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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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자마자 리뷰를 남기는 평소의 습관과는 달리,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쓱쓱 닦고 오랜만에 엄마와 목욕탕에 다녀왔다. 탕 속에 둥둥 떠서 이야기도 나누었고 엄마의 너른 등을 두 손으로 힘차게 밀어드렸으며 보통 때는 엄마가 하시던 수건 빨래도 오늘은 내가 했다. 다녀와서는 같이 저녁 준비를 했고 그토록 싫어하던 설거지도 자진해서 끝냈다. 그리고 지금은. 일찍 잠자리에 드신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드렸다. 

목욕탕에 함께 가는 것, 같이 저녁 준비를 하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모두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었다. 시원하게 몸 좀 풀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와 목욕탕에 가기보다는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고 저녁 준비는 당연히 엄마의 할 일이라고 여겼으며 설거지는 힘든 하루를 끝마치고 온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많은 집안일을 나는 엄마의 딸이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버리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책은 읽어서 무엇 하는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나는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p19)-

생신을 맞이하기 위해 부모님이 서울로 오시던 중 아버지가 지하철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한 평생을 늘 엄마보다 앞서 걸었던 아버지. 그 날도 그는 여느 때처럼 엄마보다 앞서 걸었고 엄마가 지하철에 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서울역에서 두 정거장이나 지나온 다음이었다. 엄마의 자식들은, 엄마를 '잊고' 지냈던 그들은 그제서야 한데 모여 엄마를 찾아 헤맨다. 

엄마는 잃어버림을 당하기 전에 이미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잊혀지고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믿음으로 우리는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을지. 엄마조차 모르고 지나가버린 뇌졸증이었기에 자식들은 당연히 눈치채지 못했고, 자신의 아픔에 빠져있었던 아버지는 엄마에게 치매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떡을 3년간 냉장고에 방치해 둔 '너'는, 그녀를 다시는 추운 방에 누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형철이는, 나 죽으면 먹으면서 생각하라고 챙겨준 감나무를 귀찮게만 여겼던 막내는 엄마의 자랑스런 자식들이었지만 품안을 떠나버린 그 때 타인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엄마의 부재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그제서야 남편과 자식들은 엄마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는 것을 느낀다. 엄마가 해주던 밥, 엄마가 일하던 모습, 서울에 자리잡은 큰 아들에게 여동생을 데려다주며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속삭이던 목소리,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오던 호박덩이와 온갖 나물들.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애써 부탁하지 않아도, 간청하지 않아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처럼 어느 새 눈을 들어 바라보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 

나에게도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 기억 속에서 처음부터 엄마로 자리잡았고, 엄마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문구에서처럼 나는 엄마에 대해 제대로 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엄마에게도 소녀시절이 있었고, 찾고 싶은 친구가 있을 정도로 즐거웠던 학창시절이 있었으며 아빠를 만나 달콤하게 연애했던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했었음을 나는 여전히 '잊고' 산다. 나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면서도 내 욕심과 가족의 이기심 안에서 가장 큰 고생과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억지로 잊으려 했었음을 고백한다. 

