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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미닛 룰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투 미닛 룰-돈을 챙겼든 챙기지 않았든, 프로라면 무조건 2분 안에 도망가야 한다는 은행털이범들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 시간을 넘기면 경찰에 체포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사건은 이 투 미닛 룰을 어긴 은행털이범 두 명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규칙을 어기고 2분이 넘게 은행 안에 머물러 있던 이들은 결국 경찰에 의해 사살되고 말아요. 수많은 초록색 지폐들 한 장 한 장이 꿈이고 소망이었다-라고 추억하면서요. 그들이 훔쳐서 숨겨놓은 돈은 무려 1600만달러.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음, 아무튼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뒤 86일 뒤 맥스 홀먼이라는 은행털이범이 출소합니다. 10년의 복역기간을 마치고 이제 보호관찰을 받는 그의 앞에, 그 오랜 시간 그를 지탱해주었던 단 하나의 존재 아들 리치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아들이 살해당한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가 86일 전에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홀먼은 직접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뭘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 거에요. 아들은 좋은 경찰이었다고, 자신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훌륭하게 성장해 결혼도 한 멋진 사람이었다고 추억하고 싶었지만 현실이 홀먼을 가만 두지 않았거든요. 자신의 논리와 맞지 않는 듯한 경찰 수사,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 자꾸만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경찰권력들. 이제 그는 10년 전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이제는 은퇴한 FBI 요원 폴라드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사건에 뛰어듭니다. 그가 말한대로 누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우리의 주인공 맥스 홀먼은 비록 은행털이범이었고 10년 동안 복역한 죄수였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친절하고(?) 다정한(?) 범인입니다. 개과천선의 훌륭한 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10년 전 폴라드 요원에게 체포당한 경위만 봐도 알 수 있죠. 그 일은 홀먼의 성격을 규정지어주는 중요한 사건이므로 궁금하시다면 직접 확인해 보세요, 히.
전 다른 어떤 이유보다 그가 사건에 뛰어든 동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돈에 관련된 것도 아니며 오직 마음 속 하나의 등불이었던 아들을 위해서였잖아요. 아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어하고, 만약 아들이 나쁜 경찰이었다고 해도 그건 모두 자신의 유전자 탓이라 여기며 흐느끼는 홀먼에게서 연민이 느껴집니다. 사실 전 스릴러물에서 보여지는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짝 이해가 간다고 할까요. 홀먼같은 남자에게라면 아마 많은 여성분들이 모성애와 함께 감싸주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헉, 근데 이거 위험한 건가요!
스릴러물답게 사건은 탄탄하면서도 조마조마하게 전개됩니다. 은행강도 사건이 등장하니 뭔가 돈과 관련되었다는 냄새는 나지만, 우리는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과 관련된 냄새인지는 확신할 수 없죠. 경찰이 네 명이나 살해되고 그들이 비밀리에 조사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밝혀지면서는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돌아다니지만 결국 전 사건의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했답니다.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다가 빗나갔어요. 하지만 그것이 또,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을 읽는 묘미 아니겠습니까, 풋. 그러니 여러분도 흠뻑 빠져보세요.
주인공들의 사건해결에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들었어요. 결국 물질적인 풍요로움 앞에서 인간은 과연 나약하기만 한 존재인 걸까요? 전,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것을 욕심내면 제 인생에서 그보다 더 큰 것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진리라고 여전히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전 심부름을 제외하고 로또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로또에 당첨된다면 평생의 운이 모두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요. 운은 야곰야곰, 삶이 힘들 때 가끔씩 찾아와주는 것이 더 달콤하지 않겠어요? 부디 순간의 욕심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살짝 해봅니다.
감정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않는, 속도감 있으면서도 꼼꼼한 구성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 할런 코벤의 [결백] 같은 반전의 반전보다 모든 단서를 쭉 늘어놓고 마지막에 가서야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니 그 점은 참고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