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지음, 송경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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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두운 조명, 부옇게 피어오르는 연기들, 이상하게 생긴 병들, 그 병들에 담긴 색색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내용물.그리고 그 앞에서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정체모를 누군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마법에 대한 이미지는 이랬다. 아마도 '백설공주'에 나온 의붓엄마의 모습이 기억속에 꾸욱! 박혀버린 모양이다. '신데렐라'에는 착한 마법을 부리는 요정도 나오지만, 나쁜 마녀의 이미지는 쉽사리 지워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도 '분명히 아내가 나쁜 마법을 써서 남편을 잡아먹으려고 하거나, 불행을 가져다주려고 하다가 들켜서 벌을 받는 이야기일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렸다. 표지를 보라.  사악한 것일수록 아릅답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주인공 노먼은 젊은 사회학과 교수로 사랑하는 아내 탠시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내의 화장방을 장난삼아 몰래 뒤적이다가, 그 곳에서 마법과 주술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노먼에게 있어, 탠시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곧 아내에게 당장 마법을 그만 둘 것을 권유한다. 탠시는 처음에는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교수진의 아내들도 모두 마법을 사용하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고 흥분하지만, 곧 마법 도구를 없애고 그의 말에 따른다. 그런데, 그 후로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여학생과의 불건전한 루머, 총기에 의한 살해 위협..더구나 주위 상황은 그가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할 정도로 이상하게 돌아가며,탠시를 살리기 위해 흑마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상황까지 내몰린다. 

 -탠시는 그의 연구 작업 내내 지치지 않고 능률적인 비서 역할을 해주었다-
이 책은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악인과 선인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대결 구도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대결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싸움이다. 탠시는 과연 노먼의  '비서'역할을 한 것일까. 대답은 NO다.책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 아직 혼전순결이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고, 대학은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람들로 가득찬 답답한 공간이었다. 물론 남자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시대에  앞에 나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노먼의 몫이지만 그런 그를 지켜내는 것은 그의 아내 탠시의 몫이다.즉, 단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호하고, 안전한 세계로 그를 이끌고 있다고 해야 맞겠다.  다른 교수의 아내들도 마찬가지다. 교수인 남자들은 뒤에서 자신들의 아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학과장이라는 자리에 아내가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겉으로는 정숙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책은 강한 듯 하지만 약한 남자들의 모습과, 순종적인 듯 하지만 뒤에서 온갖 마법을 부리는  탐욕스러운  여성들의 모습을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하게 보여준다.

-마법은 실용적인 과학이다.-
노먼은 죽음에 다다른 아내를 구하기 위해 마법 안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결국 공식을 찾아내고 아내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지금까지 마법은 근거없는 미신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마술도 단순한 눈속임이라고 믿으며, 그 속임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근거없는 것인 걸까. 나는 사람의 의지는 어떤 것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예전부터 믿어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마술의 중요 요소는 사람의 동기다. 마술이 사람의 동기와 욕망을 고려한다면, 의지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결국 마술도 옛날에는 부정되었던 많은 과학이론들처럼 나중에는 실용적 과학이 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단순히 미신이다, 쓸모없다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다.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책 앞장에 적힌 것처럼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도 마법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했고, 작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였다. 내가 싫어하는 온갖 과학 법칙 이야기가 나와도 참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내가 정말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니었을까? 독특한 분위기, 곳곳에 숨어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는 몇 번 음미해도 좋을 정도로 멋지며 영화로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많은 상을 휩쓴만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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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향기 2007-09-0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뽑히신 것 축하드려요. 리뷰 읽어보니 재미있는 책일거 같네요. 보관하고 갑니다.^^

분홍쟁이 2007-09-04 23: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악의 영혼 1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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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실이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이 아닐까-
경기도 일대에서 잔인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곧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그 사건은 아직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미 공소시효를 지나 범인이 잡히더라도 법적으로 형벌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린다. 우리나라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있다면, 미국에는 '조디악'이라는 유명한 킬러가 있다. '현대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선전문구를 인용하여 홍보하는 이 영화와 더불어, 또 하나의 '현대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책이 있다.  바로 왠지 달콤할 것은 이름을 가진, 막심샤탕의 <악의 영혼>이다.

