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 신전의 그림자
미하엘 파인코퍼 지음, 배수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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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앙은 아주 다양하고 복잡했어요. 우리 개념의 일신교 같은 건 그 시절엔 없었으니까. 지방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건 보통이었고, 심지어는 신관들 사이에서도 분파가 아주 많아서 여러 형태의 밀교도 성행했지요. 그런 밀교 중 하나가 아포피스와 수코스 그리고 아누비스를 합해서 하나의 신 토트로 만들고, 경쟁자인 태양의 신 라(Ra)와 대결하는 위치에 놓은 거예요  -p323

토트는 고대 이집트신화에 나오는 지혜와 정의의 신으로, 이집트어 타후티(Djehuty)를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이라 한다. 원래는 달의 신으로 달력의 계산을 주관하는 신으로 생각되었으며, 흔히 사람의 몸과 이비스 새 (따오기 종류) 의 머리를 가진 서기관으로 표현된다.《사자의 서(書》의 오시리스 신화 속에서는 사자의 심판 때 명부의 신 오시리스 앞에서 사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그 무게를 기록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진다.(-출처 : 네이버)  어렸을 때부터 이집트 신화에 관심이 많아 이집트 관련 서적을 몇 권 가지고 있는 터라, 이번 책은 그냥 넘겨 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러라고 정해준 적은 없지만, [이집트, 오시리스, 이시스, 스핑크스, 아몬 라..] 등등의 단어가 들어간 책은 무조건 나의 수집 대상이다. 게다가 신전 그림이 쾅 찍힌 표지는 나를 부르는 손짓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여의고 킨케이드 영지에서 홀로 고고학을 연구하는, 아름답고 총명하고 씩씩하며 올곧은 새라 킨케이드. 하지만 자신의 대부이자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모티머 레이던 박사의 요청으로 런던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떠난다. 살인 현장에 토트를 상징하는 상형문자가 피로 그려져 있어 고고학에 정통한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레이던 박사까지 괴한의 습격을 받고 납치당한다.  프랑스인 모리스 뒤 가르와 사건을 조사하던 새라는 배후에 음흉하고 막대한 토트신의 밀교가 숨어있음을 눈치채고,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토트의 책을 찾으러 이집트로 험난한 모험을 떠난다. 

 아마도 과거가 우리를 그토록 사로잡는 이유는 매일매일, 매순간 순간 우리가 과거를 호흡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p111

