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 마법과 사랑을 담아 Carlton books
앨리슨 맬로니 지음, 패트리샤 모펫 그림, 이주혜 옮김 / 삼성당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받아든 순간,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는 정말 작은 미니북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품에 가득 들어올 정도의 크기에, 앞뒤 표지가 무척 화려했다. 손으로 쓰다듬는 느낌이 아주 좋다 ^^



첫장을 열면 커다란 분홍꽃이 활짝 피어난다.
속에는 어린 요정이 잠들어 있고, 그 안에 <요정을 찾는 이들의 공책>이라는 앙증맞은 노트가 들어있다.



짜잔~! 요정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요정들은 집 정원에도, 숲 속에도, 집 안에도 있지만 요정들의 진짜 집은 바로 요정의 나라다.
요정의 나라에만 머무는 요정도 있지만, 세상에 가서 착한 일을 하고 오라는 여왕의 명령을 받고 떠나는 요정도 있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한 요정 여왕의 성이다.
마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의 집을 예쁘게 복원시켜 놓은 그림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왕 타이타니아가 사는 성의 내부가 보고 싶다면 이렇게 살짝 종이를 들어보면 된다.
왕과 여왕의 방, 무도회장, 옷 갈아 입는 방, 어린이집까지 정말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는 장소에 따른 요정들의 소개.
집안의 요정, 정원의 요정, 숲 속의 요정, 물의 요정 등 요정들이 사는 장소도 다양하다.
그림들이 어찌나 예쁘고 요정들에 대한 소개도 다양한지 보는 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대 버섯처럼 보이는 것은 요정들의 집.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정들의 소개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팅커벨과 눈의 여왕도 소개되어 있으니, 기대하시길~



요정들의 옷차림, 요정들의 적에 관한 부분이 나오면 책이 끝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날개!
맨 뒷부분에 요정왕국의 증명서와 함께 고이 접혀 있는 이 날개는 그야말로 정말 요정이 될 수 있을 것만 같게 한다.
 
사실 책을 보기 전까지는 책이 이렇게 굉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단순히 그림동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상이상으로 꼼꼼하고 화려한 그림에, 담겨있는 이야기들도 알차다.
어른인 내가 이 책에 열광할 정도니 어린 아가들이 보면 정말 매일 밤 껴안고 잠들 정도로 좋아할 것 같다.
평면 그림에서 진화한 입체적인 동화.
이 책과 함께 오늘밤 잃어버린 꿈을 꿔보는 것은 어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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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안토리오 솔레르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인생은 거의 평탄했다. 남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라 부르는 사춘기도, 나에게는 그저 항상 존재하는 공기와 같이 그냥 스쳐 지나갔고, 어렸을 때 자잘한 병치레를 하기는 했지만 큰 병에 걸린 적 없이 건강한 몸으로 살아왔다. 때때로 어려움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세운 목표는 거의 이루었다 생각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내가 청춘이라 생각했던 시기에 내 인생에 불꽃 같다거나, 정열이라거나 그런 단어는 도무지 찾기가 힘들 것 같다.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길은 그저 뚜벅뚜벅 걸어온 느림의 미학을 고수하고 있었지, 정신 못차릴 정도의 소용돌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은 그렇게 불편하고 또 불편했나 보다. 

