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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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의 저는, 주인공들에게 곧잘 감정이입을 하곤 합니다. 그건 좋은 일이 생겼을 때보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한층 더 깊어져요. 기쁜 일은 저의 일처럼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가 마치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졸이게 되죠. 그래서 위기와 시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을 읽고나면 목이 콱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져 와서 금방 피곤해집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그런 책들을 일부러 피해다니기도 하는데 이 책은 피하지를 못했네요. 거의 900페이지에 이르는 책 두께 때문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이 너무 힘겨워보여서 책을 읽는내내 정말 힘들었습니다. 

남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뒤로 한 채 회사에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하는 디나, 그리고 그 디나 밑에서 재봉 일을 하는 옴과 이시바, 디나의 집으로 하숙을 하러 온 마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리저리 엮여있죠. 디나의 부모님, 오빠와의 관계,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를 잃은 이야기, 옴과 이시바의 탄생과 그들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마넥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지만 문명의 발전이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물처럼 저절로 마음 속으로 다가듭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디나와 옴, 이시바와 마넥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인도, 그 자체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희망으로 살아갈 거에요. 어제가 오늘 같지 않듯 내일이 오늘 같지 않을 거라는 희망,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희망. 시간의 흐름은 한 때 저에게 큰 위안을 주었거든요.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때 느꼈던 그 시간의 흐름은 그래도 내가 잘 버티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었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나 봅니다. 먹을거리를 해결했더니 당장 몸을 뉘어야 할 자리가 보이지 않고, 오늘 이 일을 해결했더니 또 금방 다른 일이 터져요.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 속의 저처럼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일이 해결되면 이제 괜찮아지겠거니 하며 미래를 생각하고 결혼을 꿈꾸고 가정을 생각해요. 숯으로 양치질을 해서 새하얗다는 그들의 치아가 보이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웃음이 눈 앞에 둥실, 떠오를 것만 같습니다. 

무엇이 적절한 균형인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옮긴이는 '이 작품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균형을 이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국가와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걸까요? 그럼 그 때 부유하고 잘 살았던 사람들은 국가와 어떤 적절한 균형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 적절한 균형이라는 것이, 다른 곳에서 들었다면 괜찮게 느껴졌을 그 단어가 지금의 저에게는 어쩐지 부도덕하게 생각되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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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아일랜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1 존 코리 시리즈 1
넬슨 드밀 지음, 서계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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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 신종플루가 기승입니다. 학교는 그 신종플루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어요.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면 일단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마스크를 의무화하기도 했답니다. 요즘에는 전염 추세도 좀 줄었고 답답하기도 해서 마스크도 잘 안 쓰지만 한동안은 살짝, 공황 상태였어요. 누군가 살짝 기침만 해도, 아침마다 체온을 재서 37도만 넘어도 '신종플루가 아닐까?'라는 의심과 공포감을 느꼈죠. 신종플루에 걸렸어도 완치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사망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을 더 약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이러다 모두 잘못되는 게 아닐까-하는 공포심인 것 같아요. 아무리 조심해도 병은 잘도 우리를 찾아오니까요. 

플럼 아일랜드에는 그런 질병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습니다. 저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했어요. 그 연구소에서는 구제역이나 에볼라바이러스, 탄저균 등을 연구하고 있고 게다가 생물학전의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무서운 소문까지 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연구소에서 일하는 톰과 주디 부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물론 그 사건은 우리의 주인공 뉴욕 강력계 형사 존 코리가 해결하게 되죠.  그 연구소에서 무언가를 반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 FBI, CIA까지 가세해서 코리 형사와 베스 형사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플럼 아일랜드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코리 형사의 머릿속을 핑, 핑 울리는 단서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오고, 진실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환상도 자극하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답니다. 

