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역사의 길을 걷다 - 정태남의 유럽문화기행
정태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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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저요? 저는 가장 유명한 부분밖에 몰라요. 다 아시잖아요~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가 등장하고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왕 클레오파트라 등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요. 그 부분이 왜 유명한 건지 지금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라는 카이사르의 말이 유명하니까, 또 역사의 역동적이고 극적인 면을 그 시대가 가장 잘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만 했었지요.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곰곰히 따져보니, 아마도 화려하고 자극적으로 공화정의 마지막을 장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는 것만 눈에 보인다고 역시나 이 부분이 눈에 가장 잘 들어오더군요. 계속 읽어도 재미있는 시대였어요, 그 때는.

사실 로마 역사야 몰라도 상관은 없죠. 우리 역사도 어느덧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 한 권의 책으로 로마가 걸어온 길을 전부 알길 바라는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이렇게 말하는 저도 아무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읽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것은 있어야 하니까요. 요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에게 로마에 대해 장황하게 알려주는 저를 떠올려보기도 했고, 남들에게 내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뿌듯해할만한 지식은 갖출거라 믿었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건 욕심이었던 거죠~그래서 저는 마음을 바꿨어요. 한 번 읽고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말자고. 지금은 그저 로마의 시조가 누구이고 그 동안 몰랐던 사건과 인물을 알게 된 것에만 집중하자고요.

자, 로마는요, 처음에는 왕정시대로 시작합니다. 늑대젖을 먹고 자랐다고 알려지는 시조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후 네 명의 라틴계 왕과 세 명의 에트루리아계 왕을 거쳐 초강대국으로 발전한 공화정시대로 돌입해요. 이 공화정 시대에 유명한 전쟁과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제1,2,3차 포에니 전쟁이 바로 이 때 일어났고, 한니발이 등장하며, 맨 처음 언급했던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가 등장합니다. 최고의 문인 키케로도 여기 있고, 아, 마리우스와 술라도 여기 있네요.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로마를 다스리게 됩니다. '기원전 27-서기 180'에 이르는 시기로 로마에 의한 세계평화, 즉 팍스 로마나가 실현된 때이죠. 이 시대에는 폭군이라 불린 칼리굴라도 있고, 많이 들어보신 네로 황제도 있어요. 그리고 어쩐지 이름이 익숙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왕도 있네요. 그 후 '서기 180-476'에 이르는 시기는 로마제국이 무너지는 때로, 마지막 황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가 쉽게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름에 익숙해지지가 않았어요. '~스, ~우스' 이런 이름들이 무수히 등장해서 이 사람이 이 사람인가, 아닌가 저 사람인가 할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요 책을 읽으실 때는 이름에 버럭! 하지 않으실 정도의 인내력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이름만 조금 참아내신다면 로마의 역사를 제법 간단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에요. 로마를 단순한 여행지로만 여겼었지 이렇게 깊이 파헤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잖아요. 이만하면 사진도 부족하지 않고, 작은 챕터에 맞추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으니 아마 지루하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흐흐, 저도 사실은 이 책을 붙잡고 한동안 끙끙거렸답니다, 호홋! 그래도 저는 다 읽었잖아요. 다 읽고 말씀드리는 거니까 괜찮아요. (뭐가?;;) 그나저나 저자의 이력이 대단합니다. 현재 이탈리아 국가 공인건축사라니, 어쩐지 멋져 보이십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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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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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지만 불안하다. 그것이 이 책의 150여 페이지까지를 지배하는 분위기다. 어떤 사람은 그 분위기를 지루하다는 말로 대신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를 '지루하다'는 것으로 여겼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지루한 것이 아니라 위태로운 것이었다. 아프리카 석유전쟁으로 고향과 가족을 모두 잃고 영국으로 건너왔지만 어디에 가든 어떤 방법으로 자살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는 리틀비. 2년의 시간을 수용소에서 보내고 불법체류자가 되어 바깥으로 나온 순간부터, 리틀비는 '그 남자들'을 두려워하고 언제 잡혀갈 지 모른다는 말로 독자들의 마음 속에 위기의 싹을 틔워놓는다. 그럼에도 정작 리틀비의 말투는 담담한 것도 같다. 늘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어느 정도 가신다는 그녀에게, 죽음은 멀지 않은 것, 항상 함께 있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그 죽음을 피해 언니와 함께 해변으로 달려나갔던 순간 리틀비는 한 부부를 만났었다. 

