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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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저도 모르게 "꺅"소리를 냅다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거나 신난 것을 만났을 때 나오는 (극히 드문) 저만의 동작을 취했죠. 바로 침대에 엎드려 주먹으로 팡팡 치며 '너무 재미있어!'라고 외치는 것.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요. [Q&A]는 정말 오랜만에 엄청난 즐거움과 짜릿함,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적당히 늦장을 부리고 일어나 TV를 켜신 분이라면 한 번쯤은 퀴즈 프로그램을 보셨을 거에요. 처음에는 여러 명이, 그러다가 점점 도전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홀로 무대에 올라 자기 앞에 다가온 문제의 답을 말해야 하죠. TV 밖에 있는 우리들이야 아는 문제가 나오면 맞추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틀려도 되지만 무대에 올라간 사람에게 있어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기도 해요.  저는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습니다. 저들이 이 프로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성취감? 현실세계의 그들이 무엇을 원했든지와 상관없이 여기, 퀴즈쇼에 참가한 한 명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

람 모하마드 토머스라. 종교가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이 이름을 딱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 좀 이상한 이름이군'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요. 그의 이름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성당에서 생활하는 그를 위해, 한 신부님이 힌두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섞어 지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이름이거든요. 보통의 책이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그가 퀴즈쇼에 참가해서 우승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경찰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있는 그에게 수호천사처럼 다가온 변호사 스미타. 스미타는 그에게 당신을 돕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며 퀴즈쇼와 관계된 모든 것을 밝혀달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굴곡진 인생이 하나씩 밝혀진답니다. 

잠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살고 있는 나라는 바로 '인도'라는 것이죠.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하고, 카스트제도로 인해 인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타지마할 궁전이 있고, 누구나 한 번씩 떠나기를 원하는 여행지로 꼽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알쏭당쏭한 나라, 인도랍니다. 사실 저자는 인도 알라하바드의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법률가 집안이라면 상당한 지위와 재산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그런 그가 어째서 고아에다 행복해질만하면 불행을 맛보는 남자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는 '지식' 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삶을 살아는 데 필요한 '지혜'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주인공은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했거든요. 

어쨌든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순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행했지요. 부모라고 여겼던 신부님의 죽음, 소년원에서의 생활, 고통받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기도 했고, 성실히 일해 벌어 모은 돈을 빼앗기고, 실수지만 누군가를 죽이고..평범하다 못해 그 날이 그 날인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는 그런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무척 대단하게 보였어요. 끊임없이 고통받고 험한 처지에 놓이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그에게, 퀴즈쇼는 그의 인생을 집약해 놓은 것이나 다름 없었지요. 한 마디로 퀴즈쇼가 그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행운을 바라는 자세랍니다. 행운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라고 할까요. 책을 읽어본 여러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마지막의 동전 이야기에서 저는 전율을 느꼈어요.  어쩌면 작가는 카스트제도가 있는 인도를 배경으로, 행운을 가져오는 것은 법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며,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요. 

삶이란..참 신기해요.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연결되고 연결되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요. 과거의 어느 순간에서 우리가 선택한 일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결국 모든 일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게 되죠.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인생도 그랬어요. 퀴즈쇼의 한 문제 한 문제로 나타나는 그의 삶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죠. 그랬기 때문에 그는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거에요.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 안 드세요? 

어때요? 책을 좋아하는 당신과 그 쪽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당신에게도 이 책은 꼭 권하고 싶어요! 인도의 생활을 엿볼 수도 있고, 람 모하마드 토머스에 대해 전부 담겨 있는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아마 당신도 나처럼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질 거에요. 그러니, 읽고나서 우리 다시 한 번 이 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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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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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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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미국드라마 CSI의 팬이다. 라스베가스를 비롯해 마이애미, 뉴욕 시리즈를 나름대로 주인공의 매력을 분석하고 각각의 독특한 분위기를 비교해가면서 즐기곤 한다. 사람이 살해되거나 사고를 당하여 사망하는 장면은 무섭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증거를 분석해서 범인을 잡아들이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기 때문이다. 아마도 범인을 잡는데 한 몫하는 과학기술의 매력도 CSI의 인기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에 케이블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별순검'을 무척 흥미롭게 봤다. 지금같은 발달된 기술이 없어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책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밝히는 그 매력에 쏙 빠져들었다. 

