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본즈 모중석 스릴러 클럽 16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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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름 한 철을 미국드라마 <본즈> 와 함께 보냈다. 수사물을 좋아하지만 케이블에서 방영되던 <본즈>를 보고 어쩐지 나와 맞지 않는 듯 하여 미뤄둔 것이 몇 개월. 그러다 미국드라마의 새 시즌이 방영되기를 기다리면서 영 볼 프로그램이 마땅치않아 보기 시작한 것이 바로 <본즈> 다. 처음에 나는 여주인공 템퍼런스 브레넌의 극 중 이름이 정말로 '본즈'인 줄 알았더랬다. 아무튼, 나와 그녀의 만남은 시작되었고( 솔직히 부스는 브레넌보다 덜 멋지다;;) 급기야 헤어나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드라마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템퍼런스 브레넌은 뼈를 연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범인을 검거하는 데는 프로지만, 인간관계 면에서는 빵점인 인물이다. 심리학에서 여성들의 공통점이라 부르는 '남에게 공감하기'는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고, 친구가 괴로워하거나 고민상담을 해올 때조차 엉뚱한 말로 사람을 당황시킨다. 눈 하나 꿈쩍 않고 범인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가하면, FBI인 부스의 행동을 따라 용의자의 뺨을 철썩철썩 때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런 점이 또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낼 수 없다는 명제의 살아있는 증거라고나 할까. 

그렇게 나를 열광하게 만든 브레넌 박사의 수사물이 책으로 나왔다는데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부스 대신 라이언이라는 연인이 등장하지만 '브레넌 박사가 나온다는데 그 정도야'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쳐든 순간, 이런, 한숨부터 나온다. 성서 이야기다. 브레넌 박사가 예수의 유골을 분석한단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이제 '성서 다시보기' '성서 파헤치기' 이야기는 멀리하고 싶다. 바로 며칠 전에 '성서 다시보기' 책을 또 한 권 읽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강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머리에 총 두 방을 맞고 사망한 유대인 남자. 그를 부검하는 브레넌 박사에게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해골이 찍힌 이상한 사진을 건넨다. 로마인과의 항쟁 끝에 유대인 967명이 자살한 마사다 유적.  브레넌 박사는 친구 제이크의 도움으로 그 사진이 마사다 유적과 관련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유골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연인 라이언과 함께 이스라엘로 향한다. 

[다빈치코드]가 출간된 이후로 성서 뿐만 아니라 예수에 관한 여러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예수는 죽지 않았고 부활하지 않았다는 둥, 결혼해서 자식을 남겼다는 둥, 확인할 수 없는 의문들만 난무한다. 이 책 또한 그런 의문들 중 하나에서 출발했다. 예수의 가족무덤, 예수의 유골. 성서와 예수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그렇듯 이 책 또한 명쾌한 해석을 내리며 끝맺지 않는다. 허구의 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보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결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역시 '성서 다시보기' 책들은 아직 미흡한 것 같다. 

다만 TV로만 보던 브레넌 박사의 활약을 책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드라마보다 생동감과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건을 따라가다보면 책의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드라마로 재구성되곤 했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들은 또 다른 긴장감을 조성한다. 성서와 예수를 소재로 하는 특성상 그녀보다는 친구 제이크의 지식이 살짝 더 빛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CSI나 여타의 수사물과는 달리 <본즈>에서는 사람의 뼈를 다뤄 사건의 증거와 실마리를 찾아낸다. 사람의 몸이 여러가지를 말해준다는 점은 섬뜩하면서도 신비한 일인 것 같다. 단순히 '사건의 희생자'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비록 뼈로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었더니 갑자기 드라마 속 브레넌 박사가 그리워진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만큼 나는 다시 그녀를 보러 가련다.  캐시 라익스의 전작 [본즈]를 옆에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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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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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은 고딕 성당의 외벽을 장식하는 괴물형태의 물받이 조각상을 말한다 (가고일 2 P343)- 처음에는 가고일이 뭔가 싶었다. 좋아하는 보라색이 들어간 매혹적인 표지 탓에 '가고일'도 분명 로맨틱하고 깊이가 있는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고일이라고 크게 쓰여진 제목 위에 '불멸의 사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으니까. 작가는 친절하지 않게도 독자들에게 가고일이 무엇이라고 콕 집어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어나가면서, 혹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그제서야 '아, 그거! '라고 떠올릴 뿐이다. 어쨌든 가고일은 이상한 날개를 달고 건물 기둥의 한 켠을 붙잡고 있는 듯한 괴상한 모습을 한 석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주인공은 가고일만큼이나 흉측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전직 포르노 배우인 그는 술에 취해 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고 전신이 불에 탔다. 여러 여자를 애닳게 했던 아름다운 외모도 불과 함께 사라졌다. 오랫동안 혼수상태로 지냈고 몇 번의 수술을 거쳤으며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경험해야하는 그 앞에 마리안네 엥겔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그에게 700년 동안 계속되어온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화살로 시작되었고 화살로 끝을 맺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사랑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고 하는 띠지의 문구를 100%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불멸의 사랑이라고 해도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고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종국에는 처음과 같은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진부하다고 치부해버리는 '사랑'이야기에 완벽히 빠져들 수는 없을 거라 짐작했는데, 나는 책을 집어들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두 권을 내리 읽어버렸다. 