과거의 나이지리아의 해변. 아내의 불륜을 남편이 알아차렸고 파탄난 그들의 관계를 다시 이어붙이기 위해 휴가를 온 부부. 그런데 그들 앞에 나이지리아 소녀 두 명과 그녀들을 붙잡으러 온 병사들이 나타난다.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면 당신의 가운데 손가락을 자르라며 칼을 던지는 병사. 절망감과 공포,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찬 남편은 결국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지 못하고 대신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손에 칼을 꽂는다. 행복과 새출발을 그리며 찾아든 해변에서 그들이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 저녁은 뭘로 할까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무엇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해야할지에 대한 선택까지.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우리 인생에 흔하지 않다. 또한 나의 손가락을 잘라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어떤 대상에 한정될 것이다. 나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두려워도 손가락을 자를 수는 있겠다. 그것은 선택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제 막 만난 소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라면, 글쎄, 나는 해변의 부부 중 아내보다는 남편이 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 같은 것. 난민은 리틀비 한 명 뿐만은 아니며 지금 이 순간도 지구 곳곳에서는 수많은 난민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것이다. 왜곡되고,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고, 서로 눈감아주는 세상 속에서 불행은 개인의 문제라 여겨지고 결코 온전히 나의 것은 될 수 없다. 리틀비가 이야기하던 '개는 개이고 늑대는 늑대'인 것처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기 위해서.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있고, 도우려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벽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시간이 더 흐르고 나이를 먹어야만 알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점에서 해변에서의 사고 이후 괴로워했을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리틀비의 불행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해결하려는 아내의 공명심도. 어쩌면 그 둘의 마음은 나에게 벽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한 선택의 순간, 자신에게 당당했던 리틀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안다. 완전한 평화, 그녀의 원래 이름인 우도(평화)가 실현되었던 시간. 부부의 아들 찰리가 나이지리아의 아이들과 물을 튀기며 노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 시간. 그것이 두려움과 어둠 속에서 리틀비가 찾아내고 작가가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희망의 시작일 것이었다. 


 

 나는 찰리에게 미소를 보냈고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의 희망이 한 사람의 영혼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 이거 참 기막힌 재주인걸. 이런 걸 바로 세계화라고 하는 거지.-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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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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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에서는 이 작품을 프랑스 장르문학의 신기원을 연 작품이라고 평했지만 나에게는 프랑스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우선 '막심 샤탕' 이 떠오른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는 아주 쪼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막심 샤탕의 <악! 시리즈> 를 읽고 나서는 프랑스 소설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읽은 그의 이야기가 대부분 스릴러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속도감과 내용이 프랑스적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여기서 프랑스적 냄새가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나에게만 느껴지는 그런 냄새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르몽드]> 의 극찬을 보고 이 책도 그런 종류일까나, 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는데, 음, 장르문학치곤 조금 어려웠다고 할까. 