'엄마'라는 단어는 소리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고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읽고 싶어 손에 들인 책이었지만 첫 페이지를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하잖아. 그러니 슬픈 이야기는 그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이것이 슬픈 이야기인가, 작품 속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엄마'라는, 어쩌면 문학 작품 안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을 그 사람을 소재로 이렇게 가슴 먹먹하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나는 누군가에게, 혹은 전지전능한 신에게라도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내게 엄마를 부탁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내가 엄마를 세상이 허락하는 날까지 돌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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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월요일 - 참을 수 없는 속마음으로 가득한 본심 작렬 워킹 걸 스토리
시바타 요시키 지음, 박수현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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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살짝 참을 수 있지만, 나에게도 한 때 월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참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을 위해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고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를 찾아왔는데,  주말에는 집에 갔다가 일요일만 되면 다시 돌아와야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월요일은 이리도 빨리 돌아오는 것일까를 되뇌이면서.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뒹굴거리다 대화상대라고는 오직 컴퓨터와 TV 뿐인 방으로 돌아가는 게 처음에는 무척 싫었었다. 지금이야 많이 익숙해졌고 나의 사랑하는 책들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되었으니 망정이지만.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직장에 간다.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준비해서 출근. 일 하다 퇴근해서 집에 와서 씻고 저녁먹기. 이러다 보면 하루가 금새 가는데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는 '독서'다. 주변이 아파트 단지인 데다 동료들과 어울리려면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퇴근 후 멀리 가는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 책은 안성맞춤의 친구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있고 그런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매일 에헤라디야 놀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결코 퇴근해서 책을 보는 나의 생활이 따분하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주인공 네네는 그런 면에서 나와 많이 닮았다.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녀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N게이지용의 150분의 1 크기로 집이나 건물 모형을 만들 때이다. 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길 때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비록 낙하산으로 출판사 경리부에 입사한 그녀이지만 맡은 일은 착실히 해내고 바르지 못한 일에는 따질 줄 아는 당당함도 지녔다. 그런 그녀의 일상은  무지갯빛의 일주일로 채워져있다. 

네네의 소개글이라 할 만한 <참을 수 없는 화요일>, 속옷 쇼핑을 했다가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린 <모두에게 비밀인 화요일>,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불륜녀로 오인받은 <눈물 나게 외로운 수요일>, 회사 내의 불합리한 인간관계를 그린 <달콤 쌉쌀한 목요일>, 신나는 금요일 밤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은 좋은 기분을 표현한 <그래도 기쁜 금요일>, 절친한 동료인 야야의 퇴직과 그녀를 좋아하는 사카우에, 그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사랑의 큐피드가 된 <목숨 겁니다, 주말입니다>, 그리고 일상의 되풀이를 이야기하는 <또다시, 참을 수 없는 월요일> 까지 각각의 요일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워킹걸의 생활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은 월화수목금토일의 되풀이다. 매일매일의 규칙적인 생활, 아쉽게 지나가버리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밤, 너무나 빨리 찾아와버리는 아침. 우리 모두는 매일의 그런 생활을 따분하다거나 지루하다고 치부해버리지만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정말 우리의 오늘에 사건사고가 없었는지. 오늘만해도 나는 수능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고, 수능을 앞두었지만 여전히 밝은 아이들의 미소를 볼 수 있었으며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도, 자랑스럽게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먼 훗날 돌이켜 생각하면 추억이 되는, 그런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힘든 하루 중 맛보는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에도 마음이 풀어진다. 그런 행복함을 알아주는 네네가 있어 다행이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이 책이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어딘가의 다른 누구도 이 책을 보면서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을까. 또다시, 참을 수 없는 월요일은 오겠지만 그래도 직장이 있고, 취미가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동안의 칙릿들이 터무니없는 꿈같은 사랑과 초현실적인 멋진 생활을 그리고 있었다면, 이 책은 직장 여성의 마음과 에피소드를 포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네네는 자신은 전혀 멋진 여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바른 몸과 마음으로 일하고 생각할 줄 아는 그녀야말로 멋을 아는 사람이고, 평범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여겨진다. 

