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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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함께 한 이 아이, 그 이름은 요노스케올시다~대학 진학을 위해 나가사키에서 도쿄로 상경한 소년입지요. 아니군요. 열 여덟인 데다 이제 대학에 입학했으니 소년보다는 청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 합니다. 뭐 그래봤자 저에게는 아기일 뿐입니다만. 훗훗훗.

요코미치 요노스케. 일본 근대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 중 '이하라 사이카쿠'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호색일대남] 등의 호색기를 쓴 작가로 요 [호색일대남]의 주인공이 바로 요노스케였답니다. 저도 시험 공부를 하면서 살짝 읽어보려 했으나, 작가와 작품 외우는 것만도 벅차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네요. 그런데 그 요노스케와는 달리, 이 요노스케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호빵'입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고, 투실투실하고 어쩐지 허연 몸뚱이의 소유자일 것 같은 그런 소년, 아니 청년이랄까요.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에 등장하는 머쉬멜로우맨 같기도 하구요. 표지의 저런 청년을 생각하시다가는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실 겁니다. 

자, 이 [요노스케 이야기]는 그야말로 요노스케의 이야기입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한 시점부터 1년 여의 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뭐 특별한 점이라도 있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저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할 거에요. 글쎄요. 그러고보니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었던 것 같네요. 여느 대학생들처럼 당연히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으며, 친구들도 몇 명쯤은 있거든요. 조금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삼바 동아리의 회원이라 세탁을 하면서 허리를 살랑살랑 흔든다는 것과 ,약간 요상한 말투를 쓰고 검은색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쇼코라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정도일까요. 흠. 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평범한 청년이네요. 

그런데 말이죠. 요노스케에게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매력이 분명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전 그 매력에 '빈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교코라는 여성은 그 '빈틈'을 다르게 명명했는데요, 한 번 들어볼까요?




   맞아, 그렇게 어중간하지 않으면 그땐 정말로 요노스케 군이 아닌거지. 그 부분을 잘 간직해야 해. -p388



이런. 그녀의 말을 찾는 도중 '빈틈'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름 붙인 줄 알았는데 교코가 '빈틈' 역시 언급했었던 거군요.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어쨌거나 요노스케의 매력은 빈틈과 어중간함이라는 거죠. 그 매력을 어떻게 말로 자세히 표현할까 고민했습니다만, 굳이 제 말을 들으려고 하세요. 그냥 읽어보면 될 것을. 흥.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처음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은 읽고 나서 리뷰를 남길 수가 없었어요. 왜 그런 기분 있잖아요. 할 말은 많은데 가슴으로 넘쳐나는 게 너무 많아서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 이 작가의 이야기는 저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요.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그의 강점인 감성적인 문체 뿐만 아니라 유쾌한 분위기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데다 구성적인 뛰어남도 같이 맛볼 수 있었습니다. 페이지가 다 하기 몇 장 전, 가슴이 콱 막히는 그 기분은, 아웅. 

책을 읽고 났더니, 갑자기 요노스케가 제 친구인 양 느껴집니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었지 하는 그리운 기분이랄까요. 실제의 그는 당연히 어디서도 만나지 못하겠지만, 요렇게 책으로 또 한 명의 친구를 사귀었네요. 이래서 제가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요. 요노스케의 투실한 뱃살을 떠올리며 저도 간식을 먹어야겠습니다. 요노스케가 좋아했던 달콤한 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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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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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보트피플'에 대해 알아야 한다. 월남의 패망을 전후하여 해로를 통하여 탈출한 베트남의 난민을 가리키는 단어, '보트피플'. 표지와 제목만 보고는 그저 단순한 성장소설 쯤으로 여겼다. 색감이 따뜻해서인가, 제목이 여가생활을 나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인가.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밑으로 가라앉아가는 사람들의 형체가 보인다. 순간 그리 쉬운 소설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음. 전체적인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작품이었다고 할까나.
 
편견이지만, 단편집이라고 하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단편집임에도 손이 가는 작가는 몇 되지 않는데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품에 들어왔다. 베트남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기도 하고, '보트피플'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호기심도 생겨서 읽기 시작했지만, 느낌을 적기가 무척 애매하다.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가인 주인공이 전쟁을 겪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작품을 그 아버지가 태워버리는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부터 , <카르타헤나>, <일리스 만나기>, <해프리드>, <히로시마>, <테헤란의 전화>, 표지 그림의 대상인 <보트>까지.
 
콜롬비아 빈민가에서 테헤란의 거리, 뉴욕에서 아이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조그마한 어촌에서 남지나해를 표류하는 배까지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가지각색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공허하고 쓸쓸하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분명 이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도 있는 것 같고, 그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은데 글자를 읽어내려간다는 생각만 들 뿐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파악되지 않는다. <카르타헤나>와 <일리스 만나기>의 분위기가 가장 마음에 들고,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그 뿐. 작가가 이 작품들로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기보다 자꾸만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보트>이다. 전쟁이 끝나고 보트와 어선을 통해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베트남 난민의 모습을 열 여섯 소녀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병든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지고 매일매일 누군가는 죽어나가며 식수가 부족해 물 한 방울에도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나 새로운 땅을 눈 앞에 두고 죽음을 맞은 트렁. 아이가 수장되는 동안 희망의 땅을 바라보며 소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음과 희망이 맞닿아 있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큰 애처로움으로 다가온다.
 