이 책은 드라마 별순검의 인기를 업고 나온 책 중 하나라고 보여진다. 케이블에서는 뚫기 힘든 1%의 시청률을 돌파하고 3~4%를 기록한 별순검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추리 수사의 탄생부터 별순검과 다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범죄를 수사할 때의 왕들의 태도나 품격, 조선시대에 사용한 과학수사 책들을 소개하며, 조선시대의 법전과 사건일지, 형벌제도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책에 실린 내용은 모두 흥미롭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면,  별순검은 조선왕조 전 기간에 걸쳐 존재했던 제도가 아니라 대한제국 시대에 탄생한 관직이라고 한다. 드라마 '별순검'에도 일본 상인들과 신문 등 조선시대 초기에는 발견할 수 없는 문물들이 등장한다. 별순검의 주인공은 순검과 '다모'인데 다모는 의녀보다도 낮은 신분의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특이할만한 사항은 왕들이 법전을 외우고 법 사항에 능통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조 10년 이영규가 김도흥을 발로 차 사망한 사건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p63) 저자는 이에 대해 제도가 성숙되어야 하고 또 그에 대한 시행 원칙과 지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말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수사관들이 과학수사를 하기 위해 사용한 책으로 [무원록], [증수무원록]과 같은 법학자료들을 토대로 했다고 하니, 서양보다 앞서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과학적기법에 놀라울 따름이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범죄수사의 원칙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억울한 이가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도 신분사회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자나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물들이 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이를 감싸주려는 왕과 간신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사회에서도 돈이 많거나 연줄이 있는 사람은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도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이 빈번하다. 세월이 흘러도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중의 하나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똑같다는 것이었다. 치정에 의한 살인, 존속상해, 피해자는 거의 여성으로 한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서 본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자한 얼굴 뒤에 흉악한 모습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까닭모를 배신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생활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범죄를 어떻게 수사했느냐부터, 법전, 형벌제도까지 다루는 약간은 살벌한 이 책도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는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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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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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접하고 즐기게 되기까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셜록홈즈와 그의 친구 왓슨'이었다. 벽난로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늑한 방안에서  파이프를 입에 물고 심오한 생각을 하는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노라면,  어쩐지 셜록홈즈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나는 영국의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아주 좋아한다. 신분차별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 숙녀 이런 단어에서 로맨틱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면 나는 아직도 꿈 속에서 산다고 비판받을까. 사실 [시체는 누구?]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추리소설이라는 점보다 '귀족'탐정이 등장한다고 해서였다. 표지가 마음에 무척 들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팁스라는 건축가의 집 욕조에서 벌거벗은 채 황금 코안경 하나만 걸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책을 사랑하고, 범죄연구와 사건해결이 취미인 덴버 공작가의 둘째 아들 피터 윔지는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수사에 착수한다. 한편 루벤 레비라는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사건이 드러나면서 과연 이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되는지, 아니면 별개의 사건인지에 초점이 모아진다. 도난당한 시체는 없는지, 루벤 레비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최근까지 하던 일은 무엇이었는지를 차근차근 조사하던 피터는 어느 순간 사건의 실마리를 알아채고 똑똑하지만 잔인한 범인을 체포하게 된다! 

