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윤지강 지음 / 예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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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허초희.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홍길동전]을 지은 조선시대의 작가 허균의 누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그녀가 황진이에 버금갈만큼 시에 있어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지금까지 황진이에 대한 영화나 책들이 쏟아져나왔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그저 조용히 묻혀 있었다. 책을 읽고나니, 어쩌면 그렇게 묻혀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의 의지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필요로 했던 것은 시와 자유로운 생활, 그리고 평범한 사랑이었으므로. 먼 옛날 여자로 살아가기 힘든 이 조선 땅에서 그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시인이었다. 

한국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란 지금도 보통 일이 아니다. 예전보다 남아선호사상도 줄었다고 하고, 맞벌이 하는 부부며 집안일을 하는 남성도 증가했지만 여자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자는 밖에서 일을 하면서 사회적 지위를 얻는 대신, 집안일도 능숙하게 해내야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이런 한국보다도 유교사상이 팽배하고, 여자는 남편을 잘 모시고 아이를 잘 키우고 조상님 제사를 잘 지내는 것만이 삶의 의미가 되었던 조선 땅에서 허초희는 태어났다. 여타의 남성들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재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녀 삶의 불행의 원인이 되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으므로,  자신조차 그 영혼을 억누를 수 없었으리라. 

한 때는 그녀도 소소한 삶을 꿈꾸었다. 비록 어린시절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정인이 소식 한 줄 없이 자신을 떠나가버리고, 권력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녀 또한 그저 한 사람의 여성이었다. 꽃길을 산책하다가 춘풍에 취해 꽃가지를 꺾어들고 꽃이 더 예쁜가요? 내가 더 예쁜가요? (본문중) 라며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내보이고 싶어했던  어여쁘고 어여쁜 여성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고,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호되고, 그나마 마음붙이고 살았던 아들과 딸을 갑작스럽게 잃게 된 때부터 조상을 모시고 대를 잇기 위해 억지로 임신을 하는 것은 그녀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가 필요해졌다. 시의 세계,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가. 하지만 완고한 남자들은,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남자들은 그런 허난설헌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를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려고만 했다. 결국 그녀는 떠나가고, 세상에는 그녀의 재능을 먼저 알아차린 중국인 주지번에 의해 [난설헌집]이란 책이 남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그녀의 생을 그린 이 붉은 책 한 권이 있다 .

붉은 색에 이끌려 접한 책이었지만, 이제는 이 붉은색이 그녀의 강렬하지만 짧은 생을 나타내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쓰리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조선의 남자들은 어리석어 보여서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허난설헌, 그녀를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 속에 실린 그녀의 시들은, 시에는 문외한인 나의 마음을 톡톡 두드렸다. 한 편 한 편의 시를 적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 앞에 훤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조선의 시대상과 그녀의 삶을 적절히 조화시킨 멋진 작품을 한 권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허난설헌, 이름만 알고 있었던 그녀가 오늘밤 실체를 가지고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었다.



시는 그렇게 왔다.

울남한 바닷물 위로 쑥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잉걸불 속에서 빨갛게 타올라 화로의 재 속에 간직되던 불씨처럼,

어머니가 좋아하던 접중화처럼,

기름진 땅을 두고 푸석거리는 모래밭에 피던 바닷가의 해당화처럼,

어부의 배에 실려 오던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물고기 눈을 감고 있던 짙푸른 해초처럼,

그것들은 어느 날 초희의 영혼에서 시로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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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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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저렸다. 화가 났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전 어떤 책을 보고 생각했었다. 주위에 눈을 돌려 세계를 바라보자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의 아픔이지만 내 아픔처럼 그렇게 다가왔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고. 하지만 어쩌면 그것조차도 자기만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보러 가서 '평화를 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평화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지금도 전쟁, 기아로 아파하는 그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신께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나를,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나태함을 부끄럽게 만드는 한 엄마의 33일간의 전쟁기록이다. 

레바논. 그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나는 몰랐다.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베이루트와 아름다운 지중해, 눈 덮인 산, 풍요로운 곡창지대인 베카 계곡이 공존하는 곳이며 고대 유적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레바논이었다. 19~20세기 초, 중동 쟁탈전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았고, 1926년 별도의 국가로 재탄생했으나, 언제나 아랍국가와 서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위태로운 나라. 그곳이 레바논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몰려왔고, 그 결과 수니파 무슬림들이 증가하자 결국 기독교도들과 무슬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이 1990년까지 계속된 레바논 내전이다. 레바논. 내전을 통해 황폐해졌지만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그 곳에서 2000년 또 끔찍한 전쟁이 발생한다. 