 고문당하고 신체의 일부가 심하게 훼손되어 죽음을 당한 여성들의 시신이 하나씩 발견된다. 이 사건을 맡은 젊고 유능한 수사관이며 범죄 프로파일러인 조슈아 브롤린은 단서를 잡아, 살인마에게 붙잡힌 죽음 직전의 여성 줄리에트 라파예트를 구해내고, 살인마는 브롤린의 총에 맞아 숨진다. 그로부터 1년 후..깊은 산 속 폐가에서 1년 전 사건을 재현하는 듯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머리에 있는 범죄사인 또한 동일하다는 것이 밝혀진다.시간이 지나 다른 피해 여성이 나오고, 브롤린과 다른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신출귀몰한 범인은 그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1년 전 죽었다고 생각한 범인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온 것이 아닌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서서히 범인의 정체와 그의 목표가 밝혀진다.

 내가 프로파일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크리미널 마인드 속의 수사관들은 단서를 가지고 범인이 어떤 인물인지,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쳤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파일을 만든다. 드라마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간의 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내가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과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것은, 어쩌면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인공 브롤린 또한 자신이 받은 교육을 토대로 범인의 파일을 만들어간다. 작품 속에서 다른 부분의 묘사도 훌륭하지만, 내가 특히 감탄한 부분은 검시라든가, 법의학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점이었다. 작가들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취재를 나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름만 달콤한 이 작가는 <악의 영혼>을 쓰기 위해 대학에서 범죄학과 범죄심리학 강의를 수강했고, 담당교수 덕택에 부검에도 수차례 입회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해부하는 장면의 묘사는 너무 적나라해서 거의 읽지 못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작가의 책을 쓰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에는 감동했다고 해야 할까. 

결말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마음이 아팠고, 한동안 머리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범인이 내세우는 살인의 목적은 너무 어처구니 없었고, 짜증이 날만큼 바보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씁쓸함을 느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해칠 수가 있을까. 동물도 필요하지 않으면 다른 생물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쾌락과 목적을 위해 인간마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잔인함은 과연 어디가 종착역인 것일까.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바친 2년동안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공포감보다 작가의 그 한 마디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책은 더운 여름의 아찔함을 잊어버리게 해 줄만큼 자극적이고, 재미있었다. 맛있는 이름을 가진 작가의 브롤린 시리즈가 또 출간된다고 하니, 잔인한 묘사에 놀랐으면서도 내심 기대가 된다. 다만, 노약자와 임산부, 그리고 어린이들은 이 책을 금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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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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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형식이 대화체이기 때문이었다. 대화체로 된 소설은 제법 나와 있지만, 나는 한 번도 대화체로 된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 대화체도 작가가 자신이 쓴 소설을 여기자와 5일동안 인터뷰하는 식으로 소개한단다. 게다가 소재 또한 특이하다. 15년간 자신이 사는 마을도 아닌, 알프스 마을의 날씨를 외워온 한 남자의 이야기다. 

 비토리오 코발스키는 15년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알프스의 어느 한 마을의 날씨를 연구한다. 기온, 기압, 강수량, 일조량까지 빠짐없이 연구해오던 어느 날 <베텐, 다스>라는 유명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15년동안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사랑을 생각해낸다. 15년전 그들이 헤어지게 된 사건을 떠올리고, 급히 그녀, 아니를 찾아가는 비토리오. 그러나 그녀는 어렸을 때 친구 루키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마음을 정리하려고, 15년 전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찾은 그는 그 장소에서 뜻밖의 사고와 뜻밖의 편지를 발견하면서 다시 아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작가가 그린 비토리오는 평범함 뒤에 독특함을 숨긴 사람이다. 아무리 어떤 사건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어떻게 15년간의 날씨를 외우고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몇 분 뒤에는 태풍이 온다는 것 등등 시간을 셀 수 있다고도 하니, 워낙 숫자에 약하고, 과학으로부터 먼 나에게 비토리오는 무슨 외계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서술형보다 생동감 있고, 나 또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중간중간 작가가 여기자와 대화를 나눌 때 나오는 멋진 문구들도 인상에 남는다.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특히 이야기를 맺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데,  앞으로 작가와 여기자가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게 한다. 책 구성은 깔끔하다. 표지도 귀엽고, 중간중간 모르는 말들의 설명도 세세하게 잘 들어가 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나는 기대했던만큼의 그렇게 큰 즐거움을 이 책에서 찾아내지 못했다. '볼프하스신드롬'을 만들어 낼 정도로 대단한 작가라고는 하나, 사람마다 맞는 작가와 작품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야기가 논점에서 옆으로 새는 것 같은 느낌이 간혹 들었고, 그 때문에 산만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또한 '미스터리한 러브스토리'라고 하기에는 강도가 너무 약하다고 해야 하나..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 부족했고, 러브스토리라고 하기에는 보통 사랑을 말할 때 느끼는 애틋함이 부족했다. 

