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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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으로 첫만남을 가졌던 온다 리쿠 여사. 그녀의 이야기들은 판타지, 호러, SF, 혹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괴이함 등 그 소재가 다양하지만 어떤 이야기든 온다 여사가 내뿜는 독특한 분위기는 항상 감돌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차지만 철도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바다 위를 달린다거나,  멀쩡한 도시지만 알고보면 하늘 위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사실은 그런 느낌들이 어떤 느낌일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뭐랄까, 실제로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쩐지 다른 세상 속에 속한 듯한 느낌이 갑자기 들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잘은 설명할 수 없지만 아무튼 온다 여사의 작품에는 그녀가 아니면 남길 수 없는 독특한 발자취가 있었답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저이지만 요즘 온다 여사의 작품을 집어들기 전에 느끼는 감정은 '복불복'입니다.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한 번 그녀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그 일의 시초였는데 그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는 사실 지금까지 손에 꼽을 정도랍니다. 그저 언젠가는 멋진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으려니 하는 마음에 출간되는 작품을 습관처럼 사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나비]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온다 여사는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야기들 속에서 아련한 향수같은 느끼게 만드는 작가라고 표현되는데, 그걸 느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알싸한 느낌은 늘 둥둥 감돌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나비]에서는 앞서 말했던 온다 여사만의 발자취와 그런 알싸한 느낌을 잘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초감각소설, 상상초월, 오감만족' 이라는 선전용 문구가 나타내는 것처럼 저같은 보통사람이 생각해낼 수 없는 이야기들은 많았지요. 하지만 그저 '그걸로 끝!'이라는 느낌만 들었습니다. 어쩌다 생각난 이야기들을 끄적끄적하고 그걸 조금 손 본 뒤에 세상빛을 보여준 듯한. 온다 여사가 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작가가 쓴 듯한. 

물론 그 중에는 온다 여사의 색채가 충분히 살아있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는 맨 마지막 이야기인 <야상곡>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다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손에 들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야기였어요. 개인 서가에 대한 욕심에 또 한 번 불을 붙인 이야기이기도 했답니다. 

당연히 어떤 분들은 저와 다르게 느끼실 수 있어요. 제가 온다 여사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건지도 모르니까요. 멋진 표지만큼 근사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기를 원한 저의 바람이 충족되지 못해 더욱 아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온다 여사,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그래도 한동안 변함없을테지만  이 사랑이 변하기 전에 부디 분발해 주세요! 이상 협박 아닌 협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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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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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도 제대로 못 보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요괴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귀신이나 유령이라는 단어에서는 어둠의 기운밖에 느끼지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본 요괴라고 하면 악한 기운보다 아기자기한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물론 일본 요괴 중에도 [음양사]에 등장하는 귀신들처럼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들도 있겠다. 하지만 [음양사]를 제외하고 내가 읽었던 작품들에 등장한 요괴들은 인간들 곁에 머물며 주인을 호위하거나([샤바케]), 여기에 등장하는 호루모 귀신들처럼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호루모 6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이 작품은 '호루모'라는 기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호루모는 일본 교토에서 천 년에 걸쳐 내려오는 경기로 교토대학, 리쓰메이칸대학, 교토산업대학, 류코쿠대학의 4개 호루모 동아리에서 10명이 각각 귀신 100마리를 부려 치르는 경기를 가리킨다. 호루모 귀신은 몸길이 약 20센티미터로 머리가 약간 크고 얼굴 한 가운데에 꼭 오므린 채 튀어나온 주둥이가 있는데 적의 공격을 받으면 이 주둥이가 점점 들어간다. 완전히 들어가면 '뾰로'라는 소리를 내며 소멸하지만 그 전에 건포도를 넣어주면 다시 주둥이가 튀어나오게 된다. 

마키메 마나부의 [가모가와 호루모]의 속편인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는 단순한 요괴 이야기가 아닌 호루모 귀신들을 부리는 인물들의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 총 6편의 사랑연작소설로 호루모 경기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대학생들의 청춘과 사랑의 고뇌를 가벼운 듯 하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호루모 동아리를 통해 만난 여자들의 우정,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할 때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을 패러디한 이야기, 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만난 동아리 사람들의 에피소드 등 소재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라고 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나무 궤 사랑>. 오다 노부나가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나베마루와 툭하면 눈물을 울리는 다마미의 시대를 뛰어넘은 풋풋한 사랑이야기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무척 단순한 이야기같지만 (물론 단순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가슴의 알싸함은 책을 껴안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당신을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꿈 세상에 있는 것입니까? 꿈이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당신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당신이 알아볼 수 있게 표식을 달고 나타나겠습니다. 아즈치 성에서 바라보는 비와코는 아름답습니다. 당신께 꼭 한 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비와코 표식과 함께 반드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부디 당신도 나를 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p370  
     