1949년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그 후에도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저자가 기록한 전쟁일기의 배경은 2000년. 1982년 이스라엘이 두 번째로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만들어진 레바논 최대의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붙잡혀있는 남부 주민들과 저항전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업가와 군인 3명을 납치해 벌어진 일이었다.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곧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아카쉬 가족은 오늘 아침 이스라엘 공습으로 죽었다. 그의 아들은 헤즈볼라와 관련이 있지만 군사적 임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성직자였다. 이스라엘은 아카쉬의 집에 미사일 4발을 투하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10명이 살해됐다. 미사일은 집을 완전히 부수고, 온 가족을 땅 속에 묻어버렸다. 구조대원들은 2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실종자 12명 중 10명의 주검을 발굴했다. 나머지 2명의 주검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또 다른 남부 마을 집킨에서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가정집을 폭격해 바지씨 가족 12명을 살해했다. 그 중 6명이 어린아이였고 막내는 일곱 살이었다. 바지 씨는 헤즈볼라와 관련이 없었다-p96, 97

남부 레바논에 집중된 공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 길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계속 로켓을 쏘았고, 심지어 건물 밑에 깔린 부상자들을 구하러 가는 구급차에도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발표했을 뿐, 그 어떤 사과의 말조차 없었다. 음식과 약품은 빠르게 떨어져갔고, 상처입은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저자인 림 하다드도 기자인 남편이 취재를 그만두고 하루빨리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며 두 아이들과 함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스라엘은 정말 몰랐을까.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게 되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


 내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어요. 다른 두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거에요. 그 애들에게 내가 필요하니까..당신은 어머니니까 이해하겠지요? -p288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1/3이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생후 15일 된 아이도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진정한 전쟁을 원했다면 민간인을 그렇게 학살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죽음의 사자를 내려보내려 했었다면 애초에 빨리 피난가라는 공문을 뿌리지 말았어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림과 함께 외치고 있었다. 이스라엘아, 너희들이 무엇을 했는지 와서 보아라. 너희들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이라도 그 빛을 잃는다 .

저자인 림은 많은 자식들을 잃은 어머니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들만 건강하게 지켜낸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 또한 책을 보면서 똑같은 심정이었다. 2000년. 나는 그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지만 그 전에 레바논이 그렇게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미국에 분노가 치밀었다. 강력한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친구 미국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붕괴시켜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레바논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는 '새로운 중동이 태어나기 위한 산통'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과연 건물에 깔려 매몰된 사람들의 시체를 보았을까. 까맣게 타버려 석탄처럼 되어버린 아이들의 시체를 보았을까.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을까. 

미국은 하루에도 수 십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레바논에 이스라엘의 공격이 퍼부어지는 기한을 늘리고 늘리고 또 늘여주었다. 레바논의 총리 푸아드 시니오라가 방송에 나가 눈물로 중재를 요청해도 귓등으로도 들어주지 않았다. 9.11 테러의 끔찍함으로 인해 테러리스트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은 스스로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바라보고만 있는 미국에 대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는 또 다른 테러를 낳고, 그 테러는 전쟁을, 그 전쟁은 다시 테러를 낳는다. 강대국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전세계의 사람들의 고통을, 평화를 생각해줄 수는 없는 것이었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화가 난다. 이도저도 떠나 죽어가는 아이들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하다못해 미국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하지만 림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평화를 믿으라고 가르친다. 증오 대신 사랑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전쟁은 그 어디에서도 다시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수 없는,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어야 한다. 지구촌에서 전쟁이라는 잔인한 일이 그 어디에서도 계속되지 않기를,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기를, 평화가 함께 하기를, 이제는 온 마음을 다해 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할 것 같다. 표지에 있는, 총을 들고 웃고 있는 한 남자의 웃음이 너무 밝아서, 빨간 옷을 입고 달려나가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갑자기 가슴 한 쪽이 시큰해진다.


