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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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라는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처음으로 미국문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재미있다, 굉장하다가 아닌 '아름답다' 라고 느낀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지만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 하지만 내가 접한 미국문학은 순수문학보다 흥미위주의 책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미국문학의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사우스 브로드]를 읽고 나서는 '이게 미국문학의 정수라는 걸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미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미국편>을 통해서 더 깊이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창비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은 다른 출판사의 책들과는 달리 각 나라의 단편만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미국편을 읽기 전에 일본편도 읽었었는데, 일본편은 표기와 번역이 영 매끄럽지 못해 읽는 내내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미국편은 눈에 거슬리는 표기 몇 개를 제외하고는 문체도 나름 매끄럽고 번역자가 고심한 흔적이 보여 차근차근 읽는 맛이 났다. 그 흔적이란 표제작 <필경사 바틀비>의 "I would prefer not to" 를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로 옮기기까지 몇 년에 걸쳐 고심했다고, 해설 부분에서 번역자가 토로한 부분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문장이 없었다면 <필경사 바틀비>의 독특한 분위기는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편도 그랬지만 미국편 역시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단편이 실려 있다. <주홍글씨>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마크 트웨인의 <캘레바레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헨리 제임스의 <진품>,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찰스 W. 체스넛의 <그랜디썬의 위장>, 스티븐 크레인의 <소형 보트>, 셔우드 앤더슨의 <달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유명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까지 각양각색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한 두 작품은 미국의 역사와 시대배경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빼놓고 거의 대부분 '재미있다'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앞서 언급한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이다. 변호사의 시선으로 필경사 바틀비라는 독특한 사람에게 주목한 이 작품은 세계문학 중 가장 뛰어난 단편으로 꼽히며 바틀비의 모델이 누구냐에 대해 꽤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바틀비와 변호사에 대한 해석도 여러 방향에서 이루어지며 변호사와 바틀비의 대화, 바틀비의 말투를 중심으로 책을 읽다 보면 오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와 기이한 상황으로 인해 몇 번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며 각 상황에서 자주 쓰이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어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보면 언어의 신비함에 다시 한 번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어렸을 적 읽은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지금 읽어도 여전히 오싹하고 공포스러우며,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또한 밤에 혼자 읽으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벽지에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찰스 W. 체스넛의 <그랜디썬의 위장>은 주인공 딕 오언즈가 여자 친구 채러티의 관심을 사기 위해 아버지 소유의 흑인 노예 그랜디썬을 캐나다에 도망치도록 유도하지만 엉뚱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분명 흑인 노예에 관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텐데 문체와 분위기가 희화적이며 놀라운 반전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보통 단편작품집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정말 재미있다고 소문난 책이 아니면 읽지 않는 편인데, 미국편도 그렇고 일본편도 그렇고 어느 정도의 재미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일본편은 작품 자체보다 표기와 번역의 탓이 컸다;;) 총 9권으로 기획된 창비세계문학전집, 두 권을 읽고 나니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도 기대된다. 아울러 깊이있는 미국작가들의 다른 작품들도 선정해 한 권씩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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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 살림Life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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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물론 도쿄는 내게 흥미로운 곳이었다. 복잡한 덴샤 노선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선배언니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서 30분은 늦게 갔던 일, 차 안에서 아담한 집들을 바라보던 일, 우리나라의 종로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신주쿠나 가부키를 보기 위해 찾아갔던 긴자,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CD들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던 Book Off 등.(이 Book Off 는 우리나라에도 몇 군데 생겼다.) 얼마 되지 않는 추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일본은 분명 나에게 정겨운 곳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도쿄보다 학교 언니오빠들과 같이 갔던 가마쿠라, 엄마와 함께 찾았던 하코네 같은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제법 이름있는 관광지이지만 사람이 많아서 으레 겪어야 하는 분주함과 혼란스러움보다 고풍스럽고 아늑함을 더 깊게 느꼈던 곳들이다. 가마쿠라에 갔을 때 탔던 에노덴, 가마쿠라 신사,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놀랐던 다이부쓰, 길을 잃어 한참을 돌아 찾아갔었던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무덤에는 일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정취가 배어있다. 하코네에서 갔던 온천과 화원같은 곳들도 벌써 7년 정도 된 일인데 이렇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나도 북적북적 머리 아픈 곳보다 정취있고 일본의 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을 동경하는 것이다. 교토나 오사카, 나라같은. 서순정이라는 저자가 알려준 작고 정겨운 마을들을.  



