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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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행과 관련된 책이 읽기 싫었었다. 떠나고 싶다는 바람과,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용기없음, 떠나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이것저것들 사이에 갇혀서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난 정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것일까. 그건 자명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뿐하게 '떠남'만을 생각하기에는, 현실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떠나고 싶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두려워하는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기 위한 핑계를 찾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책을 보면서 게으르고 겁많은 나를 깨달아야 했기 때문에 여행서적이 불편해졌던 것은 아닐까. 

그런 내 마음 속으로 크로아티아가 사뿐, 들어왔다. 생각보다 크기도 작고 휘릭 펼쳐보니 글보다는 사진이 더 많았다. '에이, 또 저자의 감상적인 기분만 내세운 책이구나' 라는 생각에, 하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부담없이 책을 넘기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크로아티아의 어디를 가면 볼 것이 많다느니, 어디를 가야 맛집이 많다느니, 쇼핑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여행서적에서 흔히 보았던 내용들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소소한 감상이 적혀있기는 하지만 정작 우리를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작은 책을 뛰어넘어 커다랗게 가슴 속을 채우는 몇 십장의 사진들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있다는 두브로브니크의 빨간 기와지붕 집들. 그런 집들이 실제로 존재할 줄 상상도 못했었다. 어렸을 때 동화책을 보면서 막연히 상상했던 꿈 속의 집들이 그 곳에 있었다. 달빛만이 세상 빛의 전부일 깊은 밤, 그런 지붕들을 타고 다니면서 신비한 존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사진만으로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데 실제로 가서 본다면, 지붕을 타고 다니고 싶은 기분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  





 



 

 

 

 

 

 

 

 

 

 

호수와 나무의 요정이 사는 숲이라는 플리트비체. 물 속에 잠긴 나무가 있고,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옥빛의 호수가 존재하는 곳. 풍덩 뛰어들어도 전혀 숨이 막히지 않고, 또 다른 존재가 다가와 포근하게 감싸안아 줄 것 같은 호수는 정말 장관이었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 일상에 없는 것을 쫓아다니기 위해 돌아다니는 바쁜 여행이 아니라 휴식을 위한 여행이라는 말이 플리트비체에는 가장 어울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골목골목에 이야기가 숨어있는 스플리트,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중세의 매력과 현대적인 기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자그레브도 각각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에서 찍은 사진들 중에는 유독 '빨래'를 찍은 것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그런 일상적인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덧문이 씌인 창문을 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가 손을 흔들 것 같은 그런 풍경이, 여기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도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발견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미리 언급한 것처럼 책은 정말 작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바닥 위에 놓인다. 하지만 그 안에 찍힌 사진들은 그 보다는 몇 배의 크기로 확대되어 다가온다. 사진이 조금 더 컸다면 분명 좋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가슴 속을 가득 채운다. 늘 그렇듯,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지금은 다시 그런 기분을 되찾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떠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극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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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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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지금의 솔직한 내 마음이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의 결말은 늘 그런 것이었다. '예쁜' 공주나 아가씨가 '잘생기고 멋진' 왕자님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영원한 행복을 누렸다는 이야기. 사랑도, 결혼도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처음 동화를 읽은 나이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깨달았던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이 책 역시, 못생긴 한 여자가 있었는데 어떤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했어, 그런데 그 둘에게 시련이 닥친 거야, 그러다 그 시련을 이겨내고 둘이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대-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못생긴 여자와 그렇지 않은 한 남자의 사랑이 나를 이렇게 울릴 줄 알았다면, 가슴을 이렇게 먹먹하게 할 줄 알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을 조금 더 미뤘을지도 모른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아니, 남자든 여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p185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렇다. 일단은 이것은 사랑 이야기다. 상처를 가진 남자와 또 다른 상처를 가진,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못생긴 여자의. 예쁜 것만 추구하고 그 외의 가치를 무참히 밟아버리는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소설이든,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논하는 철학소설이든 난 일단은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사는 게 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는 작가가 말한,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힌다는 그 사랑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여전히 '희망'이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p214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부모의 사랑, 부모의 이기심, 내재된 자신들의 어둠을 끌어안고 장난처럼, 무심하게, 그러나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다. 그 중 그와 그녀가 사랑을 했다. 함께 음악을 듣고, 함께 거리를 거닐며, 연인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자리잡은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도 못생긴 그녀가 품었던, 그러나 종류는 다른 어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곤하고 미워하게 될, 원망하고 후회하게 될 일상 속으로 차마 그를 끌어들이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 그 사랑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어서 더욱 그리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사랑 뿐만은 아니다. 하하호호, 그저 못생긴 그녀와 평범한 그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살짝 기대에 어긋날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이 결국은 좋은 것,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굳어진 사회를 작가는 꼬집는다. 아름다움이 좋은 것이 되어버린 것은 그것을 부러워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적용되지만 단 하나, 사랑에 있어서만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사람의 상처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지층의 구조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좋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재치있고 유쾌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 책은 다소, 무겁다. 글을 읽는 속도 자체가 한 템포 느려진다. 삶과 사랑에 대해 논하는 작가의 생각들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성이 독특하다. 앞 문단에도 뒷 문단에도 해당되는 듯한 마지막 글귀들을 음미하다보면 어느 새 시간이 훌쩍 흐른다. 숨을 '헉' 몰아쉬게 하는, 뭐가 서러운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한 바탕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결말은 일품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파반느 또한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모호해지는 결말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둘. 그 중 하나, 요한. 나는 '그'보다는 요한에게 더 눈이 갔다는 것만 말해두자. 그에 대해서는 누군가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려니. 그리고 둘. 사랑 이외에 언급하고 싶었던, 그 외의 모든 것들. 그것들도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겠거니. 나는 그냥 조금 더,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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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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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쿄쿄. 누구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벽을 통과해서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그 날 그 날을 보내는 것에만도 지쳐서 요런 생각을 할 때가 적어지긴 할테지만요. 초능력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 영화 <엑스맨>이라든가, 미드 <히어로즈> 를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막 신나거든요. 이 책 [SP]에 등장하는 이노우에도 남다른 능력이 있답니다. 

