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의 스푼 - 맛있는 인생을 사는 스위트 가이의 푸드 다이어리
알렉스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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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수이지만, 안타깝게도 '가수' 알렉스보다 요리 잘하는 연예인으로 먼저 다가왔더랬다. 그것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TV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신 엄마가 '알렉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몸매도 멋지고 요리도 잘하더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연예인에게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아' 라며 심드렁하게 반응했고 금방 그 일을 잊었는데,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온 그의 모습은 로맨틱하기도 했지만 조금 느끼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올해 초, 라식수술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루 종일 잠만 자던 나의 밤을 밝혀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알렉스였다. '푸른밤, 그리고 알렉스입니다' 라는 멘트가 정말로 밤을 푸르고 흥겹게 만들어 주었고 어느새 그의 방송을 기다리는 애청자가 되고 말았다. <우결>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달리 다소 시니컬하지만 솔직한 그의 말투에 조금 더 호감이 생겼고, 그래서 이 책이 궁금했었나 보다. 그가 소개하는 요리는 어떤 것일지 호기심도 생겼지만, 이제는 푸른밤에서 들을 수 없는 그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목소리가 전해져오길 바랐다. 

이 책은 요리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관련된 알렉스의 추억모음집이자 압축된 자서전이다. 그의 가족, 그의 친구, 그의 음악, 그의 사랑에 관한 기억들이 때로는 구수한 곰국과 함께 때로는 달콤한 핫초콜릿과 함께 마음을 두드린다. 카스텔라에 묻어 있는 엄마에 대한 사랑과 유년시절을 향한 그리움, 솔푸드(soul food)라 지칭한 주먹밥과 따뜻한 미역국을 먹으며 함께 했던 산행, 누나와 함께 먹던 떡볶이, 홀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먹었던 음식과 푸른밤 청취자들과의 우동 번개, 애틋했던 사랑에 대한 설레임들. 

가수가 되기 전에는 요리 공부를 했던 그이기 때문인지 직접 요리를 하는 모습이라든지 여러 음식에 관한 사진들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간단한 레시피들도. 특히 관심이 갔던 음식은 홍콩에서 그가 먹었다던 망고푸딩과 에그타르트, 그리고 하루의 피곤함을 풀어주었다던 밀크티와 술을 좋아한다는 그의 추천(?)을 받은 소맥(;;)이다. 망고푸딩은 홍콩 최고의 디저트 메뉴라고 하니 달리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고 에그타르트는 바삭한 타르트 빵 위에 우유와 설탕, 부드럽게 익힌 달걀을 올린 것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밀크티도 놓칠 수 없고, 술은 잘 못하지만 어쩐지 맛날(?) 것 같은 소맥이 한 밤중에 갑자기 먹고 싶어져서 고생했다. 으흐. 

음식과 연관된 추억담이라 그런지 어쩐지 따스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밥 한 숟갈 먹고 추억 하나, 국 한 번 떠먹고 추억 하나. 그 동안 나는 먹을 때 주로 음식에 집중했었는데, 함께 했던 음식으로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그 동안 나는 뭘 먹었고, 어떤 추억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을까. 나도 하나씩 둘 씩 내 추억을 끄집어내서 그 따스함을 떠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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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에트가 케렛 지음, 이만식 옮김 / 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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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 지 궁금하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평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물론 내가 감동받았던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감동받고, 내가 느꼈던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면 어쩐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 정다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재미없게 읽은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평은 어땠는지 평소보다 더 궁금해진다. '이거 대단한 책인데 내가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재미있는 책인데 나만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음, 불안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나는 이 책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 수상'이라는 문구가 표지에 적혀 있다고 해서 그런 책들이 다 나와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권위있는 상을 받았다고 해도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면 나에게 있어 그 책은 가치가 없다. 그저 내가 읽었던 책들 목록의 한 켠을 차지할 뿐, 오랜 시간 내 머리와 내 마음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거나 상을 받았다고 하면 귀가 솔깃해지기는 한다. 그래도 상은 상이니까. 아무 작품에 무턱대고 상을 주지는 않을 테니까, 라는 조그만 믿음이 아직도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은 것은, 어떤 작가와 작품의 이력이 어떻든 역시 나에게 재미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다. 