교토는 794년부터 약 1,000여년의 시간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으로 문화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 천년의 고도라 불리는 교토. 그 교토에서 벌어지는 호루모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달콥쌉싸름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호루모라는 판타지가 맛있게 버무려진 유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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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고진하 글.사진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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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식당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먹는 것을 꽤 좋아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순간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나지만, 가끔 먹는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살아가는 일과도 연결된다. 먹는다. 산다. 문득문득 아주 작은 일에서조차 '삶'이 느껴진다.

살아가는 데 있어 먹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분노를 다스리고 누군가를 이해하며 눈 앞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좀 더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마음. 마음이 단단해 스스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안다면 그보다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때는 사람과의 만남, 한 편의 영화,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쉽게 가까이에서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책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마음의 쉼터가 필요해 덥석 문 책. 처음엔 그저 단순한 인도 여행기인 줄 알았다.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문화나 미술에도 살짝 관심이 있어서 인도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솔직히 이 책은 조금 어렵다. 고대 인도의 철학서인 우파니샤드를 통해 아트만(참자아)과 브라흐만(우주 만물 속에 두루 퍼져 있는 신)을 탐구하는 과정을 다룬 것으로 여행기라기보다는 철학서, 종교서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우파니샤드를 통해 바라본 인도의 모습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고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 일생을 신을 찬미하며 보낸다면 행복하겠다는 그들. 길거리의 아이조차 '당신이 칼리에요!'를 외치며 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그 어떤 신도 배척하지 않고 하나하나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불가촉천민이라는, 부당해보이는 계급제도조차 업이라 생각하며 현생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보편적인 잣대로는 그들을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혹은 우파니샤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덧없는 것으로 그 안에 존재하는 영원불멸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원하고 바라는 것, 물질에 얽매이고 순간의 감정에 좌우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지만 나는 고행을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과 사의 경계는 모호하고 그 경계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이 덧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숨쉬는 순간순간,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인가를 경험하며 그 안에서 느끼게 되는 모든 감정들 또한 나를 어떤 깨달음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설령 그것이 고행을 통해,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저자 고진하의 이력이 독특하다. 목사이면서도 불교, 힌두교 경전을 공부하고 모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 만약 그가 기독교인의 눈으로만 인도를 바라보았다면 이 책은 그 가치를 잃었을 것이다. 읽는 데 시간은 좀 들었지만 고요하게 잠겨있는 물을 생각나게 하는 책. 언젠가 갠지스 강가에서 이 책과 함께 삶을 생각하고 응시할 수 있다면 한층 마음이 평화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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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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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는, 요즘에야 헤어질 때 인사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어떤 사람과의 인연을 끊을 때 쓰는 말이다. 일본드라마에서 헤어지는 두 연인이 '사요나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묵직해오는 것이 그 울림마저 무거운 말. 그래서 나는 주로 '바이바이'를 쓴다. 개인적으로는 왠지 안타깝고 무섭게 느껴지는 그 사요나라가 두 번이나 쓰였다! '두 번 다시 이런 연애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요시다 슈이치. 그 말을 듣고 긴장하면서 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참, 이런 책은 읽기도 힘들고 내 안에서 뭔가를 뱉어내기도 버겁다. 결국 노트북 앞에서 몇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야기는 가쓰라가와 계곡에 있는 공동주택단지에서 한 남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범인이 아이의 엄마인 사토미로 밝혀지면서 경찰과 취재진들이 몰려들고, 그 와중에 사토미의 옆집에 살던 오자키 슌스케와 그의 아내 가나코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사건을 취재하던 중견출판사의 기자 와타나베는 운전기사로부터 우연히 오자키 슌스케와 같이 야구부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선배의 조언으로 그들이 집단강간의 범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체포된 사토미로부터 오자키와 내연관계였다는 증언이 터지고 그 증언을 계기로 오자키와 가나코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작가가 설정한 아이의 죽음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아이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를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어느덧 슬프고 안타까운 또 하나의 사건, 오자키와 가나코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다른 여성분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남성들과 불가피하게 접촉하게 되는 것조차 최대한 피하는 쪽이다. 그런데 집단폭행이라는, 입에 담기도 두려운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렇게 책의 소재로 만나게 되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일단은 여자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불행은 가끔 순식간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다가오는 것 같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후 가나코, 아니 나쓰미의 인생은 분명 밖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잊었다고, 이제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도 사건의 기억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고 , 자신이 어째서 그런 곳까지 따라갔는지 평생을 자책하며 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점은 스스로를 책망하는 그녀를 그 누구도 진심으로 감싸안으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건이 있은 후 계속되는 가정불화, 부모님의 이혼, 과거를 알게 된 남자들의 치졸함은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결국 깊은 상처를 입은 나쓰미는 '행복해지지 않기 위해' 오자키를 선택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을 책망하고 오자키를 원망하며 그를 용서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시작된 그들의 생활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서로의 앞에서 가장 솔직해질 수 있었던 사람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아름답다기보다 슬픈 사랑. 오자키를 용서하게 되면 그 앞에서 사라지겠다고 했던 나쓰미는 -사요나라-를 남긴 채 떠나간다. 

