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2 : 세계와 나
MBC 'W' 제작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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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크지만, 종종 나는 어떤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재미와 즐거움을 위한 독서를 결코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꼭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만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조하지 못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자꾸만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독서취향이 고민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물 안 개구리' 혹은 '책만 읽는 바보' 정도일까.  뭔가가 늘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 재미있게 책은 읽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밀려오는 헛헛함.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한 일상에. 

[세계와 나 W2]가 왔다. 11시면 누워 잠을 청하는 내가 MBC에서 12시 다 되는 시각에 방송되는 <W>를 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관심있는 프로그램이기는 했지만 챙겨보지는 않았고, 그저 가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흥미있는 주제가 방송되면 보곤 했던 것이 전부다. 그런 <W>가 어느 새 방송 5년을 맞이했단다. 그 동안 [W 1] 이 출간되었고, 이제 두 번째 책으로 나와 첫만남을 갖게 된 <W>.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 책을 읽고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 책 한 권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 비록 이 책에 담긴 사연들이 모두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삶을 이어가고 있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모두 19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프랑스의 자전거 혁명인 <벨리브 프로젝트> 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국민의 집을 부수는 중국, 뭄바이, 캄보디아의 풍경과 수몰 위기에 놓인 몰디브, 경제 위기, 필리핀의 전통 설탕 마스코바도, 엘살바도르의 소년 마누엘과 종교갈등, 언론전쟁, 미국의 홈보이와 고유가 시대, 식량위기, 질병, 의료, 인권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모두 인상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의 마누엘>을 소개하고 싶다.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엘살바도르의 어촌 이슬라데멘데스는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유명한 쿠릴 조개의 생산지다. 그 곳에서 마누엘을 비롯한 어린이들은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조개를 캐고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런 마누엘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아이를 위해 후원회를 결성했고, 마누엘은 학교에 다니게 됐다. 처음에는 3명의 시청자로 시작된 후원회는 그동안 11명으로 늘어났고 마누엘 다음으로 라파엘 킨테로가 두 번째 후원 아동으로 결정되었다. 사랑의 힘이 이룩한 작은 기적인 것이다. 그 외에도 전직 갱스터들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빵과 쿠키를 굽는 모습을 소개한 미국 홈보이의 모습과 게릴라에게 납치된 아들을 10년 동안이나 기다리며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콜롬비아의 아버지 몬카요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꼭 경험하지 않아도 이렇게 책을 통해 세계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감동적이다. 너와 내가 틀리지 않고 그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기회. 어디에선가 누군가도 때로는 용감하고 당당하게, 때로는 비극적이고 안타깝더라도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제작진이 소망한대로 '세계와 나' 그리고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심도있는 시각 <W>, 멈추지 않고 그 관찰이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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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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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단어를 검색했다. [아메리칸 러스트], 모자란 영어 실력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번역해보자면 '미국의 녹'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아, 그래서 표지에 녹슨 못 같은 그림이 등장해있는 거구나, 하는 뒤이은 깨달음. 책의 내용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어쩐지 더 깊게 작품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아름답고 쓸쓸한, 궁극적으로 구원을 말하는 역작, [로드] 이후 미국에서 발표된 최고의 소설' 이라는 문구를 100%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코맥 매카시의 [로드] 는 꽤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금 시대에 '구원'이란 과연 무엇일까. '구원' 은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능이 167에 달하는 아이작 잉글리시는 지금 막 아버지의 돈을 훔쳐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는 중이었다. 사고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의 자살, 누나 리에게 버림받았다는 분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를 돌봤다는 자기만족 등 모든 사건과 감정을 뒤로 하고 떠난 길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친구 빌리 포를 생각한다. 자신이 어머니처럼 죽음의 늪 속에 빠지려고 할 때 유일하게 자신을 구원해 준 단 한 명의 친구. 그 친구에게만은 자신이 떠난다는 것을 알리고, 그리고 가능하면 같이 떠나고 싶었다. 트레일러에서 어머니 그레이스와 사는 포를 찾아간 아이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던 그들은 비가 오는 바람에 버려진 창고로 들어가고, 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포를 위해 부랑자 중 한 명을 살해한 아이작. 이 후 아이작과 포, 그리고 그들과 얽힌 그레이스, 리, 경찰서장 버드 해리스와 아이작과 리의 아버지 헨리의 시선을 통해 그들이 겪는 시간들이 공개된다. 

아이작과 포가 살고 있는 마을은 쇠락한 곳이었다. 탄광과 제강소, 제강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소규모 산업들로 한 때 번창했던 밸리는 미국 철생산의 심장이나 다름없었지만 제강소가 문을 닫자 밸리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마을은 빛을 잃어간다. 가난과 젊음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 사람들. 마을과 사람들은 이제 예전의 영화가 빛바랜, 미국 사회에서는 '녹'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그 와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은 여러 사람의 시간과 운명을 뒤흔들어 놓으며 수많은 선택지를 들이민다. 

