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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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정말 다양한 매력을 가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리뷰를 올리는 카테고리 이름을 '무지개'라고 지은 것처럼요. 어렸을 때는 무지개 중 어떤 색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갈팡질팡 하기도 했지만, 요렇게 조금 모자란 어른이 된 후에는 '다 좋아!'라고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비록 일곱가지 색깔이지만 저에게는 그 일곱가지도 참 다양해 보여요. 그처럼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인데요,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아이들이 있죠. '내가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으면 정말 어쩔 뻔 했어! 요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면 너무 아까울 뻔 했잖아!'라는 생각이요. 마치 곁에 있는 이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하는 아이가 있어요. 물론 그 '인연'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요. 

로마 서브 로사. 서브 로사 (sub rosa) 는 '장미 밑에 있다'라는 뜻으로 비밀 회의 장소에 장미를 꽂아 두었던 로마 시대 관습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사전적으로는 '은밀히', '남몰래'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따라서 '로마 서브 로사'는 역사에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이면을 들추는 것임을 나타낸답니다. 한 마디로 '숨겨진 이야기'라고 할까요. 세상에 공표된 것과는 다른, 어쩌면 우리가 진실은 저 멀리 있다고 믿게 하는 그런 성향의 이야기요. 그런 이야기가 우리 조선 시대도 아니고, 고려 시대도 아니고, 삼국 시대도 아닌 먼 옛날 로마시대에 존재한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구요? 힛!

그래요. 로마라고 뭐 다를 게 있나요? 우리는 우리의 풍습대로 그들은 그들의 풍습대로 사는 거죠. 그들의 풍습을 좌지우지하는 인물, 술라가 독재관으로 재임하고 있던 BC 80년이 이 작품의 배경입니다. 술라, 로마의 훌륭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며 막강한 세력으로 정적들을 몰아내고 독재관이 되어 원로원 지배체제의 회복을 꾀한 인물입니다. 그의 말을 거슬러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고 그의 말이 곧 법인, 그야말로 살아있는 신이죠. 그렇게 그의 날개가 온 로마를 뒤덮고 있는 어느 때,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밝히기 위해서 키케로가 그를 변호하게 되고, 숨겨져 있는 사실들을 알아내기 위해 더듬이로 알려진 고르디아누스가 사건에 뛰어듭니다. 곧이어 다가오는 위험들, 차례로 밝혀지는 음모들이 긴장감으로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든답니다. 

이 작품은 표면상으로는 추리소설입니다. 엄청난 재력가이지만 사랑하는 작은아들을 잃었고 큰아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며 엘레나라는 창녀에게 빠져 있던 한 노인이 살해당한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는 요소는 바로 로마 시대에 대한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논리력입니다. 키케로가 신참 변호사로 활동하는 시기의 정치적인 배경과 이득으로 얽힌 수많은 인간관계, 그 시대 사람들의 자세한 생활상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한 건의 살인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어떻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는지 낱낱이 파헤쳐주고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가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굉장하답니다. 군더더기가 없는 완벽한 전개과정을 보여주죠.

또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입니다. 우선 사건 해결의 선두에 서 있는 고르디아누스. 그는 키케로처럼 누군가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위대한 명성을 쌓은 사람은 아니지만, 우직하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며 정의를 생각하고 자신의 여자를 사랑할 줄 압니다.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가진 키케로나 미소년이지만 어리고 순진하기만 한 티로에 비해 훨씬 '남자'라는 느낌을 풍겨요. 그렇다고 이 둘에게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신경질적인 분위기를 가졌지만 그래도 키케로라는 인물을 무시할 수는 없으며, 티로의 충성심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니까요.  

