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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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도심에 자리잡은 널찍한 부지에 성마리아나 학원이,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부까지 같은 부지 안에 있는 이 학원은 20세기 초 성마리아나 수녀가 세웠다고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보다 나은 사람을 배출해내는 것이 목적인 학원에는 서쪽 관저라 불리는 학생회,  동쪽 궁전이라 불리는 연극부와 함께, 남쪽에는 그 두 개의 클럽과 대등하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독서클럽이 존재한다. 구교사 뒤편 다 쓰러져가는 붉은색 벽돌건물 삼층에 위치하는 독서클럽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책을 읽고 홍차를 마실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그 독서클럽에서 백년에 걸쳐 일어난 기상천외하고도 유쾌한 클럽일지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일지에 기록된 이야기는 총 5편이다. 오사카에서 올라와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소녀 가라스마 베니코가 어떻게, 누구의 도움으로 왕자가 되었는가를 그리는 <가라스마 베니코 연애사건>, 성마리아나 학원의 창시자 마리아나의 실종에 관련된 <성녀 마리아나 실종사건>, 세월의 변화와 함께 독서클럽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학생들이 방문한 사건을 다룬 <기묘한 손님들>, 기묘한 정열을 품은 소녀 야마구치 주고야 사건<초저녁 별>, 마지막 독서클럽 회원의 활약과 졸업생들의 새로운 독서클럽을 다룬 <관습과 행위>까지 겉으로는 조신하고 아름답게 행동하는 여학교의 숨겨진 모습들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게다가 각각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독특한 코드네임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이다. 

그런데 이 성마리아나 학원을 지탱해가는 것은 '가짜 왕자'에 대한 소녀들의 '사랑'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사랑을 진성S와 가성S로 구분하는데, 대부분의 소녀는 가성S에 속한다. 남학생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 유행처럼 그런 감정이 퍼진 적이 있었다. 나야 물론 그 때도 한창 책에 빠져 동화속 멋진 왕자님을 그리고 있었으나, 흔히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로는 '누구와 누가 좋아한다더라~'라는 소문까지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이성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 있기 전에 동성에 대한 동경이 먼저 일어난다고 쓰인 심리학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여자는, 같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훨씬 복잡한 존재다.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도 복잡한 여자는 어린시절 사랑에 대한 동경은 가지고 있지만, 직접 사랑에 빠져들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것은 -소녀들 대부분은 꿈같은 연애를 동경하면서도 현실의 남성에게는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다. 땀과 기름 냄새 구질구질한 낭만의 냄새 때문이었다(p17)- 에서 나타내는 이성에 대한 다른 '냄새' 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이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으면서 주인공 '오스칼'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니 책을 읽으면서 성마리아나 학원의 '가짜 왕자'에 대한 소녀들의 사랑의 감정을 이상하다 여기지 말고 그저 순수한 한 때의 감정이겠거니 여겨주면 좋겠다. 

여하튼 이 독서클럽의 일지는 참 재미있다. 어디에나 암흑의 클럽은 존재하는 법! (그러나 독서클럽 자체가 암흑적인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주목받지 못한 클럽이었을 뿐) 그런 클럽의 숨겨진 역사를 기록한 이 일지는 내 학창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좀 더 신나고 흥미진진한 생활을 해볼걸, 좀 더 용기를 내서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볼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찾아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하지만 역시 책은 그런 나의 감정을 위로하고 보상해준다. 현실에서 맛볼 수 없었던 즐거운 클럽생활, 그리고 소녀들의 귀여운 사랑과 투정까지, 읽고 있으면 꼭 성마리아나 학원에 입학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의 유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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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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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여느 일본 작가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녀가 창조해내는 세계는 쿨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너무 매정해서 읽는 이의 마음을 허공에 붕 뜬 상태로 만들어버리지도 않고, 너무 뜨거워서 질척거리는 마음을 한동안 안고 살아가게 하지도 않는다. 딱 정도를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읽고 나서 탁 덮은 후 ‘음, 좋았어’하고 끝내버릴 수 있는 상쾌한 박하사탕 같은 느낌이 참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세 권이나 되는 분량은 역시 걱정스럽다. 그녀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말을 그토록 장황하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인지, 그녀의 긴 이야기에 질리지 않고 끝까지 귀 기울일 수 있을지,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약간은 염려하면서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전 3권인 [왕국]을 아직 1권 밖에 읽지 않아 전체적인 감상을 쓰는 것은 무리겠지만, 1권을 읽고 느낀 것은 역시 ‘아, 좋다’였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글은 한층 더 서정적이다. 도시의 생활을 그리는 다른 일본소설에서 느껴지는 뿌연 구름 같은 삭막함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청아한 자연의 공기를 맡을 수 있다. 깊은 산 속에서 할머니와 둘이 생활하면서 차를 만들어 파는 시즈쿠이시. 자연을 벗하며 살아온 그녀 자체가 또 하나의 자연이다. 사람들에 의해 자연이 균형을 잃어가면서 결국 할머니와 산을 내려온 시즈쿠이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식물 선인장과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쓸쓸하고 외로웠지만 그 시간들을 견뎌낸 끝에서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신비한 능력을 가진 ‘가에데’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신이치로’를 만난다.