옮긴이의 글에 나온 것처럼 빌리 포와 아이작은 살인사건이 아니었어도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한 때는 촉망받는 풋볼 선수였던 빌리는 대학에서 장학금과 함께 입학 제의를 받지만 트레일러에서 어머니와 나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작은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던 괴로움을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에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는 인물이다. 둘 다 모두 현실을 외면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보려는 의지 없이 숨쉬는 존재들일 뿐이었지만, 살인사건으로 인해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와 누나 리의 관계에 충격을 받고 홀로 길을 떠난 아이작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죄의 무게를 깨닫고 마을로 돌아온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작과 빌리 포의 성장소설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어둡고 낡은 기운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인간인 이상 저지를 수 있는 '잘못된 선택' 들 때문일 것이다.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물들. 그 길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운명을 만들어간다. 그 운명을 '구원'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 작품이 작가 필립 마이어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전개가 약간 늘어지는 감이 있어 아쉬웠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면묘사, 삶에 대한 통찰이 알맞게 버무려진 작품이다. 데니스 루헤인, 코맥 매카시, 헤밍웨이의 경지에까지 비견되는 이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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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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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 작가의 글이 이렇게 어려웠었나, 문체가 이랬었던가'하는 낯섦. 강남을 배경으로 그 동안 등한시했던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곧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고, 깊이 생각할 시간을 갖기는 커녕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마저 버거웠더랬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버거움은 나의 얕은 지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한 시대를 견뎌온 사람들의 인생이 굴곡져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이 우리가 순간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잠함과 고난의 시간을 보내온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작품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축으로 진행되는데,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면 중학생이었던 것 같다. 동네에 자주 가던 도서대여점이 있었는데 그 가게 주인 아주머니의 어머니가 무너진 백화점 밑에 깔려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시신도 찾지 못했다는 소식까지 전해들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구조의 나날들. 방송을 통해 건물의 잔해 속에서 한 여성이 속옷 차림으로 헬기에 의해 구조되던 모습은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때도 방송에 등장한 그 여성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여자는 손님이었을까 아니면 직원이었을까'를 생각한 듯 하다. 

이야기는 김진 회장의 후처 박선녀로부터 시작된다. 시골에서 여상을 졸업하고 빼어난 외모로 인해 고급술집과 살롱의 마담을 거친 그녀. 같은 업계에 있던 사람의 소개로 김진 회장을 만나 그의 딸을 낳고 살아온 그녀가 무너진 백화점 밑에 묻혔다. 뒤를 이어 각 장 마다 김진 회장, 조직 폭력배 홍양태, 박선녀와 함께 백화점 잔해에 깔린 임정아, 그리고 그녀의 부모들이 강남, 그리고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힘든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그 외 험난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왔다. 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더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은 위태로움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그 자체로 더없이 참혹한 재난이었지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허망한 욕망과 부에 대한 경고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대작가의 보기 드문 작품이겠으나, 나는 어쩐지 아쉬운 마음을 버리지 못하겠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해도 모자를 이야기들이 한 권에 빼곡하게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은 되려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했다.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 숨가쁘게 이야기에 끌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한 나라의 모든 꿈이 집약되어 있는 곳 강남과 그 강남형성사를 되짚어 본 작가의 의도는 좋았으나 나에게는 조금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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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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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전히 좋아하는 책 가운데 [페이지마스터] 라는 아이가 있다. 어렸을 때 읽은 이 [페이지마스터] 속에 등장하는 책들은 사람처럼 눈, 코, 입이 달려 있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따라 각기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해적과의 싸움이 그려진 모험책이라면 한 쪽 눈에 안대를 차고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표지를 가지고 있었고 말투도 걸걸했으며 (이 책에서는 모든 책들이 말을 할 줄 알았다) 성격도 터프했다. [페이지마스터]를 읽은 후부터 나는 줄곧 책들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우리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모두가 잠든 한밤중이 되면 책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만의 잔치를 즐길 거라고. 오랜 세월을 인류와 함께 보내온 책들. 그 책들이 [책 vs 역사] 라는 이 책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헹! 역사를 만들어낸 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라고!'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책 vs 역사]는 역사 속의 책, 책이 만들어낸 역사를 바라보는 일종의 시간여행이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까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책들이 가지게 되는 특성들도 변화한다. 기억의 기록이 시작되는 고대가 기록하는 일과 신과의 영적인 결합에 큰 의미를 두었다면, 중세에서는 '암흑의 시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종교를 위한 책에서 학문을 위한 책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산업혁명과 함께 일어난 근대의 시작, 그 시대를 규정하는 책들이 국가와 개인, 이성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종류였다면 현대에서는 좀 더 실용적이고 생활에 밀접해진 모습으로 변모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어느 시대든 온갖 종류의 책들이 등장하고 칼로 자른 듯 ' 이 책은 어느 시대에 더 어울려'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략적인 느낌이 이렇다는 이야기다. 