혹시 [임페리움] 이라는 작품을 읽어보셨나요?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으로 그 책 역시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페리움] 과 [로마 서브 로사] 에서 그리는 키케로의 모습이 조금 달라요.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키케로에 대한 이미지는 '허약함, 약삭빠름, 세치 혀' 뭐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순전히 미국드라마에서 기인한 이미지였죠. [로마 서브 로사] 는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키케로의 이미지와 비슷해요. 어쩐지 신경질적인 분위기, 앵앵거린다고 묘사된 목소리는 간사하다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그에 반해 [임페리움] 에 등장하는 키케로는 좀 더 활동적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서술자가 달라서일까요? [임페리움] 에서는 그의 심복 티로가, [로마 서브 로사] 에서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까요. 물론 티로는 [로마 서브 로사] 에도 등장합니다. 그것도 미소년으로요. 미소년인 티로와 [임페리움] 에 등장하는 티로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아마 이 둘을 비교해서 읽으신다면 색다른 재미를 맛보실 수 있을 거에요.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한 가지 괴로운 일은 이 책도 시리즈인 관계로 다음 권이 나와주길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 왜 이렇게 시리즈로 등장하는 책들이 많은 건지요. 하지만 그 기다림으로 인해 다가올 날들이 기대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겠어요? 앞으로 흠뻑 사랑하게 될 또 하나의 대작 등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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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모어 이모탈 시리즈 1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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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내 눈에 들어온 지도 어느 새 2년이 되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해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1부에는 살짝 열광하고 말았다. 불멸의 존재,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낸 후 얻게 될 끝나지 않는 사랑에 관한 소재는 소녀든 할머니든 여자를 끌어당기기에는 최상의 소재가 아닐까.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시작으로 뱀파이어와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저주받은 불사의 영혼이라고 알려진 뱀파이어와는 달리 [에버모어]에는 완전한 '불사신'이 등장한다. 뱀파이어도 아니요, 좀비도 아니요, 그렇다고 신도 아닌 존재가 어떤 비법으로 인해 몇 백 년을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데이먼. 그리고 그의 심장을 움켜쥔 사람은 짐작한대로 에버라는 소녀다. 교통사고로 온 가족을 잃은 에버에게는 사고 이후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려오고, 조금 닿기만 해도 그 사람의 인생과 무슨 일이 있는 지 알게되는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 게다가 죽은 여동생의 영혼과 이야기도 하고 때때로 말다툼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접촉이 두려워 늘 웅크리고 살아가는 에버 앞에 매력적인 데이먼과 오싹한 드리나가 나타나면서 그녀 인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 에버와 누가 봐도 멋진 매력남 데이먼의 만남과 사랑에, 예전의 나라면 분명히 과도한 감정이입으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이상하게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이제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에는 약간 지루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데이먼과 에버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제 그만 밝혀도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몇 번이나 지난 후에야 중요한 사실이 밝혀져 김이 새버린다고 할까. 

글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지만 독자를 완전히 사로잡기 위해서는 '독자의 감정'에 민감해져야 한다. 어디에서 긴장하고 어느 부분에서 설레게 되고 어떤 장면에서 초조하게 될 지 파악해야 재미있는 책이 나온다. 이 작품은 긴장의 완급을 조절하는 면에서 조금, 부족한 듯 하다. 또 눈에 거슬리는 번역이 몇 군데 보이기도 한다. 확실히 어디가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계속 곱씹어봐도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 있다. 

