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저
김소연 지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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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도전'이라 함은 그 '세계명작'이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많이 읽히고는 있으나, 그 문학들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결코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까이하기에는 어렵고, 멀리하기에는 어쩐지 아쉬운 그런 '존재'라 할까. 내가 이렇게 '세계명작'에 '도전'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게 된 것은 역시 학창시절의 경험에서 받은 영향이 크다. 당시 내가 손에 들었던 것은 [생의 한가운데]라는 루이제 린저의 작품이었다. 비교적 보편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같은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을 읽은 후 접한 [생의 한가운데]는 나에게 미지의 이야기로만 남았다. 그 후로 세계명작=어려운 작품이라는 인상이 깊게 남았고, 부끄럽지만 그 인상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저]가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사회적 배경,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 등등을 작가의 사진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진을 통해 쉽게 이야기한다. 그 동안 어려운 책이라고만 치부해왔던 세계명작들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고, 여기 소개된 책들을 한 권씩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는다. 전부 45편의 작품을<인간 실존에 대한 진지한 물음, 사랑의 위대한 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수수께끼, 주체적인 여성의 삶, 다른 차원을 통해 본 세상, 시간을 잊게 하는 모험, 세상을 비틀어 보는 재미,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현실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 잃어버린 세대의 이야기 >의 10개의 챕터로 나누어 소개한다. 

작품들 중에는 내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180도 바뀌어버린 책도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이다. 걸리버의 여행 혹은 모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걸리버 여행기]는 본래는 사회 비판 의식이 강한 작품으로 출간 당시 격렬한 비난을 받아 한동안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비평가들의 입김으로 내용의 일부가 각색되어 나온 것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접한 '아동물'이었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소인국'편 뿐으로, 원래는 총 4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인국, 거인국, 하늘을 나는 섬나라와 말나라 이야기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섬 라퓨타>가 바로 이 '하늘을 나는 섬나라, 라퓨타'를 모티브로 삼아 창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뿐만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에 얽힌 비화, 추리소설 작가 앨러리 퀸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로 대표되는 크리스마스 문학 등 갖가지 이야기가 세계의 명화와 작가들의 사진과 더불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렵게만 생각했던 세계명작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홀가분함마저 느껴진다. 이 책이 그 동안 세계명작에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유명 작가들이 말하고자 했던 참뜻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도서관의 세계명작 코너에서 한동안 머무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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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안녕하세요? - 글래디 골드 시리즈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4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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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다행이다! 책 표지를 자세히 보니, [글래디 골드 시리즈1 ]이라고 적혀있다! 제목에만 눈이 가서 작가 이름 위에 있는 이 문구를 놓치고 있었다니! 하지만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왜 이 문구에 열광하는지 아마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75세의 전 세계 최고령 사립탐정 글래디 골드가 얼마나 우리를 매혹시키는지를. 게다가 그녀의 친구들은 또 어떠한가! 

1년, 2년..시간이 갈수록 과연 나는 나이를 먹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그려보지 않을 수가 없다. 몸은 건강할지, 그 때도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눈은 좋을지, 자식들과 손자들의 사랑은 받고 있을지..생각하자면 끝도 없는 노후의 생활은, 아직은 나에게 낯설고 두렵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던가. 그 말이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는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이름. 글래디 골드. 나이. 75세. 취미. 추리소설 읽기. 그녀의 친구들인 아이다는 71세, 벨라는 83세, 소피는 80세, 프랜시는 77세에, 동생인 에비 또한 73세다. 우리의 주인공과 친구들이 사는 곳은 최연소자가 71세고 최고령자가 86세인 라나이 가든이다. 때가 되면 일어나서 아침운동을 하고, 풀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55세이하로는 어린애 취급을 하는 마트에 가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이 일과인, 조금은 쓸쓸하지만 행복한 그녀들의 생활에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언젠가부터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노인들이 늘어난다는 것. 우리의 명탐정 글래디 골드와 그녀의 검투사(글래디에이터)들은 경찰조차 콧방귀를 뀌는 단서들을 찾아 모으며 살인자들을 찾아나선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기도 하지만 명랑소설이기도 하다. 다만 주인공이 탱탱하고 튼실한 몸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만 다를 뿐이지 재미는 그 몇 백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이 검투사들은 도저히 할머니들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발랄하고 귀엽다. 같이 몰려다니며 수영을 하고,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먹고, 서로 비밀 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그녀들을 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의 글래디 여사는 멋진 신사분인 잭과 사랑까지 나눈다! 나이 75세에 가슴 뛰는 것을 느끼고 첫 데이트를 하기 위해 몇 시간 째 옷을 고르며, 정성들여 화장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책을 읽는 나까지 행복해졌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우리 주위의 어르신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들인데, TV에 나오는 독거노인들의 눈빛은 글래디 여사와는 달리 슬프고 공허하다. 외로움이란, 가장 지독한 병이다. 글래디 여사와 검투사분들은 비록 자식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친한 친구들이 옆에 있어 활기차다. 행복한 노후, 활기찬 생활,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가는 것. 우리 모두가 꿈꾸고 원하는 것들이지만 어쩐지 현실과 소설이 너무 다른 것 같아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의 존재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어디까지나 소설은 '현실에 있음직한 일'을 써서 보여주는 것이니까.  

