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 저택 사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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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미미 여사가 대답합니다]

 

타임슬립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느 시대로 갈 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 고대 이집트 문명에 빠져서, 할 수만 있다면 3천년 정도 과거의 이집트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아동용 소설에 등장한 파라오가 정말 너무 멋있게 그려져 있었거든요. 소설 속 주인공은 비록 자신의 힘으로 타임슬립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정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타임슬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 책과 매체를 통해 다양한 이론을 접했지만 뼈속까지 문과생인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면 어디로 할 것인가,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그런 망상을 즐기는 수준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가모 저택 사건]은 우연히 과거로 타임슬립한 주인공이 그 시간 속에서 벌어진 사건을 추리하는 내용이예요. 주인공 오카다 다케시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예비교 (우리나라의 재수학원같은 이미지입니다)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러 도쿄로 상경했습니다. 때는 1994년(헤이세이 6년). 착잡한 마음으로 구 가모저택이자 현 히라카와초이치반 호텔에 투숙한 다카시는 주변 공기마저 일그러뜨릴 정도로 어두워보이는 남자를 목격한 후 자꾸만 그가 신경쓰입니다. 게다가 분명히 비상난간에서 그 남자가 떨어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어디서도 그의 시체를 발견할 수가 없는 기묘한 상황에 놓입니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시험에나 신경쓰자는 마음으로 잠들기 전 켜둔 TV에서 방송된 2·26사건.

 

쇼와 11년(1935년) 2월 26일 새벽, 일본 군대 내에서 쿠데타가 발생합니다. 당시 육군 내의 황도파와 통제파가 심각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는데, 황도파의 젊은 청년 장교들이 결기하여 당시의 내각총리대신, 내대신, 시종장, 대장대신 등의 중신을 습격하고 암살해요. 이것이 바로 2·26사건입니다. 일본은 이 사건이 일어난 후 군부가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군부의 국정에 대한 발언권이 증가했으며, 이것은 곧 군부 독주에 의한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바로 이 사건을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다카시는 곧바로 잠이 들고, 호텔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죽음을 앞둔 그를 구하러 온 것은 다름아닌 정체불명의 기묘한 남자. 히라타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 다카시를 구해 데리고 간 곳은 2·26사건이 일어나려는 쇼와 11년의 도쿄, 자신이 현대에서 머물렀던 히라카와초이치반 호텔의 전신인 '가모 저택'이었습니다. 호텔 화재 사건으로 입은 상처와 타임슬립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다카시는, 처음에는 히라타의 말을 믿지 않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하나하나 인지하면서 자신이 정말로 육군 대장 가모 노리유키의 집, 가모 저택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가모 대장의 죽음에 얽힌 비밀 한 가운데에 서게 됩니다.

 

어려운 작품이 아닌데 개인적으로 내용 정리가 쉬운 작품은 아니었어요.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군대 용어들이 등장하기 때문인 듯 한데, 어느 지점만 넘어서면 두꺼운 책의 페이지가 슉슉 넘어갈 정도로 매우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우리가 타임슬립을 생각할 때 빠지지 않는 논란이 '과거의 사실을 바꾸면 미래도 바뀔 수 있나'에 관계된 것이잖아요. 미미 여사는 이것에 대해 '역사는 바꿀 수 없고, 이미 정설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에 이의를 제기해 그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 기존 통설에 수정을 가하는 역사 수정주의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삼송 김사장님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저는 2·26사건이 등장할 때부터 내심 불안했어요. 쇼와 11년, 1935년이면 일본이 제국주의를 발판 삼아 전쟁에 한창이던 시절, 우리 민족을 핍박하던 시절이기 때문이죠. 비록 아무리 좋아하는 미미 여사라 할지라도 만약 일본의 군부가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과 그 후 미친 영향들에 대해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나는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을 아무 거리낌없이 읽을 수 있을까 하고 우려했어요. 다행히도 그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고, 정말로 삼송 김 사장님의 말씀대로라면 어쩌면 미미 여사는 일본이 과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에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여행자인 히라타의 고뇌는, 지금까지 타임슬립을 즐거움으로만 생각했던 제가 한 번도 고려하지 못했던 지점이었어요. 어떤 사건이 벌어질 지 이미 알고 있는 그로서는 큰 사고를 막아보려 애쓰지만 대신 그에 준하는 사고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에 좌절감과 함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인물입니다. 이에 그는 역사를 방관하거나 '가짜 신'으로 살기보다 자신이 돌아간 역사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살고 죽기를 희망해요. 그의 고뇌가 굉장히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다카시가 쇼와 11년의 시대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어떻게든 현대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하녀 후키가 사망하는 미래를 보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또한 감동적입니다. 한 인간의 결심을 바꾸는 것이 결국에는 타인을 향한 애정과 연민이라는 점이, 전쟁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인지 한층 강렬하게 다가와요.

