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학교 다닐 때 교양과목 중 '여성학'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나는 전공 수업에 부전공 수업까지 있어 교양과목 이수를 많이 못했지만, 어느 날 그 수업을 들은 친구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쉬는 시간에 한 여학생이 여성용품을 숨겨 가지고 가는 모습을 교수님이 보셨어.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수님이 그러시는 거야. 왜 그걸 그렇게 숨겨서 가느냐고. 월경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이런 것이 페미니즘이란 건가'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을 일컫는 말.  페미니즘을 생각할 때마다 종종 그 이야기가 생각나곤했는데,  웹진 <페미니스타>에서 선정한 '20세기 여성작가 소설 100선'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 작품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사뭇 궁금했다. 

커다란 키에 둥글둥글한 몸매, 매부리코와 튀어나온 턱, 움푹 들어간 눈을 가진 거대한,  표지의 왼쪽 여자는 우리의 주인공 루스다. 회계사로 성공한 남편 보보는 자신의 고객이 된 로맨스 작가 메리 피셔와 사랑에 빠지고 끝내는 루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 동안 착하게 살아오려 했던 루스는 악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복수를 위해 자신의 외모를 하나씩 하나씩 바꾸면서 보보와 메리 피셔를 궁지로 몬다. 회계장부를 몰래 조작하고, 요양원에 가 있던 메리 피셔의 어머니를 손을 써서 집으로 돌려보내버리고, 나중에는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해낸다. 

요즘 TV드라마에서 자주 다루고 있는 내용 중 하나가  '불륜'이다. 남편은 바람을 피워  내연녀와 결혼하겠다며 큰소리 탕탕 치며 집을 나가 버리고 남겨진 조강지처는 괴로워한다. 하지만 버려진 그녀들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반면, 사랑을 부르짖으며 떠난 남편은 결국 후회로 몸부림친다.  그러나 [에덴의 악녀]를 그런 드라마와 동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꾸미기만 하면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았지만, 루스는 아무리 꾸며도 그녀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루스가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혀 통쾌함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안타깝고 쓸쓸한 느낌이 짙다.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내버려 둔 채 악녀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의 마음이 아프도록 전해졌기 때문일까. 

외모지상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모습에서 과연 페미니즘적 성격이 드러난다.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루스의 모습이 현재 겉모습에만 끌려 인스턴트식 사랑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꾸짖는 듯 하다.  외모, 아름다움. 물론 중요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많은 남자들은 루스가 변화를 꾀하지 않아도 그녀의 현명한 조언과 따뜻한 품성에 이끌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루스는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았던 단 한 명의 남자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매력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구는 그것이 바로 그녀의 비극이었음을 시사한다. 

하느님이 주신 몸을 스스로 개조하여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루스는 스스로를 악녀라 지칭했다. 악녀는, 되어도 좋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위한 악녀이어야 한다. 시덥잖은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간과하고 진행하는 악녀로의 변신은 하나마나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적 요소도 드러내지만, 사랑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한다. 사랑, 아름다운 말이지만 남을 아프게 하면서 진행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마음에 못 박으면 자기 눈에서 피눈물난다는 이론을 나는 믿는다. 우정 뿐만 아니라 사랑도 의리다. 그런 점에서 루스의 남편 보보는 정말 실격이다. 메리와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루스에게 보고하면서 성적 만족을 얻지 않나, 그래도 자기 아내인데 마음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당당하다. 그것은 그의 내연녀 메리도 마찬가지다. 루스의 복수가 으스스하기도 했지만, 그 복수에 시원함을 느꼈던 것은 너무 과도한 감정이입 탓인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사회문제를 통속적인 스토리로 추구하여 문학성과 오락성을 함께 갖춘 품격 있는 소설을 이루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은 1986년 영국 BBC의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약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작품,  여성의 삶과 사회적 인식, 그리고 인간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이민진 지음, 이옥용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를 올리기 위해 책검색 창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저자의 이름은 우리나라 이름인데 책은 외국소설로 분류되어 있다. 작가인 이민진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작품이 '국내'소설이 아닌 '국외'소설로 분류되는 것에 공연히 심술이 난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 케이시 한이 어쩐지 그녀의 모습일 것 같아서, 미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을 그녀를 모국인 우리가 저리 내치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안좋다. 하기야 영어로 쓰인 것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어렸을 때 나는 이민을 간다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리 많은 수의 친구들이 이민을 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초등학교 때 한 두명은 이민을 갔던 것 같다. 그 때는 어려서 아메리칸 드림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새로운 세상, 넓은 세상과 만나게 될 그들에게 마냥 질투가 났더랬다. 아메리칸 드림. 한국에서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이들이 지금도 꿈을 품고 미국으로 향한다.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고 하는 선진국에 가면 지금보다 나은 인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정말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더 부자가 되고, 더 행복한 삶을 누렸을까.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은 한국계 미국인이 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세 여인이다. 한국전쟁을 겪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세탁소를 하며 힘들게 살아온 전형적인 한국여자 리아, 모든 것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그녀의 딸 케이시 한, 그리고 한없이 여리고 착한 케이시의 친구 엘라 심.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문화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리아와 그녀의 남편 조셉과는 달리, 딸 케이시는 영리하며 성(性)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개방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장학금을 통해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온 케이시는 자신의 소비욕구를 온전히 만족시켜 줄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고, 남자친구의 배신과  생활고 속에서 방황한다. 한편 케이시의 친구 엘라 심은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로 테드 김이라는 한국남자와 결혼하지만, 결국 그의 외도로 파경을 맞는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케이시는 남자들과의 관계, 임신, 낙태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야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결코 그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는 번번히 보수적인 아버지와 부딪힌다. 아버지 조셉과 케이시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으며 그 옆에서 어머니 리아는 항상 남편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어쩌면 많은 이민 가정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더 잘 살아보겠다고 도착한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기술이 미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 부모는 항상 바쁘고, 아이는 외로운 가운데 또래 친구들과 사귀면서 점점 미국의 사고방식에 물들어간다. 부모자식 사이에 깊은 골이 생기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 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다. 작품 속에서 케이시 한은 결국 미국의 상류사회로의 진출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미국인 남자친구와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사고방식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인이라고 하기에는 영어를 쓰고, 미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에 생활터전이 있다. 그러나 완전한 미국인이라고 하기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자유롭고 싶은 케이시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 사랑이 깨져버린 엘라도 결국에는 어디서나 혼자다. 

