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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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나서 요즘 좀 우울했던 기분이 말끔히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재미있는 책 한 권씩 읽으면서 그저 물 흐르는대로, 내 마음이 향하는대로 살면, 그거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래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절대로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는 스카라무슈, 앙드레 루이 모로의 성격을 그 새 닮아버린 모양이다. 읽어가면서 '헉, 헥, 이럴수가!'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 작품, 바로 이  [스카라무슈] 다.

스카라무슈는 즉흥연극에서 까만 의상을 입고 항상 기타를 들고 나와 비굴하면서도 허풍 떠는 익살꾼 역을 일컫는다.(p-134)  주인공인 앙드레 루이 모로가 교수형의 위협에 쫓기면서 우연히 들어가게 된 극단에서 맡은 배역. 하지만 배역만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앙드레 루이 모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롱할 줄 아는 재능과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을 가지고 태어난' 앙드레 루이. 그는 대부 켕텡 드 케르까디유의 도움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일하는 똑똑하고 재치있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의 친구 빌모렝이 다쥐르 후작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자 복수를 맹세하고 변호사에서 극단의 스카라무슈로, 검객에서 다시 정치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소개되는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과 앙드레의 로맨스는 과하지 않게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낸다. 

사실 이 작품에서 재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다. 어째서 앙드레의 친구 빌모렝이 다쥐르 후작과 결투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앙드레가 빌모렝의 뜻을 이어받아 특권계급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검객에서 정치가의 길을 걸으면서까지 다쥐르 후작과 결판을 내고 싶어했는지를 그 상황에 따라 흘러가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황에 맞추어 때로는 선동가였다가, 때로는 배우, 또 때로는 검객과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앙드레의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모든 위기 상황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를 보면서 '부디 무사하기를!'이라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앙드레의 매력은 겉으로는 밝은 척 하지만 비극적 운명을 짊어진 인물이라는 데 있다. 우리들이 삶에서 우연이라 부르면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 혹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앙드레라는 한 인물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비극적 운명'이라는 아련한 단어가 그를 더욱 빛나게 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를 괴롭히는 극단단장이라든가 속물적인 캐릭터 클리멘느가 망하게 될 때 마치 자기 일처럼 환호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여인들과의 로맨스, 출생의 비밀, 다쥐르 후작과의 악연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하게 하면서 책을 쥐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한 번 책을 손에 쥔 독자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최근에 만난 가장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작품 자체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 번역을 잘 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문장들이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책이 술술 넘어간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사나이들의 우정과 결투, 로맨스를 프랑스 역사와 함께 장대하게 느껴보고 싶은 분들, 이 기회를 놓친다면 후회할테니 꼭 읽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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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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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여행기는 참 좋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내 몸과 마음을 단숨에 그 곳으로 데려다준다. 이번에 고른 곳은 티베트. 달라이라마, 차마고도, 사막길. 티베트에 관해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알싸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사진 한 장 제대로 본 적 없는 곳인데도 책을 펴든 순간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오른다.
 
처음 나를 맞이한 것은 친구에 대한 작가의 애달픔이었다. 티베트에 가기 위해 네팔에 도착한 저자는 7년동안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한 사람을 만난다. 그저 산이 좋아 산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 그 길목에서 그 둘은 친구가 되었다. 상황에 의해 친구의 에베레스트 트레킹에 동행하고 나서 저자는 티베트로, 친구는 또 다른 히말라야 무스탕을 향해 떠난다. 누구든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메일을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저자가 보낸 메일에 친구는 답하지 못한다. 가족조차 연락이 닿지 않는 그의 소식을 저자는 여전히 기다린다. 푸른 하늘만큼이나 시린 가슴을 안고 저자는 아직도 그렇게 기다린다.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그의 이야기가 가슴을 쿡쿡 찔렀던 것은 여행길에서 만난 작은 인연도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을까.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우리의 가슴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공연히 쓸쓸해져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없는 고원길을 지나 도착한 티베트. 자신들은 독립국가라 주장하지만, 중국정부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가슴 아픈 시간속에 티베트는 존재한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순박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와 같이 나도 함께 빌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티베트인들의 조장풍습과 오체투지(五體投地)였다. 티베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조장터로 가지고 간다. 돔덴(조장을 집행하는 사람)은 시체를 난도질해서 독수리등의 새들이 먹기 쉽게 해놓고 새들이 다 먹기를 기다린다. 남은 뼈들과 두개골을 돔덴이 가루로 만들면 다져진 뼈마저도 새들의 먹이가 된다. 한 나라의 풍습이므로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조장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승의 인연을 버리고 새들처럼 훨훨 날아 다른 세상으로 가라는 의미일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 해도 사진으로 얼핏 본 그 모습에는 꺼림칙함만이 느껴졌다. 그 반대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은 내 마음을 경이롭게 했다. 오직 종교를 위해, 자신의 믿음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는 것. 티베트는 경이와 존경과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문화로 가득차 있다.
 