익숙하지 않은 소재와 작가여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책이다. 독특한 분위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이제부터 만나볼 그의 작품은 조금 더 그의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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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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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좋다. 이상하게 별보다 달을 생각할 때가 신비로운 기분이 한층 더해지는 기분이다. 둥근 보름달은 풍성함을, 반쪽 달은 쓸쓸함을, 가늘어진 달은 어딘지 모르게 반짝거림을 느끼게 한다. 그건 어쩌면 오랜 옛날부터 하늘에 있는 달을 보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거나 소원을 빌었던 애틋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별이 아기자기한 귀여운 아기같은 존재라면 달은 시시각각 변하는 여인같다. [달의 문]. 무척 끌리는 제목이었다. 달 속으로 금방이라도 쑥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제목은 멋진데 표지가 영 꽝이다. 그래도 제목 때문에 쪼큼 기대했었다. 하지만. 쳇.

이 작가, 참 이상한 작가다. 소재나 문체가 특이하다는 뜻이 아니라 [문은 이미 닫혀 있는데] 를 제외하고는 읽는 책마다 실망을 안겨준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재미없기도 따지자면 읽은 세 권의 책 중 최고라고 할까나. [문은 이미 닫혀 있는데] 는 범인의 범행동기를 제외하고는 정말 재미있었다. 한밤중에 책을 펼쳐들고 자야지 자야지 하다가 결국은 다 읽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밀실살인을 소재로 범인과 해결사의 추리대결이 무척 재미나서 공감할 수 없는 범행동기 정도는 너그럽게(?) 눈감아주자 했었다. 그런데 그 이해할 수 없는 범행동기는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에서도 계속된다. 그 책은 범행동기 뿐만 아니라 문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사실은 그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설마 다른 작품도 다 이런 식인 건 아니겠지 했는데. 꺄울. 이 책은 더 심하다. 

주인공들은 이시미네 다카시를 스승으로 모시는 캠프단의 일원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캠프에 참가시켜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안고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 자신,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기에, 그 상처를 치료해준 것이 이시미네라 굳게 믿기에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신흥종교의 교주와 교도들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이시미네가 경찰에 체포당하자 사토미, 가키자키, 마카베 일행은 이시미네의 석방을 조건으로 비행기를 납치한다.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 갑자기 화장실에서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은 비행기 납치와 살인사건 두 가지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납치범들과 이시미네는 자신들을 신흥종교라 여기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신흥종교 맞다. 내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존재를 마음 속 깊이 믿을 수 없다. 종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의심하고 못미더워 한다. 때때로 그렇게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했던 적이 더 많다. 이 책의 주인공들 또한 이시미네를 무조건 믿는다. 믿었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고 그렇게 결말이 났다. 

하지만 말이죠. 범행에 역시 공감도 안 될 뿐더러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 결말까지 나랑 너무 안 맞는다. 한 마디로 '이게 대체 추리소설이야, 신흥종교집단의 이상한 사건기록이야'라는 기분이 들었달까. 추리소설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긴장감, 사건이 해결될 때의 만족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데다  평범한 사람이 뜬금없이 탐정 역할을 한다. 작가가 반전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을 결말조차 '이게 뭐니, 이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다니. '달'이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이렇게까지 매혹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게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를 읽고 나서는 '설마, 이번 한 번 뿐일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 이제는 포기해야지 싶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이럴까 봐 무서워서 손을 못대겠다. 흥. 나는 나름 냉정한 독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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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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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하나의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관되게 정리하는 것, 언뜻 쉬워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한 듯 하면서도 복잡한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의 맨 꼭대기에 달려있는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 자칫 잘못하면 말이든 글이든 다른 길로 빠지기 쉽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간단한 글이 좋다. 간단하다는 게 뭐냐고 한다면, 딱 읽으면 척 하고 정리되는 느낌의 글이라고 하겠다. 

정혜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침대와 책을 연관시켜 [침대와 책]이라는 책을 펴냈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을 묶어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발간했다. 기억 속에 그 두 책은 나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정확한 지는 모르겠지만 [침대와 책]을 계기로 책에 대한 책들이 줄을 이었다는 기분이 들어 그 쪽 방면으로는 꽤 괜찮다는 평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말이죠. 앞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간단하게, 이 책은 딱 읽었더니 척 하고 오지 않더라. 

런던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많은 도시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어쩐지 규격에 맞게 딱딱 정리되어 있을 듯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은 흐리고 비가 와서 햇빛을 잘 보지 못한다는 도시라는데 그것말고도 런던의 매력이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많은 여행서를 읽었지만 런던에 관한 여행기는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정혜윤이 전하는 런던이야기라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가 들려주는 런던은 어떤 모습일지 알고 싶었다. 

