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이드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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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아무리 이케이도 준이라고 해도 '럭비'라니. 작가가 선보이는 기업이나 금융관련 작품에 이제야 익숙해진 내가, 전혀 관심도 없고 규칙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럭비라는 신세계를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케이도 준!! 럭비에 문외한인 독자들이 읽어도 거부감을 느낄 수 없게 역시 럭비의 '럭'도 모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서 느껴왔던 감동과 열정을 다시 한 번 꽃피운다.

 

이야기의 중심은 기미시마 하야토. 회사의 무리한 인수합병을 냉철한 분석력으로 저지하지만 천적이라 여겨왔던 다키가와 상무이사의 눈 밖에 난 탓에 지역 공장 총무부장으로 좌천된다. 긍지를 가지고 일해왔던 직책에서 물러나게 된 것만으로도 억울한 그에게 떨어진 또 하나의 직무는 바로 회사가 운영하는 '성적 부진'의 럭비팀의 제너럴 매니저다. 설상가상으로 팀을 이끌어왔던 감독마저 사직해 새로운 감독까지 영입해야 하는 상황. 처음에는 럭비에 문외한인 그를 모두 걱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지만, 그는 대충 하는 법이 없는 남자였다!! 럭비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팀의 개혁이 바로 이 남자의 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케이도 준의 대표작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의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는 어딘가 강철같은 느낌을 전달하는 남자다. 거칠 것 없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며 말 그대로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올 것 같은 사람. 하지만 이 기미시마 하야토는 한자와 나오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조용히 흐르는 물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한 번 목표로 정한 일이라면 어떻게든 성공시키고야 마는 행동력과 집중력에 있다고 할까. 난항을 겪기는 했어도 럭비에 문외한이었기에 사고가 자유로웠고, 덕분에 럭비협회와 자신이 맡은 팀 아스트로스의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까닭은 밤 늦게까지 자료를 연구하고, 비디오를 돌려보는 열정이 밑바탕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노력과 열정 없는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미시마 하야토는 온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독특한 점은 이 작품에서 기미시마 하야토는 중심인물이자 주변인물이라는 것이다. 팀 밖에서 싸우는 그가 있다면 팀 안에는 아스트로스의 선수들이 있다. 새로이 영입된 감독 사이몬과 그의 새로운 훈련 방법을 묵묵히 따라가는 선수들. 처음에는 과연 자신들이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의심하던 그들도 점차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자신감에 가득차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팀의 가장 연장자로 경기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하마하타, 사이몬을 만나 실력이 급상승한 도모베와 사사, 부상으로 좌절했지만 아스트로스를 만나 다시 한 번 럭비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 나나오, 늘 럭비에 대한 사랑으로 한결같은 기시와다와 분석가인 다에. 그들이 럭비를 대하는 자세를 보고 있으면 내 가슴 속까지 불길이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볼을 서로 빼앗는 격렬한 경기를 하다가도, 일단 종료 휘슬을 불면 적도 아군도 사라지지. 그러니까 노사이드가 되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건투를 빌어주지. 숭고한 정신이야. 이거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 아닌가? 여기에는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인간의 존엄성, 삶이 있지 않을까?

p 24

 

소재는 럭비이지만 이케이도 준은 자신의 장점인 기업 이야기를 이번 작품에서도 빼놓지 않았다. 회사 내의 권력다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방법과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들이 럭비 세계와 어우러지며 큰 감동을 선사한다. 적과 아군이 결국에는 하나가 되는 장관.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숨이 가빠올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라서, '역시 이게 이케이도 준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늘 기대하고 읽고, 마지막은 작가가 선사하는 감정들에 희열을 느낀다. 내게 이케이도 준은 절대 끊을 수 없는 존재다. 한 번이라도 그의 세계를 맛본 독자라면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열세일 때 정면 돌파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믿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에 마지막까지 감동으로 몸부림치면서 어느새 완독해버린 책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 출판사 <인플루엔셜>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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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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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배신, 계략과 응징이 난무하는 격정 고딕 로맨스]

 

'고딕소설' 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뾰족한 탑과 기괴한 분위기 때문에 유령같은 초현실적 이야기를 기대했던 [숲속의 로맨스]. 앞서 읽은 [공포, 집, 여성] 덕분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오히려 '이번엔 어떤 공포를 마주하려나!'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예상외로 무서움은 조금, 로맨틱함과 분노와 그 분노를 해소해주는 결말로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앤 래드클리프가 어째서 '로맨스 작가들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지 완벽히 이해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갈등과 긴장, 악인에 대한 처단과 선인에 대한 보상으로 독자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채권자들과 법의 심판을 피해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피에르 드 라 모트와 그 일가. 도주 중 괴한들의 손에 잡혀 있던 아름다운 아들린을 우연히 만나 함께 하게 된다. 언제까지 도망다닐 수도 없는 노릇. 버려진 수도원에 몸을 의탁하는 일행은 서로를 의지 삼아 조용한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수도원에 감도는 음산한 분위기와 누군가가 감금된 후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두려움에 떨고, 그 와중에 아들린을 향해 사악한 뱀의 마음을 가진 자가 검은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다!!

