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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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만 이 말부터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재미있습니다! 그것도 아주아주요! 아주아주라는 말을 잘 써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어쩐지 외계어처럼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믿어주세요. 전 별 갯수에 있어서 관대한 편이에요. 어지간해서는 별 셋도 미안해서 못 주고 손가락을 벌벌 떨며 세개 반을 클릭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별 다섯에 가까워질수록 평가는 냉정해진답니다. 믿으시거나 말으시거나~어쨌든 할런 코벤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 이 작품은 앞으로 이 작가를 매우매우 사랑해줘야겠구나, 라고 굳게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대학원 면접을 보러 갔었는데 대기실에서도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공부하는 대기자들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탐독해주었답니다. 히.

그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살짝만 볼까요? 오늘 만날 주인공은 맷 헌터라는 남자에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죠.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님 모두 정정하시며 사이좋은 형제들 속에서 자란, 그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대학 파티에 갔다가 술에 취해 시비를 걸어온 사람을 실수로 죽이고 맙니다.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정확히는 말씀 못드리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도 실수가 맞는 것 같아요. 몸싸움을 하다가 둘이 엉겨붙어서 넘어졌고, 피해자의 뒤통수가 보도에 부딪혔거든요. 하지만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그는 교도소에서 4년을 보냈고 이제 평생을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그의 곁에는 임신한 아내 올리비아가 있습니다. 그녀를 통해 비로소 행복을 맛보려는 찰나, 이게 웬걸. 임신 기념으로 산 커플 핸드폰으로 그녀가 다른 남자와 호텔에 있는 사진과 동영상이 전송된 겁니다. 헉, 뭘까~요?

스릴러인만큼 진행이 빠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순식간에 주인공을 압박하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 긴장감이 목까지 차오르죠. 거기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답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어두운 굴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다음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밖으로 홱 나왔다가 다시 360도 회전을 하다가 갑자기 아래로 추락하는 듯한 스릴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롤러코스터를 타 본 적이 오래되서 이 느낌이 맞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읽는 동안은 내내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빨리 사건의 전모를 알고 싶어지면서도 '안돼! 아직은 안돼!'라는 절실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책이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스릴러이기도 하고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의 애달픈 인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해요. 어쩌면 스릴러라는 탈을 드라마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군요. 긍정적인 쪽으로요. 실수로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아버린 맷,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아픈 과거를 간직한 채 이제야 겨우 행복을 붙잡으려는 그의 아내 올리비아, 아버지의 자살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평생 원망해 온 형사 로렌, 베일에 쌓인 메리 로즈 수녀와 올리비아의 친구 키미까지. 스릴러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섬세한 심리묘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 아픔,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고, 어느 새 그들의 감정, 이유에 동조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중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로렌 형사가 그녀의 어머니 카르멘과 화해하는 장면이요. 그 장면이 그렇게 제 마음을 울리더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의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결국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겠죠. 진실한 마음, 누군가가 우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견뎌냈을지 알게 되는 건 어떤 경험을 한 뒤일 거에요. 무언가를 깨닫게 할 경험이요. 그 동안 흘렀을 시간들은 무척 아깝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고 뒤에서 우리를 바라봐 준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뭐,그런 사람이 있다면요.

만약 할런 코벤의 다른 작품들도 이렇게 스릴과 섬세함으로 가득차 있다면 정말 사랑해주고 싶습니다. 요즘 읽은 스릴러나 추리소설 중에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사건을 저지르는 범인과 그것을 수긍해버리는 주인공들이 꽤 있어서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한 번 이 책 손에 들어보세요. 아마 손가락이 풀로 바른 것처럼 페이지에 딱 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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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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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고 느꼈다. 책을 읽고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좀처럼 없었던 듯 하다. 대체 뭐가 아름답다는 것인지, 사실은 나조차도 잘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나는, 내가 정말 책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시냇물 위에 둥둥 떠다니면서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물살이 굽이굽이를 지나 어딘가로 향하는 것처럼 작가가 인도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깊숙이 빠져버렸다. 작품의 배경인 찰스턴은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미 나에게 또 하나의 고향처럼 느껴졌을 정도다. 