고고학자인 새라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토트의 책을 찾아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고등학교 때 나 역시 역사관련 일에 종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때 한 선생님이 '너는 왜 역사가 좋으니?'라고 물으셔서 '그냥 좋으니까요. 공부하고 있으면 즐거워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역사를 좋아하고, 한 때는 나도 고고학자가 되어 보겠다고 큰소리 탕탕 치던 나는 지금은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지금 선택한 길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씩씩한 새라가 열심히 발굴을 하러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문득 예전의 내 꿈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소설이라지만 이런 종류의 책에 정신을 못차리고 덤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하지만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하나는  새라 아버지와 새라의 과거를 계속 언급하면서도 그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무슨 이야기가 나오겠지 하면서 기대했는데도, 결국 책에서는 새라 아버지가 죽게 된 경위와 왜 새라가 그것에 죄책감을 갖는지,  새라가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기억에 숨어 있는 사건은 무엇인지 전혀 밝혀주지 않는다. 작가가 2편을 낼 생각이 아니라면, 이야기의 구조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또 하나는 프랑스인으로 그려지는 뒤 가르의 대사가 '리엥, 아무것도'라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프랑스어만으로 나타내고, 괄호안에 (아무것도)라고 나타내는 편이 독자들이 읽기에는 더 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역사 미스터리라고 선전문구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엄청난 미스터리와 스릴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숨가쁜 추격신도 물론 등장하지만,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일종의 모험 소설에 가깝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인디아나 존스] 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재미있었다. 구덩이에 빠지고, 뛰고, 총싸움하고, 또 위기에 빠지면 멋진 사막의 아드님이 나타나셔서 구해준다. 이집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신화적인 이야기가 담긴 것도 무척 흥미진진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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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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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일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한국에 일본문학 번창의 길을 갈고 닦은 선구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그녀를 [냉정과 열정 사이] 를 통해 알게 됐는데,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그 책은 정말 좋았다. 하나의 사랑을 두 사람이 같이 써나갔던 그 이야기. 생각만해도 아련하다. 처음 읽은 작품으로 인해 기대치가 너무 높았는지 그 다음 접한 작품들은 만족보다 실망이 더 컸다. 글쎄, 사랑에 대한 일본인들의 정서는 우리와는 달리 끈끈함이랄지, 끈질김이랄지 그런 느낌이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담백한 문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너무 건드려 지독하게 앓게 하는 작품을 읽고 난 다음이면 어김없이 일본문학이 그리워진다. 그럴 때는 답답하고 복잡한 가슴을 살짝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담담하고 가벼운 문체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차가운 밤에] 도 그런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깊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가볍게 독서를 즐기려는 마음으로. 에쿠니 가오리하면 연애소설이 곧바로 떠올랐기에 이 책도 사랑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동안 접해왔던 그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일본의 옛날 괴담을 듣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에, 내용들도 어떻게 이런 내용을 상상했을까 할 정도로 익숙치 않은 소재들로 가득하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담백한 그 문체랄까. 마치 하기 싫은 작문을 해 놓은 것처럼 이런저런 수식어 없이 간결하다. '나는 이렇게 여기까지 썼어,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야'라고 말하는 듯이. 

대부분의 작품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 중 몇 가지는 꽤 마음에 들었다. 죽은 개 듀크가 인간으로 변신하여 주인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온다는 <듀크>, 자신의 전생을 일순 기억해내는  <언젠가, 아주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녀의 몸 속에 들어가있다가, 할아버지가 운명할 때에 함께 떠나가는<연인들> 은 어쩐지 아련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겨 마치 꿈결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낮보다는 밤에 책을 펼쳤을 때 그 느낌을 더 깊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책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동화적 상상력과 그리움을 담아내는 감각적 문장- 흠. 한국어로 번역해서 감각적인 문장인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동화적 상상력이라니 그건 좀 과장된 듯 보인다. 에쿠니 문학의 근간이며, 동시에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지만, 나에게서 그리 큰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는 멋지지만, 그 세계를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타내는 것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아니면 이 작가를 깊이 알기 위해 좀 더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내 교감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에쿠니 여사, 내가 그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 부디 다음 작품은 낮이든 밤이든 읽는 시간에 관계없이 내가 좀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를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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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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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문학은 수사의 나열이라고 생각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상황과 감정을 될 수 있으면 길게, 복잡하게 표현하는 것이 한국문학이라고.(그 부분에 있어 나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서점에서 한국문학이 정체되고, 일본문학이 급부상했을 때 그것은 시대의 한 흐름이었다. 간단명료하고 쿨하게 표현해내는 일본문학의 간결함이 소비의 주체가 되어가는 젊은이들의 바람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한 번 읽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심리적으로 복잡해지는 우리문학을 읽을 때보다, 일본의 작품을 읽을 때 좀 더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난 지금, 역시 난 한국인이구나, 한국 사람에게 맞는 책은 역시 한국인이 지은 책이구나를 절실히 느낀다. 일본문학에서는 이처럼 깊고 절절한 삶의 이야기를 좀처럼 맛볼 수 없다. 