이야기는 우고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친구 마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누의 복수를 위해 마르세유로 돌아온 우고는 마누를 죽였다고 생각되는 주카를 암살한 직후 경찰에게 사살된다. 그 후 실종된 그들의 여인 롤. 그 사건을 역시 어렸을 적 친구였던 파비오가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그는 경찰세계에서 완전히 무시당하는 존재다. 마누, 우고와는 어렸을 때 잘 어울렸지만 재미삼아 벌인 강도짓이 한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린 후 그들의 관계는 부셔졌다. 그 후로 오랫동안 소식도 끊고 각자의 삶을 살아온 그들. 한편, 파비오는 아랍계 이민자의 딸 레일라와 오묘한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그런 레일라가 실종되고, 며칠 후 시체가 발견된다. 마누와 우고의 죽음, 시체로 발견된 레일라, 그들의 여자 롤의 실종.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 세상에 외롭게 남은 파비오가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어슬렁,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 마르세유. 요렇게만 말하면 어쩐지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이 책에 묘사된 마르세유는 황량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다양한 이민자들,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중심을 이루고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세력 등이 날뛰는 그곳은 말 그대로 토탈 케옵스(대혼란)의 온상지다. 작품은 몇 건의 살인사건과 실종을 해결하려는 파비오 형사 모습 이외에도 이민자 가족들이 마르세유에서 당하는 배척, 어두운 뒷골목의 모습을 음울하게 그려낸다. 그런 묘사 때문에 문체도 무척 건조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파비오에게서조차 '어떻게든지 해결하겠다!'는 결의도 잘 느껴지지 않고 '하다보면 해결되겠지'는 안일한 분위기가 풍긴다고 할까. 색감이나 활동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슬로우로 진행되는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가 그렇다고 해도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더는 문제될 것이 없었을텐데, 사실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소설이라면 '집중' 이 필요하다. 어떤 단서가 나왔고, 어떤 인물들이 연관되어 있으며,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는 그런 것. 하지만 이 책은 거의 파비오의 반 자서전이다. 어렸을 적 마누, 우고와는 어떻게 어울리게 됐는지, 그들의 여인 롤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레일라와는 어떤 감정의 교류가 있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는 누구이며 현재 자신 곁에 있어주는 여자는 누구인지 등. 그런 필요없는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 여자도 좋다, 저 여자도 괜찮다 하는 파비오의 물렁물렁한 태도랄까. 내용도 나에게는 '토탈 케옵스'였다. 

사건은 그냥, 어느 틈에 해결된다. 글쎄, 그걸 딱히 파비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그의 동료 페롤이 더 능력있는 형사로 보인다. 마르세유의 복잡한 상황과 사건을 해결하려는 요소가 잘 버무려지지 못한 것이 흠이다. 아예 마르세유의 상황을 배경으로 완전 사변적인 소설을 썼거나, 그런 상황과 파비오 자신의 문제들을 조금 줄이고 사건해결에만 집중하는 소설이었다면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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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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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상처는 때로는 다른 사람에 의해 치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괜찮다고 위로해도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납득하지 않으면 그것이 괜찮은 것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모든 상처를 치료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워서, 혹은 치료하고 싶었지만 시기를 놓쳐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새살이 돋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구멍을 메워버릴 때도 분명 있다. 확실한 것은 그저 메워져있을 뿐인 상처의 구멍은 크기가 점점 커져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길라르가 나흘 간의 짧은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 아구스티나는 그녀만의 광기 속에 빠져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녀가 호텔에 있다는, 체크인할 때 어떤 남성과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듣고 그녀의 불륜을 의심하는 아길라르다. 그들 앞에 소피 이모가 나타나 아구스티나를 간호하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시점과 인터뷰 형식을 이용해 아구스티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봉인하고 있는 불행은 무엇인지, 그녀를 광기로 몰아간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한다. 
 