1970년대 여름, 바다가 보이는 스페인의 소도시 영국인 거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신장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미겔리토는 같은 병실을 쓰는 옆 침대 환자에게서 단테의 [신곡]을 선물받는다. 친구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신곡]의 글귀를 외우고, 급기야는 시인이 되기로 마음 먹은 미겔리토. 어느 날 자신만의 베아트리체 룰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금새 지나가버리는 계절처럼 그 사랑 또한 짧은 끝을 예고한다. 미겔리토의 친구인 바람벽 파코, 멧돼지 아마데오 눈니, 아벨리노 모라타야도 그 스쳐 지나가는듯한 계절 안에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사실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 <베아트리체>는 그저 예쁜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의 이름이 베아트리체인 줄 알고 있었으니, 책을 펼치고 나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신곡]을 읽고 책을 접한다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미겔리토와 룰리의 사랑은 강렬하다. 하지만 짧다. 짧아서 강렬했던 것인지, 강렬해서 짧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들의 사랑이 잘 전달되어 오지 않았다. 그들은 젊었음에도 사랑 하나만 보기에는 너무나 현실을 의식했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쉽게 흔들렸다.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가녀리게 흔들리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그들이 정말 사랑을 하고 있었던 건지,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고 있었던 감정이 사랑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느끼는 방법이 제각각이듯, 사랑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도 제각각이므로 미겔리토와 룰리의 감정이 사랑이었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좀 더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고, 현실의 유혹이 커서 고민은 할지언정 진정으로 서로를 버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의 특징은 비록 미겔리토와 룰리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로 적절히 양념을 잘 했다는 데 있다. 시점은 '나'이지만 나는 책 속에서 그저 이야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점은 마치 신처럼 이곳저곳을 한꺼번에 서술하며 미겔리토 이외의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순간순간 비춘다. 다양한 사람들의 독특한 성격은 읽는 재미를 부가시켰다. 게다가 각각의 청춘들이 고뇌하게 되는 삶과 그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느낄 수 밖에 없는 성장통은 마치 내가 겪는 이야기처럼 내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찔러왔다. 삶은 어쩌면 항상 폭풍전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조용한 이 인생은 어느 날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이 한꺼번에 통합되어 언제 커다란 충격에 휩싸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충격은 세상의 주인공이 나뿐이라고 느끼는 청춘의 한가운데 있을 때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어렵고 긴 이름들 때문에 읽는 데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지만, 어휘 또한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했다. 나는 아직도 이런 어휘에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색다른 공간의 청춘들의 아프고 쓰고 달콤한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영화는 책의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언젠가 내 청춘이 그리워질 때 내 과거의 한 부분이 아련해질 때 다시 펼쳐보면, 그 곳에 다른 내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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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발소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안소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하하. 표지를 보는 데 웃음이 났다. 발랄한 주황색 표지에 까까머리를 한 남자가 머리카락 대신 온갖 것을 머리에 매달고 이발소에 앉아있다. 표지만으로도 유쾌한 소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흔히 여성들은 우울한 일이 생겼을 때 기분전환을 위해 미용실에 간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면 조금 전까지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고, 엄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미용실은 여자들이 가는 곳, 이발소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내 머리속에는 인식되어 있었지만, 이 책에서 이발소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엄마의 자궁 같은 곳이다. 게다가. 이발소 주인은 남자라는 내 상식도 훌륭하게 뒤집어 버리고 여성이 이발소 사장님으로 등장한단다. 

작품은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단편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다 기운이 없거나, 일상에 찌들어 삶의 보람도 없고,  전혀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회사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시키는 일만 그저 해내던 <들개와 춤을>의 오오토모 고우타, 강도의 침입을 당한 전형적인 여성인 <호신술 입문기>의 이와세 가에데,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려다 해고당하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기억상실을 당한 <암흑의 세계>의 미요시 오사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이리저리 취직하기 위해 바쁜 <마이 웨이>의 아오야기 마미,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하기 싫은 일임에도 거절 못하는 성격의 <밀어버린 눈썹>의 주인공 스가와 사키, 마지막으로 퇴직하고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팔꽃 골목>의 치히로의 할아버지까지. 주인공들이 이발소에 찾아가기 전까지의 생활을 보면 책을 읽는 내가 답답하고, 버럭 호통을 치고 싶은 마음에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런 그들이


 전에 함께 일했던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서 가게를 독차지하게 되었다는 것과 남자손님이 대부분인 이발소가 차라리 신경이 덜 쓰인다는 등의 이야기를 -p240
늘어놓는 여자 이발사에게 가서 머리를 자르기만 하면,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큰소리로 말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하기도 하며, 동네의 풍경을 바꿔버리기까지 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표지를 보고 하하 웃었다면, 책을 읽을 때는 그들의 변화한 인생을 나 또한 즐기면서 킥킥 웃게 된다. 큰 소리치는 그들의 모습에 내가 다 통쾌하고, 속이 뻥 뚫린다. 심지어는 나 또한 어디 이런 이발소가 있다면 당장 가서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자들이 우울할 때 미용실에 가는 것은 단순히 기분전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머리를 자름으로써, 거울 속에 비치는 새로운 나로 어제까지의 나쁜 일은 잊고, 새로운 날들을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미용사, 혹은 이발사라는 직업이 참 멋진 직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야마모토 코우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곰팡이]라는 작품에서는 평범한 주부가 대기업을 상대로 보복하는 헤프닝을 그렸다고 한다. [우리동네 이발소] 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통쾌한 인생역전을 그린 작품일 듯 하여 무척 궁금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재를 끌어와 사람을 이렇게 즐겁게 하다니! 아무래도 이 작가, 보통 사람이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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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부츠
사와무라 린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단정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다리를 구부린 채 앉아 있다. 그냥 앉아 있을 뿐이지만, 어딘가 외로워보이는 그 모습에 흥미가 일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채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린 것일까. 그 모습이 마치 '부디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차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사와무라 린, 아직은 생소한 이 작가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은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단편집을 장편소설보다 우위로 평가하는데, 이유는 짧은 분량 속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편집을 내는 작가야 많이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작가 중에 나에게 감동과 '이거 진짜 물건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해 준 작가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이 책 한 권이 읽는 내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맥이 꾼 꿈>은 3인칭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불륜 관계인 사오리와 미치오는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각각 자신이 죽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미치오가 자살을 택하고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가운데 사오리가 찾아와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면서 결국 둘은 아이를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심한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났다면 많고 많은 단편들 중 그저 그런 작품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1인칭으로 끝나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주머니 속의 캥거루>에서는 쌍둥이 동생 아코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아 하는 다카모리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그려지고,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매리지 블루. 마린 그레이>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해 으스스한 분위기와 섬뜩함을 느끼게 해 준다. <무언의 전화 저편>은 우리가 한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인식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를, 대중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을 그려내지만, 마지막은 해피엔딩으로 기분 좋게 끝이 난다. 