공지영님의 작품은 어렸을 때 사촌언니 집에 놀러가서 접한 [착한 여자]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멋모르고 읽어내렸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학생이었던 그 때, 두 작품을 읽으면서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착한 사람인 거냐고, 이 사람은 착한 게 아니라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속으로 주인공을 비난하면서 그 당시 소설이 그려내던 한국 여자들의 비참하고 한결같은 인생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여자의 인생이라면 앞으로의 내 인생에도 빛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순간이 있을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공포마저 느꼈다. 인내하고 견디는 삶을 그렸던 것이 바로 그 [착한 여자]였다면, 조금은 달라진 현대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이다. 

주인공은 재혼한 아빠와 살다가 엄마 집에서 함께 살기로 결정한 18세의 위녕. 아니 주인공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다. 엄마는 이미 세 번의 이혼을 한 상태이고 성이 다른 둥빈과 제제라는 동생이 둘이나 있다. 엄마는 발랄하고, 삶은 바로 자유라고 여기는 사람이지만, 때때로 고독감과 외로움과 싸우며 글을 쓰는 작가다.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때로는 위녕의 딸같으면서 또한 울고 고민하는 모습은 여느 집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과 재혼을 지켜보며 이미 너무나 조숙해져버린 위녕은 그러나 역시 아빠에게 이해받고 싶고,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딸이다. 작품은 이 사회에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가정과 가족의 모습을 담담하지만,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 혹시, 아무 생각도 없는 거, 그게 좋은 가정이라는 게 아닐까. 그냥 밥 먹고, 자고, 가끔 외식하고 가끔 같이 텔레비 보고, 가끔 싸우고, 더러 지긋지긋해하다가 또 화해하고, 그런 거..누가 그러더라구,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p270
때때로 함께 웃고 함께 먹는 가족들을 보면서, 가족이란 대체 뭔가 생각할 때가 있다. 가만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항상 내 뒤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원해주지만 가끔 뜻이 안맞아 티격태격 싸움도 하는 것.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해도 이 사람들만은 나를 감싸주겠지라는 믿음이 있는 것. 달콤하면서도 때로는 쌉싸름한 것. 가족 구성원이 누가 됐든, 설사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되더라도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모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위녕, 둥빈, 제제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 하나로 모여 사는 것. 그것이 가족일 게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의 편견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두 문제아가 된다는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주일마다 성당에 가서 신부님 말씀을 듣고 오는데, 내가 무심코 들으면서 끄덕였던 말들이 이 책에 나와 있어 놀라웠다. 더 놀라웠던 것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아무 비판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여성이 조금만 참고 살면 가정은 유지되지만, 참지 못하고 살면 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문제아라고 단단히 못박고 있는 부분에서 '이런 생각없는 신부님같으니'라고 욕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무서워진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일구어가는 텃밭같은 장소다. 모든 일에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장 노력이 필요한 장소가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완전히 이해하고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한다. -저 사람은 나와 달라, 도무지 성격이 맞지 않아.- 당연하다. 최소한 20 여년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상대에 맞추어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일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가정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것이 또한 변해가지만 사람들 안에는 결코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자신의 잣대로 재고 평가하려고 하나 보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올바르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여전히 이혼이라는 것은 안 할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가족이라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해줘야 한다. 어떤 평범하지 않은(사람들이 정한 평범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이야기를 들어도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처음 공지영님이 세 번이나 이혼한 사람이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 참 많이 놀랐다. 내가 그리고 있던 이미지는 어느 새 저멀리 훨훨 날아가버리고 세상 속에서 나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던 듯도 싶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 번이나 이혼한 것을 감히 내가 아픔으로 말해도 된다면,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책이 완전한 그녀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녀의 삶과 아픔들을 조금쯤은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지영님의 글에 감탄하게 되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항상 그녀가 콕 집어 대신 해준다는 데에 있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그녀의 문장 하나로 간단하게 정리되어 버린다. 한 권의 책 속에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모든 말들이 다 들어 있을 수 있다니, 참 놀랍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일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공지영'씨'가 아닌 공지영'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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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말 미안해 -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
김현태 지음, 조숙은 그림 / 두리미디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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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애증'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고 한다. 사랑과 증오의 관계. 한없이 사랑하지만, 또 한없이 미워하고 닮지 않으려고 하는,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엄마와 딸의 관계라고. 내가 딸이라서 그런지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우리 엄마 사이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티격태격하고, 가끔 나중에는 후회하면서 순간을 못이겨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딸과 엄마의 관계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 나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엄마를 떠올렸기 때문에 이 제목을 보고 쉽게 뿌리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부르기만 해도 괜히 울컥해지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제목은 [엄마, 정말 미안해]이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비단 엄마와 자식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삶의 이야기, 친구와 부부와 부모자식 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을 마치 수채화처럼 맑고 깨끗하게 그려내고 있다. 딸을 위해 쌓인 눈 사이로 길을 낸 <엄마가 만든 길>, 돌아가신 엄마가 담긴 비디오를 보며 그 그리움을 절절히 쏟아내는 <엄마, 정말 미안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할머니의 졸업장>, 크리스마스날 칼국수를 공짜로 얻어먹고 삶의 희망을 찾아내는<칼국수와 실장갑> 등의 이야기들이 이 겨울에 꽁꽁 언 우리의 몸과 마음을 스르르 녹여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의식을 깨우는 듯한 글귀들은 정말 주옥같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너무나 가까운 사람이기에, 너무나 쉬운 사람이기에 혹시나 소홀히 대하진 않았는지요. 소중한 것은 늘 잃은 후에 그 가치를 알기 마련입니다. 함께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음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일인 줄 안 다음에는 이미 늦습니다. 지금이 가장 사랑하기 좋은 날입니다. 안아 주기 가장 좋은 날입니다.-p36