작품은 여느 추리소설이 갖는 구조를 그대로 따라간다. 사건이 일어나고 단서를 따라 경찰과 탐정이 움직여서 끝내는 악당을 붙잡는 과정은 평이하지만, 다른 추리물과는 달리 범인보다 시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더 중점이 놓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참 매력적이다. 우선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피터. 그는 겉으로는 쾌활하고 명랑해 보이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피곤해지면 전쟁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둠의 그림자는 전혀 느낄 수 없고 그가 발작을 일으킬 때 오히려 그에게 딱 맞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한 피터의 비서겸 집사인 번터. 번터의 말투와 행동을 보고 있으면 왠지 능구렁이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주인인 피터의 말을 잘 따르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자신의 주관대로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그 밖에 우직한 경찰인 피터의 친구 파커와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에 알맞은 보상은 그다지 받지 못하는 서그 경위도 이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감초들이다.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23년이었다. 그 때 이미 도로시 L. 에이어즈는 범인의 심리와 동기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피터 윔지 경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을 비롯해 그 후로 15년 동안 시리즈가 계속 됐다고 하니 그 인기를 가늠해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1913년부터 세계 2차 대전의 초기는 추리소설의 황금기라고 불리는데, 이 작품은 그 시대 가장 빛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셜록홈즈와 그의 친구 왓슨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셜록홈즈보다 말도 많고 행동이 부산한 것 같아도 제 할 일은 착실히 해내는 피터와 그의 성실한 하인 번터, 형사 파커의 매력에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추리에 약한 나같은 사람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을 많이 해주는 (범인의 동기라든가 범행방법)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다.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번역되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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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1 - 엘파바와 글린다 위키드 6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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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 아닌 제목을 만났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는 경향이 있다. 제목은 책의 내용을 잘 말해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기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키드-wicked. 깔끔한 초록색 표지 위에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마녀가 그려진 것이 내포하는 것처럼 - 사악한, 나쁜, 부도덕한, 버릇이 나쁜, 당치도 않은-등등의 부정적인 의미들이 불룩불룩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맨 마지막 줄에서 찾아낸 -상처가 심한-이라는 의미를 보자, 이 책이 나타내고 싶어하는 뜻은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이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작품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 세월 주위 사람들에게 받은 쌓이고 쌓인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 불행한 서쪽 마녀의 이야기.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유명한 명작 '오즈의 마법사'는 어린 시절 누구나 다 알고 있을 판타지 소설이다. 농장에서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던 소녀 도로시가 그녀의 개 토토와 함께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오즈라는 나라에 도착해, 허수아비, 사자, 나무꾼과 힘을 합쳐 사악한 서쪽마녀를 무찌른다는 줄거리는 권선징악을 대표한다.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행동을 유도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게 한다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선하게 묘사되는 동쪽마녀는 정말 착했고, 우리가 사악하다고 믿고 있던 서쪽마녀는 정말 사악하기만 했을까.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악했고, 생애 내내 악행을 일삼다가 마지막에 당연하다는 듯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정말 그렇게 나쁜 마녀였을까. [위키드]는 도로시의 그의 친구들의 관점이 아닌, 서쪽마녀 엘파바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에 날카로운 치아를 가지고 있던 엘파바. 목사였던 아버지는 그녀를 죄악의 증거라고 여겼고, 그녀를 낳은 어머니조차 그녀를 괴물이라 불렀다. 엘파바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경로로 세상에 나타난 것 뿐인데. 탄생의 순간부터 주위 사람에게 멸시를 받은 그녀는 시즈 대학교에서 착한마녀로 묘사되는 글린다와 우정을 나눈다. 그녀들이 생활하는 먼치킨랜드는 언어도 구사할 줄 알고, 지적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도시였지만 오즈의 마법사가 동물들을 노예로 억압하면서 엘파바와 글린다의 삶의 경로 또한 변화를 맞이한다. 동물들을 위해 지하조직에 가담한 엘파바. 학교 친구였던 피예로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지하조직의 조직원에서 수녀로, 수녀에서 다시 서쪽마녀가 된 엘파바는 동생의 죽음 뒤 마법사에게 대항하던 중 도로시를 포함한 그의 친구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서쪽마녀를 기존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보여준다. 단순히 악의 전형이라 생각하고 있던 서쪽마녀는 오히려 가슴에 상처와 아픔을 품은, 누구보다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할 줄 아는 인정많은 사람이었다. 물론 그녀가 항상 선했다거나, 희생정신이 투철했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아들 리르에게 모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고, 마음 속에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애증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린시절부터 사랑받지 못한 탓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책의 띠지에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엎는 이야기-라고 나와있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엘파바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이 책은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한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엘파바에 관한 심리소설이다. 