이 책의 매력은 마리안네와 그의 사랑 외에도 마리안네가 들려주는 네 가지 사랑 이야기에 있다. 병에 걸린 아내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 대장장이, 혼자 바다에 나갔다가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폭압적인 다이묘에 의해 사랑을 강탈당하고 비구니로 살다 끝내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생매장당한 여인, 허락받지 못할 사랑을 했으나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한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마리안네의 입을 통해 현실 속에 재현된다. 

마리안네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사랑들은 단 한 편도 '누구와 누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끝나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사랑을 위해 희생할 뿐 영원한 행복을 약속받지 못했다. 어쩌면 그 네 가지의 이야기가 마리안네와 그의 사랑의 결말을 암시해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사랑이 과연 비극인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일생동안 혹은 죽어서까지 그 사랑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은, 마리안네와 그의 삶은 힘들었으나 아름다웠던 것이 아닐까. 

그들이 처음 만나 700년이 지난 지금의 마리안네의 직업은 조각가다. 아무 특징없는 돌 속에서,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돌 속에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해낸다. 수많은 가고일들을.  그 가고일들이 마리안네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그는 사고와 화상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고일이 되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사랑을 오직 오락으로만 여겼던 그 앞에, 사고와 화상은 생명을, 마리안네라는 단 하나의 사랑을 데려다 주었다. 비록 7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그 시간의 깊이만큼 그의 사랑은 앞으로도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이리저리 돌고돌아온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안타깝고 아련했으나 무척 재미있었다. 기대 이상이었기에 아주 만족한다. 단테의 [신곡] 을 도입한 글의 전개도 멋있었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들의 사랑이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만 같다. 고통과 희생, 구원을 통해 피어난 그들의 사랑 덕분에 마음이 촉촉해져 온다.

 



 이것은 화살이 내 가슴에 들어온 세 번째 사건이 될 터이다. 첫 번째는 나를 마리안네 엥겔에게 데려다 주었다. 두 번째는 우리를 갈라놓았다.

 세 번째는 우리를 재결합할 것이다. (가고일 2 p339)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계속된다. -아이 러브 유, 아이시테루, 에고 아모 테, 티 아모, 예흐 엘스카 시흐, 이히 리베 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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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지금 이 순간도 삶이다
이영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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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이 있습니다. 이제 발령받은 지 한 달 남짓,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저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실망감, 두려움을 느껴야 했어요. 제가 공부하면서 그렸던 맑고 밝은 예쁜 아이들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은 한 달이었거든요. 예쁜 아이들도 많습니다. 복도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 를 크게 외치는 아이들, 그래도 시험 기간이라며 연필 꼭 쥐고 공부하는 아이들, 시험 너무 어려웠다고 어리광부리는 아이들을 보면 다 제 동생 같아서 볼을 쥐고 장난을 치고 싶어진답니다. 그럴 때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초임인데다 2학기에 발령을 받아서인지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밝고 활달한 정도가 살짝 지나치는 바람에 수업은 늘 '앉아' '조용히해'로 시작하기 마련이고, 종이 쳐도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탈 때도 있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생각도 못했던 수업 시간 핸드폰 사용은 기본이고, 점심시간 전 4교시 수업은 밥 냄새를 맡은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답니다. 요즘은 또 선생님에게 꾸중듣거나 교무실로 내려오는 것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의 나이 차이는 10년, 사회에서는 아직 젊디 젊은 나이인데 아이들 앞에만 서면 꼭 제가 중늙은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제가 가진 생각이, 제가 하는 행동이 아이들이 고수하고 있는 생활과 무척 차이가 있다는 걸 느껴요. 선배 선생님들 말씀은, 그냥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 다 그렇다고요.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이제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고. 교직에 있는 친구나 선배들의 말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웃음과 다정한 말로는 아이들을 이끌 수 없고, 그것만으로는 힘이 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뭘 포기하고 뭘 인정해야 하는 걸까요? 

요즘 제 마음은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이해되기도 하다가 또 때로는 아이들이 미워지기도 해요. 아프고 힘든 마음을 붙잡고 고민하던 차에 이영미 선생님의 [십대, 지금 이 순간도 삶이다]와 만났습니다.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눈물의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자신이 아주 많이 부끄러웠답니다. 나는 아이들을 잡으려고만 했구나, 이해하려고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차갑고 편향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나는 아직 교사가 아니구나..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이제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시작하는 사람인걸요. 

