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경제편 - 벗겼다, 국가를 뒤흔든 흥망성쇠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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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재미있는 세계사]

 

한국사와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저도 시간날 때마다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이 많을, 바로 역사 전문 <벌거벗은 세계사>입니다. 한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한국사만 알아서는 넓은 시각과 통찰을 배울 수가 없어요. 우리의 역사는 세계의 역사와 맞물려 있고, 세계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세계사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쩐지 '세계사'라고 하면 그 방대한 분량과 시간의 깊이 때문에 망설여지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세계사의 재미로 이끌어줄 프로그램과 책, 바로 [벌거벗은 세계사]입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는 이번에 읽게 된 경제편까지 총 4권이 출간되었어요. 사건, 인물, 전쟁편까지 열심히 챙겨보고 있는 책들입니다. 그런데 경제 분야에는 살짝 거리감을 느끼는 저로서는 사실 '경제편'이라고 하니 마음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더라고요! 하지만 역시 <벌거벗은 세계사>! 경제라고 하면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제가 읽어도 너무 재미있을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야말로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 있는 분야일 테니까요.

 

'벌거벗은' 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두고 메디치 가문, 노예무역, 오스만 제국, 기축통화, 산업혁명, 경제 도시 상하이, 석유 패권 전쟁, 아메리칸 마피아, 마약 카르텔, 일본 버블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메디치 가문과 관련된 이야기는 예전부터 관심있게 읽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다시 읽어도 또 재미있더라고요. 흥망성쇠와 커피 이야기가 버무려진 오스만 제국 이야기,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일어난 슬럼가의 비극, 수난과 반전의 역사를 가진 상하이에 대한 내용, 유가를 움직이는 검은 손, 우리 경제와 자주 비교되곤 하는 일본의 경제 이야기까지 아는 내용은 더 깊게, 모르는 내용은 흥미와 감탄 속에서 읽어내려갔습니다.

 

전 특히 영국 노예무역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물론 그 잔혹함과 비극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실상을 이번에 제대로 들여다본 느낌이랄까요.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모으고 그들을 영국에 팔아넘긴 이들이 일부 아프리카인들이었다니, 그들을 향한 원망보다 돈에 대한 탐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는 점에 오히려 연민이 생겼습니다. 1789년 영국 의회에서 노예무역의 실태에 관해 열린 청문회에서 노예 무역상들은 자신들이 노예를 구입한 덕분에 아프리카에 남겨진 채 죽는 대신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죠.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것은 침략이 아니라 조선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것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내놓는 주장이란, 그 논리조차도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요.

 

재미도 있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나름의 묵직함으로 다가옵니다. 국가를 뒤흔들었던 흥망성쇠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어디인가, 그 방향을 가늠해보게 하거든요.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이제 어려워하지 말고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로 함께 해요!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교보문고>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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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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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몰랑몰랑, 흐물흐물하게 만들어주는 해피한 이야기들]

 

[오후도 서점 이야기] 로 일본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친근한 무라야마 사키가 이번에는 공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해피엔드 에어포트]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사실 공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여행을 가거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용하는 공간, 그 뿐이었습니다. 굳이 떠올리자면 '해피'라는 단어보다는 허전함, 쓸쓸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장소라고 할까요. 누구나 훌쩍 떠나버리고 머무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해피엔드 에어포트]를 읽다보니 공항이란 장소가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곳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포기하려는 만화가 료지, 공항의 서점을 지키는 직원 유메코, 33년만에 재회한 단짝 메구미와 마유리, 세계를 유랑하는 마녀 사치코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혹시 '마녀'라는 단어에 '엥?'하지 않으셨나요??!! 전 '오잉? 진짜?' 라며 제 눈을 의심했거든요. 하지만 무라야마 사키의 작품 중에는 [마녀는 꿈을 지킨다] 처럼 마녀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으니, 진짜 마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믿으셔도 됩니다. 네 편의 이야기는 연작소설들로 앞서 등장한 인물이 뒤에 등장하고, 뒷 이야기에서도 앞에 나왔던 인물이 언급되기도 하는 형식이에요. 이렇게 보면 우리 인생의 신비함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깨닫지 못하지만 어디선가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그 인연들은 어떤 연유로 우리와 묶여 있는 걸까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공상 한 가운데로 빠지고 맙니다.

 

우연히 만난 누군가로 인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료지의 이야기도 좋았고, 33년만에 재회한 메구와 마유리의 사연도 감동적이었어요. 특히 그녀들의 성숙한 마음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니!! 누군가가 저를 이렇게 생각해준다면 저라도 메구미처럼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을 거예요.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공항의 서점에서 일하는 유메코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유메코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꿈결같은지요!!

