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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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나에게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 되고, 궁금해서 무엇인지 밝혀내지 않고서는 못견딜 것 같은 때. 공포영화를 보면 제일 먼저 죽음을 당하는 사람은 호기심이 왕성한 그런 사람들이다.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서 꼭 혼자 어둠 속을 더듬는 사람이 제일 먼저 화면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궁금해하는 것도 때를 가리면서 해야겠구나. 

막 애인에게 차여 낯선 아파트로 이사온 헨리 피어스도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 많고 다른 사람 일에 관심 많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 보였다. 새로 이사간 아파트로 내가 모르는 사람을 찾는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면 아마도 나는 그냥 무시하거나, 전화선을 뽑아 놓거나, 귀찮아하면서 그 날 당장 전화번호를 바꿔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차마 그 전화를 무시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릴리'의 행방을 뒤쫓기 시작한다.  '이 분은 왜 이리 남의 일에 열심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매춘부임이 분명한  '릴리'를 찾는 전화에는 과거 헨리가 겪은 상처를 도려내면서 현재의 그를 파멸시키기 위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최근 스릴러 소설의 주인공들이 직업정인 탐정이거나 혹은 강인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과는 달리 헨리는 그저 평범한 연구자다. 뭔가 대단한 것을 만들고 있는 듯 하니 그냥 평범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가 밖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갑자기 닥친 혼란. 언제 어디서 누가 적이 되어 나타날 것인가, (적은 나타났다! ) 릴리는 대체 어디로 갔으며 대체 헨리의 인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등의 의문이 한꺼번에 피어오르지만 책을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전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범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을 얼추 맞추기는 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고 할까,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할까. 긴장감과 조바심으로 책장이 그냥 쉭쉭 넘어간다. 

초중반에는 헨리의 탐정 역할이 빛을 발하지만 그의 매력이 한껏 발산되는 때는 역시 결말부분. 온갖 음모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상황에서도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고 냉철한 과학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침착하게 범인과 응전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릴리'를 찾는 한 통의 전화로 예상치 못한 구렁에 빠져버렸지만 끝내는 자신의 손으로 사건을 해결해버리는 우리의 오지랖 헨리씨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접한 것은 처음임에도 꽤 만족스러웠다. 자꾸만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전개와 긴장감을 조성하는 글솜씨도 매끄러웠지만, 무엇보다 헨리의 직업과 관련된 기술에 관한 지식이 놀라웠다고 할까. 작품 안에는 헨리의 직업과 관련된 상황 설명과 기술 설명이 꽤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나는 워낙 수학과 과학에 부족한 솜씨를 자랑하는지라 그것마저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고. 조금  똑똑한 머리를 가지신 분이라면 나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헨리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이클 코넬리의 이름을 오래 전부터 들었고 관심 있는 작품도 있었던지라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나와 맞는 이야기꾼인지도. 일단 [실종]으로 만난 그와의 첫 데이트는 성공이었다. [시인]이라는 작품이 좀 궁금했는데 믿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히. 

그나저나. 형광 분홍색 표지는 좀 정신사나웠다. 꿈 속까지 나타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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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달을 쫓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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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여사의 책을 손에 잡을 때 느껴지는 두 개의 상방된 감정들. 하나는 기대감, 다른 하나는 그래도 멀리 해보고 싶어지는 일종의 반항심리다.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시작으로 온다 여사의 팬이라 자처하는 나지만, 그녀의 글에 대한 내 마음은 한결같지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가슴이 뛰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오기가 동반된 책읽기는 나 자신과 독서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하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 불리며 일상의 미스터리를 그리는 온다 여사는 마음 속에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밤의 피크닉]이나 [흑과 다의 환상] 처럼 그녀의 장점이 최대로 발휘되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단순한 상상력의 나열에 그치는 작품들도 많았는데 [한낮의 달을 쫓다] 는 앞에서 언급한 두 작품처럼 그녀의 진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함과 향수가 가득한 몽롱한 상황 속에서 개인에게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설정은 온다 여사의 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도이기는 하지만 궁금증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는 최대의 매력이라고 할까. 