이노우에의 직업은 SP입니다. 국내외 VIP를 보호하는 특수경찰로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해서 요인을 지켜내야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움직이는 벽'이라고 불릴만큼 아주 위험한 상황도 발생하죠. 어린 시절 겪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발달한 이노우에는 일을 할 때 겉으로는 멍~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주위를 싱크로해서 정보를 수집한답니다. 이 책에는 그런 이노우에와 이노우에가 속한 제4계의 대원들의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독특해요.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집이거든요. 사실 전 [SP]를 드라마 <SP>로 먼저 알았습니다. 이 책은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가 직접 쓴 시나리오로 화제가 되었으며, 그 다음에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전편을 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V6의 멤버인 오카다 준이치가 이노우에 역을 맡았다는 것은, 케이블에서 드라마가 방영될 때 알게 되었어요. 그 때 오카다 군이 멋지게 몸을 날렸던 한 장면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시나리오집은 처음 읽어보지만 오히려 상황을 그려보는 데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오쿠보의 한 싸구려 아파트 방-밤' 의 식으로 장소와 시간대가 설정되어 있고, '이노우에, 야스하라, 요시다' 식으로 지금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거든요. 가끔 책을 읽다보면 사람 이름이나, 지금 대체 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잖아요. 이 책은 그런 부담(?)이 조금은 줄어든다고 할까요. 게다가 작가의 각주가 아주 친절하게 덧붙여져 있어서 마치 그가 옆에서 '이건 이렇고, 그건 그래'라고 설명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4계의 대원들 모두 개성적이지만 저는 특히 계장 역을 맡은 오가타 소이치로와 이시다 미쓰오 역을 맡은 배우가 궁금합니다. 오가타 역은 쓰쓰미 신치이가 맡았다니 의심할 나위없이 멋지겠지만, 우직한 남자로 그려진 이시다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작가가 영화광인만큼 군데군데 자신이 어떤 영화에서 장면들을 생각해낸 것인지 적어놓기도 했는데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더 반가우실 거에요. 전체적으로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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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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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은 책이 뜻밖의 재미를 가져다 줄 때, 그 기쁨은 더욱 크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와 '본격 미스터리 대상'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과 마지막까지 1위를 다퉜다는 말에 혹하긴 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고 밀실살인에 큰 흥미도 없는 터라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을 실컷 들어먹을 그런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옷!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완전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잠자기 전에 책을 들지 말라'는 진부한 표현으로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잠들기 전 아주 조금만 읽으려고 했는데,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손가락이 계속 책장을 넘겼기 때문에 내 눈은 그저 읽었을 뿐. 히히. 작가 이시모치 아사미는 '본격 추리'로 데뷔를 했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지표를 확실히 굳히고 있다고 한다. '본격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나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벌어진 사건을 결말 부분에서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을 말한단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은 조금 남다르다. 범인인 후시미 료스케가 니이야마 가즈히로를 살해하는 장면이 먼저 묘사되고 니이야마의 닫힌 방문을 둘러싸고 추리대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후시미의 두뇌대결의 맞수는 우스이 유카. 동창회였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였지만 그 중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유카가 니이야마가 오랫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 때부터 후시미와 유카의 심리대결이 펼쳐지는데 두근두근할 정도로 흥미롭다. 