 

감동받은 포인트가 꽤 많은데 너무 많이 이야기했다가 오히려 책을 읽기 전인 독자들에게 누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결말 부분 또한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 아련함이란!! 역사 속에서 개인은 매우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겠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에도시대물 뿐만 아니라 역시 현대물도 재미있게 쓰시는 미미여사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요 (며칠 전 하라 료 작가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더니 마음이 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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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마을 - 에밀리 디킨슨이 사는 비밀의 집
도미니크 포르티에 지음, 임명주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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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집에서 내내 행복했기를]

 

얼마 전 크리스티앙 보뱅의 [흰옷을 입은 여인]을 읽은 후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여인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뱅의 꿈결같은 펜촉 아래에서 구름 위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저 멀리 떠 있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습니다. 어떤 인물에 대한 글을 읽었으나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공허하게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녀가 실재했었던 것은 맞는지, 혹 세상 사람들 모두 그녀가 존재했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녀를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한 것은, 에밀리 디킨슨, 독자를 만들어낼 노력을 하지 않았던 그녀의 탓(?)이 크다는 생각에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한동안 답답한 마음으로 지내는 저에게 도미니크 프로티에가 쓴 [종이로 만든 마을] 원고가 도착했습니다. 가제본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냉큼 신청했거든요. 이 원고라면 나를 조금은 더 가까이 에밀리에게 인도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뱅의 글을 읽고 이 원고를 읽기 전까지 그녀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작가를 알기 위해서는 작품을 읽어보는 게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시'라는 세상을 걷기에는 지상에 너무나 깊이 속해 있는 사람인가 봐요.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에밀리를 도통 더 모르겠다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사실 도미니크 프로티에의 [종이로 만든 마을] 또한 '에밀리 디킨슨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전히 그녀는 안개 속에 싸인, 속을 알 수 없는 여인입니다. 저자의 글을 한번에 하나씩 더듬어나가며 에밀리를 유추할 수 있을 따름이었으나 그녀와 관련된 두 번째 글이었기 때문인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 느낌이랄까요. 자신의 집, 끝내는 자신의 방에 은둔하여 자신만을 위한 글을 써내려간 에밀리인만큼 아무리 그녀를 연구하고 연구해도 온전히 그녀를 이해하는 이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물다섯에 홈스테드로 다시 돌아온 에밀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은 아마 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p 29

에밀리의 생활 반경은 한정적이었습니다. 정원에 나가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심신이 미약해진 어머니를 돌보고, 밤에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내면으로 침잠하여 글을 써나갑니다. 그녀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고 수군거리는 이웃들의 말은, 아마 에밀리의 귀에 가닿지도 못했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자신의 시가 출간되어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에밀리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은 그녀의 시를 읽고 이렇게 답해요.

출간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글은 출간하기에 너무 고귀합니다. 당신만을 위해 간직하세요. 그리고 괜찮다면, 저를 위해서도.

p 179

앞서 다른 이로부터 원하지 않는 출간과 원하지 않는 평을 들었던 에밀리는 히긴슨의 답을 듣고 반겼을 겁니다. 그녀에게 글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자신이 그 세상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쓴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감히 짐작합니다.

 

이 시인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모두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연구하고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대략적인 인상이라도 붙잡고 싶으시다면 이 책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외의 잡히지 않는 부분은, 그녀의 시를 통해 붙잡아보려 노력할 수밖에요.

 

**출판사 <비채>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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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시의 몸값
교바시 시오리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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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만점 납치 수사극!!]

 