작년에 조승희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민자의 삶을 그린다는 이 책의 홍보문구에 마음이 동했었다. 하지만 이민자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기보다 사랑을 중심에 놓고 전개해나가는 이야기의 구조는 여느 한국소설과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는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이 있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사랑에 아파하고, 가족과 갈등하며,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부분을 홀로 끌어안고 괴로워하지만 결국에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작품의 제목인 백만장자의 공짜음식은 케이시가 컨 데이비스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음식을 먹으면서 나온 이야기다. 백만장자들일수록 공짜를 더 좋아한다는<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 인생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렇게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공짜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에 희망을 그리는 케이시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출간된 [다빈치 코드] 를 필두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 요즘들어 심심찮게 들려 오는 사람이 바로 '렘브란트'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초상화가로 유명한 그는 '빛과 어둠의 화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에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문학과 예술을 접목시킨 책들을 만나면 새로운 관점에서 그림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아 항상 반갑다.  이 작품 또한 렘브란트의 그림 하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다.

 

미술사학을 전공하여 미술작품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핀 라이언. 그녀는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고객자문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름만 번드르르하지, 하는 일이라곤 차와 과자를 나르거나 경매가 있는 날 밤에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고객들의 입찰가와 주머니 사정을 알아내는 일이 전부다. 슬슬 그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얀 스텐의 그림이라며 미술품을 감정하러 온 멋진 공작 필그림과 만난다. 핀은 그를 통해 얼마 전 실종된 피터르 부하르트가 자신의 먼 친척이고, 그로부터 필그림과 공동으로 유산을 상속받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렘브란트의 그림 한 점과 암스테르담의 대저택, 낡은 배 한 척이 그것인데, 유산들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보름 안에 세 가지 유산을 모두 찾아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복잡하지 않고 재미있다.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넘나들고, 요트가 폭파되거나,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다. 여기저기 드러나있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도 부족한 감은 좀 있지만, 재미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어째서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항상 모험과 음모라는 전개방식을 따라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화가가 어째서 그 그림을 그렸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여 나온 발상일 수도 있으나, 거의 비슷한 전개방식을 보이고 있는 책들을 몇 권 읽었더니 이제는 좀 다른 이야기가 보고싶어진다. 또한 중간중간에 여러 언어가 등장하는데, 그 옆에 해석이 달려 있으면 좋을 듯 싶다. 다양한 언어의 등장은 생생함을 느끼게는 해주지만, 어떤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금방 다른 쪽으로 생각이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매번 그렇듯 주인공들은 위기 상황에서 잘도 살아남는다. 매력적인 주인공들은 서로의 매력에 끌리고 있는 듯도 하고, 몇 명씩 죽는 사람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에 의해 목숨을 구한다. 또한 그들은 마침내 보물까지 발견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하지만 또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이야기들은 항상 우리를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과연 우리의 주인공들이 찾아낸 보물이 무엇일지, 어째서 작품에 '렘브란트의 유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지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렸을 때 보물섬을 찾아 헤매는 꿈을 한 번이라도 꿨거나, 그림과 문학의 즐거움을 한 번에 맛보고 싶다면 한 번쯤 펼쳐들어도 좋을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삼킨 책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신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책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 근거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이라는 책은 평범한 주부를 유명 작가로, 가난했던 소년을 백만장자로 변화시킨 책들을 소개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주인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한 권의 책이었으며, 그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요즘에야 방송과 인터넷이 무한발전하여 책이 갖는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의 작품에는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세상을 삼켜버릴만한 한 권의 책이 등장한다. 