책에 관한 사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책' 그 자체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두 저자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할 때마다 그 책에 얽힌 이야기, 시대적인 배경, 그 책이 미친 영향 등을 심도있게 서술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성서는 물론,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윌리엄 하비의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논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등의 깊이 있는 책들부터 J.K. 롤링의 [해리포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좌절과 몰락의 대서사시인 [니벨룽겐의 노래] 등의 익숙하고 재미있는 문학 작품들까지 많은 종류의 책들과 마주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를 통해 책을 바라보는 시간은 유익했다. 잘 모르는 책들도 있었고, 한 번 읽어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상과 지식을 간직한 책들도 있었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그 책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 또한 반갑다. 

요즘에는 전자책이다, 아이팟이다 해서 종이로서의 책의 존재가 살짝 위협(?)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지금 형태의 '책'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책 속에 담긴 가치는 소중하며 그 가치를 진정으로 맛보기 위해서는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편리하고 간편한 것들이 속속 발명되는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책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 인류의 모습을 굳건히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한 시대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단 하나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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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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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스릴러 소설이자 제프리 디버의 작품이다.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건, 당연!  한 편의 숨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스릴러 소설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아니려나. 겨울에도 스릴러 소설은 읽을 수 있지만 여름만 되면 유독 끌리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 더위를 잊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겨울은 아늑한 따스함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여름은 에어콘을 풀가동시키지 않는 이상 완전히 더위를 잊는 일이 불가능하니까. 사실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지만 그의 작품은 못해도 중간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믿음이 작용해버린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도 사랑스러워서 팔운동이 필요한 무게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을 손에 쥐면 두 세 시간은 주위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캐트린 댄스!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로 불리는 그녀는 상대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해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콤비로 유명한 링컨 라임 시리즈에도 살짝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링컨 라임 역시 영화 <본콜렉터> 로만 접한 터라 매우 신선했다. 침착하고 섬세하게 수사를 해 나가는 그녀가 일가족을 살해한 다니엘 펠의 탈옥 사건과 만났다. 잔인하고 사람을 조종하는 것을 즐기는 펠. 그는 당시 컬트 패밀리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었고 일명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광적인 믿음을 얻어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외부의 도움을 받아 탈옥하면서 사건은 다시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그리고 캐트린 댄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일가족 살인사건으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잠자는 인형으로 불리는 소녀와 만난다. 

사건은 숨막히게 전개된다. 캐트린 댄스의 동료의 부상과 죽음, 다니엘 펠의 끊임없는 살인, 한 때 그를 열렬히 추종했던 세 여인의 재회, 현재 그와 함께 움직이며 그를 추앙하는 또 다른 여인, 사건의 단서가 되어 줄 잠자는 인형의 출현까지 곳곳에 흥미를 끌만한 소재들이 숨어 있다. 게다가 어쩐지 꺼림찍한 느낌을 가지게 한 또 다른 사람의 어긋난 살인까지 잠시도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특히 캐트린 댄스가 상대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마음을 간파하는 부분들은 이 소설 안에서 가장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일견 단순한 스릴러 소설 같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해체'라는 비극이 숨어 있다. 가정에서 더 이상 따스함과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마저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결속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사건에 관계되었다는 이유로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고 사는 펠의 추종자들, 정서가 불안했던 부모님으로 인해 가족에 대해 어긋난 이미지를 얻게 된 펠. 비록 바깥에서는 범죄집단으로 보일지라도 그들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가족 안에서조차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껴야 했던 가여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살얼음판처럼 변해가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해 가슴 한 쪽이 서늘해졌다. 그 안에서 캐트린 댄스의 어린 아들이 엄마의 남자친구를 경계하는 모습은 안쓰럽기조차 하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었으나 결말이 약간 허술하다는 점, 그리고 성적인 표현이 많다는 점이 눈에 거슬렸다. 다니엘 펠의 변태적인 모습을 묘사하려 한 의도였는 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참 쓸 데 없다' 라는 느낌이 강했다. 

증거를 하나하나 분석해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 상황에 따라 대응해 가는 것도 즐거웠다. 링컨 라임보다는 캐트린 댄스의 수사법이 더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다. [잠자는 인형]의 후속편인 [노변의 십자가] 가 뒤의 인터뷰 부분에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속편도 출간될 듯 한데, 그 때는 또 어떤 표정과 몸짓을 단서 삼아 사건을 해결할 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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