일단 두께가 대단합니다. 빈스 플린의 [임기종료]를 능가하는 두께에요. 제가 지금 자가 없어서 제대로 재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임기종료]와 맞먹는 두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기종료]의 두께는 4.5cm 정도였는데 말이죠. 사실 저는 두껍다고 해서 지루할 거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아요. 그건 이미 [임기종료]가 증명해주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중간이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어요. 주인공인 존 코리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조사하고 다니는데 과정이 굉장히 세밀하거든요. '대체 여기를 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도 가고, '그 모임과 이 사람이 무슨 관계인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과 모임이 등장하기도 하거든요. 난데없이 느껴지는 그 모든 과정들이 결국은 접점을 이루게 됩니다먼 세밀함이 지나쳐 오히려 살짝 지루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요, 이야기가 좀 복잡해요. 전형적인 스릴러물 같다가도 질병공포소설인가 싶다가도, 또 액션어드벤처소설인 것 같기도 하거든요.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이렇게 추켜올리기도 하고, 저렇게 추켜올리기도 해요.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우리의 주인공, 존 코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 이 형사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요. 사실은 아주 많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들은 환영하지만 여자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너무너무! 이 책에는 매력적인 여성이 두 명 등장하는데 이 존 코리는 일단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듯 합니다. 처음에는 A를 마음에 들어했다가도 B가 나타나자 금방 또 마음을 바꿔 잠자리까지 하고, 마지막에는 또 A와 잘 될 것 같은 조짐을 보입니다. 물론 존 코리 조차도 작가의 창조물이기는 하지만 전 어째서인지 그를 실제 인물처럼 여기고 말아서 얄밉기조차 하더군요. 형사로서의 능력은 제외하고 동물적인 본능만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사실 안타까운 건 존 코리가 여자를 보는 관점이랄까요, 아니면 이 책에서 '여성' 이 차지하는 역할이라고 할까요. 존 코리 뿐만 아니라 베스 펜로즈라는 여자 형사도 등장하지만, 그녀는 형사라기보다는 단순히 존 코리의 부수물, 스릴러물에서 없어서는 안 될 단순한 파트너 정도로만 여겨질 뿐이거든요. 전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런 베스의 역할에 씁쓸하달까 언짢았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존 코리 형사가 여자에게 너무 들이대는 성격이라 더욱 그렇게 여겨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없어서는 안 될 그의 엉뚱하면서도 날카로운 유머감각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자에게 너무 들이대는 그는 많이 거부감이 생기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표지에 '존 코리 스릴러'라는 문구가 보이는 걸 보니 조만간 그도 다른 사건을 들고 찾아올 모양입니다. 그 때는 좀 더 조신한 그의 모습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이상 플럼 아일랜드였습니다.  아, 모두 신종플루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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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의 길을 걷다 - 정태남의 유럽문화기행
정태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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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저요? 저는 가장 유명한 부분밖에 몰라요. 다 아시잖아요~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가 등장하고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왕 클레오파트라 등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요. 그 부분이 왜 유명한 건지 지금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라는 카이사르의 말이 유명하니까, 또 역사의 역동적이고 극적인 면을 그 시대가 가장 잘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만 했었지요.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곰곰히 따져보니, 아마도 화려하고 자극적으로 공화정의 마지막을 장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는 것만 눈에 보인다고 역시나 이 부분이 눈에 가장 잘 들어오더군요. 계속 읽어도 재미있는 시대였어요, 그 때는.

사실 로마 역사야 몰라도 상관은 없죠. 우리 역사도 어느덧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 한 권의 책으로 로마가 걸어온 길을 전부 알길 바라는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이렇게 말하는 저도 아무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읽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것은 있어야 하니까요. 요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 로마에 대해 장황하게 알려주는 저를 떠올려보기도 했고, 남들에게 내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뿌듯해할만한 지식은 갖출거라 믿었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건 욕심이었던 거죠~그래서 저는 마음을 바꿨어요. 한 번 읽고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말자고. 지금은 그저 로마의 시조가 누구이고 그 동안 몰랐던 사건과 인물을 알게 된 것에만 집중하자고요.