 대화체 소설에 익숙하지 않아 읽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문학을 접한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복잡한 책을 읽었다는 생각에 어지럽다. 눈이 뱅글뱅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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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허들 - 1리터의 눈물 어머니의 수기
키토 시오카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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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에게 있어 어머니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가 라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러한 말을 소재로 책도 나왔던 것 같다). <1리터의 눈물, 생명의 허들>을 읽으면서 내내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아야는 병을 이기려고 노력할 수 있었던 거구나"

 -病気はどうして私を選んだの(병은 어째서 나를 선택한 걸까)-
-転んだっていいじゃないか。また起き上がればいいんだから(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1리터의 눈물 中)

내가 키토 아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 딱 이맘 때였다. 원래 일본드라마를 즐겨보는 나는,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슬픈 내용은 되도록 피한다. 그래서 <1리터의 눈물>의 제목을 보면서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루 동안에 11편의 드라마를 모두 봐 버렸고, 결국 한 달이 넘게 후유증으로 꽤 고생을 해야 했다. 마음을 다스리기까지 힘은 많이 들었지만 나는 <1리터의 눈물>을 통해 -키토 아야-를 알게 된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로 먼저 알게 되었지만 책으로도 나온 <1리터의 눈물>은 키토 아야가 척수소뇌변성증(운동신경을 관장하는 척수와 소뇌에 이상이 생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에 걸려서도 손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쓴 일기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아야의 곁에서 많은 힘을 주며 같이 병마와 싸운 어머니의 수기가 바로 이 <생명의 허들>이다. <생명의 허들>은 앞서 나온 <1리터의 눈물>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아야의 생활과, 아야가 병과 어떻게 싸워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늘이라는 날도 내일이라는 날도 시간으로 새기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새겨나가자.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상상을 해 봐. 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많아-(생명의 허들 中)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아야의 어머니는 아야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단지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아야에게 있어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을 밝게 비쳐준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야가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하며 좌절해 있을 때도, 일기를 써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라고 권유한 것도 어머니였고, 아야의 약한 마음을 다독이며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은 것도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아야는 게으름을 피우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병과 싸우려고 노력했고, 그녀가 쓴 일기는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마저도 삶의 희망을 일깨워주었다. 

 이 수기에서는 또한 일반 사람들이 병든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부분도 엿볼 수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무척 화가 나게 만든 부분이었다. 아야의 병은 몸이 부자유스러운 것 뿐이지 뇌의 활동은 정상인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아야는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총명한 아이였다. 그런 아야를 어떤 간병인들은 바보 취급을 하고, 심지어 학대에 가까운 행동도 거리낌없이 행한다.  누워만 있는 아야의 몸을 잘 닦아주지 않는 사람, 목의 연동기능이 잘 움직이지 않아 천천히, 오래 밥을 먹는 아야에게 대체 언제까지 밥을 먹는 거냐며 호통을 치는 사람..심지어 어떤 간호사는 마지막이 다가오기 6개월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아야의 병실에 들러 식사량이 얼마냐고 무신경하게 묻기도 했다니..책을 읽는 내 마음도 너무 아팠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보는 아야의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분노로 눈물이 났다. 동시에 내가 그 동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봐 왔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적이 있었나, 아니, 따뜻한 눈빛 한 번 보낸 적이 있었나. 부끄럽다. 

 다행인 것은 아야의 곁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지켜준 간병인, 인기가수이면서도 소탈한 모습으로 찾아와 아야에게 멋진 만남의 기회를 선사해준 야마카와 유타카, 주치의 선생님인 야마모토 히로코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했던 가족.어머니. 고통이 많았지만 짧은 생 속에서 충만한 사랑을 느꼈다는 그 사실에 나도 또한 위로받았다. 

