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수확자 시리즈 3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이야기까지 완벽한 최고의 SF]

 

드디어 장대한 <수확자> 시리즈가 막을 내렸습니다. 3권이자 마지막권인 [종소리]를 읽기 전부터 저의 관심은 악당 고더드가 과연 어떨 결말을 맞을 것인가, 선더헤드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인듀라가 가라앉은 원인을 수확자 루시퍼, 즉 로언의 탓으로 돌려 그를 전세계가 저주하는 범인으로 몰아간 고더드는 모든 대륙을 통합하여 자신의 지배 아래 둘 야망을 펼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더드의 발 아래 엎드리고, 누군가는 반기를 들면서 세상은 사망 시대 이후 찾아온 최대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죠. 고더드의 손아귀 안으로 세상이 떨어진 그 날로부터 3년, 얼어붙었던 시크라와 로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평범한 모든 이들이 불미자인 상황에서 오직 혼자만 선더헤드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그레이슨 톨리버. 그는 음파교 안에서 '종소리'로 불리며 예언을 하고, 사람들을 이끌어나갈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신앙이 되어 음파교가 세력을 확장해나가지만, 선더헤드가 그레이슨을 '종소리'로 만든 이유는 그의 성정 때문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그의 발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지만 그레이슨은 절대 우쭐거리거나 거만해지지 않습니다. 그가 귀를 기울이는 오직 단 하나의 존재는 선더헤드. 과연 이 길이 어디로 통할지 그레이슨은 예측도 할 수 없지만, 그저 선더헤드가 하는 일이려니, 무슨 계획이 있겠거니 하는 이미지라고 할까요.

 

시트라가 수확자 아나스타샤로서 고더드의 과거 악행을 폭로하기 시작하고, 그 과거가 현재 선더헤드가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나면서 모든 인물과 모든 상황이 하나의 점으로 귀결돼요. 작품 속 등장하는 악인이라 해도 조금은 연민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어떻게 고더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악할 수가 있나요. 그가 맞이한 최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제가 기대했던 강도에는 미치지 못한지라 그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로언과 시트라의 결말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고, 음파교를 철저하게 믿었던 아스트리드가 자신의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장면에서는 저조차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사실 선더헤드가 이대로 폭주하지는 않을지, 공격성과 살의를 띠고 인류를 무차별적으로 살육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마음이 살짝 있었는데, 이 선더헤드마저도 마지막에는 감동을 주네요.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예라고 한다면 바로 이 선더헤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길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아직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누가 될까 너무 염려스러워요.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방대한 분량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 그 하나입니다. 유토피아의 파멸이자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감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너무나 완벽한 SF 라 칭송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다시, 이언 매큐언!!] 

 

한때 '악마적 글쓰기'로 불리며 제 마음 속 한 자리를 차지했던 작가, 이언 매큐언. 예전 그 때의 저는 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인가 완전히 이야기 속에 푹 빠져버렸고, [속죄]를 읽고나서는 다시 없을 작품이라며 저만의 평가를 내리기도 했죠. 국내 출간된 그의 작품은 (저의 기억대로라면) 전권 소장 중이고, 결혼하면서 많은 책을 친정으로 보내면서도 여전히 책장에 꽂혀있는 애장품(?)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견딜 수 없는 사랑]은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라 국내 초역인 줄 알았는데 예전에 [이런 사랑]으로 번역된 적이 있더군요. 구입만 해놓고 아직 읽지 못한 [이런 사랑]을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결국 읽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클래리사와 소풍을 간 남자 조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소년을 태운 채 날아갈 위기에 처한 열기구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주저없이 달려간 조. 그와 함께 뛰어온 다른 네 명의 남성과 함께 열기구에 달린 밧줄을 붙잡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몸무게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결국 하늘로 떠오른 열기구. 누가 먼저였는가를 가릴 새도 없이 다섯 명의 남자 중 네 명이 밧줄을 놓아버리고, 가벼워진 열기구에는 단 한 명의 남자 존 로건만 매달려있게 됩니다. 결국 추락한 그 남자. 조는 자신이 최초로 밧줄을 놓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이야기의 초반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윤리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라 예상했어요.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렸으나 밧줄을 놓은 것에 대해 잣대를 들이대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역시 이언 매큐언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의 예상과는 굉장히 다르게, 그는 독자에게 갑자기 '사랑'이라는 주제를 들이밉니다. 조와 함께 날아가는 열기구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던 남자 제리 패드가 난데없이 조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이야기가 급변해요. 제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남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제리의 주장은, 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그만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신호를 보냈다고 하는데 제가 아무리 앞뒤를 살펴봐도 그런 상징들은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었거든요. 혹시 이 남자가 열기구 사고 때문에 심한 충격을 받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리의 존재를 조의 연인 클래리사조차 믿어주지 않습니다. 제리가 보낸 편지도 조의 손글씨와 비슷한 것 같다고 하고, 자신은 집 앞을 지키는 제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해요. 순간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제리의 존재는 조의 망상이 아닐까? 로건의 추락 장면을 목격한 조의 뇌가 충격을 감당하기 위해 제리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로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조가 제리의 등장으로 인해 그의 모든 신경이 제리에게 집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리가 등장한 시점부터 로건의 죽음으로 인해 받았던 양심의 가책은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었거든요. 