모두 22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모음집이다. 사실 맨 마지막 작품인 <크넬러의 행복한 캠프 생활자들>을 제외하고는 기껏해야 두 세장의 짧은 이야기들이다. 처음부터 이 책이 재미없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사실 표제작인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읽고 나서는 느낌이 괜찮았다. 확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동화같기도 하고 뭔가 교훈적인 이야기를 따스하게 풀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계속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이야기인 <굿맨> 부터 영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이야기가 기발하고 독특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뿐. 그것으로 대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래서, 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라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심통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이 재미있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재미없었던 것을 재미있다고 거짓말할 수는 없으니까. 어쩌면 유심히 살펴보고 분석해보면 내가 찾지 못한 생각이 담겨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책이란 쉽고 재미있게 독자를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이스라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하는데, 나는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이야기가 기발했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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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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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함께 한 이 아이, 그 이름은 요노스케올시다~대학 진학을 위해 나가사키에서 도쿄로 상경한 소년입지요. 아니군요. 열 여덟인 데다 이제 대학에 입학했으니 소년보다는 청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 합니다. 뭐 그래봤자 저에게는 아기일 뿐입니다만. 훗훗훗.

요코미치 요노스케. 일본 근대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 중 '이하라 사이카쿠'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호색일대남] 등의 호색기를 쓴 작가로 요 [호색일대남]의 주인공이 바로 요노스케였답니다. 저도 시험 공부를 하면서 살짝 읽어보려 했으나, 작가와 작품 외우는 것만도 벅차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네요. 그런데 그 요노스케와는 달리, 이 요노스케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호빵'입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고, 투실투실하고 어쩐지 허연 몸뚱이의 소유자일 것 같은 그런 소년, 아니 청년이랄까요.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에 등장하는 머쉬멜로우맨 같기도 하구요. 표지의 저런 청년을 생각하시다가는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실 겁니다. 

자, 이 [요노스케 이야기]는 그야말로 요노스케의 이야기입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한 시점부터 1년 여의 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뭐 특별한 점이라도 있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저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할 거에요. 글쎄요. 그러고보니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었던 것 같네요. 여느 대학생들처럼 당연히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으며, 친구들도 몇 명쯤은 있거든요. 조금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삼바 동아리의 회원이라 세탁을 하면서 허리를 살랑살랑 흔든다는 것과 ,약간 요상한 말투를 쓰고 검은색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쇼코라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정도일까요. 흠. 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평범한 청년이네요. 

그런데 말이죠. 요노스케에게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매력이 분명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전 그 매력에 '빈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교코라는 여성은 그 '빈틈'을 다르게 명명했는데요, 한 번 들어볼까요?




   맞아, 그렇게 어중간하지 않으면 그땐 정말로 요노스케 군이 아닌거지. 그 부분을 잘 간직해야 해. -p388



이런. 그녀의 말을 찾는 도중 '빈틈'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름 붙인 줄 알았는데 교코가 '빈틈' 역시 언급했었던 거군요.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쨌거나 요노스케의 매력은 빈틈과 어중간함이라는 거죠. 그 매력을 어떻게 말로 자세히 표현할까 고민했습니다만, 굳이 제 말을 들으려고 하세요. 그냥 읽어보면 될 것을. 흥.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처음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은 읽고 나서 리뷰를 남길 수가 없었어요. 왜 그런 기분 있잖아요. 할 말은 많은데 가슴으로 넘쳐나는 게 너무 많아서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 이 작가의 이야기는 저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요.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그의 강점인 감성적인 문체 뿐만 아니라 유쾌한 분위기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데다 구성적인 뛰어남도 같이 맛볼 수 있었습니다. 페이지가 다 하기 몇 장 전, 가슴이 콱 막히는 그 기분은, 아웅. 

책을 읽고 났더니, 갑자기 요노스케가 제 친구인 양 느껴집니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었지 하는 그리운 기분이랄까요. 실제의 그는 당연히 어디서도 만나지 못하겠지만, 요렇게 책으로 또 한 명의 친구를 사귀었네요. 이래서 제가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요. 요노스케의 투실한 뱃살을 떠올리며 저도 간식을 먹어야겠습니다. 요노스케가 좋아했던 달콤한 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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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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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보트피플'에 대해 알아야 한다. 월남의 패망을 전후하여 해로를 통하여 탈출한 베트남의 난민을 가리키는 단어, '보트피플'. 표지와 제목만 보고는 그저 단순한 성장소설 쯤으로 여겼다. 색감이 따뜻해서인가, 제목이 여가생활을 나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가.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밑으로 가라앉아가는 사람들의 형체가 보인다. 순간 그리 쉬운 소설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음. 전체적인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작품이었다고 할까나.
 
편견이지만, 단편집이라고 하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단편집임에도 손이 가는 작가는 몇 되지 않는데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품에 들어왔다. 베트남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기도 하고, '보트피플'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호기심도 생겨서 읽기 시작했지만, 느낌을 적기가 무척 애매하다.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가인 주인공이 전쟁을 겪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작품을 그 아버지가 태워버리는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부터 , <카르타헤나>, <일리스 만나기>, <해프리드>, <히로시마>, <테헤란의 전화>, 표지 그림의 대상인 <보트>까지.
 