이 작품 역시 시즈카의 이복 오빠 겐고를 찾아 다에코와 나라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일상 미스터리에 관한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쫓아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여기서는 다에코가 그 토끼가 되어 시즈카를 이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밝혀지는 숨겨진 이야기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우리를 놀라움의 세계에 빠트릴 것인지 궁금해서 자기도 모르게 숨이 가빠온다. '빨리, 진실을 알려줘'라는 마음이 되어 책의 맨 끝장을 들춰보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간질거렸다. 

그러나 온다 여사의 작품을 읽는 재미는 결말이 아니라 과정에 집중된다.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엎치락뒤치락 뒤집어지며 점점 진실에 근접해가는 과정 속에서 긴장감은 높아지고 결말에서는 '아아, 역시' 라는 기분을 맛보는 것이 묘미라면 묘미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토끼'는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듯 하다. 시즈카를 인도하는 다에코를 의미하기도 하고 겐고의 헤어진 연인인 유카리를 상징하기도 하며 사건의 발단이 되어버린 겐고와 시즈카의 어머니를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시즈카 외의 주변 사람들의 집합체인지도. 토끼에 대한 기묘한 분위기와 나라라는 일본의 고풍스러운 도시여행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한 옛 이야기들이 온다 여사의 작품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여행'이라는 비일상적인 날을 택한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각 장의 제목인 '때에 임하여 짓는 노래', '의미가 통하지 않는 노래', '남겨진 이의 노래' '달을 읊는 노래' '답하는 노래' 작가 아직 확실치 않은 노래' 도 작품에 여운을 더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의 진실이 살짝 유치했다는 점이랄까. 일본만화를 연상시키는 진실은 옥의 티다. 또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등장하는 장소나 책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자세했다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관심이 많거나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묘사도 있어서 책에 완전히 몰입하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낮에 손에 잡히지 않는 달을 쫓아, 진실을 쫓아 시작된 여행. 진실은 밝혀졌고 여행도 끝이 났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계속된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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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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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호~오랜만에 엄청난 작품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여간해서는 스릴러에  별 다섯 개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줄 수만 있다면 많은 별을 주고 싶을 정도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띠지의 광고문구에 '흥!'하고 콧방귀를 거세게 뀌기는 했다. 스티븐 킹과 히가시노 게이고 팬이 열광한 경이적인 걸작이라는 둥, 영미권 최고의 소설상인 맨 부커상에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둥, 신뢰해 마지 않는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해외부문 1위라는 둥, 이런이런,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 동안 띠지 문구에 속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닌 관계로 50% 정도만 믿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와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 마음을 콱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책 때문에 그 잠 많던 제가 밤잠을 포기했다구요! 

1933년 하얀 설원에서 고양이를 사냥하는 두 형제. 동생을 먼저 보내고 남아있는 형을 공격하는 한 남자. 1953년, 스탈린 치하의 소련. 교육, 의료, 안전 등 모든 것을 제공하는 대신 과다한 노동과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당하는 시대. 국가 안보부 요원 레오 데미도프는 그런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불온사상 유포, 명령불복종, 반대세력 결성 등 국가를 위협하는 모든 범죄를 제압하고 범죄자들을 색출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한 번 균열이 생기면 멈출 수 없는 법. 어느날 체포했던 남자가 범죄자가 아니라 단순한 수의사에 불과했다는 진실을 깨달으며 레오의 마음 속에는 충성에 대한 의심이 싹트고, 동료의 살해당한 아들을 단순사고로 처리한 데 대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의 심적변화를 눈치챈 동료에 의해 강등되어 다른 도시로 전출된 그는, 예전의 모든 것을 버리고 공식적으로 범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소련에서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노동자의 천국이라 불리며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국가에 대한 의심이나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소련의 모습은 주인공 레오가 근무하는 MGB본부인 루비안카와 같다. 신분증이 발급된 사람 이외에는 언제 어떻게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루비안카. 그 곳은 다른 생각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소련 그 자체이며 결코 열리지 않을 닫힌 문이다. 