시즈쿠이시는 어쩌면 우리 마음 속에 숨어있는 작은 ‘우리’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아내어 함께 있고 싶어하고,  마음이 맞는다고 느끼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한다. 특히 많은 상처를 받고, 쓸쓸함과 외로움을 더 심하게 느끼게 되는 이 도시에서 그런 사람을 발견해내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한 사람의 위로와 체온이 때로는 많은 위로가 된다. 시즈쿠이시에게는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는 ‘선인장’이 있었다. 자연과 할머니와 소통할 수 있는 매체.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람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순수하고 독특한 시즈쿠이시와, 함께 해서 좋은 사람을 발견한 그녀의 생활이 못견디게 부러워진다.

겨우 100페이지가 조금 넘어가는 얇은 분량이라 처음에는 '그리 굉장한 이야기겠어?' 하며 살짝 얕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에데와 선인장이 시즈쿠이시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이 책 또한 서정성과 따뜻함으로 나를 위로한다. 뒤에 남겨둔 왕국 2권과 3권은 과연 어떤 이야기로 나를 위로해줄 것인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읽은 후 한참이나 쓰다듬고 싶어지는 여운이 강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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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 오디세이
쓰지 유미 지음, 이희재 옮김 / 끌레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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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번역가의 길을 꿈꾼다. 외국의 언어가 내 손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될 때의 기분이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전공한 나도 대학 때 짧은 분량의 원고를 두어번 번역한 적도 있었고, 한창 일본어 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는 일본 소설책을 원서 그대로 내 손으로 번역하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때문에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번역가들의 고충을 내가 조금은 이해한다고 하면 너무 자만하는 것이 될까. 

세상이 좁아진만큼 내 책장도 이제 한국에서 태어난 책들 뿐만이 아니라,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도착하여 새롭게 탄생한 책들로 북적북적하다. 가끔 오탈자를 발견하거나, 문맥이 맞지 않아 읽기 힘든 책과 만날 때마다 '번역이 너무 이상해'라며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지,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번역을 했는가를 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책을 홍보하거나 선택할 때 번역가보다는 저자에게 비중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번역의 역사라니. 나는 순간 멍해진 기분이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오랜 시간을 가지고 지속되어 왔을 경우, 당연히 그 쌓인 시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한 번도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번역사 오디세이] 는 번역의 탄생부터 중흥기를 거쳐 르네상스까지, 번역이 어떻게 생겨나고 오랜 시간을 보내왔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고대 카르타고에도 번역가 계급이 있었다거나, 그리스 시대의 문헌들이 아랍어로 번역되고 그 후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등 각 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번역의 진화(?)해 가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각 장마다 주요 번역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프랑스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앙드레 지드도 번역에 엄청난 힘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국가는 뛰어난 작가 모두에게 시간의 일부를 외국 걸작의 번역에 쏟아 붓도록 강요해도 무방하다"(p177) 라는 부분은  외국 작품을 번역하다보면 자국어에 대한 인식 또한 깊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는 " 몇 페이지 안 되는 분량인데 하루에 너덧 시간씩 꼬박 3주가 걸렸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난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p179) 를 통해 번역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번역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가 적어놓은 이방의 글을 그대로 우리의 언어로 옮기는 것? 아니면 저자의 글을 우리의 입맛에 맞게 맛깔나게 고쳐내는 것? 쉽게 결론지을 수 없지만, 번역이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익숙하지 않은 인명들과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를 내용들이지만, 번역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얻은 것 같다. 번역가의 길을 꿈꾸는 사람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좋을 멋진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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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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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책으로 따지자면 '세계명작'과 가까운 느낌을 준다. 친해지고 싶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마음 깊은 곳으로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세계명작'에 품는 동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흔히 연상하는 작곡가의 이름과 곡명을 정확하게 맞추어 주위의 환심을 사고 싶다거나 하는 알량한 바람은 없다. 나는 단지 듣고 있으면 내 마음을 풍요롭고 꽉 차게 해주는 음악들이 좋을 뿐이며, 그 분위기를 즐길 뿐이고, 따라서 클래식의 세계를 더 많이 알고 싶을 뿐이다. 

내가 클래식에 처음 빠져들게 된 것은 고3 때였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인지 주위가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집중력이 흐려지는 데 반해, 그 시절에는 라디오 프로를 들으면서도 아무 방해없이 공부를 하곤 했었다. 그런 습관이 고3이 되자 신경이 예민해진 나에게 오히려 조바심과 초조함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공부하다 말고 가끔씩 라디오에 빠져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그 때까지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클래식의 세계로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음악들을 주로 선곡했는데, 의외로 편안한 기분 속에서 즐겁게 공부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들은 'G선상의 아리아'나 '사계'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들이다. 