지금까지의 일본 관련 서적들은 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엮어진 것으로 '일반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도쿄에 가면 꼭 봐야 할 것들, 오사카에 갔다가 들리지 않으면 서운한 장소, 나가사키에 가서 꼭 먹어야 할 요리들. 물론 이런 것을 중시하는 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여행 속에서도 얻을 것은 많고,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헉헉거리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 많이 여행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행 중에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생기겠어' 라고 생각하며 있는 힘껏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걷는 것, 여행지의 공기를 느껴보는 것,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내 몸 속 긴장을 모두 풀어내고 편해 쉴 수 있는 곳이 그립다. 

이 책은 그러 곳들을 소개한 여행서이자 에세이다. 그저 지도 한 장만이 필요할 뿐, 여행책자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발을 이끌어준다. 주부, 간사이, 주고쿠, 홋카이도, 오키나와까지 주로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과 그 강 사이를 잇는 여러 개의 다리들, 마을을 지탱해주는 우물과 몸과 마음을 펀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는 민슈쿠에 온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들이 사는 섬, 마나베시마를 달랑 잡지 하나 보고 찾아갈 수 있는 그녀의 용기와 한가로움이 부럽다. 여행객들은 잘 찾지 않는다는, 지역 주민들만의 온천인 키노사키 온센에는 지금이라도 가서 몸을 푹 담그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따뜻한 온센과 차 한 잔, 맛있는 케이크가 생각난다.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지지 않고 쉬엄쉬엄 읽게 되어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오히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서 만든 라멘도 먹고 싶고, 덴샤도 다시 타보고 싶고, 일본의 정취가 느껴지는 거리도 걸어보고 싶고, 유명 문화재 한 두 가지 정도도 보고 싶다. 방학이라 그 동안 잘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 동안의 시간을 허투루 쓴 느낌이다. 올 여름에는 장맛비라도 맞으면서 교토의 거리들을 걸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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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새드 일루전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2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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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리뷰한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의 2부인 아이입니다. 1부의 표지는 리사와 로즈가 장식했는데, 2부의 표지는 디미트리-로 보이는 남자-인 듯 하네요. 짙은 눈썹에 흩날리는 머리하며 하늘하늘한 옷차림을 보니, 어릴 때 가끔 하던 컴퓨터 게임 주인공이었던 페르시아 왕자가 생각납니다. 흣. 제가 상상한 디미트리의 모습은 요런 게 아니라서 살짝 거부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금새 머릿속에서 이 그림을 지워버렸답니다. 겉표지는 괜찮은데 속표지가 영 걸리는 것이, 왜 자꾸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걸까요. 

1부의 리뷰에서, 시리즈인만큼 1부를 기승전결 중 거대한 '기'로 보고 조금 지켜봐야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역시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느릿느릿 진행되고 시리즈의 기반을 다진다는 기분이 들었던 1부와는 달리, 2부에서는 각종 갈등과 위기상황이 설정되면서 작품에 긴장감이 감돌거든요. 제가 싫어하는 주인공들의 연애중심 스토리가 아니라 사건 중심이라고 할까요. 모로이와 댐퍼, 스트리고이의 대결구도가 명확해지는 데다 그동안 은근히 자식방치 엄마로 암시되던 로즈의 엄마가 등장합니다. 또 마음 가는 디미트리는 자신을 밀어내기에 바쁜데 좋은 친구로만 생각했던 메이슨이 자꾸 다가오는 통에 로즈의 마음은 갈팡질팡. 그야말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겁니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작품이 '성장소설'의 특징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열일곱 소녀 로즈,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입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금방 감정을 이기지 못해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 그러면서 자신도 상처받는, 강하면서도 여린 소녀랍니다. 그런데 2부에서는 그녀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닥쳐와요. 전하지 말아야 할 정보를 전한 탓에 누군가가 죽음을 맞고 로즈는 엄청난 죄책감과 수호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뜻하지 않은 역경을 겪은 후, 왠지 로즈는 조금 성장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보다 수호인으로서의 임무, 스트리고이와의 결투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거든요. 