책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건이어도 그것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해자인 여자는 죄인이 되고, 가해자인 남자는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를 하며 간단히 잊어버릴 수 있는 일. '어째 이래'라며 화가 나지만 그런 사회문제보다는 두 남녀의 사랑이 더 크게 다가오는 책이다. 정말, '사요나라'에는 못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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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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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쿤츠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오드 토머스 시리즈와 [벨로시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비교해보면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 우선 남자주인공은 음식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 오드 토머스는 식당에서 일하고 [벨로시티]의 주인공 빌리는 술집에서 일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은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다는 것도 공통점. 약간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오드 토머스에게는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빌리는 그저 조용히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라는 것 뿐일까. 하지만 오드 토머스 시리즈든 [벨로시티]에서든 슬픔 가운데 느껴지는 무덤덤함과 서정성은 변함이 없다. 
 
세상에서 잔혹하다고 일컬어지는 일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원만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일이 어긋나 버리거나 더 심하게는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겨버리는 것. 생각만으로도 안타깝고 아찔하지만 어쩌면 이런 일은 예상보다 쉽게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연쇄살인범도 누군가의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빼앗았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 누군가의 미래가 자신 때문에 변할 수도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벨로시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가진 평범해보이는 남자 빌리가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쪽지를 받고 공포의 시간을 보내다 결국은 범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응징한다는 것. 하지만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줄거리만큼 간단하지 않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주인공 빌리 뿐만 아니라 읽는 이의 숨통마저 조여오고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든다. 쪽지를 경찰에게 가져가면 할머니를 죽이고 전달하지 않으면 금발의 여선생을 죽이겠다니, 터무니없지만 사람을 너무나 간단하게 공포의 구덩이로 밀어넣는 설정이다.
 
만약 빌리에게 지킬 것이 없었다면 빌리는 범인과의 게임을 간단히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서지 말고, 조용히 하고, 단순화하고,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을 즐겨라-가 삶의 철학인 빌리에게는 지켜야만 하는 여자 바바라가 있다. 범인과의 혈투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사실 빌리의 싸움은 자신이 아닌 바바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혼수상태인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책을 읽는 빌리의 마지막 모습은 뭐랄까.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오두막 안의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것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딘 쿤츠의 작품은 잔혹한 이야기를 다루기는 하지만 이렇게 군데군데 엿보이는 따뜻한 시선이나 언뜻언뜻 내비치는 유머가 좋다.
 
내가 영어에 관심이 있었다면 '벨로시티'가 '속도'를 뜻한다는 것을 더 일찍 깨달았을텐데. 책을 읽는 내내 '대체 벨로시티는 어떤 도시야,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라며 투덜댔었다. 에혀. 제목 그대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다. 숨통을 조여오는 정신적인 압박과 신체에 가해지는 육체적인 고통까지 마치 링 위에서 정신없이 얻어터지는 권투선수를 바라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 마지막에 다가오는 여운이 더 깊게 가슴을 파고드는 작품이었다. 간혹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는 했지만 중간중간에 빌리의 독백으로 T.S. 엘리엇의 작품 구절을 인용한 점은 돋보인다.
 
<평범한 남자 3부작>. 이미 출간된 [남편]과 앞으로 출간될 [The Good Guy]에서의 평범한 남자들은 어떤 시련을 맞이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그 무엇보다 '평범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하는 스릴러다.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더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기적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시간은 영원히 끝이 없는 법이다. -p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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