'니쿠라·미사토 법률사무소'에서 '프로보노' 섹션에서 일하고 있는 고야나기. '프로보노'란 무료 또는 저렴한 요금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실 고야나기의 사법연수원 시절 성적은 그리 뛰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색적이라 여겨질 정도입니다. 복지와 인권, 사회 정의와 관련된 업무이다보니 의뢰인의 고민 상담 같은 역할까지 맡게 되는데, 이번 의뢰인은 심지어 보스인 미사토 치하루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어요. 어쩌다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친한 지인이 살해당하다시피 죽음을 맞자, 사기범 일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중요한 자료를 훔쳐 쓰레기통에 버린 대학생 혼조 나코. 그런데 고야나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사라져버리고, 급기야 납치범 일당은 '사이버앤드인피니티'라는 회사에게 그녀를 구하고 싶다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하루만에 10억 엔에 달하는 몸값을 모금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과연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국민들은 기꺼이 모금에 동참해줄까요? 모금액이 목표액에 달성되지 못하면 혼조 나코의 목숨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납치한 사람의 몸값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받겠다는 전대미문의 사건!! 작품의 초점은 세 가지로 모아집니다. 첫째, 혼조 나코를 납치한 일당은 그녀가 복수하려던 그 사기범 일당인가. 둘째, 납치범 일당은 어째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몸값을 받고자 하는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혼조 나코의 아버지는 유명한 방송인인데다 어머니 또한 유명한 요리연구가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몸값을 지불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셋째, 정해진 시간 안에 모금액이 달성되지 않으면 혼조 나코는 살해당하게 되는가. 저는 너무나 단순하게도 납치범 일당이 혼조 나코를 납치한 것이 당연하고, 모금액이 모아지든 모아지지 않든 범인이 잡히게 되는 플롯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다 해도 범인을 수색하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스토리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마지막에는 가슴 찡한 감동까지 선사하는 [오전 0시의 몸값]은 제8회 신초미스터리대상 수상작입니다. 미치오 슈스케와 미나토 가나에등의 찬사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납치라든지 몸값이라든지와 관련된 추리소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저의 입장에서, 사실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펼칠 때만 해도 시큰둥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 자세를 고쳐앉고 읽게 만들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요. 문장도 술술 잘 읽히는 데다, 무엇보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그리고 이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제가 생각해도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됩니다. 책을 빨리 읽으시는 독자라면 두 시간이면 충분히 읽으실 수 있고,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독자라도 결말을 알기 전까지는 쉽게 잠들기 어려울 거예요.

 

등장하는 인물들도 개성이 뚜렷합니다. 정의의 사도-정도는 아니지만 혼조 나코의 납치에 책임감을 느껴 보스인 미사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건을 끝까지 해결하고자 하는 고야나기는 당연히 엄지 척이고요, 그런 그에게 의뢰를 받아 조사를 해주는 사촌동생 와카는 발랄하고 의협심이 강한 이미지입니다. 사연 있는 범죄자였던 고야나기의 형도 어쩐지 멋지게 다가와요. 개인적으로 이 세 사람의 조합이 마음에 드는데, 어쩌면 시리즈로 이어지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제가 이번 달에 여행을 갑니다. 난데없이 무슨 말이냐고요??!! 그래서 여행 가기 전에 되도록 많이 읽고 많이 리뷰도 남겨놓으려는데, 요즘 읽은 책들이 다 너무 재미나요!! 요즘은 길게 리뷰 안 쓰고 그저 '재미있다!! 꼭 읽으시라!!'는 말로만 리뷰를 남기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작품이예요!!

 

**출판사 <내친구의서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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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후에 죽는다
사카키바야시 메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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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들!!]

 

'지금 내 눈 앞에 총알이 허공에 떠올라 있다' 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되는 작품. 이 문장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먼저 드시나요? 저는 '혹시 시간이 멈춘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총알이 멈춰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들리던 소리도 딱 멈추었으니까요. 그런데 단순히 시간만 멈춘 것이 아니라, 이 주인공 방금 총에 맞았습니다! 심지어 눈 앞에 사신이라는 존재( 무려 사람 키만한 거대한 고양이) 도 나타나서 '너에게 남은 시간은 15초밖에 없다'라고 알려주는 상황이에요. 주인공은 남은 15초를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을 죽인 범인을 알리기 위한 다잉 메시지를 남겨야 합니다. 움직였다가 멈췄다가 하며 빠르게 줄어드는 그녀의 시간!!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독자에게, 이 작품은 꼭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리뷰에는 차마 다 담지 못할 이야기들이 작품 안에 담겨 있어요. 아마도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만나시게 될 거라 자신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 <15초>로,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감탄밖에 내뱉지 못했어요. 빨리 다음 이야기를 찾아 넘긴 페이지에는 <이 다음 충격적인 결말이>가 이어지는데요, 시청자 참여형 추리 퀴즈 드라마 속 엔딩에서 여주인공의 ‘15초 후의 느닷없는 죽음’에 대해 드라마를 보며 추리하는 독특한 구성과 예측할 수 없었던 반전이 압권인 작품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불면증]은 15초 후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이 반복되는 기억에 대한 수수께끼를 다룬 이야기로,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어요. 네 번째 이야기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우리의 머리 없는 살인 사건]은 독특한 제목과 독특한 설정을 자랑하는 아~주 독특한 작품입니다.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적토도 사람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가 잘린 후 15초 안에 다시 몸과 이어붙이면 죽지 않는 적토도 사람들과, 그 섬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이런 장르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고 한다고 합니다. SF, 판타지 장르의 요소와 설정을 논리적인 미스터리와 융합한 추리소설의 세부 형식-이예요. 이 형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발한 아이디어. 그런 점에서 [15초 후에 죽는다]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이끌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미스터리를 대하는 저의 마음은 -더 새로울 게 뭐 있겠어?-처럼 의심과 얕봄이 싹트고 있었는데요, 이 작품을 읽고 다시 반성했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이것이 제일 재미있다!'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완벽해요. 추리소설 독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읽게 되어 정말 행복하다는 감상 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소개해 준 출판사에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일본의 인기 드라마 중 <기묘한 이야기>시리즈가 있는데 드라마화 되었다니, 과연 어떤 분위기로 탄생했을지, 원작의 묘미를 잘 살려냈을지 궁금합니다. 아니, 그런데 [15초 후에 죽는다]가 제12회 '미스터리즈! 신인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네요??!! 이런 작품이 가작이라면 대체 대상은 어떤 작품들이 받는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 잠도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출판사 <블루홀식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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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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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사회 고발의 특별한 조합]