 마음에 증오를 새기지 마라.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고,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참된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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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묵
질베르 시누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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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고 빛나는 십자가 위에 하나의 충격적인 문장이 쓰여져 있다. <연쇄살해범이 천사들을 죽이고 있다!>는 문장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하얀 날개와 머리 위에 빛나는 휘광이 달린 천사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라고 여겨지고 있으니까. 때문에 이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체 누가 어떻게 해서 천사들을 죽일 수 있지?-라는 의문과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떠오르는 범인의 형상을 그리면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작품은 주인공 클라리사 그레이 부인이 집 앞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그 뒤에 똑같은 장면이 또 나오는데 앞부분은 저명한 추리소설가인 그레이 부인이 쓰는 작품의 한 부분이었고, 그 다음은 실제로 겪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그레이 부인이 현실에서 '직접' 발견한 의문의 남자는 부인에게 어떤 쪽지를 남기고, 부인은 그 쪽지를 토대로 하나의 수첩을 발견한다. 그 수첩에는 알 수 없는 암호가 쓰여져 있었는데, 조사 결과 죽은 의문의 남자는 가브리엘 대천사이며 수첩은 그가 하늘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살해당하고 있는데, 유력한 범인은 예수, 마호메트, 모세라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맞서 용의자 세 명을 심문하던 그레이 부인은 범인을 알아내지만, 혼란은 멈추지 않는다. 

절실한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에 무척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생각한 성스러운 예수가 살인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등장하거니와 저자가 풀어놓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그리 절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천주교인인 나에게도 너무 억지스럽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의 진상은 내가 범인을 추측하고 있었음에도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 세상에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므로 그저 문학은 문학이라고 여기고 문장의 흐름에 몸을 맡겨 저자가 풀어놓는 사건의 진상을 들으면 된다. 그 후 믿고 안 믿고는 순전히 독자의 책임이다. 

언젠가부터 종교에 관한 미스터리 소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의심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질 정도로 훨씬 지성인이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어떤 과학적 증거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떤 기준에도 휘둘리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아닐까.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대로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종교적 미스터리에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는 있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만이 천국에 간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 종교를 포함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일히 이유를 달고 설명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에 살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가 주인공이라는 것만으로도 소재는 충분히 흥미롭다.  그녀가 사건해결을 위해 선택된 이유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종교적 이론을 토대로 한 작가의 상상력은 놀랍다.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알아채고,  상황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직감을 믿고 범인을 추리해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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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침묵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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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는 나에게 공포 그 자체다. 빈 병실에서 어린아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밤마다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병원 안을 돌아다닌다든지, 수술 중 억울하게 죽은 환자의 원혼이 복수를 하기 위해 매일 밤 나타난다든지 하는 공포소설을 어렸을 때부터 접한 영향이 아무래도 컸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의학드라마는 즐겁게 볼망정, 병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현역 의사이자 의학박사인 가이도 다케루가 쓴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보면서, 병원이 등장하는 살인사건이지만, 이렇게도 유쾌하고, 이렇게도 슬프게 묘사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유감이지만 나는 '다구치'와 '시라토리' 로 불려지는 이 콤비가 대활약을 했다는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앞서 말한 '병원이 배경이었으니까' 가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읽지 않은 나같은 독자라도, 이 책을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사실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에 얽힌 비화가 있다. [바티스타..] 후 후속작을 준비하던 저자가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내용이 복잡하고 원고 분량이 많다고 하자, 편집자가 책을 상하권으로 내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므로 이야기를 둘로 나누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말 이 저자는 긴 이야기를 두 개로 나누어 편집자에게 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머지않아 나오게 될 [제너럴 루주의 개선]과 바로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이다. 

주된 무대는 바티스타 스캔들로부터 9개월이 지난 시점의 도조대학병원의 소아과병동. 노래에 소질이 있는 간호사 사요는 송년회의 밤, 공연을 마치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 쇼코와 거리로 나갔다가 전설의 가수 미즈오치 사에코와 그녀의 매니저 시로사키를 만난다. 라이브 공연을 열고 있던 사에코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사요와 쇼코는 도조대학 극락병동의 특실인 도어 투 헤븐에 그녀를 입원시키게 된다. 다구치는 사에코의 주치의로 임명되고, 부정수소외래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한편, 소아과병동에는 망막아종으로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소년 미즈토가 아쓰시라는 소년과 함께 입원하고 있다. 열성적이고 성실한 간호사 사요는 병문안도 오지 않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동의서조차 작성해주지 않는 미즈토의 아버지에게 병원에 한 번 들러줄 것을 부탁하지만, 미즈토의 아버지 마키무라 데쓰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 다음 날 미즈토의 아버지는 토막난 시체가 되어 발견되고, 시라토리와 다구치, 경찰인 가노와 다마무라의 수사가 시작된다! 