때는 1780년, 수많은 제후국들로 분열되어 있고 이성과 종교가 맞서 싸우는 독일에서의 일이다. 질병에 관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려던 젊은 의사 니콜라이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다가 고향에서 쫓겨나고 만다. 새로운 보금자리 뉘른베르크에서 의사의 조수로 생활하던 그에게 어느 날 괴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왼쪽 폐엽에 부종이 발견되고, 심장에 심한 압박을 느껴 죽었다고 추측되는 알도르프 백작의 시신.  시신의 상태를 조사하던 니콜라이는 우연한 기회에 독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우편마차 화재 사건 수사를 젊은 수사관 디 타시와 조사하게 된다. 연결되어 있지 않을 것만 같던 우편마차 화재 사건과 알도르프 백작과 그 일가의 죽음,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 등은 점차 하나의 점으로 모이고,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사상이 그의 눈 앞에 펼쳐진다.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것치고는 추리소설적인 면은 약하다. 그러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지만 니콜라이와 그의 연인 막달레나의 대화는 충분히 철학적이다. 처음에야 이들이 하는 대화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에 놀라게 된다. 생각은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을 통과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대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이것이다. 과연 하나의 사상이, 생각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이성적인 니콜라이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막달레나는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사상이 있으며, 그러한 사상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충분히 걸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이 계속 변화하는 한 '세상을 삼킬'만한 책들은 앞으로도 종종 나오지 않을까 싶다. 다만, 사상적인 면에서는 잘 모르겠으나, 사람이 생각에 의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은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향수병이나 상사병 등과 같은 마음의 병에 이름을 붙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정신을 관장하는 분야의 의학이 발달하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칸트의 사상, 그리고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은 책의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고나서야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칸트' 하면 정확한 시간지킴이라는 인상이 강하여, 이 책을 통해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그에 관한 언급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의 배경이 되는 때의 독일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초반에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는 않으나, 그 순간을 잘 참고 견딘다면 약간은 오싹한 철학의 세계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표지부터 책의 마지막 장까지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허에 떨어진 꽃잎 VivaVivo (비바비보) 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유혜자 옮김 / 뜨인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파란 물에 떨어져 있는 꽃잎들이 애처롭다. 마치 어린왕자의 망토마냥 빨간 옷을 걸치고 꽃송이를 꽉 쥐고 있는 저 손은 과연 누구의 손인가.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입고 있는 코트의 색깔로 미루어 여자아이라고 판단했다면, 어쩐지 씁쓸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다. 강한 인상을 주는 색의 표지만 보면 아련한 사랑이야기거나, 따스한 동화같은 이야기, 혹은 성장소설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성장소설, 맞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본다면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희망보다 슬픔의 감정을 더 느끼게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다. 

며칠 전 중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학교에서 수업 받던 학생들이 그대로 매몰되어 사망한 일이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체육 수업을 하던 한 개반의 학생들만 가까스로 살아났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야 시공을 뛰어넘고, 국경을 뛰어넘어 매한가지겠지만은, 중국의 경우에는 조금 더 특별하다. 1970년도까지 출산을 환영했던 중국 정부는 먹여 살려야 할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자 1979년 '1가정 1자녀 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1982년도에 일부 법안이 개정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그 법은 시행되고 있다. 만약 둘째 아이를 갖게 될 경우에는 막대한 양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불법으로 낳은 아이들은 호적에도 올릴 수 없어 국민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한 가정에 한 자녀가 대부분인 중국에서 지진으로 인해 학생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그들의 부모에게는 이제 '자식'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 레아는 1988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입양했다는 독일인 부모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중국이 서서히 레아에게 다가온다. 학교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레아가 진시황제의 모형 무덤 전시회에 취재를 간 것을 계기로 중국의 여러 사정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자신이 비닐봉지에 쌓여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레아는 급기야 중국으로 날아간다. 두렵지만, 아프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친부모가 어째서 자신을 버렸는지 알기 위해서. 

작품이 그리고 있는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의 상황은 끔찍하다. 부모를 모시고 대를 이어가야 하는 아들이 중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딸이 태어나면 버리거나 강물에 흘려보낸다. 아들을 얻기 위해 부모 스스로 태어난 딸을 살해하거나 시장에서 아이들이 매매된다.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위상이 높아지지만, 딸을 낳은 어머니는 죄인 취급을 받는다. 작품 속에 나타나있는 묘사가 중국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라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기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중국의 상황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 우리나라도 남아선호사상으로 많은 딸들과 어머니들이 핍박받는 삶을 살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좋은 방향으로 남녀의 위계관계가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장남인 아버지 밑에서 첫째 딸로 태어났지만 피부에 와닿게 남동생과 차별받았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사촌들까지 모두 남자라, 조부모님께도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여자라서 안됐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내가 내 성별에 느끼는 자부심을 중국의 많은 여자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은 레아가 자신의 생모와 강물에 꽃잎을 뿌리며 끝을 맺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한 친언니를 기리면서. 강물에 떨어진 그 꽃잎이 흐르고 흘러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적시게 되면,  결국에는 꽃잎만큼이나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예쁘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라 믿는다. 비록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고 국제적으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그들이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똑같은 자식,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