여전히 디미트리와의 관계는 뜨뜻미지근합니다. 하지만 미리 사랑의 행방이 결정되고 주인공들끼리만 즐거워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궁금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로즈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스트리고이의 공격에서 로즈가 리사를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적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뒷편이 궁금해집니다. 1부보다 나은 2부였던 듯 해요. 2부보다 나은 3부, 그리고 결말이 나와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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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1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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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시작을, 역시나 뱀파이어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책은 그만 읽어야지 하는데도 정신을 차리고보면 뱀파이어 소설이 제 앞에 떡 버티고 있답니다. 요즘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책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요. 이 작품 역시 다섯 권의 시리즈로 계획되어 있는데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는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의 1부입니다. 시리즈의 제목이 1부에서는 소제목처럼 쓰이고 있으니 혼란스러워하지는 마세요. 책을 둘러싸고 있는 표지가 은근 고급스러워 살짝 벗겨봤더니, 우잉! 속표지는 결코 저의 취향이 아닙니다. 그냥 살포시 표지를 덮은 채로 간직하고 싶어지는군요. 

지금까지 제가 읽은 뱀파이어 소설들을 차근차근 따져보자면 우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인간인 벨라와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언제나 등장하지만 그들은 역경을 헤치고 굳세게 그 사랑을 지켜나갑니다. 또 다른 뱀파이어물인 '하우스 오브 나이트' 시리즈는 인간에서 뱀파이어로 변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대는 인간과 뱀파이어가 공존하는 세상, 인간 또한 어느 순간 표식을 받고 뱀파이어로 거듭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에서는 뱀파이어 공주 리사와 뱀파이어를 수호하는 로즈가 등장합니다. 둘은 강한 결속 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로즈가 조금만 집중하면 리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녀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로즈도 경험할 수 있게 된답니다. 

이 책에서 리사는 모로이, 로즈는 댐퍼라는 신분인데요, 모로이는 뱀파이어 순수혈통, 댐퍼는 그 모로이를 수호하는 자로서 모로이와 댐퍼 사이에 태어난 존재라고 합니다. 모로이에게는 마법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성인이 되면 하나의 능력이 특화되기 마련인데 리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조금 독특합니다. 최면마법도 남들보다 조금 강하고, 또 영적인 능력이 있거든요. 모로이와 댐퍼의 적으로 등장하는 스트리고이는 불사의 생을 얻기 위해 모로이가 규칙을 어기고 변화된 존재입니다. 목을 베거나 은으로 된 말뚝을 심장에 박아야만 없앨 수 있다고 해요. 그리하여. 간단히 정리하면 이 이야기는 모로이와 수호인 댐퍼, 스트리고이의 전쟁 소설이자 리사와 로즈의 로맨스 소설이 되겠습니다. 

1부의 이야기는 로즈와 리사가 2년 여의 인간세상에서의 생활을 접고 뱀파이어 아카데미로 돌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어떤 위협을 받고 아카데미를 탈출한 것이지만 다른 수호인들에게 붙들린 것이죠. 돌아간 아카데미에서 리사는 크리스티안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로즈는 수호인이자 스승인 디미트리를 좋아하게 되지만 같은 수호인의 입장이라 로즈의 사랑은 한동안 힘들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랑의 막대기의 행로가 정해지고 리사의 능력이 밝혀지며 그들을 위협하는 위기를 하나 넘어가면서 1부는 마무리됩니다. 1부인만큼 시리즈 전체의 기반을 닦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로이와 댐퍼라는 다소 색다른 존재들을 내세웠지만 저는 살짝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영어덜트의 감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 소소한 일상도 묘사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큰 사건 없이 설명하는 식이라 기승전결의 묘미를 느낄 수가 없었거든요. 전에 어떤 시리즈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시리즈로 작품들이 쏟아져나오는 이상 1부에는 그리 큰 갈등양상이 등장하지 않는 듯 합니다. 1부에서 마지막 권까지를 하나의 커다란 작품으로 생각하고 1부를 '기' 쯤으로 여겨야 할 것 같아요. 