조심스럽고 불안하게, 언제 어디서 잡혀갈지 모를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며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는 레오가 심적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은 그래서 더 극적이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를테면 영웅의 탄생을 기원하는 마음이랄까. 그것은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존 프레스톤(그는 약으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이 처음으로 약을 버리며 체제에 반항하던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과 같았던 듯 하다.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기분이 매우 만족스럽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의 대기근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되고 구 소련의 실제 연쇄 살인범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살인범을 추적해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소련의 공포정치 아래에서 건조하게 맺어졌던 레오와 그의 아내 라이사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크다. 사랑조차 생각해야 알 수 있고, 권력에 대한 공포로 청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관계가 온갖 모험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해가는 모습은 마치 사건이 해결된 뒤 변화가 일어날 소련의 모습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에 그들을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과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 등 긴장과 재미를 조성하는 모든 요소가 알맞게 버무려져 있다. 

책을 읽어나가면 작품의 제목인 [차일드 44]가 무슨 뜻인지 곧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부르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는 이 작품이 계속 눈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느낌은 눈이 가진 포근함이 아니라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차가움과 슬픔, 날카로움이었다.  범인에 대해서도 연민을 품을 수밖에 없게 하는 외로움. 온갖 감정을 느끼게 하고 말 그대로 손에서 절대 뗄 수 없게 만든 이 작품, 영화도 기대된다. <이퀼리브리엄>에서 주연을 맡았던 크리스찬 베일이 레오 역을 연기한다면 은근 잘 어울릴 듯도 한데. 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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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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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귀신이 등장하는 무서운 영화나 책을 싫어하면서도 이상하게 일본 요괴 이야기나 기담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꽤 오래전부터 궁금하게 생각해 왔지만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주로 원한이나 복수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정서와는 달리, 무작정 나타나 사람을 위협하고 해를 끼치는 서양과도 달리, 일본의 이야기에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어쩌면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일부러 피했을지도;;)  무서운 이야기지만 무서움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으스스한 본래의 목적을 잊은 것도 아닌 적당한 분위기의 신비하고 괴이한 녀석들인 것이다.

 

일본 요괴나 기담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샤바케] 나 만화 [백귀야행] 을 보면 기담이라는 것이 꼭 먼 세상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어있지만 정작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 딱히 무서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이 늘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 실제와 허상을 명백히 구분할 수 없는 그런 환상의 세계를 쓰하라 야스미는 코믹하면서도 으스스하게,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사루와타리(20대 중에 불운한 일을 여러 번 당했다고는 하나 서른이 넘은 지금도 일정한 직업이 없는 놈팡이에 불과한) 와 백작 (물론 별명으로 생업이 괴기소설 집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으로 자동차의 기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상한 터널에서 우연히 만난 후 같이 두부를 먹으러 다니며 기이한 이야기를 취재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똑같은 얼굴들로 가득한 집과 고양이 등을 한 여자, 벌레를 먹는 남자, 쥐와 게에 관한 이야기, 결계와 쌍둥이에 대한 터부와 관습, 사루와타리가 힘든 일을 겪은 후로 경험하게 되는 환상과 고뇌의 이야기들이 매번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이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 중의 독특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괴기만화가 생각나게도 하며, 만화 [백귀야행]을 연상시키도 하는 등 단정지을 수 없는 매력들로 가득하다.