 

앤 래드클리프는 이야기 진행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를 들었다놓았다 한다. 어느 때는 답답해서 가슴을 쾅쾅 치게 만들다가도 '그렇지! 이거지!' 하면서 통쾌함을 맛보게 해주는데, 흡사 요즘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의 진행방식을 따라가는 듯 하기도 하다. 하지만 앤 래드클리프가 먼저이므로, 혹시 드라마 작가들도 이런 고전 작품들을 참고로 해서 대본을 작성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 '막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악인으로 등장하는 후작이 그 어떤 납득도 되지 못할 정도로 안하무인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들린을 향한 욕망을 가진 추잡한 남자인 줄만 알았는데 뒤에 밝혀지는 악행이 폭로될수록 입이 떡 벌어지게 된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보여주는 라 모트 백작 때문이었다. 후작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아들린을 후작의 손에 바치려 하지만, 인간적인 양심까지는 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 그에 비하면 시종일관 고결한 품성에 아름답게 그려지는 아들린이나 악행만을 일삼으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후작은 너무나 단편적이라 오히려 사람이 아닌 인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고 할까.

 

대부분의 고딕소설들이 잔인하고 기괴한 것에 비해 [숲속의 로맨스]는 비록 수도원이나 비밀통로, 숨겨진 방이라는 설정은 있지만 무서움보다 로맨틱함을 더 강조하는 작품이다. 평소 '고딕소설'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쉽게 접하지 못한 독자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사랑과 배신, 격정과 로맨스와 계략이 난무하는 매력적인 앤 래드클리프의 고딕작품. 이 기회로 그녀의 작품이 더 많이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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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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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유령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속이 뻥 뚫리는 결말이었다.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전개하며, 악인에 대한 응징이며 선인이 받는 보상과 관련된 이야기는 현대의 작품 설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배경만 다를 뿐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드라마나 책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다른 독자들이 읽어도 무척 만족할 것 같다. [숲속의 로맨스]를 읽기 전에는 어째서 앤 래드클리프가 '로맨스 작가들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받았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납득이 된다.

 

초자연적 현상으로 보이는 사건을 설명 가능한 일로 풀어내는 방식을 도입했다는 앤 래드클리프. 난데없이 유령이 등장했다면 코미디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 그 모든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하나로 모아 명쾌하게 풀어내는 논리적인 방식이 매력적이다. 가능하다면 그녀의 작품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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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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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연인들의 사랑에 나쁜 남자의 등장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아들린의 아름다움에 빠져 어떻게든 제 것으로 만들려는 후작. 그런 후작에게 대체 무슨 빚을 진 건지 꼼짝 못하는 라 모트 내외. 심지어 아들린을 도망치게는 못할 망정 뱀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후작의 손아귀에 아들린을 던져 넣으려는 라 모트 내외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 물론 라 모트 내외가 아들린을 구해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들린에게 억지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읽다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

 

사랑하는 테오도르의 안위조차 알지 못한 채 이제는 기력이 다해버린 아들린. 어둠과도 같은 그녀의 미래에 언제쯤 한줄기 빛이 비칠지..수도원에 사는 유령이라도 나타나 후작을 벌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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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이었을 때
앰버 가자 지음, 최지운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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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무겁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쓰라렸다. 첫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가 벌써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 지금은 하루에 수십 번씩 엄마를 부르면서 나에게 매달려도, 학교를 가고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아마 아이가 나를 찾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제발 엄마 좀 그만 부르라고, 엄마도 생각 좀 하게 10분만 혼자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지금을 나는 아주 그리워하게 되겠지. 자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으면서 -오늘도 엄마가 미안해, 내일은 더 많이 사랑하자, 조금만 천천히 커-라고 되뇌이는 지금이 행복의 정점이라는 것을 가슴 시리도록 잘 알고 있다.

 

아론이 갓 태어났을 때 거의 2년은 따뜻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에는 짜증 나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기억이 따뜻하고 아련하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p23

 

그래서 켈리의 심정에 백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문장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아이를 잃은 엄마의 흔적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켈리가 바로 나였다.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 역시 켈리처럼, 혹은 켈리보다 더 못한 시간 속을 살아갈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남편은 일 때문에 주말에만 만날 수 있고, 가족이 없는 집은 무덤처럼 공허하며, 켈리를 안아주고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켈리 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켈리. 어린 나이에 아들 아론을 낳았던 젊은 날의 켈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또 다른 켈리와 그녀의 아들 설리번에게 연민과 동시에 동정심을 느끼는 켈리는 그녀를 볼 때마다 떠나간 아들 아론을 더욱 그리워하고, 아기 돌보는 데 익숙지 않은 다른 켈리를 대신해서 설리번을 키우고 싶다는 그릇된 욕망까지 가지게 된다. 하지만 켈리의 주변 인물들은 과거 그녀의 과오로 인해 또 다른 켈리와 설리번이 상상 속 인물은 아닌가 의심하고,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끼는 켈리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망상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들을 잃은 켈리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그녀의 삶에 등장한 또다른 켈리. 당신이라면 누구를 믿을 것인가. 젊은 켈리는 과연 아론을 잃은 켈리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망상의 결과물일까. 정말로 켈리는 자신이 설리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독자인 당신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그 어느 쪽을 믿더라도 작가가 준비해놓은 반전이라는 덫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믿은 것은 아들을 잃은 켈리였다. 설령 또 다른 켈리와 설리번이 그녀가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이라 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엄마로서 그녀에게 동정과 아픔과 연민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전부 느꼈다. 때문에 그녀의 마지막 선택 또한 지지한다. 그녀는, 나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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