'불사'라는 개념에서 보면 뱀파이어나 데이먼이나 다를 바는 없지만 데이먼은 늘 불사 주스를 마셔야 한다. 약간 코믹하게도 느껴지는 불사의 비법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이 책도 시리즈 중 1부에 해당하니 불사의 비밀이라든가, 에버와 데이먼 앞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순수한 감성을 가진 소녀들이라면 충분히 재미있어 할만한 이야기인데, 요런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기에는 난 좀 나이를 먹었나 보다. 슬프다,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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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트 -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
척 팔라닉 지음, 황보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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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처음 올리는 리뷰입니다. 헷!  사실 이 아이, 읽기는 2009년의 마지막 날 다 읽었었습니다. 바로 어제였죠. 방학을 하고 났더니 어쩐지 마냥 뒹굴고만 싶은 마음이 강해져서 요 며칠 책 읽기를 아주 살짝, 게을리했거든요. 하지만 이 책이 더디게 읽혔던 것은 저의 게으름 탓만은 아닐 거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소~올직히 고백하자면, 저에게는 약간 어려웠습니다. 재미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어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웅? 빠져들 것 같은데?' 라는 기분에 폭 감싸일라치면 저의 정신을 금방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려고 결심한 듯한 내용들이 등장하더라구요. 어떤 분은 이 책의 매력을 느끼려면 자신의 공력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럴지도 몰라요. 이 책은 눈 앞에 모든 것을 펼쳐준다기보다 내용 하나하나를 독자 스스로 껍질을 벗겨내고 알맹이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일단 표지에는 요렇게 써 있습니다.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 이 문구는 CSI의 광팬이자 미국드라마의 모든 형사물, 범죄물을 섭렵하고자 하는 저를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었죠. '뭐지, 뭘까, 근데 왜 연쇄살인범을 추억해야 할까, 누명이라도 쓴 걸까'라며 홀로 정신없이 널뛰기를 하는 와중에, 또 하나의 문구가 눈에 띕니다. '랜트와 키스하지 마. 바이러스에 감염될거야'. 그렇습니다. 연쇄살인범이긴 한데, 이 랜트라는 사람은 키스를 통해 사람을 병에 걸리게 하는 범죄를 저지르더라구요.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랜트의 범행수법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라 해야할까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랜트의 부모, 친구, 자동차 충돌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이 등장하며 그의 행적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요. 처음에는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긴 하지만 보는 시각과 전해지는 말에 따라 좋게도 보일 수 있고, 나쁘게도 보일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니까요. 그 모든 의견을 모아서 한 사람을 상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다행히 그들의 진술은 '랜트'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랜트의 행동'에 집중되어 있어서 아주 살짝, 주관적인 감정은 배제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그것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랜트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사람들과는 별개로 작가가 만들어낸 환경도 매우 기묘해요. 주간생활자와 야간생활자가 존재하는 사회, 자동차 충돌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랜트의 살인수법 (그게 정말로 사람을 죽이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아주 의심되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운전자 실황 교통방송에 시간여행까지. 아, 다른 사람의 경험을 부스트 할 수 있는 신기한 기술도 소개되죠. 어째서 저의 정신이 자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려고 했었는지 이해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자, 그럼 쪼콤 어렵긴 하지만 저의 모자란 능력으로 '랜트'에 대해 집중해 볼까 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한 사람을 단순히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우린 그냥 들은 이야기로 랜트가 병을 옮겼고, 사람이 죽었고,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을 정부가 격리하고 심지어는 총으로 빵빵 죽이려고 했다는 것까지만 알지요. 도덕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류로 햇빛이 비칠 때 생활하는 주간생활자와 창백하고 타락하고 과격한 부류로 비치는 야간생활자 중에서 그 병에 걸린 것은 주로 야간생활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야간생활자와 그들이 만들어 낸 자동차 충돌파티, 병에 걸린 야간생활자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정부의 강경책.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딘가 사라져버린 랜트.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내세운 시간여행과 도입되는 신에 관한 이야기. 과연 랜트는 정말 존재했던 것일까요? 

우훙. 저의 머리로는 여기까지가 최선인 것 같아요. 분명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는데 더 설명하려 하다가는 큰일나겠어요. 저의 정신이 안드로메다를 넘어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까지 가버리면 안 되잖아요. 이제 겨우 새해가 밝았고 게다가 첫 날인걸요. 아직 읽고 싶은 책도 많구요. 

하지만 이 작가, 굉장하다는 것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사실 척 아저씨하고는 처음 만나봤는데, 제가 좀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살짝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전 '그로테스크' 한 책을 읽으면 당장에 몸져 누워버리는 체질인지라 이 아저씨 책은 모두 그럴 거라고 단정짓고 있었습니다만, 요런 새로운 재미와 도전정신을 갖게 한 작품은 오랜만입니다. 제가 공력이 된다면 좀 더 깊이 있는 리뷰를 쓸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조금 분하고 아쉬워요. 어쨌든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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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맛>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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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가 별점을 매길만한 책이 아니다. 이름만 들어봤지 백석이란 시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그 시인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저자가 쓴 이 책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책, 대학에서 국문과 학생들이 교재로 써야 할 책이 아닐까' 였다. 백석이란 시인에 대한 작가의 평가, 시인의 작품에 녹아든 여러 가지 맛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분석해낸 구성과정, 그 모두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기에는 무리가 있다. 작가가 바보 취급을 할 지도 모르지만 백석의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라는 작품의 제목만 아는 나같은 사람이 아무래도 더 많을 테니까. 

