈은, 글쎄. 어떤 사람일까. 가끔씩 방송을 통해 비춰진 그의 모습은 말을 좀 잘 하는 것 같고, 연애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충고를 해주는 듯 보이지만 그 자신은 노총각이라는 것. 여전히 엄마의 그늘에서 아둥바둥 사는 것처럼 보이고, 여기저기 관심이 많지만 정작 자신의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는 정도일까. 그러고보니 내가 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고 딱히 그이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책이 내 손에 떡 들어앉아 있는 것은, 어쩌면 그저 단순한 책욕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김태훈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술을 얼마나 마시든, 담배를 얼마나 피우든, 그건 그렇고 이건 이렇다면서 딱딱 부러지게 요점만 쓱쓱 짚어주는 듯한 냉랭함. 좋은 감정을 가지고 들으면 조금은 낭랑하게도 들리는 그 목소리가 내 귀에는 잘 꽂혔다. 흥분하면 말의 속도가 빨라지기만 할 뿐 정작 중요한 논리는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뒤엉켜버리는 나와 달리,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뭐, 그 자신은 그의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든 '늙은 공수부대'라는 취급을 받는 천덕꾸러기일지라도 말이다. 나에게 그는 팝 칼럼니스트여도, 연애 칼럼니스트여도, 혹은 영화를 소개해주는 사람 중 무엇이라도 괜찮았다. 그 냉랭한 목소리로 '이것이 진리야'라고 말하는 듯한 어투만 간직해준다면야. 

딱히 그이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조금 그의 생활이 궁금했었다. (그러니까 책을 부여잡고 있었겠지) 자기는 결혼도 안 하면서 모든 사랑에 대해 다 아는 듯이 말하는 것도 그렇고,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지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그는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그리고 술과 담배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글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변해준다고 했던가. 그의 책은 꼭 그와 닮아 있다. 그의 전문인 음악에서부터 영화와 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 영화, 음악이 대거 등장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며 무작정 읽어내려가니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 읽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책은 산만했다. 평소 산만하다는 건 그리 좋은 어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에게는 꼭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만큼 그가 독특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려나. 

말 그대로 다이어리 같은 책이다. 한 챕터가 그리 길지 않고 짧게 짧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게 그에게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 또한 그 나름대로의 독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그에게만 익숙한 이야기들을 길게 늘어놓는 건 나같은 독자에게 있어 고문이나 다름 없었을테니까. 으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