음습한 분위기, 건조한 문체는 이야기를 한층 어둡고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그런 장치보다도 더욱, 이 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구스티나처럼 진정으로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듯 행동하는 그녀의 가족들이다. '이 책은 정말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 있다. 소피 이모와 불륜을 저지른 아구스티나의 아버지. 그 불륜의 증거가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 보이는 가족들의 행동. 특히 아구스티나의 어머니의 반응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것이었다. 그들의 가정은 지킬만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을 포기하면서 지키지 않아도 되었음에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그 행동과 그 일이 있은 후의 가정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어째서 아구스티나가 광기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추측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파격적이고 사실적이지만 나는 그리 큰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콜롬비아의 사회적 상황과 부패, 돈과 권력에 허물어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유명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위대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는데, 내가 이 작품에 완전히 빠지지 못한 탓일까. 자꾸 '이 작품 안에 자신의 작품이 몇 편 언급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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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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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 살짝 꼬집어 주고 싶은 표지입니다. 귀엽다고 생각되어야 할 나이에 한 소녀가 썩소를 짓고 있습니다,네. 머리에 분홍핀을 꽂은 것을 보고 여자아이라 추측했는데, 여자아이, 맞겠죠? 욕심 많게도 한 손에 사탕을 두 개나 들고 있네요. 어린아이답지 않게 옆으로 쭉 늘어진 눈에 뭔가 알 수 없는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헉. 담 위에 올라앉아 있는 강아지를 보세요. 전 처음에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인 줄 알았습니다. 어째 심술궂어 보이는 표정, 이런 표정은 강아지보다는 주로 고양이가 더 많이 짓지 않습니까? 주인을 닮아서인지 역시 눈이 옆으로 쭉! 늘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음흉해보이는 미소까지 주인과 판박이입니다. 그러면서 집으로 놀러오라며 '흐흐흐' 웃다니, 요런 식으로 초대하면 어째 거절하고 싶어질 것 같네요. 

전 오쿠다 히데오 하면 아라부 시리즈보다 [스무살 도쿄]가 더 기억에 남아요. 아라부 시리즈도 재미있긴 했지만 아라부 시리즈를 접하기 전에 [스무살 도쿄]를 먼저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청춘의 기억들이 무척 좋았거든요. 얼마 전에 읽은 [요노스케 이야기]와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저는 유독 추억, 기억, 아스라함, 요런 것들에 약하거든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기억들이 가끔은 저를 즐겁게도, 쓸쓸하게도 만들어준답니다. 그런데 [오 해피데이]는 작가를 보지 않고 표지만 봤는데도 어쩐지 느낌이 왔어요! '왠지 오쿠다 히데오 작품일 것 같아'라는 느낌이요.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이 책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지 예전보다 한층 기대도 했습니다. 

모두 여섯 편의 가족 이야기에요. 그 중에는 옥션에 물건을 팔고 누군가로부터 감사인사를 받으면서 삶의 활력을 찾는 주부도 있고, 아내와 별거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신나게 꾸며나가는 남자도 있고, 건조한 일상을 꿈으로 보상받으려는 여자도 있어요. 실직하면서 가정일의 기쁨을 알아가는 남편과 무작정 일을 저지르는 남편을 걱정하며 잔소리하는 아내, 비판하는 글을 쓰기는 했지만 아내 걱정에 글을 수정하러 달려가는 작가남편도 있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굉장히 평범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전 이런 이야기들이 참 좋아요. 평범한 생활 속에서 잠깐씩 맛볼 수 있는 감동에 대한 믿음, 이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기회, 특별함보다 평범함을 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죠. 

가족이란 뭘까요? 전에  '가족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버릴 수 있다면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대답했던 어떤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납니다.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모든 것을 나눠가는 사람들. 저도 때론 부모님의 잔소리에 짜증도 내고 쿵닥쿵닥 다투기도(?) 하며, 동생과도 갈등을 겪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무척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언제 어느 때든 나의 편이 되어주고 위로해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관계죠. 가족이 없다면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에요. 밉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모든 것이 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물어질 수 있는 사람들. 아내와 별거하던 남편이 아내가 찾아온다니까 집안을 정리하고 아내의 취향을 고려해 새로 바꾼 침구커버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장면이 있어요. 정확히는 잘 말할 수 없지만 저는 그런 것이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단, <그레이프프루트 괴물>에 나오는 주부의 이야기는 약간 불편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주부의 모습이 불쾌하기도 했는데, '불만은 없다. 그렇게 삼십대를 보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삶의 보람을 찾는 일과도, 자신을 되찾는 일과도 평생 인연이 없을 것이다' 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해졌습니다. 안타깝기도 했구요. 

기본적으로 재미없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읽는 동안은 즐거운 기분을 간직하게 해 주는 유쾌한 여섯 가족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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