자, 로마는요, 처음에는 왕정시대로 시작합니다. 늑대젖을 먹고 자랐다고 알려지는 시조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후 네 명의 라틴계 왕과 세 명의 에트루리아계 왕을 거쳐 초강대국으로 발전한 공화정시대로 돌입해요. 이 공화정 시대에 유명한 전쟁과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제1,2,3차 포에니 전쟁이 바로 이 때 일어났고, 한니발이 등장하며, 맨 처음 언급했던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가 등장합니다. 최고의 문인 키케로도 여기 있고, 아, 마리우스와 술라도 여기 있네요.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로마를 다스리게 됩니다. '기원전 27-서기 180'에 이르는 시기로 로마에 의한 세계평화, 즉 팍스 로마나가 실현된 때이죠. 이 시대에는 폭군이라 불린 칼리굴라도 있고, 많이 들어보신 네로 황제도 있어요. 그리고 어쩐지 이름이 익숙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왕도 있네요. 그 후 '서기 180-476'에 이르는 시기는 로마제국이 무너지는 때로, 마지막 황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가 쉽게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름에 익숙해지지가 않았어요. '~스, ~우스' 이런 이름들이 무수히 등장해서 이 사람이 이 사람인가, 아닌가 저 사람인가 할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요 책을 읽으실 때는 이름에 버럭! 하지 않으실 정도의 인내력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이름만 조금 참아내신다면 로마의 역사를 제법 간단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에요. 로마를 단순한 여행지로만 여겼었지 이렇게 깊이 파헤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잖아요. 이만하면 사진도 부족하지 않고, 작은 챕터에 맞추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으니 아마 지루하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흐흐, 저도 사실은 이 책을 붙잡고 한동안 끙끙거렸답니다, 호홋! 그래도 저는 다 읽었잖아요. 다 읽고 말씀드리는 거니까 괜찮아요. (뭐가?;;) 그나저나 저자의 이력이 대단합니다. 현재 이탈리아 국가 공인건축사라니, 어쩐지 멋져 보이십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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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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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지만 불안하다. 그것이 이 책의 150여 페이지까지를 지배하는 분위기다. 어떤 사람은 그 분위기를 지루하다는 말로 대신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를 '지루하다'는 것으로 여겼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지루한 것이 아니라 위태로운 것이었다. 아프리카 석유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모두 잃고 영국으로 건너왔지만 어디에 가든 어떤 방법으로 자살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는 리틀비. 2년의 시간을 수용소에서 보내고 불법체류자가 되어 바깥으로 나온 순간부터, 리틀비는 '그 남자들'을 두려워하고 언제 잡혀갈 지 모른다는 말로 독자들의 마음 속에 위기의 싹을 틔워놓는다. 그럼에도 정작 리틀비의 말투는 담담한 것도 같다. 늘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어느 정도 가신다는 그녀에게, 죽음은 멀지 않은 것, 항상 함께 있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그 죽음을 피해 언니와 함께 해변으로 달려나갔던 순간 리틀비는 한 부부를 만났었다. 

과거의 나이지리아의 해변. 아내의 불륜을 남편이 알아차렸고 파탄난 그들의 관계를 다시 이어붙이기 위해 휴가를 온 부부. 그런데 그들 앞에 나이지리아 소녀 두 명과 그녀들을 붙잡으러 온 병사들이 나타난다.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면 당신의 가운데 손가락을 자르라며 칼을 던지는 병사. 절망감과 공포,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찬 남편은 결국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지 못하고 대신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손에 칼을 꽂는다. 행복과 새출발을 그리며 찾아든 해변에서 그들이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 저녁은 뭘로 할까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무엇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해야할지에 대한 선택까지.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우리 인생에 흔하지 않다. 또한 나의 손가락을 잘라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어떤 대상에 한정될 것이다. 나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두려워도 손가락을 자를 수는 있겠다. 그것은 선택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제 막 만난 소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라면, 글쎄, 나는 해변의 부부 중 아내보다는 남편이 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 같은 것. 난민은 리틀비 한 명 뿐만은 아니며 지금 이 순간도 지구 곳곳에서는 수많은 난민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것이다. 왜곡되고,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고, 서로 눈감아주는 세상 속에서 불행은 개인의 문제라 여겨지고 결코 온전히 나의 것은 될 수 없다. 리틀비가 이야기하던 '개는 개이고 늑대는 늑대'인 것처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기 위해서.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있고, 도우려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벽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시간이 더 흐르고 나이를 먹어야만 알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점에서 해변에서의 사고 이후 괴로워했을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리틀비의 불행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해결하려는 아내의 공명심도. 어쩌면 그 둘의 마음은 나에게 벽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한 선택의 순간, 자신에게 당당했던 리틀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안다. 완전한 평화, 그녀의 원래 이름인 우도(평화)가 실현되었던 시간. 부부의 아들 찰리가 나이지리아의 아이들과 물을 튀기며 노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 시간. 그것이 두려움과 어둠 속에서 리틀비가 찾아내고 작가가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희망의 시작일 것이었다. 


