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 VOGUE 김지수 기자의 인터뷰 여행
김지수 지음 / 홍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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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가 성공했다거나 누가 얼마만큼 이뤄냈다거나 하는 내용을 다루는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성공의 법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다른 사람이 성공한 방법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책은 마치 수학 정석 책과 느낌이 비슷하다. -이렇게 하세요, 그럴 땐 이런 방법으로 해보세요, 그 때 마음은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현재의 모습이 성공적이니까 그가 행한 모든 것이 정답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많은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의 인생은 헛된 것이 되는 걸까. 나는 '결과' 가 있고 '과정' 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과정' 이 있고 '결과'가 보이는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한참 후의 그의 모습이 기대되고, 그로 인해 나의 미래마저 빛으로 가득할 것이라 믿게 해주는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요즘 나는 계속 화가 난다. 내 삶이 자꾸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았고, 이렇게 살다 죽으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나갈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를 보면 혹자는 '얼씨구, 배가 불렀구나! '라고 할지도. 어쩌면 정말 배가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어둠에 휩싸이면 가족도, 친구도 다 소용없다. 역시 나는 혼자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끼면서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이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자꾸 조바심이 생긴다. 제자리걸음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성장하고 있겠지라는 작은 희망도 잊지 않고 챙기면서. 

VOGUE 김지수 기자가 만난 이들은 모두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과거나 미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과거, 미래의 내 모습을 엿보게 해주는 것은 현재의 나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는 현재보다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나도 느끼고 싶었다. 평범한 내 삶이지만 그런 내 인생도 다른 사람들처럼 치열하다는 것을. 매일 똑같은 생활의 연속이고 나중에 또 다른 무엇이 되어 있을지 자신조차 알 수 없지만 나도 그들만큼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그들도 나처럼 외롭고 힘든 싸움을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김지수 기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특별하지만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나는 겨울편의 '박완서' 작가님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든다. 추위를 많이 타서 늘 잔인하게 느껴지는 계절이지만 다가올 봄을 기다리게 하는, 엄청난 생명력을 감싸고 있는 겨울. 그 겨울과 '박완서' 작가님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살고 싶었다. (p236)-이 문장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앉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것에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나의 삶은 지금쯤 어디 정도에 와 있으려나. 파릇한 봄과 정열적인 여름, 고독하지만 구수한 가을을 지나 그 어느 계절보다 따뜻하고 힘찬 겨울을 맞을 수 있기를. 내 인생 괜찮았다며 담담하게 고백할 수 있고, 그리하여 함박웃음 지을 수 있기를. 

많은 사람의 시간이 내 것이 되게 해주고, 내가 그들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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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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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는 내내 '읽기 싫다, 그냥 책장에 꽂아두고 싶다' 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TV 라고 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고통, 슬픔, 위험 등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 극한 상황이 벌어지면 얼른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TV를 아예 꺼버리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볼 때는 내 방이든 화장실이든 화면이 보이지 않는 곳,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 도망쳐버린다. 가족들은 왜 그렇게 유난이냐고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또 시작이구나' 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참아주는데, 어째, 마음이 견디지 못하겠는 걸. 주인공이 궁지에 몰린 TV 드라마를 볼 때처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도망치고 싶었다. 

인터넷에 이 작품이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는 일부러 미뤄두었다.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는 글들에 감칠맛이 나서 '에이,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집중해서 봐야지' 했었다. 하지만 그 때 그 감칠맛을 조금 참고 인터넷으로 이 이야기를 접했다면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을 조금은 쉽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무진을 가득 채우던 안개처럼 진실이 왜곡되고 숨겨지는 막막한 이 세상을, 얼마나 많은 힘없는 사람들이 오늘도 살아내고 있을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작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그들은 강한 자와 약한 자로 구분된다. 혹은 늘 군림하는 자와 늘 짓밟히는 자. 그 두 분류의 사람들 사이에 서유진이 서 있다. 어쩌면 그 사람도 약한 자와 늘 짓밟히는 자들 사이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성질은 약간 다르다. 그는 그냥 짓밟히려 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많은 창과 칼을 만나도 그 속을 뚫고 전진하며, 하나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뿌연 안개 속을 더듬고 더듬어 결국에는 한 줄기 빛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 앞에는 비록 상처받아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함께한다 . 