외국문학에, 그것도 미국문학에 공감하기 힘들 때가 있다. 어디서나 사람 사는 일은 거의 비슷하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각자가 간직한 '문화'라는 것이 있다. 각 문화 사이에서 해서는 안 될 말, 해도 되는 행동,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생각 등은 현격히 구분되며 그 경계를 중심으로 너와 내가 분리된다. 조금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저쪽이 농담으로 한 말을 이쪽은 심각한 모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있는 것이다. 그 '틈'을 나는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미국문학에서 가장 많이 느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동떨어짐-이라 해야 할까. 아무리 가까이하고 싶어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가슴을 울리며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별 다섯은 충분하다. 

사랑스러운 나의 주인공들은 미국의 남부 찰스턴에서 태어났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혈통과 피부색으로 분류되는 사회가 바로 찰스턴이었다. 누구에게는 보석처럼 빛나는 도시였으나 그 누구에게는 삶을 끈질기게 연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도시. 어쩔 수 없이 '틈'을 느껴야 했던 그 도시에서 1969년 6월 16일의 만남들이 이루어진다. 그 만남들이 만약 권력과 계층, 인종에 관해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묘사되었거나 설명하려 드는 식이었다면 매우 지루하게 전개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작가는 각자가 지니고 있는 아픔들을 뛰어넘은 청춘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절정을 맞이하고 찬란하게 스러질 수 있는지 너무나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한 사회에 어떤 이념과 사상이 존재하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하는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청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며, 한 권의 시집이자 자서전이며, 그들의 위대한 만남과 여정을 기록한 전기이기도 하다. 

우연의 힘에 꽤 자주 놀라곤 한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답지, 선택할 수 있었던 답지들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결국은 선택한다. 지금은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그 선택이 내 삶의 어딘가에서 커다란 발자국을 드러낼 지 생각하면 그 가늠할 수 없는 운명의 힘에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만남도 그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리듯, 혹은 앞에서 밀쳐지듯 이루어진 만남은 순식간에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로 내던져버린다.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지 예측할 수 없는 그 미래가 삶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잔혹한 것이기도 하다. 폭풍우와 같은 거센 바람에 우리는 늘 무장하고 맞서야하며 간혹 내비치는 햇살에 겨우 한 줌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청춘은 한 줄기 바람처럼 가늘고 약하며 상처는 무겁다. 늘 힘들고 자주 불안하며 가끔씩 행복한 우리. 그러나 그것이 보통의 인생이라 해도, 가끔은 서로를 공격하고 증오의 언어를 내뱉어 상처를 주고받는다 해도, 그 누군가가 함께 있어준다면 그 폭풍우 속을 힘차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찰스턴의 나의 사랑하는 주인공들처럼. 

아름다움은 결국 위대함으로 이어진다.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작품 전체를 통해 문학의 위대함을 느꼈다. 이런 게 바로 문학의 힘이구나 하는 느낌. 누가 내 머리를 탁 쳐서 그 단어들이 세상 빛을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안타깝다. 올해 읽은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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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연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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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느끼고 낙향하여 시골 마을에서 공무원으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토노 케이치.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아이들과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그에게 아테네 마을 재건이라는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5시에는 퇴근을 해야 하고 서예에만 관심을 보이는 상사 탄바, 자신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제대로 협조해 주지 않는 동료, 과연 믿고 맡길 수 있을지가 의심되는 부하직원들 사이에 막혀버린 케이치. 갑자기 바쁘게 된 케이치는 '당신에게는 '퍽'하는 느낌이 없어'라는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일단 일을 밀어붙이지만 관료주의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윗사람들은 엉뚱한 계획만 내세우며 케이치의 일에 제동을 건다. 아들의 작문에 멋진 아빠로 등장하고 싶은 케이치, 처음에는 우물쭈물하지만 나름 임기응변을 펼치며 아테네 마을 재건을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들에는 따스한 감동과 유쾌한 유머가 살아있다. 전개방법은 늘 비슷하지만 워낙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온갖 사건을 해결하고 맞게 되는 그런 결말이 영 싫지만은 않다. 이 작품 또한 소재만 다를 뿐 오기와라 히로시의 다른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약간 어벙해 보이는 주인공 케이치를 옆에서 밀어주는(?) 극단 단장의 유머감각과 자유로운 생활도 인상적이었고 개성있는 인물들이 하나의 목표를 두고 서로 티격태격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공무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은 다른 일에 비해 비교적 편안한 직업이리라는 점일 것이다. 내가 본 공무원들 중에는 분명 태평하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공무원 중에는 그런 다른 공무원들 때문에 공무원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공무원도 다른 기업의 회사원들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책에 등장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비난하며 책 내용에 맞장구를 칠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케이치도 결국 조직의 일부. 자신이 계획한 일을 멋대로 밀고 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케이치가 큰 맘 먹고 계획한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회전목마 유치'다. 위태로워보였던 아테네 마을 재건이 성공하는 듯 하면서 어지럽네 어쩌네, 하는 윗사람들의 불만을 등에 지고 회전목마를 들여놓은 케이치. 어쩌면 그것은 정체된 조직 안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며 바쁘게 살 수 있었던 자신에 대한 포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 회전목마 위에서 앞으로 어떤 미래를 계획하게 되려나. 조금은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결말이었지만 그 현실 속에서 케이치는 살아갈 방법을 터득한 것은 아닌지. 