여행을 하면서 크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여행하는 곳의 풍습을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는 점과 여행 중간에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인 것 같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도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빛나는 밤을 기대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여행의 이유를 여행의 목적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새삼 나는 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가에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모두 떠나니까? 그냥 가고 싶어서? 목적 없는 여행은 목적 없는 삶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계획을 세워서 내가 여행 안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여행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저자를 달뜨게 했던 티베트 여행길. 언젠가는 나도 그의 행적을 밟으며 티베트라는 나라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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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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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될 때는 항상 호기심과 두려움이 앞선다. 나에게 어떤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호기심을, 한 작품으로 인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에 대해 일관된 인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약간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게다가 [암스테르담]같은, 비교적 얇은 책은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을 더 갖게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이야기를 작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써 놓은 게 아닌가 해서. 

이야기는 '몰리'라는 한 여자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과거 그녀의 애인이었던 작곡가 클라이브 린리와 신문사 편집국장인 버넌 핼리데이. 그리고 그녀의 정부였던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와 그녀의 남편 조지 레인.  클라이브와 버넌은 몰리의 옛 애인들이었음에도 친한 친구사이다. 어느 날, 몰리의 장례식 이후 충분히 그녀를 애도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버넌 앞으로 조지가 가진 사진 3장이 공개된다. 버넌이 자신의 적이라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는 가머니의 성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진들이 그녀들의 여인 몰리에 의해 찍혀 있었던 것. 사형제도와 징병에 찬성하는 가머니를 사회적, 개인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버넌은 동부서주하지만 클라이브와 의견마찰을 빚는다. 게다가 가머니의 아내가 미리 그 사진을 인간적인 감정에 호소하며 공개해버리는 탓에 오히려 버넌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그 모든 일의 원흉이라 생각하는 클라이브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부을 준비를 시작한다. 한편, 클라이브는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떠난 여행 도중 일어난 한 사건으로 인해 생애 최대의 작품이 될 교향곡 완성에 실패하고, 그 또한 그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버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서 버넌과 마주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순간적으로 멍해진 나를 발견했다. 이 작품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앞으로 우리의 기억에 깊이 남을 사람은 누구인가. 이야기는 클라이브와 버넌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들은 단지 경주마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그들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고 방향제시를 하고 있는 인물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허탈한 웃음이. 한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얼마나 눈 깜짝할 사이인가.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인생의 허무함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한 편의 코메디를 보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한 클라이브와 버넌의 운명은 고삐를 쥔 다른 자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명백한 그들의 선택의 결과였을까. 나는 그들의 선택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계기를 제시한 인물은 따로 있었지만 클라이브와 버넌에게 윤리적, 도덕적 양심과 배려와 연민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이 남아있고, 자신과 자신의 일에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좀 더 바깥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면 결말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몰리와 관계된 남자들 거의가 몰리의 부재로 인해 삶이 망가져버리니, 몰리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삶의 방어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결말 부분에서 몰리의 환상을 보는 클라이브와 버넌의 모습에서 몰리라는 여자가 그들 삶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책 안에 숨겨진 '나홀로 복선'(말 그대로 나 혼자 복선이라 생각하는) 이라 생각되는 문장들을 되새기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느껴가며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 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가머니의 성정체성에 관계된 문제라든가, 클라이브와 버넌이 한 여자의 애인들이었으나 친한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나는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만 아니라면 '뭐ㅡ어때?'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얇지만 재미있고, 독특한 분위기를 맛보는 기회를 잃게 되어버린다면 그것 또한 아까운 일이다. 

얇은 책이라 은근 무시도 했더니, 생각지 못한 의문 속으로 나를 잡아끈다, 이 책.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인간이 추락해 가는 과정? 친구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이기심? 우리의 운명은 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 나중에 다시 읽는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한 가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가 대단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올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가진 생각을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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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 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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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얼굴을 내민 지 한참 된 이 책을, 나는 개정판이 나오고 난 지금에서야 손에 들었다. 유명하다고, 좋다고 하면 할수록 어쩐지 청개구리 심보가 생겨서 더 멀리하게 되는 나의 이상한 버릇 탓도 있겠지만, '여행'은 직접 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지, 여행기를 읽었다고 해서 그 여행이 내것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할 만한 시간과 자금이 부족한 생활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자꾸만 여행서적을 찾게 되었고, 결국 이 책도 돌고 돌아 나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다른 여행서와 다른 점은 오직 육로여행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과, 우리가 쉽사리 찾을 수 없는 아프리카, 중동, 그 중에서도 오지를 주로 여행했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 한비야씨는 잘 다니던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세계일주를 떠난다. 그 때까지 그녀가 이룩한 사회적 지위와 경력,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맞이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세계 여행을 동경하던 소녀가 자라 그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이미 했다.) -목표는 높게, 계획은 치밀하게, 실천은 확실하게-해야 한다는 그녀의 최선을 다하는 방법은 여행에 있어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여행을 계획할 때 어느 날 갑자기 떠나고 싶어하고, 수중에 있는 돈을 점검하고, 주변상황이 맞으면 출발하지만, 한비야씨는 어디를 다닐지, 그 때까지 돈은 얼마를 모을지, 얼마나 많은 기간 동안 여행할지를 처음부터 계획했다. 모든 일을 시작부터 철두철미하게 계획한 그녀의 모습에서부터 내 탄성은 시작되었다. 

