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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ㅣ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북미 대륙이 잿더미가 된 뒤에 태어난 나라, 판엠. 빛나는 캐피톨이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열세 개 구역이 그 주위를 둘러싼 나라 판엠에서 한 때 반란이 일어났다. 열두 개 구역은 캐피톨에 패했고, 열세 번째 구역은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춰버린다. 살아남은 열두 개 구역에 내려진 잔인한 법 조항. 매년 소년 소녀 한 명씩(조공인)을 각 구역에서 선발하여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게 만드는 것. 싸움은 오직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되고, 승자는 둘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동생 대신 자원한 캣니스의 외롭고 고달픈 싸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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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히 봐둬. 우리가 너희 아이들을 데려다 희생시켜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너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박살내버릴거야. 13번 구역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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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소년소녀 24명이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설정은 일본영화 <배틀로얄>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질서를 위해 무작위로 선정된 한 반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려내 국가의 권위를 세우려했던 <배틀로얄>도, 주변 구역들이 더 이상 반란을 꾀하지 못하도록 잔인한 게임을 설정한 이 작품도 잔혹하다는 측면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듯 하다. 다만 영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느냐, 상상하게 만드느냐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두 싸움 모두 경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생존경쟁에 다름 아니다.
주인공은 12번 구역에서 사는, 아버지를 잃고 실질적으로 가장 노릇을 해 온 열 여섯 소녀 캣니스. 추첨에서 선정된 것은 그녀의 동생 프림이었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 동생을 위해 죽음의 잔치에 자원한다. 그녀와 함께 선정된 또 다른 조공인 피타 멜라크는 빵집 아들인데 어린시절 절망의 늪에 빠진 캣니스를 희망의 빛으로 이끌어준 마음 속 지원군이다. 어쩌면 그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캣니스는 당혹스러워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피타는 능글능글하면서도 다정하다. 살아남기 위해 멘토의 조언을 따라 '죽고 못사는 연인'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하지만, 담담하고 필사적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피타 앞에서 캣니스는 늘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책의 매력은 우선 캐릭터에 있다. 가슴이 터질 듯 두려운 상황 앞에 처해있지만 늘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캣니스의 모습은 어떻게든 그녀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이대로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살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그녀의 모습에서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모습으로 있고싶어하는 우리의 바람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 조공인으로 선출된 피타 또한 멋지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 빵을 준 소년의 다정함이 시종일관 빛을 발하며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은 확실하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인가는 즐거움과 안타까움의 '캬캬'를 내뱉었으니까.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삼각관계를 형성할 게일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리 드러나지 않았으나 초반 보여준 그의 남성미와 다하지 못한 말들은 속편을 기다리게 만들기에 충분할 듯 하며 그 외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하다.
다음은 당연히 '이야기'다. 캐릭터가 아무리 멋진들 이야기의 구조가 엉성하거나 독자를 끌어당기지 못하면 그 작품은 재미가 없어지는데 이 작품은 마치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나가는 듯한 전개구조를 보인다. 게다가 잔인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망라되어 있다. 동생을 위해 대신 자원한 캣니스를 볼 때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다른 조공인들과 경기를 치루게 될 때는 공포와 불안, 초조함이, 그녀를 사랑하는 피타를 볼 때면 설레임이, 진심인 피타와는 달리 살아남기 위해 연인 역할을 완수해내는 캣니스를 볼 때는 화가 나기도 한다. 작품의 전반을 아우르는 감정은 역시 긴장감인데, 앞에서 나열한 감정들과 함께 긴장감은 어디에서나 살아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갑자기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긴장이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데,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문체가 독특하다. 늘 현재형으로 구사되어 있는 문장은 그들의 헝거게임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현실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나레이션의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와 생생함을 전달한다. 마치 우리 자신이 게임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건조하고 까끌함이 느껴지는 문체 속에서 캣니스의 비애감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3부작 중 1편에 해당하는 [헝거게임] 이 이제 막 끝났지만, 궁금한 것은 더욱 많아졌다. 앞으로 어떤 인물이 나타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곡선은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는데 책만큼 재미있는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다리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힘들기도 하므로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내일 당장 나와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