하나 마음에 든 것은 '로즈'라는 캐릭터입니다. 열 일곱인지라 아직 철이 덜 들었고 뱀파이어 소설의 주인공인만큼 스스로를 대단히 매력적이라 여기는, 살짝 불편한 아이이기는 하지만 거침없는 성격 하나는 알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묘사에 따르면 입도 거칠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행동해버리는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다른 시리즈물에서처럼 예쁜척, 새침한 척, 연약한 척 하는 캐릭터보다는 조금 나은 듯 해요. 일단 모로이를 수호해야 하는 댐퍼의 입장인만큼 모든 상황에서 굉장히 전투적이지만 또 그만큼 순수한 면도 엿보인답니다. 일단 저에게 2부인 [새드 일루전] 도 있으니 2부까지는 한 번 로즈를 지켜봐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디미트리'라는 이름도 마음에 드니까요. 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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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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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2010년 1월이 몇 시간 남아있지 않은 지금, 한 편의 리뷰를 써볼까 합니다. 아마도, 가 아니라 정확히 1월의 마지막 서평이 되겠군요. 사실 이 책은 읽은 지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만 어쩐 일인지 리뷰를 쓰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차일피일 미루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상콤한 2월을 맞이하기 위해 미루던 일을 하나 해치워보자 싶은 마음에 이 아이를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거장 아서 밀러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사랑받은 20세기 최고의 드라마라고 하네요. 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첫 작품이었지만 다시 읽어본 지금, 제 마음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처럼 그저 불현하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예전에 출간된 [가시고기] 라는 소설,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 책이 출간된 이후로 우리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보통 무한한 사랑을 전달해주는 대명사는 '어머니'로 그려지죠. 그에 반해 '아버지'는 가장, 무뚝뚝함, 경제활동 등의 다소 딱딱하고 정없는 단어들로 나타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머니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 준 소설이 바로 [가시고기]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존재 이유, 아버지의 삶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더불어 '부모자식'이라는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아서 밀러의 이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 은 불황을 배경으로 미국의 소시민들의 삶, 아버지의 삶, 부자(父子)사이에 대해 그리고 있습니다.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주인공 윌리 로먼은 희망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차와 집, 든든한 두 아들, 사랑하는 아내, 세일즈맨으로서 쌓아가는 실적이 그의 삶의 모든 것이었죠. 하지만 불황은 몸바쳐 일한 회사에서 그의 자리를 잠식해갔고 훌륭하게 자랄 것이라 믿었던 두 아들은 그를 낙담시켰으며 그에 따라 윌리는 삶의 의미를 잃어갑니다. 아들 비프와 해피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갈수록 윌리는 과거로 도피하기 시작하고,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며 실망과 낙담이 늘어갈수록 그의 기억은 현실을 피해 저 멀리 유년기까지 날아가고 말죠. 결국 회사에서 해고당한 날, 그는 끝내.

 

이 작품에서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부분은 린다가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한 번은 제 남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일하다가 결혼하면 아이들 낳아 키우는 남자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허망한 것 같다고. 물론 그 사이사이에 소소한 행복과 기쁨은 있겠지만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든다고. 예외는 있겠지만 어쩌면 가정에서의 아버지란 존재는 여전히 쓸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삶이란 보답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결코 보답을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그 보답이 물질적인 것이 아닌 위로와 사랑, 관심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사회적인 불행인 공황과 더불어 윌리에게 닥친 위기는, 아마도 아들들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 아들들과의 불화로 인해 더욱 깊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가족 간의 사랑과 위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의 부모님에게,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총 174페이지의 희곡으로 휘리릭 읽을 수 있지만, 휘리릭 읽은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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