 

매력은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캐릭터에서도 뿜어져 나오는데, 괴기소설 작가인 백작과 되는대로 살아가는 듯한 사루와타리 콤비. 두부를 먹으며 맛있다고 서로 눈물을 흘리고 취재동행을 부탁하며 곤약으로 사루와타리를 구슬리는 백작의 모습은 이것이 기담집인가 만담집인가 헛갈릴 정도로 코믹하다. 중간중간에 숨어있다가 얼굴을 내미는 익살적인 문장들도 무척 마음에 든다. 독특한 것은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백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느 순간 사루와타리가 백작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백작이 사루와타리에게 건넨 말로도 알 수 있다. "사루와타리 씨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걸 불러내곤 하니까요. 늘 그렇습니다."(p260)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환상소설의 대가인 에드거 앨런 포에 종종 비견되곤 한다는 쓰하라 야스미는 <아시야 가의 몰락>과 <송장벌레>로 포를 향한 자신의 경외심을 잘 보여주었다고 한다. <어셔 가의 몰락>과 <황금벌레>의 오마주이든 뭐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무척 만족스러웠다. 독자인 나로서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루와타리와 백작의 모험이 [피카르디의 장미]라는 작품에서 이어진다는데 으흠, 출간되어 주지 않으면 당연히 곤란하다고 엄포를 놓고 싶다. 이것저것 길게 말했지만 전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재미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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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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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 나에게는 그를 처단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사람의 슬픔과 분노, 법의 이름으로 심판받지 못한 범인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이나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해답은 없는 듯 하다.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않는 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놓여진 선택지는, 범인을 용서하거나 가슴 속에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담은 채 죽은 이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어떤 선택지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일곱 번째 맞은 딸의 생일날, 사랑스런 딸 지니의 시체를  확인해야 했던 팀 랙클리의 슬픔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총 735페이지에 이르며 두께가 3.5cm는 되어 보이는 이 무거운 이야기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다. 딸 지니의 죽음으로 비롯된 팀과 아내 드레이의 고통과 괴로움이 1부, 증거가 모두 갖춰져있고 유죄임이 분명한데도 풀려난 범인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모임 '위원회'와의 접촉과 그 안에서의 팀의 활동이 2부, 지니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쥐고 있는 위원회와 팀의 대립, 사건 해결이 마지막 3부. 그리고 이야기의 줄기는 다시 위원회의 활동과 지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로 나누어진다.
 
삶과 죽음, 법과 정의, 그 안에 내포된 인간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법'이라는 것이 있고 질서있는 생활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더 크게 인간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때도 있다. 이야기 속에서처럼 가해자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을 때 상처받은 유가족의 마음은 어디서 구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가해자가 벌을 받아도,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남겨진 상처는 아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억은 생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텐데.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그것이 위안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주위 사람'이니까. 답은 당사자만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팀이 자신만의 답을 발견한 것처럼.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 복수한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정의라는 것은 그게 뭐든 간에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 (p558)
 
보통의 스릴러가 사건-복수-해결의 구성을 보이는 데 반해, 이 작품은 팀과 드레이의 슬픔과 갈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어떻게 고통받는지, 그 고통 속에서 서로는 커녕 자신조차 껴안을 수도 없을만큼 얼마나 슬퍼하는지, 그 상실과 괴로움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이 때문에 책의 진행이 더디게 느껴질 정도지만 그런 묘사가 오히려 고뇌에 찬 팀의 행보에 안타까움을 더하는 듯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이 비명과 절규, 고통과 분노로 채워져 있다면 [살인위원회]는 그에 비해 좀 더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물론 팀과 드레이의 고통이 비춰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사회제도와 범죄, 잘못된 법적 판단, 죄를 지은 자들의 개심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할까. 제목과 핏빛 표지로 자극적으로 다가오지만 절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스릴러.
 


     
   
"속죄라고요. 젠장. 난 지금까지 내가 그런 걸 시도하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아무튼 그건 좋아요. 그렇지만 아저씨 역시 연구를 좀 더 하는 게 낫겠어요. 속죄라는 것 말이에요. 왜냐하면 아저씨가 나를 직접 본 뒤에 "이런, 이 녀석은 내가 확실히 생각하던 것만큼 나쁜 놈은 아니군. 나와 별로 다르지 않잖아'하고 생각하셨다면 아저씨는 조금도 배운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속죄라는 건 완성할 수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죠. 그리고 전 속죄라는 게 뭔지 몰라요. 단지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거라고요." -p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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