책을 펼치는 순간 거부감이 들었다. 잘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좀 더 알아보겠다고 집어든 사람에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백석 시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문장이 제일 첫 장, 첫 줄에 씌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백석 시, 나는 모르겠다아!'라고 궁시렁거리고 말았다.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청소년들을 비롯해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일단은 국문과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친숙하게 느끼기 힘든 단어들, 시들이 엄청 소개되어 있어 그런 수정, 보완작업을 거쳤다고 해도 간단히 '네, 그렇습니까'라고 수긍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다 알 거라고 생각한 착각을 바탕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내용이 친절하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백석여담> 과 <음식소사> 부분이었다. 짧은 하나의 챕터가 끝나면 이 두 가지 코너가 이어지는데 백석에 관해 분석하고 시의 내용을 잘게 쪼개 설명하려 한 부분보다 더 재미가 있다. 부자의 음식과 극빈자의 음식이라든가 외간남자와 음식을 같이 먹을 자유 등의 주제로 그 시대의 모습을 음식과 관련해서 설명했다. 예전 신문 등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광고와 신문 기사 등도 실려 있어 마치 옛날 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이 책은 그러니까 결국 전문가용이다. 만약 작가가 정말로 백석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하고 백석을 소개하고 싶었다면 생애, 작품, 그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했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일반 사람들이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그러니 결국 저 별은 그의 친절함에 대한 평가, 일반 독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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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터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미드나이터스 세트 - 전3권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박주영.정지현 옮김 / 사피엔스21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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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것이 행복하고 또 그만큼 잠이 많은 나지만 늘 이불 속에 들어가는 것이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깊고 아늑한 밤 시간을, 밤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 준 소중한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때는 자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내 몸이 좀 더 잠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밤을 새워도 좋겠지만 적당한 시간을 자주지 않으면 금새 몸에 이상반응이 생기는 체질이라 잠은, 꼭 자야 한다. 그럴 때면 자야 한다는 것이 무척 아깝다. 그 시간을 영원히 멈춰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 안타까운 시간을 한 시간만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자정이 되면 그로부터 한 시간동안 푸른 어둠이 찾아오고 다른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으며 오직 선택된 사람들만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캬. 다른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
 
[어글리] 시리즈로 유명해진(?) 작가 스콧 웨스터필드가 이번에는 '시간'을 소재로 쓴 작품을 선보인다. 특정한 나이가 되면 전신성형을 받고 못난이에서 예쁜이로 모두가 변신해야 하는 사회라는 특이한 상상력을 자랑한 작가는 자정이 되면 온 세상이 멈추고 선택받은 '미드나이터'만 움직인다는 세상을 창조했다. 빅스비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종할 수 있는 마인드캐스터 멜리사와 전승을 읽고 해석할 줄 아는 '보는자' 랙스, 수학 천재 데스, 하늘을 나는 자 조너선, 불을 가져오는 자인 제시카는 그들의 적 슬리더, 다클링과 싸우면서 마을의 비밀을 파헤친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신기한 것이다. 흘러가는대로 내버려 둘 수 밖에 없고 오늘 지난 시간은 내일 다시 오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며 그 흐름과 함께 사람의 몸 또한 변화한다. 시간은 또한 우리에게 공간의 개념이 되기도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 내일 가게 될 어딘가는 모두 시간과 맞물려 있으며 우리 삶을 지배한다. 때문에 사람은 시간에 호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시간에 거스르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토록 목마르게 시간여행,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방법 등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25시간이었던 하루, 그 중에서 한 시간이 접혀 오직 선택된 자들만 활동할 수 있고 이제 그 영역은 점점 넓어져 푸른 어둠 속에서 존재하던 사악한 무리들이 그 경계를 뚫고 나오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살 수 있고 누구나 꿈꿀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다섯 명이지만 그들의 생활이 부럽다고만 생각되지 않는 것은 그 책임이 너무나 크긔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결말 부분이다. 작가가 속편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깔끔하게 매듭지어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속편이 나와준다면 즐겁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무리한 전개는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판타지 소설로서 흥미로운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다. 시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 하늘을 나는 능력 등 누구나 한 번씩 꿈꿔보았을 신비한 일들이 푸른 어둠 속에서 펼쳐진다. 태양 대신 떠오르는 검은 달과 하늘에서 내리다 멈춘 수정같은 빗방울, 내리치다 멈추게 된 번개들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책 소개글에 적힌 것처럼 한밤중에 읽기 안성맞춤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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