 

책에는 마법의 힘이 있단다.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나 글을 보기만 해도 여기 없는 세계가 보이다니 신기하지? 마법의 주문이 적힌 것 같지 않니? 책은 틀림없이 마법으로 이루어졌어. 책방에서는 마법을 진열하고 파는 거야.

p 124

 

맞아요! 이 말씀이 곧 제 마음!! 한 페이지만 펼쳐도 우리를 바로 다른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책이란, 세상에나, 대체 얼마나 멋진 존재인지요!! 그런 책을 '마법'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그만 마음이 몰랑몰랑 흐물흐물해졌어요.

 

하루만 있으면 저도 공항에 갑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분명 정신이 없을 테지만, 이제는 공항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아요. 작가님의 시선에 빙의되어, 공항의 따스하고 포근한 기분을 만끽하고 오겠습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열림원>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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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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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통해 생각해보는 역사를 향한 태도]

 

가부키좌에서 가부키를 관람하던 황태자비 마사코. 황태자비라는 신분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았던 그녀가, 중고등학교 동창인 두 명의 여성과 잠시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 직후 벌어진 황태자비 납치사건!! 당혹스러움에 우왕좌왕하는 일본 경찰들 속에서 엘리트인 다나카 경시정이 수사를 지휘하게 되고,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경호팀을 따돌리고 동창생과 수행비서까지 기절시킨 뒤 유유히 가부키자를 빠져나간 범인이 여장남자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게다가 범인이 두 명이고 그 중 한명은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일본 내 혐한 감정이 들끓고 외교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죠. 범인의 요구는 단 하나, 명성황후 시해 당시의 한성공사관발 전문 제435호를 전 언론에 공개하라는 것 뿐입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핍박받았던 이야기에는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질 겁니다. 실제로 한국 고대사 수업을 받을 때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도, 일제강점기 시작과 의병, 독립운동 부분에서는 두 눈이 초롱초롱해져요. 비록 독립운동의 내부 사정과 무장단체 조직 내용에 있어서는 머리를 쥐어뜯더라도 우리 민족이 당한 핍박과 설움에 대해서는 가슴 깊이 한국인으로서의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거겠죠. 아이들이 흥분하며 열중하는 수업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었습니다.

 

얼마 전 영화 <영웅>을 봤는데, 을미사변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짓밝고 칼로 몇 번씩이나 찌르고 장기를 꺼내고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습니다. 아무리 힘이 없는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한 인간을, 한 나라의 국모를 저리 잔인하게 죽일 수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힘이 없는 나라는 참으로 바람 앞의 등불같은 존재구나 라는 좌절감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작가는 한성공사관발 전문 제435호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서 차마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 추측했어요. 작품 속 범인은 황태자비 납치를 빌미로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기를, 그리고 왜곡된 역사를 기반으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그것을 이용해 잘못된 역사를 후세에 전수하고, 과거에 대해 반성과 사죄도 없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려는 인물들에게 일침을 가하려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당할 당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죠. 작가가 제시한 내용조차도 증명되지 않은 낭설이라 일축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성황후에게 사후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가 아닐 거예요. 작가가 우리에게 묻고 싶은 것은 우리는 역사 앞에서 비겁하지 않을 수 있는지, 불의에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무릎 꿇은 자가 있는가 하면 궐기한 자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분연히 일어난 이들이 오히려 총을 맞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 옳지 못한 상황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 없으니까요. 과연 책을 읽는 너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질문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 속에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마치무라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자학의 역사'에서 벗어나 '자랑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자학인가요. 그렇다면 과연 일본은 우매한 민족을 일깨워줬다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제국주의에 물들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핍박한 것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기본 소양이니까요. 일본 또한 국제사회에서 성숙하게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해 진심어린 참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작가님도 일본을 적대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잊지 말자고 하는 취지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이예요. 부디 작가님의 의지대로 일본에서도 이 책이 출간되어 역사 왜곡에 문제에 있어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실 책을 읽고 리뷰 쓰기가 힘들었어요. 마음은 무거운데 할 말이 없어서요. 다만, 오랫동안 김진명 작가님의 책을 읽어온 독자로서 다시 한 번 가슴에 뜨거운 불 하나 틔워봅니다. 애국심에 더해 우리가 앞으로 일구어나갈 역사 앞에서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 출판사 <이타북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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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사라진 세계
모리타 아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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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제한되어 있기에 더욱 안타깝고 슬픈 사랑]