 

다만 로건의 죽음에는 그의 아내인 진이 의심하는 한 가지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비밀 때문에 진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온전히 슬퍼할 수가 없어요. 슬픔보다는 배신당했는다는 분노, 그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때문에 그녀의 삶 또한 빠르게 무너져갑니다. 조와 진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평소와 같은 보통 날들이었다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옆에 있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대처가 좀 더 이성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일상에 생기는 그런 균열들이 한 사람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고, 망상에 빠트릴 수 있는지 그 위력을 새삼 느꼈다고 할까요. 

 

독자의 뇌가 빠르게 회전하며 무엇이 진실인가를 가늠하고 있을 때, 마침내 '드클레랑보 증후군'이라는 용어와 함께 제리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그 지점에 이르기 위해 작가는 지성과 감성, 이성과 신앙의 시각에서 여러 측면을 검토하며 논리를 펼쳐나가는데요, 이 과정이 이해하기 쉽다고는 결코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마치 저의 뇌가 재배열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몰라도, 저처럼 다소 이 작품을 어렵다 생각하신 독자 분이라도 그의 작품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이런 작품은 이언 매큐언밖에 쓸 수 없다는 느낌을 받으실 날이 분명 올 겁니다. 분명 매력 있는 작가이니 포기하지 말아주시기를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더헤드 수확자 시리즈 2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암흑은 깊어지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종소리가 예고된다]

 

전 세계에 <수확자> 돌풍을 일으킨 화제의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 [선더헤드]. 로언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수확자 아나스타샤가 되어 마리와 함께 수확을 하게 된 시트라와 검은 로브를 입고 수확자 루시퍼가 되어 부패한 수확자들을 거두는 로언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특히 시트라의 수확 방법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녀는 수확당할 사람들에게 일정 시간을 주어 세상과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돕는 데다, 각각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1편인 [수확자]에서 죽음의 의식이 마치 기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다르게,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해준 거죠.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질병이 사라지고 죽음마저 관리해야 할 영역으로 들어간 세상이 유토피아라 부를만 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악당이 너무 쉽게 사라지면 재미가 없을 겁니다. 1편에서 수확을 쾌락의 도구로 사용했던 고더드의 죽음 이후 어떤 새로운 빌런이 등장할 지 궁금했는데, 이 고더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그 어떤 상상이라도 뛰어넘는 모습으로 등장해서 충격을 안겨줍니다. '그런 모습'이라도 유지하면서 살아있는 고더드를 보면, 죽음이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오히려 죽음을 더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의미를 남기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서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분출시킬 시간이 필요하게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작가는 죽음이 사라진 세상 속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하는 듯 합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세상 속에서 살아가겠느냐고.

 

2편의 제목이 [선더헤드]인만큼, 1편의 '수확자 일기'의 자리를 선더헤드의 독백이 차지합니다. 선더헤드는 결코 수확령에 개입할 수 없지만,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 시트라를 돕기 위해 모종의 계략(?)을 세우죠. 그레이슨 톨리버를 통해 시트라에게 반대편의 음모를 알리고, 생명을 구해주는 선더헤드의 생각은 대체 무엇일까요. '돕는다'는 행위에는 마음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어요. 연민, 동정, 그 외의 어떤 감정이 먼저 생긴 후에 '돕는다'는 행위가 뒤따르는 게 아닐까요. 선더헤드의 속마음, 아니 속생각은 무엇인지, 이 거대한 프로그램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그것이 곧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는 생각에 살짝 몸이 떨리기도 합니다.

 

인듀라의 침수와 노드 땅의 발견은 수확자들과 선더헤드에게 무엇을 시사하게 될까요. 모두가 불미자가 되어버린 세상, 수확령의 격변, 그리고 성서에 등장하는 천사의 나팔을 상징하는 듯한 종소리. 선더헤드가 관리하는 유토피아는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인지 너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3부 [종소리]에 가장 바라는 점은, 저 고더드의 추락을 부디 통쾌하게 그려주었으면 하는 점입니다. 애정하는 캐릭터들을 너무 오래 괴롭혀왔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상서점 -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장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서점이나 도서관 아닐까요? 전 새책 냄새와 날카로운 종이결도 좋아하지만 오래된 책들의 그 꿉꿉한 냄새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가끔 책 냄새 맡고 있는 저를 옆지기가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는 하지만, 아이들 냄새만큼 책 냄새도 참 매력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저의 눈에 포착된 '서점'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 제목!! 심지어 그 앞에 '환상'이라는 단어가 더해지니 호기심이 강해질 수밖에요. '밀리의 서재' 종합베스트 1위인데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이책으로 출간된만큼 재미는 확실히 보장된 작품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제가 예상한 스토리는, 어떤 서점에 기이한 분위기의 주인이 있고, 서점에 들리는 손님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손님과 맞는 책을 추천하면서 고민상담같은 것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제 예상이 절반 정도는 맞았다고 해도 될까요? 서점 주인인 '서주'는 우연히 마주한 연서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그 이야기는 어느 때는 자신의 이야기, 어느 때는 저승차사의 이야기, 또 다른 누군가가 엮인 이야기이기도 했거든요. 영원히 존재하게 된 사내와 그 사내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비극적인 운명으로 고통스러운 생을 되풀이하게 된 여인의 이야기가 독자들을 꿈인 듯 현실인 듯한 세계로 초대합니다.