현실의 모습을 살짝 꼬집으면서도 오기와라 히로시 특유의 감동과 웃음이 모두 들어있는 이야기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케이치의 아내 미치코가 케이치에게 '당신은 '퍽'하는 느낌이 없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도 그리 큰 '퍽'은 없다는 것이랄까. 예상한대로, 생각한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런 잔잔함이 오히려 작가의 장점인지도. 읽고나서 '에이. 괜히 읽었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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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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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의 저는, 주인공들에게 곧잘 감정이입을 하곤 합니다. 그건 좋은 일이 생겼을 때보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한층 더 깊어져요. 기쁜 일은 저의 일처럼은 잘 느껴지지 않지만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가 마치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마음을 졸이게 되죠. 그래서 위기와 시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을 읽고나면 목이 콱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져 와서 금방 피곤해집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그런 책들을 일부러 피해다니기도 하는데 이 책은 피하지를 못했네요. 거의 900페이지에 이르는 책 두께 때문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이 너무 힘겨워보여서 책을 읽는내내 정말 힘들었습니다. 

남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뒤로 한 채 회사에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하는 디나, 그리고 그 디나 밑에서 재봉 일을 하는 옴과 이시바, 디나의 집으로 하숙을 하러 온 마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들을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리저리 엮여있죠. 디나의 부모님, 오빠와의 관계,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를 잃은 이야기, 옴과 이시바의 탄생과 그들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마넥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지만 문명의 발전이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하는 이야기가 흐르는 물처럼 저절로 마음 속으로 다가듭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디나와 옴, 이시바와 마넥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인도, 그 자체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희망으로 살아갈 거에요. 어제가 오늘 같지 않듯 내일이 오늘 같지 않을 거라는 희망,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희망. 시간의 흐름은 한 때 저에게 큰 위안을 주었거든요.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때 느꼈던 그 시간의 흐름은 그래도 내가 잘 버티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었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나 봅니다. 먹을거리를 해결했더니 당장 몸을 뉘어야 할 자리가 보이지 않고, 오늘 이 일을 해결했더니 또 금방 다른 일이 터져요.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 속의 저처럼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일이 해결되면 이제 괜찮아지겠거니 하며 미래를 생각하고 결혼을 꿈꾸고 가정을 생각해요. 숯으로 양치질을 해서 새하얗다는 그들의 치아가 보이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웃음이 눈 앞에 둥실, 떠오를 것만 같습니다. 