책 내용은, 문단별로 보았을 때라면,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녀가 굉장한 독서가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많은 책의 구절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 정말은 부러웠다. 하지만 말이죠. 이것은 런던 이야기여야 했다, 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제목은 '런던을 속삭여 줄게'이니까. 그녀만의 색다른 매력으로 런던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도 글에 방향은 있어야 했다. 여기 실려있는 글들은 대부분 방향이 없다. 저기 가서 쿵, 여기 와서 쿵 부딪히는 느낌이랄까. 

그녀의 장점이었던 방대한 독서와 적절한 문구 떠올리기는 이 책에서 빛을 잃었다. 제목만 런던에 관한 것일 뿐이지 [침대와 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는 작가이므로, 작가의 이름으로 이 책까지 포함해 세 권의 책을 출간한 사람이므로, 이제는 조금은 색다른 글쓰기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각 장소를 토대로 역사와 문화를 나타낸 글이라든가, 단순한 여행기가 더 나았을 뻔 했다. 

게다가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들도 몇 군데 있었다. '삶에서 행복은 어떤 실체가 있다기보다, 목록이자 리스트였다(p84)'라는 문장이 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옆에 앉은 국어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그 선생님도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문장이라고 했다. 교정을 한 것이냐는 말도 했다. 난 그 국어 선생님을 믿는다. 나의 독해 능력도 믿는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이상한 거다. 요런 아이들이 꽤, 있다. 

표지도 멋지고, 제목도 멋있었는데, 사실은 런던에 대해 알 기회라 생각해서 살짝 기대도 했는데. 아까운 기분이 들어 다시 펼치고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에혀. 아깝다. 어디서 쉽게 이해하지 못할 책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기도 한데, 그 말이 맞다. '이게 여행기야, 이야기책이야'가 헷갈릴 글이 쓰고 싶었다는 그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을지 몰라도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할 듯 싶다. 뭐, 나에게서만 그랬다면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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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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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뒤돌아있다. 늘 태양을 바라보며 태양에 대한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해바라기. 해바라기에게 있어 태양은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 삶의 근원이었다. 태양 없이 해바라기는 있을 수 없다. 그 태양을, 그 사랑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평소라면 징그러워했을 식물의 뒷모습이 이토록 애처롭게 다가오는 것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하늘에 태양이 존재하지 않으면 해바라기가 더 이상 하늘을 쳐다 볼 이유도 없다는 것을. 

소년법에 관한 이야기는 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도 억울한데 법은 범인을 심판해주지 않는다, 원통한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범인이 미성년자라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듣는다면 나 또한 복수를 다짐할 것이다. 법이 심판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무엇을 잘못했는지 일깨워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은 숨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일도 당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피의자의 입장도 고려하게 된다. 직업이 직업인 이상, 그 아이가 정말 완전한 악일 수는 없을 거라고, 분명히 갱생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이야 어려서 그렇지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성장하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진다.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도 든다. 아무리 어려도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과연 양심은 있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사람에게 정말 영혼이 있는 것일까. 나의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자꾸만 갈팡질팡하게 되는 마음은 점점 내 숨마저 옥죄어 오는 것 같다. 

한 교사의 고백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방학을 앞두고 교사직을 그만둔다는 말과 함께 간단한 훈화로만 여겨졌던 이야기는 어느 덧 얼마 전 죽은 교사의 딸에게까지 이른다.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이 안에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과 함께 교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각 챕터는 범인인 슈야와 나오키의 시점, 나오키의 누나의 시점, 같은 반이었던 미즈키의 시점으로 옮겨가며 사건과 사건이 불러온 반향에 대해 서술한다. 각 챕터에는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데, 까만 바탕에 하얀색으로 너무나 정직하게 쓰여져있는 듯한 글자가 어쩐지 오싹하다. 

서술자가 교체되는 구성 방식은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서술자가 한 명이라면 단편적으로 보여졌을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다면적으로 서술되며, 사건의 본질에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흰색으로 보였던 것이 어느 새 회색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까만색으로 보였던 것이 하얗게 변하기도 한다. 단, 어느 점을 교차점으로 할 것인가, 어떤 점에 중점을 둘 것인가를 잘 설정해야 지루해지지 않는데 이 작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배경과 심리묘사가 매우 치밀하여 작가가 오랫동안 고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의 심리묘사에 상당히 능통한 사람인 듯 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만 얻을 수 있는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피해자가 교사여서 그런지 '길을 잘못 들었다가 갱생한 사람보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던 사람이 당연히 훌륭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사람은 평소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요' 같은 문장에서는 동의하면서도 가슴 한 쪽이 알싸해져 오는 것이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사건,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아이들 사이에 번지는 미묘한 감정들. 어쩌면 이 사람은 교사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과연. 효고 현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데뷔작이라고는 볼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이다. 첫 번째 만남이 좋으면 그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지는데 아무래도 이 작가의 책은 발간되는 족족, 내 책장을 채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 읽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은 많아지나 콱 막힌 목구멍과 허탈한 가슴을 안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있게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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