 

누구나 죽음 너머 세상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 궁금할 거예요. 누군가는 윤회를 믿기도 하고, 누군가는 '천국'이라는 곳을 동경하기도 하며, 과학적으로 죽음을 증명하려 하기도 하죠. 어릴 때부터 저는 환생 이야기에 무척 끌렸었어요. 사람이 죽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니, 그럼 그 사람은 전생의 사람과 동일한 인물인가 아닌가, 한때는 그런 생각을 꽤 심각하게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건,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사랑했던 사람을 또 다시 사랑할 수 있는가-하는 점이었는데요,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 같아서 여전히 저를 끌어들이는 소재입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이런 소재의 이야기들에 빠져드는 건, 그 신비함에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영원'을 향한 동경이라고 할까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바뀌어가는 세상 속에서 '영원'이라는 것이 있을까, 존재하기는 할까, 그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막연한 소망을 이루어주는 듯한 내용이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읽은 책입니다. 평소 오디오북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쩐지 이 책은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더 실감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퍼뜩 들었고요. 신비로운 남자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도록 속편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인과 바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정적 한순간을 생각하며 새롭게 발견한 노인의 의지]

 

제 스스로가 세계문학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렸을 거예요. 자고로 세계문학은 한 번만 읽는 게 아니라고, 여러 번 읽어야 감이 좀 오고 매번 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고요. 그 여러 번 읽은 세계문학 중 하나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학창시절에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서 골라 읽은 후 노인과 고기의 맞대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어요. 헤밍웨이의 삶을 대하는 자세, 저만의 무언가를 발견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번이 최소 세 번째로 읽은 것 같은데, 여전히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고, '아, 그랬었지'라고 기억을 되살리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애한테 내가 별난 노인네라고 말했었지." 노인이 말했다.

"이제 그걸 증명해 보일 때가 온 거야."

 

그가 이미 그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 그는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 하고 있었다. 매 순간이 새로웠고, 그걸 증명해 보일 때 과거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p 72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4의 테마에 비추어 볼 때 노인의 '결정적 한순간'은 거대한 고기와 마주한 바로 이 순간일 겁니다. 사람들에게 '살라오', 누구보다 운 나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는 노인은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그런 그의 곁을 따스하게 지키는 건 다정한 소년 미놀리 뿐이에요. 홀로 바다에 나가 거대한 고기를 맞닥뜨린 노인은 매순간 아이를 생각합니다. 저는 노인이 고기를 잡아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증명하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가 고기를 지키고 가져가려고 했던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라오로 취급받는 노인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아이가, 자신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요.

 

예전에는 노인이 바다에서 고기, 그리고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에 집중해서 읽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노인과 소년의 관계에 더 눈길이 갑니다. 초반에 펼쳐지는 소년의 다정한 배려와 챙김, 그런 소년을 온화하게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에서 더없는 따스함이 느껴져요. 그러니 증명해야겠다고 결심할 수밖에요. 오직 한 사람, 자신을 믿어주는 소중한 존재니까요.

 

헤밍웨이에 관한 책으로 [디 에센셜_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있습니다. 실린 작품 중 <깨끗하고 밝은 곳>이라는 이야기에 이런 문장이 등장해요.

 

모든 것은 '나다(무(無))'이면서 '나다'이고 또 '나다'와 '나다'이면서 '나다'일 뿐이지.

 

저는 그 때도 '나다'를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담담히 세상의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했고, 노인의 태도를 바라볼 때마다 이 '나다'를 확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온 몸으로 맞서 싸웠으나 고기를 지키지 못했고, 노인은 계속해서 살라오 취급을 면치 못하겠지만 사자 꿈을 꾸며 잠든 노인의 모습은 그 자체가 '나다'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이 [노인과 바다]를 또 읽게 되는 날이 있을까 싶지만, 아이들도 있고 하니 한 두 번은 더 읽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그 때는 또 무엇을 발견하게 되고, 무엇에 마음이 가게 될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