무엇이 적절한 균형인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옮긴이는 '이 작품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균형을 이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국가와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걸까요? 그럼 그 때 부유하고 잘 살았던 사람들은 국가와 어떤 적절한 균형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 적절한 균형이라는 것이, 다른 곳에서 들었다면 괜찮게 느껴졌을 그 단어가 지금의 저에게는 어쩐지 부도덕하게 생각되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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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아일랜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1 존 코리 시리즈 1
넬슨 드밀 지음, 서계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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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 신종플루가 기승입니다. 학교는 그 신종플루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어요.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면 일단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마스크를 의무화하기도 했답니다. 요즘에는 전염 추세도 좀 줄었고 답답하기도 해서 마스크도 잘 안 쓰지만 한동안은 살짝, 공황 상태였어요. 누군가 살짝 기침만 해도, 아침마다 체온을 재서 37도만 넘어도 '신종플루가 아닐까?'라는 의심과 공포감을 느꼈죠. 신종플루에 걸렸어도 완치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사망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을 더 약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이러다 모두 잘못되는 게 아닐까-하는 공포심인 것 같아요. 아무리 조심해도 병은 잘도 우리를 찾아오니까요. 

플럼 아일랜드에는 그런 질병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습니다. 저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했어요. 그 연구소에서는 구제역이나 에볼라바이러스, 탄저균 등을 연구하고 있고 게다가 생물학전의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무서운 소문까지 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연구소에서 일하는 톰과 주디 부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물론 그 사건은 우리의 주인공 뉴욕 강력계 형사 존 코리가 해결하게 되죠.  그 연구소에서 무언가를 반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 FBI, CIA까지 가세해서 코리 형사와 베스 형사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플럼 아일랜드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코리 형사의 머릿속을 핑, 핑 울리는 단서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오고, 진실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환상도 자극하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답니다. 

일단 두께가 대단합니다. 빈스 플린의 [임기종료]를 능가하는 두께에요. 제가 지금 자가 없어서 제대로 재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임기종료]와 맞먹는 두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기종료]의 두께는 4.5cm 정도였는데 말이죠. 사실 저는 두껍다고 해서 지루할 거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아요. 그건 이미 [임기종료]가 증명해주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중간이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어요. 주인공인 존 코리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조사하고 다니는데 과정이 굉장히 세밀하거든요. '대체 여기를 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도 가고, '그 모임과 이 사람이 무슨 관계인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과 모임이 등장하기도 하거든요. 난데없이 느껴지는 그 모든 과정들이 결국은 접점을 이루게 됩니다먼 세밀함이 지나쳐 오히려 살짝 지루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요, 이야기가 좀 복잡해요. 전형적인 스릴러물 같다가도 질병공포소설인가 싶다가도, 또 액션어드벤처소설인 것 같기도 하거든요.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이렇게 추켜올리기도 하고, 저렇게 추켜올리기도 해요.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우리의 주인공, 존 코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 이 형사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요. 사실은 아주 많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들은 환영하지만 여자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너무너무! 이 책에는 매력적인 여성이 두 명 등장하는데 이 존 코리는 일단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듯 합니다. 처음에는 A를 마음에 들어했다가도 B가 나타나자 금방 또 마음을 바꿔 잠자리까지 하고, 마지막에는 또 A와 잘 될 것 같은 조짐을 보입니다. 물론 존 코리 조차도 작가의 창조물이기는 하지만 전 어째서인지 그를 실제 인물처럼 여기고 말아서 얄밉기조차 하더군요. 형사로서의 능력은 제외하고 동물적인 본능만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사실 안타까운 건 존 코리가 여자를 보는 관점이랄까요, 아니면 이 책에서 '여성' 이 차지하는 역할이라고 할까요. 존 코리 뿐만 아니라 베스 펜로즈라는 여자 형사도 등장하지만, 그녀는 형사라기보다는 단순히 존 코리의 부수물, 스릴러물에서 없어서는 안 될 단순한 파트너 정도로만 여겨질 뿐이거든요. 전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런 베스의 역할에 씁쓸하달까 언짢았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존 코리 형사가 여자에게 너무 들이대는 성격이라 더욱 그렇게 여겨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없어서는 안 될 그의 엉뚱하면서도 날카로운 유머감각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자에게 너무 들이대는 그는 많이 거부감이 생기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표지에 '존 코리 스릴러'라는 문구가 보이는 걸 보니 조만간 그도 다른 사건을 들고 찾아올 모양입니다. 그 때는 좀 더 조신한 그의 모습을 기대해봐도 될까요?  이상 플럼 아일랜드였습니다.  아, 모두 신종플루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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