책은 이영미 선생님의 편지와 많은 아이들의 경험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몸이 아픈 친구를 둘러싼 아이들의 우정, 처음으로 2등을 한 후 아버지에게 맞고 자살하려고 한 아이, 늘 엄마의 계획대로 살아가는 아이, 재혼한 엄마에게 편지 쓰는 아이, 이성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 등 제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으나 분명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선생님의 편지는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게 해주었고, 1999년부터 중간고사의 첫날에 항상 빵을 구워가신다는 선생님의 열정은 제 가슴도 따뜻하게 해주었어요. 좋은 책과 영화 소개로 생각할거리를 주셨답니다. 나도 과연 이 분같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두근거림과 두려움을 모두 느꼈지요. 

저의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때때로 아이들과 소통되지 않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낙담하고 실망하는 일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 보여준 선생님의 자세와 말씀들을 잊지 않고 싶어요. 더 나은 삶을 위해 준비하는 십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한 삶이라는 말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진솔한 편지로 인해 제 자신이 위로받고 앞으로 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 아이가 있는 부모님, 그리고 교직에 계신 선생님들이 읽어보면 아마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한 권 더 사서 교직에 있는 제 친구에게 선물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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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3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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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008년이 3개월 정도 남았지만 생각해보면 올해는 특히 앞만 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잊고 싶은 일도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끝없이 미래에 관한 설계를 계속해야만 했다. 어떤 한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나의 능력을 보여주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현실은 나의 이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 한 해였다고 할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그러했으니 올해의 끝에서 뒤돌아본 후 드는 생각에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숨가쁘게 달려왔고, 크고 작은 긴장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던 일상 속에서 [똥친막대기]와 만났다. 똥친막대기는 처음부터 똥친막대기가 아니었다. 백양나무 어머니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곁가지로서 살아가는 아주 작은 생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사짓던 박씨의 손에 의해 꺾어져 소몰이용으로 쓰인다. 크나큰 아픔을 느꼈고, 매우 두려웠지만 똥친막대기는 박씨의 딸 재희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소몰이용으로 쓰이던 똥친막대기는 그날 밤 재희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용으로 변신했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변소에서 드디어(?) 똥친막대기로 쓰였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다시 낚시대가 되기도 하고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뿌릴 내릴 곳을 찾게 된다.
 
이 작품의 화자는 똥친막대기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의 곁가지. 흔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지 않았던 똥친막대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가 겪은 고통과 두려움에 비하면 의외로 푸근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서조차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세상에 대한, 인간소녀 재희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해맑으면서도 순수하게 다가왔다. 책 중간중간에 그려진 정감가는 삽화들이 책의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순수하게 '우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일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했던 일들이 후에 돌이켜보면 중요한 의미가 있었음을,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건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똥친막대기가 겪었던 수많은 우연, 고통과 좌절은 그가 뿌리내리는 데에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똥친막대기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
 
오랜만에 책을 보면서 크게 숨을 쉬어본다. 그동안 글자로만 이루어진 책만 보다가 푸근하고 정감가고 비료 냄새가 날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 책을 읽었더니 가슴이 따뜻하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어떻게 빛나는 생활로 나아가는지, 한 글자 한 글자가 어떻게 가슴을 울리는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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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라이프 2
김태양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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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직업상 학교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는 편이다.  젊은 교사들에게 보내는 글귀, 교사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편지모음집, 우리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책까지 내 모든 정신이 온통 '학교'에 쏠려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의 생활모습과 사랑을 그려냈다는 이 책 또한 나의 그런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가뜩이나 두 살 어린 남동생도 나와 세대차이를 느낀다는데 학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이해받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요즘 고딩들의 사랑도 우습게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리다고 해서 사랑을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린 그들의 사랑을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은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같은 작품에서 감동을 느낄 수 없으리라. 문학작품에서 어린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어린 학생들의 사랑 또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어떤 점을 걱정하는지, 학생들을 둘러싼 환경이 어떤지 잘 알지만 사랑은 나이의 많고 적음, 성장의 발달 단계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밝힌다면 나는 이 책을 읽고 약간 실망스러웠다.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이 책에 가지고 있었던 바람은 이랬다. '그래, 띠지에 고딩들의 사랑법 훔쳐보기라고 적혀있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상 그 외의 이야기들도 있겠지. 사랑과 함께 전개되는 그들의 학업에 대한 고민,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러나 이 책은 시종일관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재혼으로 인해 형성된 가족, 그 안에서 일어나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 간의 사랑, 학생들끼리 서로 불러대는 이상한 별명, 변태스러움을 자처하는 주인공의 친구까지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흡사 일본만화의 한 장면 같았다. 

톡톡 튀는 고딩들의 특징들을 잘 표현했다는 점까지 부정하지는 않겠다. 요즘 학생들의 개방적이고 발랄한 모습은 잘 나타나있지만, 거기까지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기에는 적합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계속 기분이 이상했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학교라는 공간이 침해당한 느낌이었다. 동화같고 밝은 학교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오락성을 중시한 책을 읽고 이리 분석하고 따지려 하다니. 하지만 그만큼 내가 이 책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뜻도 되겠다. 재미와 허구, 분명 소설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의 현실을 반영하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스쿨라이프]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기에 무척 아쉬웠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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