아~이제 몇 시간 후면 또 다시 반복적인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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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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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붉은 빛이 감도는 표지에 어쩐지 마음이 산란하다. 보통 붉은 빛은 따뜻하다고 여겨지는데 이 책 표지에서는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표지 오른쪽에서 문을 통과해 꼬물꼬물 나오는 사람들이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자꾸만 하나의 세포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그의 바티스타 시리즈를 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보다는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먼저 읽었는데 약간의 코믹한 분위기와 함께 미스터리, 병원에서 일어나는 감동적인 일화를 그려낸 데 반했다. 의료지식도 풍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외과의사를 거쳐 현재는 병리 의사로 근무하는 사람이다. 주로 병원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는 그의 소설에서는 '병원'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삭막한 이미지가 아닌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데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또한 그런 책들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가이도 다케루는 이 작품에서 불임, 저출산 등의 사회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그 저변에는 '생명의 신비'라는 불가사의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가 숨어 있다.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팔과 손이 각각 하나, 다리도 오른쪽 왼쪽 모두 있다. 방송에서 가끔 보여주는, 갖춰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단어 선택에 무척 고심했음을 알아주세요)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 그래,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도 감사하자'라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로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찔한 확률도 벌어진 일인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쿄 데이카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소네자키 리에. 그녀는 발생학 강의를 하는 동시에 마리아 불임 클리닉에 비상근 의사로 출근하고 있는데 인공수정 전문가인 그녀에게 다섯 명의 임산부가 찾아온다. 자연 임신한 아마리 미네코와 아오이 유미, 간자키 다카코와 인공수정한 아라키 히로코, 그리고  55세의 야마자키 미도리. 같은 대학에서 부교수로 일하는 기요카와는 55세의 임부인 야마자키 미도리가 대리모이며 리에가 대리모 출산에 관여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리에가 말하는 출산에 관계된 문제는 심각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되어야 할 기회가 불임 부부들에게 적다는 것, 출산은 병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 외에도 소중하게 생명을 다뤄야 할 병원에서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이익만을 위해 기관과 기관이 움직여 진실을 은폐하는 현실이 무섭게 느껴졌다. 

대리모의 문제도 법적으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인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이 엄마인가' 라는 문제에서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로 정해진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온갖 변수가 많을텐데 가뜩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한 줄의 법문으로 정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리모 문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대리모에 관한 사항이 좀 더 현실적이고 중요하게 다뤄진다면,  우리가 우선해야 할 것은 누가 부모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난다. 아이가 무뇌아라는 것을 알고도 세상의 한 줄기 빛을 보여주고 싶어한 아마리 미네코와 팔이 없는 아이를 낳으면서도 출산을 통해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성장해가는 아오이 유미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신비'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바티스타 시리즈에 비해 이 책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다. 그러나 얼음 마녀라 불리는 소네자키 리에의 손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 그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출산이라 부른다. 고귀하고 숭고한 출산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에 의해 변질되거나 억압받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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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간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조경수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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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의 식성이 달라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며 예전에는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게 되는 경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그 심장과 눈과 많은 장기들에까지도 기억은 파고들어 있는 것일까. 기억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장기들의 경우도 그러한데 우리의 사고를 총괄하고 지식과 기억의 창고인 뇌를 이식한 경우는 어떨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과연 머리인가, 몸인가? [걸작인간] 은 이 하나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사고를 당한 열 여덟의 요제프 메치히. 그는 몸은 멀쩡하지만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삼십대의 게로 혼 후텐. 화가였던 그는 뇌는 멀쩡하지만 오른손은 절단되었고 왼손은 뭉그러졌으며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상태다. 프로메테우스 재단의 레나-마리아 크라프트는 두 사람의 보호자로부터 동의를 얻어 요제프의 몸을 게로에게 이식한다. 즉 몸은 요제프이나 머리는 게로인 상태. 화가였던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게로였지만 요제프의 몸을 이식받은 후부터 요제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게로 안에는 원래의 게로와 몸의 주인 요제프, 그리고 그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인 '신인간'이 출현하게 되고 급기야 게로의 아내인 이본느를 떠나 레나와 사랑에 빠지기에 이른다.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 이라는 책에서도 역시 뇌 이식수술을 다룬다. 강도에 의해 뇌를 크게 다친 청년에게, 총을 맞고 죽은 그 강도의 뇌를 이식한 내용으로 그 후 청년의 의식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섬뜩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변신] 에서는 [걸작인간] 에서처럼 머리를 통째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뇌의 일부만을 이식한 것으로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몸과 나의 머리가 결합된다니, 상상할 수는 있으나 어쩐지 쉽게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의 생명이 많이 보호받고 있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뇌에 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고들 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그 기능을 멈춰버리는 뇌. 강한 듯 하지만 민감하고 연약한 그 뇌를 이식하고, 몸을 이식받는 시대도 곧 오겠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좋은 것일까.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머리 따로, 몸 따로인 새로운 인체는 어쩐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물론 예전에는 장기이식 자체도 문제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든 자식과 남편을 살리고 싶다는 일념 하에 어려운 결정을 한 요제프의 어머니와 게로의 아내. 그러나 만약 내가 게로였다면 어쩐지 그가 걸었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몸보다는 뇌가 그 사람을 더 많이 지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몸을 이식받은 사람에게 새롭게 출현한 '신인간'을 등장시킨다. 인간에게 있어 몸이 중요한가, 영혼이 중요한가가 논의되는 것처럼 뇌가 중요한가, 아니면 뇌 아래의 몸이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금 글을 쓰는 나의 손가락은 뇌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손가락 자체의 의지인 것일까. 