라고 끝을 맺는 <엄마, 정말 미안해>는 특히 더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이렇다 할 사춘기는 없었지만 한창 예민했던 시기에,  엄마한테 매우 소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엄마가 -아이고, 우리 딸 없었으면 엄마가 너무 힘들었을거야. 딸 없는 사람들은 정말 안됐어-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우리 사이가 각별하지만, 예전의 나는 그저 내 일로 머리가 한 가득이어서 주변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침 일찍 학교 가서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오면 밤 11시는 되었으니, 솔직히 얼굴 보고 이야기할 시간도 부족했던 것이다. 엄마가 한 마디 하시면 잔소리로 여기고 무척 듣기 싫어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고,  엄마가 잔소리를 해도 그저 -네~-하고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도 예전에는 내가 엄마를 봐도 본척만척 했다며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하셨을 때는 정말 죄송스러웠다. 물론 지금도 티격태격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서로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에게 있어 엄마는 가장 가까운 존재지만, 우리에게서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인 줄 알았다. 엄마니까, 나는 자식이니까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엄마는 지금 내 나이 때 결혼하셔서 나를 낳으셨고, 살림을 꾸려오셨다. 나는 지금 부모님이 어서 결혼해야지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엄마의 그 역할을 내가 엄마처럼 훌륭히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일이다. 한 사람에게서 아무 조건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다른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마음으로 느끼는 일이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나는 참 행복하다. 어쩌면 때로는 그 사실을 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마다 기억해내고, 또 기억해내서 영원히 잊지 않도록 가슴 속에 잘 묶어둘 것이다.  늦기 전에 우리 모두 자신의 곁에서 웃어주고 있는 부모님께, 혹은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 가슴 속에 자라고 있는 사랑을 내보일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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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물을 (양장)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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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날까. 나는 광대 분장을 한 사람의 어떤 표정이 떠오른다. 직접 서커스를 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 적 본 TV 안에서(명절 프로였는지, 혹은 영화였는지) 광대는 한 순간 어딘가 애처로운 눈빛을 한 채, 우는 듯 웃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관객을 웃겨야 할 광대가 보여준 바람같은 표정. 금방 얼굴을 바꾸어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어린 내 마음에도 아프게 와 박혔던 기억이 난다. 그 때부터 서커스는 나에게 단순히 구경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이만큼 자란 지금도 명절 때가 되면 가끔 TV에서 서커스를 본다. 서커스를 보되 서커스를 보지 않는다. 현란한 묘기와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몸동작을 해내는 그들을 본다. 그들의 삶을 본다. 