 

그 유명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드디어 저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경찰 살해자]는 시리즈의 아홉 번째 이야기로, 범죄수사국에 근무하는 형사 마르틴 베크를 주인공으로 하는 경찰 소설이예요. 벌써 아홉 번째 작품인데 이제서야 처음으로 '마르틴 베크'를 만나게 되다니,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그만큼 더 깊고 천천히 음미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도저히 손에서 놓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거나 상황이 으어엄청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체 작품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해서 내리 읽어버렸네요.

 

배경은 스웨덴 최남단의 조용한 시골 마을 말뫼. 한 여성이 실종되고 (하지만 이 여성은 작품 초반에 살해당하는 것으로 나와요) 이 사건은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 책임자인 마르틴 베크에게 맡겨집니다. 어쩌면 이 시골 마을에서 여성 한 명이 사라진 것은 실종이 아니라 도망친 것이라고 단정지어질 수도 있었지만, 마르틴 베크가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언론의 시선이 모아지죠. 게다가 수년 전 마르틴 베크가 자신의 손으로 체포한 '로재나 사건'의 범인이 사라진 여성의 이웃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그가 바로 이 사건의 범인일 것이라는 확신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상부로부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번에는 그가 범인이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는 마르틴 베크. 그의 고뇌는 깊어지고, 마르틴의 친구이자 동료인 콜베리의 고민 또한 깊어졌던 작품!!

 

미스터리인만큼 여성을 살해한 범인의 정체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지만, 작가들은 독자에게 추리의 즐거움만을 선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집필 의도는 '범죄소설을 통해 사회에 숨겨진 빈곤과 범죄를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경찰 살해자] 에 담긴 메시지는 콜베리의 고뇌와 맞닿아 있습니다. 콜베리는 '경찰 조직이 점점 더 정치화했다는 것, 경찰이 점점 더 자주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었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는 인물입니다. 또한 과거 총기 사고로 동료를 쏘아 죽인 적이 있는 그는 '강력 범죄 발생률이 크게 높아진 것은 경찰관이 늘 총기를 소지하고 다닌 탓이 크다'고 주장해요. 여기에 '심리교육을 등한시하는 경찰학교'의 상황을 낱낱이 밝히며 경찰직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오우, 만난 지 이제 한 권밖에 안 되는데 마르틴 베크의 절친이 떠나려고 하다니요!!

 

마르틴 베크가 작중에서 태어난 시기는 1923년. 그리고 배경이 된 시기는 1970년대입니다. 콜베리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부분을 읽고 있자니 이것은 단순히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들이 당시 스웨덴의 상황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듯한 기분이었어요. 셰발과 발뢰는 범죄소설의 형식을 빌려 부르주아 복지국가로 여겨졌던 스웨덴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기 위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집필했다고 합니다. 작품을 통한 사회 고발적인 측면이 미스터리와 어우러져 묘한 재미를 선사해준다고 할까요.

 

[경찰 살해자]를 읽다보면 곳곳에 예전 작품에 대한 언급이 등장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드디어 저도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비록 언제나 범인을 밝혀내는 데에는 난항을 겪고 있지만요. 작가 중 한 명인 발뢰는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테러리스트]가 출간된 해인 1975년에 암으로 사망했고, 셰발 또한 2020년에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가슴이 쓰립니다. 하지만 아직은 읽을 수 있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고요. [경찰 살해자]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기도 하고요. 설마, 아무리 그래도 콜베리가 마르틴의 곁을 이대로 떠나지는 않겠죠??!!

 

**출판사 <엘릭시르>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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