작가는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서유진이 연두와 유리가 증언한 동영상과 진술서를 들고 교육청 장학관을 찾아간 장면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웠고 그 어떤 코믹영화보다 우스웠다. 가여운 아이들을 방치한 채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장학관이 '원하는 대로 이루리라. 소망하는 대로 가지리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면 주님은 모두 주신다' 라고 기도문을 외우는 장면은 종교와 세상에 대한 나의 믿음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드는 듯 했다. 또 진실을 알면서도 떨고 있는 아이들을 공격하는 가해자 측 변호사나 가해자들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신도들이 나는 참 무서웠다. 답답했다. 말 그대로 사람에게 정이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경외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라고도 했다. 때로는 그것이 도저히 사람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 사람에게 실망하게 만드는 구성원과 그럼에도 ''사람'을, '삶'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구성원을 모두 투입시켰다. 무진에 안개가 자욱하듯 우리 사는 세상 또한 안개가 걷히지 않지만,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빛은 어딘가에 늘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을 뿐 진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용기를 낸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용기내서 무엇을 한다는 것보다 '용기를 낸다'는 자체가 얼마나 경이롭고 훌륭한 일인지 서유진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 책이 자꾸 더 불편해지나 보다. 나는 용기없음을 절실히 느껴야 하니까. 평범하고 작은 내가 만약 나의 용기를 원하고 비겁을 원하지 않는 일 앞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지 수십 번 자문해야 하니까. 그 때 나도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에요' 라고 형형한 눈빛으로 대답하고 싶으니까. 

신문기사 한 줄을 읽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에게 그 동안 참 고생 많았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위로해주고 싶다. 배우가 작품을 끝내고 쉬이 다른 작품을 시작하지 못 하듯이, 히스 레저가 자살한 후 <다크나이트>의 조커 역할의 영향이 컸다는 말이 나돌았던 것처럼, 더러운 오물 속과 상처받고 힘든 사람들 속을 몇 백번은 드나들어야 했을 그녀 공지영에게도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비 내리는 깊은 밤, 나를 분노의 도가니, 슬픔의 도가니, 희망의 도가니로 빠트렸던 작품 [도가니]. 중요한 것은 잊지 않는 것, 계속 기억하는 것. 어두웠지만 그래도 그 어둠 속에서 희망의 뿌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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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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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로 첫선을 보인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다. 제 102회 나오키상을 받았고 같은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의 랭킹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고 하니, 작가 하라 료와 주인공 사와자키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듬해에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고 한다. 나도 인터넷을 통해 [내가 죽인 소녀] 를 찾는 독자들을 보고 '대체 그 책이 뭐길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만약 사와자키 탐정이 내뿜는 매력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나도 그 독자들 중의 한 명이 되어 있었을지도.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를 읽고 얼른, 재빨리, 냉큼 이 책이 나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섬뜩하면서도 매력적인 표지에 더 열광하고 말았다. 

이야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남자인 듯 여자인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사와자키를 인도한 곳은 딸 마카베 사야카를 유괴당한 마카베 가족의 집. 그 곳에서 유괴범의 공범으로 잡힌 사와자키는 범인의 명령으로 몸값을 전달하러 나가지만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남자에게 습격당한 채 정신을 잃는다. 깨어난 그 가 얼마 후 발견한 것은 마카베 사야카의 처참한 시신. 습격당해 정신을 잃은 사이에 소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성실한 죄책감을 갖게 된 사와자키는 책임감을 갖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에서 등장한 니리고시 경부도 함께. (비중은 적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가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로서 사와자키라는 인물과 주변사람들 자체의 분위기, 내면, 행동 등에 치중했다면 [내가 죽인 소녀] 는 그보다는 사건 자체에 무게를 실은 듯 하다. 고독함을 솔솔 풍겼던 [그리고...] 에서와는 달리 사와자키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인 한 소녀의 납치와 죽음, 범인은 누구인가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그리고...] 에서보다 한층 심도있게 그려진 반면 인물에 대한 매력은 살짝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에서 보여주었던 사와자키 탐정과 니시고리 경부, 그리고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된 하시즈메의 삼각관계(?) 를 은근 즐겼던 나로서는 ( 상상하시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하시즈메와 니시고리 경부의 등장이 너무 적었다는 점도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1989년에 쓰여진 작품이라 '웬 옛날 이야기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충격적 결말'이라고 하기에는 마지막이 살짝 추측도 가능하기에 나는 [그리고...] 보다는 약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등을 제외하고 이 작품이 지닌 장점, 사건에 무게가 실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또 그리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위기는 끝나지 않고, 소녀는 죽음을 맞았지만 사와자키의 사건해결 능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밝혀진 진실이 가슴 아플 뿐. 

이렇게 된 이상 사와자키 시리즈의 1기 완결편인 [안녕 긴 잠이여] 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설마 1기 완결인데 유령처럼 슥 나타나던 와타나베도 이대로 사라지진 않겠지. 부디 [안녕 긴 잠이여] 에서는 니시고리 경부와 하시즈메, 사와자키의 재미난 관계가 더 많이 그려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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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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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고 나서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 책이 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요걸 어떻게 돌려말해야 잘 했다고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생각만 할 뿐 대부분 솔직하게 쓰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재미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만드는 책이나, 혹은 이번 경우처럼 읽고 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책이다. '요넘이 나쁜넘이야!'라고 콕 집어 비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미 책의 페이지수는 다했지만 내 마음에서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는 그런 책. 