 

 나는 찰리에게 미소를 보냈고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의 희망이 한 사람의 영혼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 이거 참 기막힌 재주인걸. 이런 걸 바로 세계화라고 하는 거지.-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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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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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에서는 이 작품을 프랑스 장르문학의 신기원을 연 작품이라고 평했지만 나에게는 프랑스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우선 '막심 샤탕' 이 떠오른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는 아주 쪼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막심 샤탕의 <악! 시리즈> 를 읽고 나서는 프랑스 소설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이야기가 대부분 스릴러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속도감과 내용이 프랑스적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여기서 프랑스적 냄새가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나에게만 느껴지는 그런 냄새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르몽드]> 의 극찬을 보고 이 책도 그런 종류일까나, 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는데, 음, 장르문학치곤 조금 어려웠다고 할까. 

이야기는 우고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친구 마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누의 복수를 위해 마르세유로 돌아온 우고는 마누를 죽였다고 생각되는 주카를 암살한 직후 경찰에게 사살된다. 그 후 실종된 그들의 여인 롤. 그 사건을 역시 어렸을 적 친구였던 파비오가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그는 경찰세계에서 완전히 무시당하는 존재다. 마누, 우고와는 어렸을 때 잘 어울렸지만 재미삼아 벌인 강도짓이 한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린 후 그들의 관계는 부셔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소식도 끊고 각자의 삶을 살아온 그들. 한편, 파비오는 아랍계 이민자의 딸 레일라와 오묘한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그런 레일라가 실종되고, 며칠 후 시체가 발견된다. 마누와 우고의 죽음, 시체로 발견된 레일라, 그들의 여자 롤의 실종.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 세상에 외롭게 남은 파비오가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어슬렁,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 마르세유. 요렇게만 말하면 어쩐지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이 책에 묘사된 마르세유는 황량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다양한 이민자들,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중심을 이루고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세력 등이 날뛰는 그곳은 말 그대로 토탈 케옵스(대혼란)의 온상지다. 작품은 몇 건의 살인사건과 실종을 해결하려는 파비오 형사 모습 이외에도 이민자 가족들이 마르세유에서 당하는 배척, 어두운 뒷골목의 모습을 음울하게 그려낸다. 그런 묘사 때문에 문체도 무척 건조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파비오에게서조차 '어떻게든지 해결하겠다!'는 결의도 잘 느껴지지 않고 '하다보면 해결되겠지'는 안일한 분위기가 풍긴다고 할까. 색감이나 활동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슬로우로 진행되는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도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더는 문제될 것이 없었을텐데, 사실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소설이라면 '집중' 이 필요하다. 어떤 단서가 나왔고, 어떤 인물들이 연관되어 있으며,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는 그런 것. 하지만 이 책은 거의 파비오의 반 자서전이다. 어렸을 적 마누, 우고와는 어떻게 어울리게 됐는지, 그들의 여인 롤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레일라와는 어떤 감정의 교류가 있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는 누구이며 현재 자신 곁에 있어주는 여자는 누구인지 등. 그런 필요없는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 여자도 좋다, 저 여자도 괜찮다 하는 파비오의 물렁물렁한 태도랄까. 내용도 나에게는 '토탈 케옵스'였다. 

사건은 그냥, 어느 틈에 해결된다. 글쎄, 그걸 딱히 파비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그의 동료 페롤이 더 능력있는 형사로 보인다. 마르세유의 복잡한 상황과 사건을 해결하려는 요소가 잘 버무려지지 못한 것이 흠이다. 아예 마르세유의 상황을 배경으로 완전 사변적인 소설을 썼거나, 그런 상황과 파비오 자신의 문제들을 조금 줄이고 사건해결에만 집중하는 소설이었다면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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