 어쨌든 추리소설이므로 범인찾기도 중요하다. 몇 권의 추리소설을 탐독한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의 살인동기가 그렇듯, 소설 속에서의 살인동기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다. 범인에 대한 응징을 바라는 내 마음을 우리의 검투사분들과 어르신들이 너무도 후련하게 풀어주셨다. 오늘밤부터 유쾌하고 상큼(?)하고 통쾌하고 발랄한 글래디 여사와 글래디에이터들의 재등장들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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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윤지강 지음 / 예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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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허초희.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홍길동전]을 지은 조선시대의 작가 허균의 누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그녀가 황진이에 버금갈만큼 시에 있어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지금까지 황진이에 대한 영화나 책들이 쏟아져나왔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그저 조용히 묻혀 있었다. 책을 읽고나니, 어쩌면 그렇게 묻혀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의 의지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필요로 했던 것은 시와 자유로운 생활, 그리고 평범한 사랑이었으므로. 먼 옛날 여자로 살아가기 힘든 이 조선 땅에서 그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시인이었다. 

한국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란 지금도 보통 일이 아니다. 예전보다 남아선호사상도 줄었다고 하고, 맞벌이 하는 부부며 집안일을 하는 남성도 증가했지만 여자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자는 밖에서 일을 하면서 사회적 지위를 얻는 대신, 집안일도 능숙하게 해내야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이런 한국보다도 유교사상이 팽배하고, 여자는 남편을 잘 모시고 아이를 잘 키우고 조상님 제사를 잘 지내는 것만이 삶의 의미가 되었던 조선 땅에서 허초희는 태어났다. 여타의 남성들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재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녀 삶의 불행의 원인이 되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으므로,  자신조차 그 영혼을 억누를 수 없었으리라. 

한 때는 그녀도 소소한 삶을 꿈꾸었다. 비록 어린시절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정인이 소식 한 줄 없이 자신을 떠나가버리고, 권력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녀 또한 그저 한 사람의 여성이었다. 꽃길을 산책하다가 춘풍에 취해 꽃가지를 꺾어들고 꽃이 더 예쁜가요? 내가 더 예쁜가요? (본문중) 라며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내보이고 싶어했던  어여쁘고 어여쁜 여성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고,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호되고, 그나마 마음붙이고 살았던 아들과 딸을 갑작스럽게 잃게 된 때부터 조상을 모시고 대를 잇기 위해 억지로 임신을 하는 것은 그녀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가 필요해졌다. 시의 세계,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가. 하지만 완고한 남자들은,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남자들은 그런 허난설헌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를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려고만 했다. 결국 그녀는 떠나가고, 세상에는 그녀의 재능을 먼저 알아차린 중국인 주지번에 의해 [난설헌집]이란 책이 남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그녀의 생을 그린 이 붉은 책 한 권이 있다 .