 <1리터의 눈물> <생명의 허들> 이 책들은 지금 특히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 또한 힘들 때마다 <1리터의 눈물>을 꺼내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데 두려운 게 무엇이고, 해내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열망한 아야를 생각하고, 함께 고통받은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조그만 일에도 쉽게 지치는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아야처럼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지"하는 의무감을 느낀다. 사소한 것, 평범한 것, 그것이 바로 다름아닌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야의 마지막을 어머니는 -시집보낸다-고 표현했다. 먼 나라, 전화도 편지도 할 수 없는 먼 나라로 아야를 시집 보내는 것이라고..죽음은 우리 삶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예기치 못하게 다가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마지막까지 시신을 기증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기를 원했던 아야. 그리고 그런 아야를 마지막까지 지탱한 어머니.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삶을 누린 아야와 그런 아야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녀의 어머니에게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난 그들 덕분에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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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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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라고 부르더니 이번에는 빼먹었네요. 천치라는 낱말도.-
-그래요. 아니, 당신은 바보 멍청이보다 더 심해요. 도대체 왜 이렇게 저를 오래 기다리게 했어요? 저는 당신한테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요.-
-미안합니다. 두 번 다시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동화'는 '동화'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떤 내용이든, 등장인물이 누구이든, 동화는 동화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것은 어쩌면 동화는 우리들이 구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순수한 사랑, 아름다운 마음, 편안한 공기 같은 분위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동화를 읽은지도 오래 되었다. 자신의 일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 지금.나는 <스타더스트>를 만났다. 

 여기 '트리스트란 쏜'이라는 한 젊은이가 있다. 살고 있는 마을에서 점원 일을 하고, 때로는 어리석다는 말도 듣는 그이지만 마음씨 하나만은 고운 바른 청년이다. 그런 그가 사랑 하나로 길을 떠난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빅토리아 포리스터의 키스를 얻기 위해, 별을 찾으러..사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마을 바깥에 있는 성벽 너머의 다른 존재가 그의 어머니이고, 그는 그런 어머니의 피를 반은 물려받은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트리스트란의 능력은 마을 안에 있을 때는 발휘되지 못했지만, 낯선 땅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빛을 발한다. 그리고 드디어 별 아가씨를 만난다.  

 그리고 여기 하늘에서 떨어진 별 아가씨가 있다. 떨어진 순간 발을 다쳤다. 성격은 드세고 앙칼지고, 사납다. 트리스트란이 그녀를 찾으러 왔을 때, 온갖 험한 말로 그를 바보 취급한다. 심지어는 그를 속이고 도망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부터 얼음같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가는 것을 느낀다. 

 이야기는 흥미있는 요소를 전부 나열한다. 마법, 유니콘, 변신, 그리고 마녀까지. 등장인물들도 여러 명이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모든 요소가 둥근 원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의아함은 곧 '아, 그렇군'하는 납득으로 바뀐다. 사용하는 언어 또한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나라면 단순한 소개로 끝날 묘사가 이 작가의 손안에서는 굉장히 반짝반짝 빛을 낸다.
-사랑스럽지만 냉담한 고양이, 고상하지만 겁이 많은 개...-
고작 한 번 등장할까 말까한 동물에게까지 여러가지 수식어를 붙일 정도니, 나머지는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이런 현란한 수식어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가끔 머리가 혼란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문일까. <스타더스트> 안에서 나 또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중력을 느낄 수 없는 공간에 혼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작가가 이런 느낌들을 노린 것이라면 성공했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스타더스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천문학적으로는 소성단, 우주진이라는 의미이지만, 구어로는 -황홀, 청순하고 로맨틱하며 신비한 감정, 넋을 잃게 하는 매력-이라는 뜻이란다. 뜻을 알고 나니 왠지 더 책이 빛나는 듯 하다.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하는데, 영화도 이런 반짝반짝하는 느낌을 갖게 해줄지 기대된다. 

 달, 별, 유니콘, 아름다운 밤하늘, 마법, 변신. 그리고 사랑.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끌리는 단어들이다. 모습은 성인이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부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믿고 싶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스타더스트>는 <어린왕자>이후로 오랜만에 느끼게 해 주었다. 혹시 지금 순수하고 흥분되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보고 싶다면 <스타더스트> 안에 풍덩 빠져볼 것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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