음악은 마음으로 느끼면 다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누가 만들었는지 제목은 무엇인지 알고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듯 하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베토벤의 '운명'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고, 그 안에 담긴 작곡가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듣는다면, 언제 어느 때 그 음악이 흘러나오더라도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예전에 느꼈던 클래식에 대한 두려움이 편안함으로 바뀌지 않을까. 

우리 생활에 알게 모르게 넘쳐나고 있는 클래식에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 바로 이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이다. 상식으로 시리즈를 접할 때마다 언급하는 것이지만, 절대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이라는 부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책은 모두 7파트로 나누어져 베토벤의 '운명',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비발디의 '사계',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과 오페라 명곡, 걸작 교향곡, 협주곡 등 클래식의 세계를 총망라하고 있다. 음악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배경과 전문용어로 여겨질 수 있는 어려운 말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는 데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한 곡에 대한 설명이 끝날 때마다 누가 그 음악을 녹음하고 노래했는지, 어떤 음반을 찾아 들으면 좋을지 세세하게 설명하는 데 있다. '클래식'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어려움을 느낄 사람들을 위해 쉬운 입문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정성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런 면에서 책의 맨 뒷편에 실린 <클래식 알고 가기> 부분을 꼼꼼히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책을 출판할 때에 부록으로 이 책에 실린 음악들을 모아 한 장의 CD로 제공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들을 수 있지만, 워낙 그 양이 방대하여 일일히 찾아 듣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고 어떤 음악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곡명과 작곡가의 이름, 그의 생애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긴 곡들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단지 몇 곡만이라도 CD로 제공했다면 좀 더 생생하게 이 책을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클래식은 자리를 잡고 시간을 내서 들어야만 하는 음악은 아니다. 잘 찾아보면 우리 생활 깊은 곳에 어느새 들어와있다. 앞서 언급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광고 등의 배경음악으로 종종 사용되는 아주 유명한 곡이다. 리처드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한 번 들으면 '아~이거!'라고 눈을 빛낼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생활 안에 존재하고 있는 클래식을 찾는 재미와, 그런 클래식의 세계로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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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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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를 어째! 책을 읽고 나서 괜히 뿌듯해하며 그의 이름을 검색어에 입력한 나는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부끄럽지만 혹시 모를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한 줄 적어보자면, 그래, 나는 오스카상이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을 본따 만든 문학상인 줄 알았다;; 오스카상은 미국영화 및 미국에서 상영된 영화를 대상으로 가장 훌륭한 작품에 수여하는 권위있는 영화상, 바로 아카데미상의 또 다른 이름이란다. 역시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에게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로 친근한 작가다.(다행히 이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시인인 어머니와 민속학자이자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시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 그가 1888년 발표한 단편집 [행복한 왕자]는 19세기 말 물질주의가 만연했던 영국사회에 사랑의 고귀함을 노래하는 훌륭한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행복한 왕자]가 사실은 많은 출판사에서 탄생되기를 거부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이들에 대한 헌신이 남달랐던 그였던만큼 이 단편집 [별에서 온 아이]에서 보여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대부분 따스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어갈수록 '어라'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왕자가 온몸에 금박을 두르고 칼과 눈에 보석이 박혀있을 때,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초라한 모습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을 맛본다. 어린시절 읽었을 때는 '나도 왕자와 제비처럼 착하게 살아야지'에 그쳤던 감상이 '행복의 기준이란 무엇인가'로까지 확대된다.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고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만큼,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따스했던 것이리라 짐작되지만,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갈수록 꼭 그렇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가장 마음 아프게 했던 작품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에서  특히 작가의 냉정한 시선이 엿보인다. 진실한 사랑을 한다고 보이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심장을 바쳐가면서 만든 붉은 장미는, 그러나 덧없이 스러진다. 단순히 사심없는 사랑의 애잔함을 말한다고 하기에는 그 묘사가 너무도 비극적하다. <공주의 생일> 이나 <별에서 온 아이>, <헌신적인 친구> 의 결말 또한 단순히 동화라고 단정짓기에는 꿈과 희망이 부족하다. 꿈과 희망,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은 <자기만 아는 거인>, 이 한 편 뿐인듯 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선과 악을 눈에 띄게 대립시키지는 않지만, 은근한 잔인함과 냉정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나는 아무것도 몰라'라는 식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예쁜 동화라고만 여겼던 이야기들이 지금에서야 이렇게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내가 동화를 동화로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커버린 탓일까 아니면  오스카 와일드의 진정한 세계를 겨우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지금 나는 외롭고 약간은 복잡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세계가 꽤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펭귄클래식코리아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로 접한 작품, 앞서 읽은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만큼 깊은 사유의 세계로 또 나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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