베낭 두 개를 앞뒤로 짊어지고 육로로, 그것도 여자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같이 겁이 많은 사람이 길을 떠날 때는 아마도 있는 짐, 없는 짐 다 지고 떠날 것이기 때문에 육로 여행은 엄두도 못낼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나라와 나라를 건너다닐 수 있다는 것, 여자 혼자 얼마든지 용감하게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나도 자꾸만 떠나고 싶어졌다. 가슴 떨리는 사람을 만난 테헤란, 신드바드의 나라 페르시아, 내 계획 속에도 들어있는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터키, 동물의 왕국 아프리카, 그 밖에도 요르단, 시리아, 러시아까지 그녀의 여행이 마치 내 여행인 양 마음 속 내 발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어떤 나라에 갔을 때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한비야씨의 말은 과거 내 모습을 부끄럽게 했다. 일본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식사시간만 되면 김치를 싸들고 다녔던 내 모습이 바로 미성숙한 모습이었음을 절실히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음식을 멀리했던 것은 아니지만;;) 맨손으로 밥을 먹고, 함께 어울리고, 아랍권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 언어를 공부하고, 적어도 일주일은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자연인의 모습을 보았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찍혀있는 그녀의 웃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디에 가든, 그 곳의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여행을 떠났을 때,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그로부터 7년을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의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그녀의 삶이 있어 우리는, 적어도 나는 힘이 난다. 가슴에 희망을 품고, 계획을 세워 언젠가는 나도 떠나리라는, 긴급 구호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처럼 언젠가는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다. 나이가 몇이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가 있어 책과 함께 한 이 여행이 참으로 즐거웠다.


홀로 떠나는 여행, 그것은 나 자신과의 여행이다. 여행이란 결국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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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몸,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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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중간 정도 읽었을 때, 친구와 만날 약속이 생겼다. 나는 약속시간 전에 서점에 들러 이 책을 한 권 더 구입해서 그 친구에게 선물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다 읽은 책을 누군가에게 나눔 한 적은 있어도,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선물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을 읽는데 그 친구가 생각난 것은 나와 그 친구가 너무나 비슷하게 여겨졌기 때문일까. 나도, 그 친구도 마음이, 정신이 많이 아플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쨌든 책을 받아든 친구가 너무나 기뻐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술취한 코끼리- 이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집착, 분노, 두려움, 행복 등을 나타낸다. 사람들이 쉽게 빠져들지만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한 상징. 내가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집착과 앞날에 대한 불안함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집어든 이 책은 영국 런던의 노동자 계급 집안에서 기독교인으로 태어난 아잔 브라흐마가 태국에서 수행승이 되어 절에서 행한 법문을 모은 것이다. 천주교, 기독교, 불교, 개신교..명명되는 이름은 모두 다르지만, 깨달음의 끝에 있는 것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천주교에서는 -네 이웃을 미워하지 말라-라고 가르치고, 불교에서는-네 이웃을 미워하라-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자신의 종교에 대해 사람들의 욕심이 작용해서 종교 간 분쟁이 일어나는 것일 게다. 그 욕심 또한 술취한 코끼리에 다름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마음을 빼앗겨 주위의 모든 것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나는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통해 좀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믿음을 준 이야기가 바로 <벽돌 두 장>이다. 아잔 브라흐마가 절을 짓기 위해 벽돌을 쌓았다. 나름대로 잘 쌓았다고 자신을 칭찬하며 쌓아올려진 벽을 본 순간, 그는 잘못 놓여진 두 개의 벽돌을 보게 된다. 그 때부터 그의 눈에는 그 벽돌들만 보이고, 이 벽을 허물고 다시 쌓아올릴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느 날, 한 방문객이 그 벽을 보고 "매우 아름다운 벽이군요"라고 말한다. 그 방문객은 잘못 쌓인 벽돌 두 개가 아니라 잘 쌓여진 다른 벽돌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것과 같다. 특히 나는 내 과거 중 잘했던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잘못했던 것만 반추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로 인해 내가 잘했던 것들도 빛을 잃게 되었고, 나는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벽돌 두 장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깨닫고, 잘 쌓아올려진 다른 벽들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순간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금방 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때마다 한 번, 두 번 책을 넘겨가면서 내 마음과 영혼을 다스리고 싶다. 

책에는 108가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불교의 법문이라고 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나도 불자는 아니다) 이 편견이나 거부감을 가지고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 속 이야기들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겪을 수 있는 생활의 지혜와 관련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너무나 주옥같은 말들이 넘쳐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북다트를 거의 다 사용해버렸다. 한 동안 이 북다트들이 이 책에 끼워져있을 것 같다. 천주교 신자든, 기독교 신자든, 불교 신자든 우리가 지향하는 삶은 언제나 같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p140

 

 그대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그대의 온 존재를 바쳐라-p149

 

우리 모두는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갈수록 덜 자주 실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내가 머물고 있는 절에서는 수행승들이 실수를 하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덜 실수하기 마련이다-p237

 

'삶에서 어떤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생각 때문'이라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교훈..-p245

 

1.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3.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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