문장 하나하나에 어떤 단서와 후시미의 실수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것도 쉽게 지나칠 수 없으며, 범인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어 긴장감이 한층 고조된다. 언제 어떻게 트릭이 밝혀질 지 모르고, 또 진술에 구멍이 있어서는 안되므로 머리를 써가며 신중하게 대답하려는 후시미의 긴장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후시미는 왜 니이야마를 죽이려고 했는지, 후시미와 유카의 묘한 관계는 왜 이런 공기를 띄는지, 후시미가 니이야마의 시체를 방에 계속 가두는 이유는 무엇인지 갖가지 수수께끼를 생각하는 재미가 대단하다. 

완전 재미있지만 별 반 개를 뺀 이유는 첫째, 후시미의 범행동기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설자는 '그런 동기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고 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 중에는 범행의 이유가 이해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품에서 후시미의 동기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음음. 둘째로는 결말 부분이 약간 아쉽다고 할까, '이 둘은 뭐니!'라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그래서 별 반 개 제외. 그런 것만 제외하면 별로 꼬투리 잡을 것이 없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는 도서( 작품 서두에 범행이 묘사되어, 독자나 시청자에게 범인의 정체나 범행 수단이 밝혀지는 것)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최근 읽은 책들 중에 가장 후속편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인 [네가 바라는 죽는 법] 에도 우스이 유카가 등장한다고 하니 그녀의 지성에 반한 사람이라면 조금 기다려도 손해볼 것은 없을 듯. 나도 기다려야지. 그래도 좀 빨리 나와줬으면. 벌써부터 안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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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 못생긴 나에게 안녕을 어글리 시리즈 1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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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했던 인형놀이가 생각난다. 예쁜이 바비인형은 멋진 남자친구 칼(이었던가;;)과 늘 러브러브 모드를 유지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모형밥을 챙격먹고 놀다가 또 모형밥을 먹고 또 놀다가 또또 모형밥을 먹고 결국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와 내 친구들이 뭘 알았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바비인형처럼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매끄러운 피부, 쌍커풀 진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에 S라인 몸매까지! 자라면서 절대 바비인형이 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은 나와 또 마찬가지로 그들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을 나의 친구들은 그럭저럭 소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가끔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눈이 조금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돈을 모아서 코를 좀 높여볼까' '난 얼굴이 너무 각졌어!' 같은. 나와 내 무리들의 푸념은 그러나 그렇게 끝난다. 나의 경우는, 글쎄, 늘 그렇듯 겁이 많아서라고 해두자. 아픈 건 싫으므로. 수술할 돈으로 더 많은 책을 사고 싶고, 많은 돈을 들인 수술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아서라고도 해두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을 실눈을 뜨고 보는 것은 아니다. 예뻐지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 다른 사람들이 내 외모를 칭찬해줬으면 좋겠고, 길거리를 다닐 때 시선을 받으며 우쭐거리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씩 해봤을 상상이다. 위험한 것은 '미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닐까. 사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요즘 미인들의 모습에서 개성을 찾기란 쉽지 않으며 커다란 눈, 매끈한 피부, 오똑한 코, S라인 몸매를 강조하는 풍토는 얼짱, 몸짱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아름다움을 소중히 하는 것. 괜찮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개성을 무시하고 일관된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는 사회가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어쩌면 먼 미래 사회는 똑같은 아름다움을 강조할 지도 모른다. 이 작품 [어글리]에서는 사람들이 열여섯 생일만 되면 의무적인 성형수술을 받고 모두가 예쁜이 생활을 시작한다. 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화재가 나서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도 생명을 지켜줄 번지 재킷이 있다. 지금보다 더 간편하게,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남과 다르지 않은 미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될까. 그 예쁜이들이 아무 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생각까지 성형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남보다 모험정신이 강하고 자유의지가 분명한 주인공 탤리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미래 사회, 의무적인 성형수술, 성형미인을 거부하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 '스모크' 등 이 책을 지탱하는 흥미로운 소재는 많다. 하지만 책 속으로 몰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본격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번역상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도 눈에 뜨인다.
-선로는 아래쪽에서 질주하다가 언덕 둘레에서 느린 호를 그리고, 부서져 가는 다리로 강을 건너갔다.(p171)-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한 번에 와닿지 않는 문장들 덕분에 미래 사회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한 권이라 생각했지만 탤리의 이야기는 아직도 두 권이 더 남아있다. 2부 [프리티]와 3부[스페셜]. 탤리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할 수 있을지, 그녀와 데이비드의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해오는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은 오싹할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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