명작소설과는 달리 허영심 많고, 어쩐지 미덥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글린다의 모습과 엘파바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진정한 선과 악의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고 전해지는, 실상은 다 없어지고 허상만 남은 빈 가죽만을 응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도로시뿐만 아니라, -상처가 많은-위키드, 서쪽마녀 엘파바도 그녀 자신의 인생에서는 그녀가 주인공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느 책들에게서 배웠듯, 우리 삶은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위키드]를 통해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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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 시즌 1 엘링(Elling) 1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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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로 처음 만난 연작소설의 주인공 엘링을, 시즌 1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로 다시 만났다. 시즌 3의 엘링은 지금까지 읽은 책의 주인공들과는 무척 다른 성격의 소유자여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부적응자로 낙인 찍힌 그의 성격이 나에게는 오히려 유쾌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대체 이 소설이 처음 쓰여졌을 때의 엘링의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시즌 3를 읽었기 때문에 곧바로 마지막편인 시즌 4로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왠지 엘링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 아닌 고민 끝에 들어온 시즌 1. 그 안에서 나는 왠지 엘링과 조금 더 친해진 것 같다.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도입부. 지하철 안에서 처음 책을 펼친 나는 행여 누가 흘깃 보고 이상한 소설로 오해할까 봐, 황급히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엘링이 얼마나 슬펐을까를 생각하면서. 엄마의 가구와 옷들을 모두 정리하고, 텅 빈 엄마의 방에서 바깥은 내다보던 엘링은 화분에 물을 주는 리게모르 욜센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보고난 후, 주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집 맞은 편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는 엘링. 어느 날,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욜센의 모습을 발견한 후, 갑자기 세상은 엘링에게 두려움과 혼란으로 다가온다. 

엘링에게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책의 전개가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전체 내용이 엘링과 다른 누구와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엘링의 공상과 생각만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찬히 그 생각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상상을 어느덧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회가 정한 기준에 의해 괴짜이고 사회부적응자로 취급받는 엘링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주관이 뚜렷하고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게 될 것이다. 작가 잉바르 암비에른센은 책의 서문에서 엘링에 대한 기록이 '서구사회 인간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도 있는 현실'을 걱정하는데, 그것은 비단 서구사회 인간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외롭고 쓸쓸한 인간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왁자지껄 떠들며 킥킥대는 무리 속에서 고독을 보았던 것 같다. 껴안고, 어깨를 토닥거리고, 악수를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고독을 읽었다. 함께 있지만 혼자라는 느낌.-p40

엘링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는 적지만,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과 대화한다.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고독을 발견하는 엘링은 어쩌면 무표정하게 지금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보다 더 현명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자신 안에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해야 할지도 모른다. 무리지어 있을 때도 고독을 느끼는 우리이니까. 제목이 -네 친구 엘링-이 아니라, -내 친구 엘링-인 것도 이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책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나는 시즌 3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즌 1에서도 나와 닮은 점이 많은 엘링과 웃고 울고 분노하고 대화하면서 무척 즐거웠다. 그의 터무니없는 상상과 탁월한 언변(늘 혼자 생각하고 있으므로 언변이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은 그러나 집을 빼앗기고 요양소에 보내질 운명에 처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과연 지금부터의 엘링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요양소로 가도 엘링의 무한한 상상은 지구를 넘어 우주 끝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시즌2와 시즌 4로 엘링을 만나러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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