여섯 개의 단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사시>였다. 아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하러 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강박신경증에 시달리고 있는 주인공은 그 강박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 허구의 친구 '루나'와 시뮬레이션을 한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아이가 베란다에서 떨어졌을 때 등등의 상황을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이를 구하는 연습을 한 주인공은 조금씩 신경증에서 놓여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남편과 간 백화점에서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고, 그 때가 유사시임을 깨달은 주인공은 시뮬레이션으로 연습한 상황을 응용해 위기에서 벗어난다. 

<유사시>가 인상깊었던 이유는 쓸쓸하게만 그려지는 주인공의 풍경이 마지막에는 따뜻하게 변화하기 때문이었다. 주로 강박신경증은 완벽주의자에게서 나타나기 쉽다고 한다. 심각한 강박신경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스스로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시뮬레이션으로 극복하려 하는 모습이 뭐랄까..헌신적으로 보였다고 할까. 그만큼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또한 마지막에 보여준 그녀의 행동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라면 생각해내지 못했을 행동을 그녀는 훌륭하게 해냈고, 유사시에 멋지게 반응한 것이다. 

사와무라 린의 이 작품들은 모두 일상 속에 숨어있는 비일상을 재치있게 그리고 있다. [가타부츠]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사람, 또는 착실하고 품행이 바른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작품들과 어울리지 않는 제목 같지만, 일상 속의 비일상을 그린다는 면에서는 훌륭하게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내 삶에도 이러한 비일상이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까 내심 긴장된다. 무섭기도 하지만 코믹하게, 애절하기도 하지만 즐겁게 끝을 맺는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또 주목할만한 작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작품들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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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말 워쇼 사진, 이진 옮김 / 이레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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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진정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읽은 책에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때때로 게으름을 피우고, 짜증도 내며, 세상에 나에게 주어진 시련만큼 더 커다란 시련이 있을까를 괴로워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평범한'사람이기를 계속 거부해왔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인생이 뭐 어때서'.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평범한 일상이 그 누군가에게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 될 수도 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던 그 단순한 진리를, 오늘에서야 진정으로 깨닫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마지막 삶을.

맨 처음 나를 맞이한 것은 한 여인의 사진이었다. 너무나 평화롭게 턱에 팔을 괴고 저 멀리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조금은 늙어보이는 한 여인. 나는 그 여인이 저자인 줄 알았다. '아, 책을 낼 정도의 생각이 깊고, 유명한 사람은 이런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책을 펼쳤지만, 순간 화들짝. 그 사진의 주인공은 42세의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베스라는 여인이었다. 낙타같은 커다랗고 순수한 눈망울을 한 이 여인은 병에 걸린 것을 안 후에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를 쓰고,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즐겼다. 

다른 여인의 사진이 나타났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병상에 누워 있지만 행복하게 웃는 모습들이 차례로 지나간다. 병원에서 사회 복지사로 일하던 루이스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강제로 퇴직 당하고, 이혼을 하게 되지만,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 집에서 치료를 한다. 병원에서는 인간다운 모습으로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집 거실에 침대를 놓고 창 밖을 바라보며 따뜻하고 행복하게 마지막을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스와 루이스 외에 병에 걸린 사람들의 사진이 차례로 지나가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표정은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패턴이라고 여겨지는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만약 저런 병에 걸린다면 나는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물론 처음에는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겠지만, 결국 병을 인정하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조용히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한 전부였다. 하지만 책 속의 사람들은 모두 '조용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다. 마치 -나는 아직 살아 있어, 나에게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어-라는 것을 말하는 듯이 온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을 병원에서 홀로 맞는 것보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하고 행복한 집에서 맞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녀가 단순한 에세이로서 이 책을 쓰고 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콧방귀를 뀌며-흥, 당신이 정말 죽음을 알아? -라며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과 글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라, 죽음과 당당히 마주해서 그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드는 의문은 만약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과연 집안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살려두고 싶은 마음에 결코 병원을 떠나게 할 수는 없다고 되뇌이지만, 그 사람이 내가 되었을 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죽음과 당당히 마주하고, 그들만의 세계로 행복하게 떠난 이들의 이야기는 순간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 죽음 없이는 우리 삶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사진 속 여인처럼 평화로운 눈빛으로 세상을 응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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