붉은 색에 이끌려 접한 책이었지만, 이제는 이 붉은색이 그녀의 강렬하지만 짧은 생을 나타내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쓰리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조선의 남자들은 어리석어 보여서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허난설헌, 그녀를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 속에 실린 그녀의 시들은, 시에는 문외한인 나의 마음을 톡톡 두드렸다. 한 편 한 편의 시를 적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 앞에 훤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조선의 시대상과 그녀의 삶을 적절히 조화시킨 멋진 작품을 한 권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허난설헌, 이름만 알고 있었던 그녀가 오늘밤 실체를 가지고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었다.



시는 그렇게 왔다.

울남한 바닷물 위로 쑥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잉걸불 속에서 빨갛게 타올라 화로의 재 속에 간직되던 불씨처럼,

어머니가 좋아하던 접중화처럼,

기름진 땅을 두고 푸석거리는 모래밭에 피던 바닷가의 해당화처럼,

어부의 배에 실려 오던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물고기 눈을 감고 있던 짙푸른 해초처럼,

그것들은 어느 날 초희의 영혼에서 시로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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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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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저렸다. 화가 났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전 어떤 책을 보고 생각했었다. 주위에 눈을 돌려 세계를 바라보자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의 아픔이지만 내 아픔처럼 그렇게 다가왔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고. 하지만 어쩌면 그것조차도 자기만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보러 가서 '평화를 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평화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지금도 전쟁, 기아로 아파하는 그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신께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나를,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나태함을 부끄럽게 만드는 한 엄마의 33일간의 전쟁기록이다. 

레바논. 그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나는 몰랐다.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베이루트와 아름다운 지중해, 눈 덮인 산, 풍요로운 곡창지대인 베카 계곡이 공존하는 곳이며 고대 유적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레바논이었다. 19~20세기 초, 중동 쟁탈전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았고, 1926년 별도의 국가로 재탄생했으나, 언제나 아랍국가와 서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위태로운 나라. 그곳이 레바논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몰려왔고, 그 결과 수니파 무슬림들이 증가하자 결국 기독교도들과 무슬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이 1990년까지 계속된 레바논 내전이다. 레바논. 내전을 통해 황폐해졌지만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그 곳에서 2000년 또 끔찍한 전쟁이 발생한다. 

1949년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그 후에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저자가 기록한 전쟁일기의 배경은 2000년. 1982년 이스라엘이 두 번째로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만들어진 레바논 최대의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남부 주민들과 저항전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업가와 군인 3명을 납치해 벌어진 일이었다.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곧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아카쉬 가족은 오늘 아침 이스라엘 공습으로 죽었다. 그의 아들은 헤즈볼라와 관련이 있지만 군사적 임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성직자였다. 이스라엘은 아카쉬의 집에 미사일 4발을 투하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10명이 살해됐다. 미사일은 집을 완전히 부수고, 온 가족을 땅 속에 묻어버렸다. 구조대원들은 2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실종자 12명 중 10명의 주검을 발굴했다. 나머지 2명의 주검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또 다른 남부 마을 집킨에서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가정집을 폭격해 바지씨 가족 12명을 살해했다. 그 중 6명이 어린아이였고 막내는 일곱 살이었다. 바지 씨는 헤즈볼라와 관련이 없었다-p96, 97

남부 레바논에 집중된 공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 길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계속 로켓을 쏘았고, 심지어 건물 밑에 깔린 부상자들을 구하러 가는 구급차에도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발표했을 뿐, 그 어떤 사과의 말조차 없었다. 음식과 약품은 빠르게 떨어져갔고, 상처입은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저자인 림 하다드도 기자인 남편이 취재를 그만두고 하루빨리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며 두 아이들과 함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스라엘은 정말 몰랐을까.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게 되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


 내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어요. 다른 두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거에요. 그 애들에게 내가 필요하니까..당신은 어머니니까 이해하겠지요? -p288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1/3이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생후 15일 된 아이도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진정한 전쟁을 원했다면 민간인을 그렇게 학살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죽음의 사자를 내려보내려 했었다면 애초에 빨리 피난가라는 공문을 뿌리지 말았어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림과 함께 외치고 있었다. 이스라엘아, 너희들이 무엇을 했는지 와서 보아라. 너희들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이라도 그 빛을 잃는다 .