 제이콥은 수의과에 다니던 대학생이었지만,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빈털털이로 반 정신을 잃은 채 한 기차에 올라탄다. <벤지니 형제 지상 최대의 서커스단> 기차에.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막일을 하던 제이콥은 전속 수의사로 서커스단에 머물게 되고, 아름다운 말레나에게 점점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남편이 있었다. 오거스트라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괴팍한 남편이. 어느 날 서커스단에 로지라는 코끼리가 들어온다. 오거스트가 코끼리의 훈련을 맡아 호되게 때리는 것과는 반대로, 제이콥은 사랑으로 코끼리를 보살핀다. 이미 제이콥에게 있어 코끼리 로지는 가족과 같다. 오거스트의 폭행을 계기로 폭발한 제이콥은 말레나와 도망칠 계획을 세우지만, 공연 중 동물들이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제이콥이 평생을 숨겨야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코끼리에게 물을]은 서커스라는 작은 사회의 화려한 조명 뒤에 감추어진 이면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하마가 죽었을 때 엉클 앨이 어떻게 한 줄 알아? 수조에 물 대신 포름알데히드를 채워넣고 계속 동물원에 세워놨어. 우리는 이 주 동안 하마 피클을 기차에 싣고 다녔지. 이 모든 게 다 눈속임이야., 제이콥. 그리고 그건 나쁜 게 아냐. 사람들이 우리한테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 사람들은 우리한테 눈속임을 원해. 그게 눈속임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p178
제이콥이 서커스단에 들어갔을 때 오거스트가 해 준 이 이야기는 그 단적인 예다. 눈 앞에 보이는 세계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관객들을 바라보며, 묘기를 펼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하고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에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우리가 서커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순간의 즐거움, 내가 해내지 못하는 경지에 다른 사람이 도달해 있다는 경이로움,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일어나는 격앙된 분위기.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 서커스는 단번에 잊혀지고, 뒤에 남는 것은 또 다시 어디론가 옮겨 가야 하는 그들의 허탈함 뿐인 듯 하다. 공연하고 이동하는 반복적인 삶. 더구나 그 안에서조차 계급에 의한 차별이 존재하니, 책의 내용을 되뇌어 볼 수록 어쩐지 자꾸만 마음이 아프다. 물론 이 책의 내용처럼 모든 서커스단이 그러하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만약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관객의 입장에서만 그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삶은 동시에 처절하고 아름답다. 마치 서커스처럼..>이라는 구절이 자꾸 내 마음을 때린다. 겉으로 내보이기 위한 화려함을 위해 인생에 얼마만큼의 인내와 끈기와 필요한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1시간 여의 멋진 공연을 위해 어릴 때부터 수많은 시간을 훈련으로 보냈을 서커스 단원들처럼. 그리고 젊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제이콥의 인생처럼.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인생들처럼.
 
93세의 제이콥과 젊은 시절의 제이콥이 번갈아가며 서술되는 책은 대단히 흥미롭다. 손에서 책을 떼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마치 거대한 성의 축조에서부터 허물어지기까지의 한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젊은 시절의 제이콥과 나이를 먹어 뻔뻔해지고, 능글맞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커스를 사랑하는 늙은 제이콥이 여기에 있다. 여기저기 옮겨다녀야만 했기에 서커스단에서 식량과 물은 항상 부족했다. 동물들에게, 코끼리에게 물이 필요했듯이, 늙은 제이콥에게도 물이 필요했다. 서커스라는 활기찬 물이. 코끼리 로지는 곧 제이콥이었고, 제이콥은 곧 로지였음을 책장을 덮은 지금에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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