제목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작품의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는 '노래'다. 피를 토하면서까지 노래를 부른다는 새 나이팅게일이 의미하는 사람은 사에코인가 아니면 사요인가. 사에코는 정말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만, 사요는 마음을 쥐어짜며 노래를 부른다. 두 사람 모두 노래를 통해 듣는 상대에게 영상을 전달한다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 사에코가 어둠에 가깝다면, 사요는 빛에 가깝다고 느꼈다. 작품 안에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 군데군데 나오는데, 마치 정말로 내 귓가에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시라토리가 중후반이 되어서야 등장하기 때문인지, 사실 다구치와 시라토리가 콤비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물론 다구치의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사건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이나, 시라토리의 능구렁이같은 모습, 경찰 가노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쩐지 그 주변 인물들에 더 눈이 갔다. 특히 다구치의 동료인 의사들에게. 이 책에는 현실에서도 그런 것처럼 가지각색의 의사와 간호사가 등장한다. 네코타 간호부장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에게 수염을 잡히고도 주사를 놓는 호호 할아버지 오쿠데라 교수가 있으며 사요처럼 열성적이고 따뜻한 간호사도 있다. 하지만 우치야마 기요미처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의사를 한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도 있다. 분명 의사라는 직업 또한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 중 하나지만, 보통 사람의 배짱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일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직업임에 틀림없다. 의사가 아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의사나 간호사인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좀 더 소중히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의료사고도 줄어들 것이고, 환자와의 관계가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병에 걸렸음에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소년 미즈토와, 아직 어리지만 용기있는 아쓰시,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유키도 함께 해서 참 좋았던 인물들이다. 마지막은 어쩐지 내가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아~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빨리 [제너럴 루주의 개선]이 나와줬으면 하지만, 일단 그 전에 다구치와 시라토리의 활약을 그린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부터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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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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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책은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집에서도, 학교 쉬는 시간에도, 휴일에도 꼭 내 옆에는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고, 책이 없는 세상은 그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기능도 있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보며 가는 사람을 보면 괜히 친근함을 느끼곤 했다.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내가 읽었던 책일까' 하며 궁금증이 생겼다. 단지 펼치기만 해도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이 진귀한 물건이 내 옆에 있다는 것에 항상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니,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존 우드.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던 촉망받는 회사 임원이었던 사람. 네팔에서 책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만난 후, 그 때까지 이루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책과 도서관을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의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도 보지 않는 책들을 기증해달라고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자신의 아버지와 차근차근 꿈을 위해 계획을 세워간다. 처음에는 네팔, 그 다음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 스리랑카, 에디오피아까지. 후에 지어진 그의 자선단체 이름은 'Room To Read (룸투리드)'다. 지금 그는 10년이 채 되지 않은 세월동안 개발도상국가에 150만 권의 도서를 기증했고,  3,000개의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200개의 학교를 지었다. 장학금을 받는 소녀는 1,700명이며, 기증한 책은 백만권이 되었다. 

자신이 쌓아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목표를 세워 새롭게 행동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그 또 다른 목표가 불명확하거나,  안정되고 보장된 삶을 떠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잠재되어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존 우드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목표를 향해 실천하는 용기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그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책을 접하고 그 행복을 맛보기를 원한 존 우드의 자애로운 마음이 없었다면 그의 프로젝트는 이렇게 오래까지 계속되지 못햇을 것이고, 단순히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Room To Read'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정확한 기준을 세워 단체를 운영해 나간 그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기부자들이 기부한 금액이 정확히 어디에 쓰일 것인지 알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해 사진과 서명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참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된다. 그로 인해 기부자들이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단체의 일원이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어 주변사람들에게도 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를 만든 존 우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은 그의 정열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존 우드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자원봉사자들도 대단하다. 그들은 존 우드의 행동을 칭찬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에 참여하고 급기야는 일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Room To Read'가 내세우는 여성에 대한 교육관이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이다. 

책이 묘사하는 그들의 기부문화 또한 놀라웠다. 나는 (혹은 많은 사람들은) 기부란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그것이 그리 크지 않더라도) 을 주위와 나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린 소녀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에 어려워하던 연설을 하고,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의 규칙을 지키는 대신 부모들은 10달러씩을 내는 장면을 보면서, 기부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사람은 왠지 한비야씨와 같은 종류의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 아직도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문맹이라며 전 세계로 활동을 펼쳐나가겠다는 사람. 그가 전한 것은 책이었지만, 사람들이 받은 것은 '희망' 과 '미래'였다. 책 중간에 실린,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쩐지 나도 그들의 활동에 동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오늘밤,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그의 홈페이지의 문을 두드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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