과연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지만 '신인간'과 레나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약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뇌, 진정한 자아를 생각해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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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나의 힘 - 에너지를 업up시키는 분노관리법
아니타 팀페 지음, 문은숙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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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중에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다큐가 있었다. 인간이 정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실험하고 관찰한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상대로 대문자 E를 자신의 이마에 크게 한 번 써보게 하는 실험도 있었다. 자신이 봤을 때 E가 똑바로 보이게 그리는 사람, 남이 봤을 때 E가 똑바로 보이게 그리는 사람의 두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나는 후자에 속했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나처럼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 행동을 하는 경향이 강하며 팔랑귀의 소유자다. 심리학자의 설명을 듣고 가슴 한 쪽이 뜨끔했음은 물론이다. 

다른 사람의 눈과 상황을 살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타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서툴다. 그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며, 가끔은 그렇지만 NO 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 탓이라고 여겨지는데, 같은 맥락에서 나의 분노를 다른 사람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분노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그다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그 분노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한 권의 책이 있다. 

제목부터 어쩐지 통쾌하다. '분노는 나의 힘' 이라. 가까운 사람에게 분노를 잘 표현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내가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는 대상은 주로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였다. 엄마라면 나의 이런 기분을 모두 받아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나의 화살을 모두 맞아버린 엄마의 기분은 생각지도 않고 내 가슴 속에 꾹꾹 눌러둔 어둠의 기운을 모두 내쏘아버린 시절이 있었다. 뒤늦게 찾아오는 감정은 후회, 그것도 마치 진창에 몸이 빠져버린 것 같은 캄캄한 후회 뿐이었다. 때문에 분노를 나의 힘으로 전환시키기보다 에너지 소모, 감정의 소모로 사용했던 나에게 이 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은 모두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노의 현상, 원인,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 전 분노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분노는 나의 일상>, 분노를 표출하고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풀어놓은 <분노는 나의 편>, 그리고 분노를 진정한 나의 힘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행동지침을 역설한 <분노는 나의 힘> 까지, 저자는 '분노학계'의 강자라 여겨질만큼 체계적으로 분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보기, 분노일기 쓰기, 건강한 자기가치 의식 세우기 등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들이 많다. 

저자의 이론 중에서 마음에 든 것은 '분노'를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고 피해버리는 '분노'를 인간의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점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내가 느꼈던 분노가 합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구나, 그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나고 분노를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구나 라고 편안히 생각하게 된 것이다. 부끄러운 면을 인정하고 그것도 나라고 미소짓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화나씨, 열나씨의 사례들은 내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한 번쯤은 겪어봤을 감정의 파편들이었다. 그 파편에 맞아 아픈 가슴을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당당하게 꺼내보일 수 있도록  '분노'를 나의 힘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예민하고 어렵게 느껴질만한 주제를 귀여운 삽화들이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곰을 글러브로 때리는 장면이나 불을 내뿜는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든다. 작지만 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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