저자인 림은 많은 자식들을 잃은 어머니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들만 건강하게 지켜낸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 또한 책을 보면서 똑같은 심정이었다. 2000년. 나는 그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지만 그 전에 레바논이 그렇게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미국에 분노가 치밀었다. 강력한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친구 미국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붕괴시켜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레바논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는 '새로운 중동이 태어나기 위한 산통'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과연 건물에 깔려 매몰된 사람들의 시체를 보았을까. 까맣게 타버려 석탄처럼 되어버린 아이들의 시체를 보았을까.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을까. 

미국은 하루에도 수 십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레바논에 이스라엘의 공격이 퍼부어지는 기한을 늘리고 늘리고 또 늘여주었다. 레바논의 총리 푸아드 시니오라가 방송에 나가 눈물로 중재를 요청해도 귓등으로도 들어주지 않았다. 9.11 테러의 끔찍함으로 인해 테러리스트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은 스스로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바라보고만 있는 미국에 대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는 또 다른 테러를 낳고, 그 테러는 전쟁을, 그 전쟁은 다시 테러를 낳는다. 강대국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전세계의 사람들의 고통을, 평화를 생각해줄 수는 없는 것이었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화가 난다. 이도저도 떠나 죽어가는 아이들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하다못해 미국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하지만 림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평화를 믿으라고 가르친다. 증오 대신 사랑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전쟁은 그 어디에서도 다시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수 없는,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어야 한다. 지구촌에서 전쟁이라는 잔인한 일이 그 어디에서도 계속되지 않기를,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기를, 평화가 함께 하기를, 이제는 온 마음을 다해 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할 것 같다. 표지에 있는, 총을 들고 웃고 있는 한 남자의 웃음이 너무 밝아서, 빨간 옷을 입고 달려나가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갑자기 가슴 한 쪽이 시큰해진다.


 마음에 증오를 새기지 마라.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고,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참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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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묵
질베르 시누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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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고 빛나는 십자가 위에 하나의 충격적인 문장이 쓰여져 있다. <연쇄살해범이 천사들을 죽이고 있다!>는 문장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하얀 날개와 머리 위에 빛나는 휘광이 달린 천사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라고 여겨지고 있으니까. 때문에 이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체 누가 어떻게 해서 천사들을 죽일 수 있지?-라는 의문과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떠오르는 범인의 형상을 그리면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작품은 주인공 클라리사 그레이 부인이 집 앞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그 뒤에 똑같은 장면이 또 나오는데 앞부분은 저명한 추리소설가인 그레이 부인이 쓰는 작품의 한 부분이었고, 그 다음은 실제로 겪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그레이 부인이 현실에서 '직접' 발견한 의문의 남자는 부인에게 어떤 쪽지를 남기고, 부인은 그 쪽지를 토대로 하나의 수첩을 발견한다. 그 수첩에는 알 수 없는 암호가 쓰여져 있었는데, 조사 결과 죽은 의문의 남자는 가브리엘 대천사이며 수첩은 그가 하늘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살해당하고 있는데, 유력한 범인은 예수, 마호메트, 모세라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맞서 용의자 세 명을 심문하던 그레이 부인은 범인을 알아내지만, 혼란은 멈추지 않는다. 

절실한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에 무척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생각한 성스러운 예수가 살인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등장하거니와 저자가 풀어놓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그리 절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천주교인인 나에게도 너무 억지스럽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의 진상은 내가 범인을 추측하고 있었음에도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 세상에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므로 그저 문학은 문학이라고 여기고 문장의 흐름에 몸을 맡겨 저자가 풀어놓는 사건의 진상을 들으면 된다. 그 후 믿고 안 믿고는 순전히 독자의 책임이다. 

언젠가부터 종교에 관한 미스터리 소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의심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질 정도로 훨씬 지성인이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어떤 과학적 증거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떤 기준에도 휘둘리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아닐까.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대로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종교적 미스터리에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는 있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만이 천국에 간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 종교를 포함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일히 이유를 달고 설명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에 살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가 주인공이라는 것만으로도 소재는 충분히 흥미롭다.  그녀가 사건해결을 위해 선택된 이유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종교적 이론을 토대로 한 작가의 상상력은 놀랍다.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알아채고,  상황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직감을 믿고 범인을 추리해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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