콜롬비아 빈민가에서 테헤란의 거리, 뉴욕에서 아이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조그마한 어촌에서 남지나해를 표류하는 배까지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가지각색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공허하고 쓸쓸하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분명 이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도 있는 것 같고, 그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은데 글자를 읽어내려간다는 생각만 들 뿐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파악되지 않는다. <카르타헤나>와 <일리스 만나기>의 분위기가 가장 마음에 들고,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그 뿐. 작가가 이 작품들로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기보다 자꾸만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보트>이다. 전쟁이 끝나고 보트와 어선을 통해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베트남 난민의 모습을 열 여섯 소녀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병든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지고 매일매일 누군가는 죽어나가며 식수가 부족해 물 한 방울에도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나 새로운 땅을 눈 앞에 두고 죽음을 맞은 트렁. 아이가 수장되는 동안 희망의 땅을 바라보며 소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음과 희망이 맞닿아 있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큰 애처로움으로 다가온다.
 
익숙하지 않은 소재와 작가여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책이다. 독특한 분위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이제부터 만나볼 그의 작품은 조금 더 그의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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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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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좋다. 이상하게 별보다 달을 생각할 때가 신비로운 기분이 한층 더해지는 기분이다. 둥근 보름달은 풍성함을, 반쪽 달은 쓸쓸함을, 가늘어진 달은 어딘지 모르게 반짝거림을 느끼게 한다. 그건 어쩌면 오랜 옛날부터 하늘에 있는 달을 보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거나 소원을 빌었던 애틋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별이 아기자기한 귀여운 아기같은 존재라면 달은 시시각각 변하는 여인같다. [달의 문]. 무척 끌리는 제목이었다. 달 속으로 금방이라도 쑥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제목은 멋진데 표지가 영 꽝이다. 그래도 제목 때문에 쪼큼 기대했었다. 하지만. 쳇.

이 작가, 참 이상한 작가다. 소재나 문체가 특이하다는 뜻이 아니라 [문은 이미 닫혀 있는데] 를 제외하고는 읽는 책마다 실망을 안겨준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재미없기도 따지자면 읽은 세 권의 책 중 최고라고 할까나. [문은 이미 닫혀 있는데] 는 범인의 범행동기를 제외하고는 정말 재미있었다. 한밤중에 책을 펼쳐들고 자야지 자야지 하다가 결국은 다 읽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밀실살인을 소재로 범인과 해결사의 추리대결이 무척 재미나서 공감할 수 없는 범행동기 정도는 너그럽게(?) 눈감아주자 했었다. 그런데 그 이해할 수 없는 범행동기는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에서도 계속된다. 그 책은 범행동기 뿐만 아니라 문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사실은 그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설마 다른 작품도 다 이런 식인 건 아니겠지 했는데. 꺄울. 이 책은 더 심하다. 

주인공들은 이시미네 다카시를 스승으로 모시는 캠프단의 일원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캠프에 참가시켜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안고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 자신,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기에, 그 상처를 치료해준 것이 이시미네라 굳게 믿기에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신흥종교의 교주와 교도들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이시미네가 경찰에 체포당하자 사토미, 가키자키, 마카베 일행은 이시미네의 석방을 조건으로 비행기를 납치한다.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 갑자기 화장실에서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은 비행기 납치와 살인사건 두 가지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납치범들과 이시미네는 자신들을 신흥종교라 여기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신흥종교 맞다. 내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존재를 마음 속 깊이 믿을 수 없다. 종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의심하고 못미더워 한다. 때때로 그렇게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했던 적이 더 많다. 이 책의 주인공들 또한 이시미네를 무조건 믿는다. 믿었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고 그렇게 결말이 났다. 

하지만 말이죠. 범행에 역시 공감도 안 될 뿐더러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 결말까지 나랑 너무 안 맞는다. 한 마디로 '이게 대체 추리소설이야, 신흥종교집단의 이상한 사건기록이야'라는 기분이 들었달까. 추리소설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긴장감, 사건이 해결될 때의 만족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데다  평범한 사람이 뜬금없이 탐정 역할을 한다. 작가가 반전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을 결말조차 '이게 뭐니, 이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다니. '달'이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이렇게까지 매혹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게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를 읽고 나서는 '설마, 이번 한 번 뿐일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 이제는 포기해야지 싶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이럴까 봐 무서워서 손을 못대겠다. 흥. 나는 나름 냉정한 독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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