요즘들어 자꾸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 같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않고 풀려난 범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과 심판을 그린 책들인데, 번역본들이니 딱히 요즘 시기를 노려서 작가가 글을 썼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법과 심판, 올바른 정의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법 집행에 헛점은 없는가를 다루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법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또한 법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보다 법으로 인해 억울한 경우를 당한 사례도 많아진다는 말도. 그리고  점점 잔인하고 무서워지는 현실 세상의 투영이기도 할 것이다. 

오랜만에 접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이한 이야기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이야기, [모방범]과 [낙원]처럼 사회파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그녀가 이번에는 염력 방화 능력과 사회문제를 결합시켜 머리는 복잡하게, 가슴은 먹먹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재미와 함께 작품성도 뛰어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 가족, 친구, 연인 정도 될까. 영역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끔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해지지만 영역 안에 있는 그들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안타깝고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할 때도 있다. 나 자신도 만약 우리 가족이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당장 달려가서 한 두마디 해 줄 결심(?)은 있으니까. 하지만 부당한 대우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게 상처를 입거나 잔인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혹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게다가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웃고 떠들며 자신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을 잊고 살아간다면. 

그들을 마주대할 때의 갈 곳 없는 분노를 풀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오키 준코다. 어떤 도구도 필요없이 불을 낼 수 있는 염력 방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은 장전된 총이라며 타고난 능력을 범죄자 처벌에 사용한다. 준코의 반대쪽에는 이시즈 치카코라는 경찰이 있다. 그녀는 '돌아서 가더라도 보행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목적지로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다. 준코를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과연 이래도 될까' 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사회와 우리 마음의 양면성을 미미여사는 준코와 치카코 두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해답은 없으며 뻔뻔스러운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나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상처받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며 처절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뿐. 결말부분은 납득할만한 것이었음에도 마음이 아프다. 

미미 여사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이 작품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모방범]보다도 훨씬 깊이 있고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과 인물이 깔끔하게 연결되고 슬픈 사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역시 미미여사!'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답을 낼 수 없다는 생각, 명확한 답이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다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적어지기를,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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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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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 책이 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요걸 어떻게 돌려말해야 잘 했다고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생각만 할 뿐 대부분 솔직하게 쓰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재미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만드는 책이나, 혹은 이번 경우처럼 읽고 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책이다. '요넘이 나쁜넘이야!'라고 콕 집어 비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미 책의 페이지수는 다했지만 내 마음에서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는 그런 책. 

요즘들어 자꾸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 같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않고 풀려난 범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과 심판을 그린 책들인데, 번역본들이니 딱히 요즘 시기를 노려서 작가가 글을 썼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법과 심판, 올바른 정의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법 집행에 헛점은 없는가를 다루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법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또한 법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보다 법으로 인해 억울한 경우를 당한 사례도 많아진다는 말도. 그리고  점점 잔인하고 무서워지는 현실 세상의 투영이기도 할 것이다. 

오랜만에 접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이한 이야기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이야기, [모방범]과 [낙원]처럼 사회파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그녀가 이번에는 염력 방화 능력과 사회문제를 결합시켜 머리는 복잡하게, 가슴은 먹먹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재미와 함께 작품성도 뛰어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 가족, 친구, 연인 정도 될까. 영역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끔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해지지만 영역 안에 있는 그들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안타깝고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할 때도 있다. 나 자신도 만약 우리 가족이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당장 달려가서 한 두마디 해 줄 결심(?)은 있으니까. 하지만 부당한 대우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게 상처를 입거나 잔인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혹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게다가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웃고 떠들며 자신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을 잊고 살아간다면. 

그들을 마주대할 때의 갈 곳 없는 분노를 풀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오키 준코다. 어떤 도구도 필요없이 불을 낼 수 있는 염력 방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은 장전된 총이라며 타고난 능력을 범죄자 처벌에 사용한다. 준코의 반대쪽에는 이시즈 치카코라는 경찰이 있다. 그녀는 '돌아서 가더라도 보행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목적지로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다. 준코를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과연 이래도 될까' 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사회와 우리 마음의 양면성을 미미여사는 준코와 치카코 두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해답은 없으며 뻔뻔스러운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나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상처받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며 처절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뿐. 결말부분은 납득할만한 것이었음에도 마음이 아프다. 

미미 여사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이 작품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모방범]보다도 훨씬 깊이 있고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과 인물이 깔끔하게 연결되고 슬픈 사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역시 미미여사!'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답을 낼 수 없다는 생각, 명확한 답이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다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적어지기를,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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