 

고1 겨울,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키토는 갑작스레 닥친 불운에 모든 희망을 잃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위로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뿐이지만, 그조차도 덧없이 느껴집니다. 부모님은 물론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마음을 터놓지 못한 채 우울감에 빠져 있던 그는,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하루나라는 소녀를 알게 돼요. 하루나는 이미 반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이지만 밝은 태도로 조금이라도 더 이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매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와 만나게 된 후 아키토는 하루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죠. 남은 시간을 하루나를 사랑하는 데 바치기로 한 아키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별의 시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창 팔팔하게 삶이 주는 기쁨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하는 때에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얼마나 절망적일까요. 전혀 예상도 못했던 어두운 미래.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면 지금 열심히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염세적인 태도에 빠진다 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제가 아키토였어도 조금은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 같아요.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하루나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이 될까 봐 자신의 상황을 밝히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고자 뛰어다니는 아키토는, 삶의 마지막 순간 비로소 진정한 무언가를 만난 듯한 기분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지금 내 상황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록 골골대기는 해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니고,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해도 하루하루 아이들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저는 무엇을 할까 생각해봤어요. 마지막인만큼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마도 아이들이 자라는 데 있어 엄마를 기억할 수 있게 이런저런 준비를 할 것 같아요. 영화에서처럼 생일에 맞춰 배달될 수 있도록 한 20년치 생일 케이크를 예약해둔다든지, 20년 분의 편지를 쓴다든지 하면서 아이의 미래를 그리고 애틋한 마음을 남기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요??!!

 

제목이 [봄이 사라진 세계]라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가 했는데, 일본어로 '하루'는 봄을 의미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하루나를 잃은 아키토의 세계는 과연 어땠을까요. 시간이 정해진, 병이 아니었다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났을 청춘들의 이야기라 더욱 가슴 아팠던 이야기.

 

**출판사 <모모>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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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 저택 사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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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미미 여사가 대답합니다]

 

타임슬립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느 시대로 갈 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 고대 이집트 문명에 빠져서, 할 수만 있다면 3천년 정도 과거의 이집트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아동용 소설에 등장한 파라오가 정말 너무 멋있게 그려져 있었거든요. 소설 속 주인공은 비록 자신의 힘으로 타임슬립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정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타임슬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 책과 매체를 통해 다양한 이론을 접했지만 뼈속까지 문과생인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면 어디로 할 것인가,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그런 망상을 즐기는 수준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가모 저택 사건]은 우연히 과거로 타임슬립한 주인공이 그 시간 속에서 벌어진 사건을 추리하는 내용이예요. 주인공 오카다 다케시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예비교 (우리나라의 재수학원같은 이미지입니다)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러 도쿄로 상경했습니다. 때는 1994년(헤이세이 6년). 착잡한 마음으로 구 가모저택이자 현 히라카와초이치반 호텔에 투숙한 다카시는 주변 공기마저 일그러뜨릴 정도로 어두워보이는 남자를 목격한 후 자꾸만 그가 신경쓰입니다. 게다가 분명히 비상난간에서 그 남자가 떨어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어디서도 그의 시체를 발견할 수가 없는 기묘한 상황에 놓입니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시험에나 신경쓰자는 마음으로 잠들기 전 켜둔 TV에서 방송된 2·26사건.

 

쇼와 11년(1935년) 2월 26일 새벽, 일본 군대 내에서 쿠데타가 발생합니다. 당시 육군 내의 황도파와 통제파가 심각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는데, 황도파의 젊은 청년 장교들이 결기하여 당시의 내각총리대신, 내대신, 시종장, 대장대신 등의 중신을 습격하고 암살해요. 이것이 바로 2·26사건입니다. 일본은 이 사건이 일어난 후 군부가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군부의 국정에 대한 발언권이 증가했으며, 이것은 곧 군부 독주에 의한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바로 이 사건을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다카시는 곧바로 잠이 들고, 호텔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죽음을 앞둔 그를 구하러 온 것은 다름아닌 정체불명의 기묘한 남자. 히라타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 다카시를 구해 데리고 간 곳은 2·26사건이 일어나려는 쇼와 11년의 도쿄, 자신이 현대에서 머물렀던 히라카와초이치반 호텔의 전신인 '가모 저택'이었습니다. 호텔 화재 사건으로 입은 상처와 타임슬립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다카시는, 처음에는 히라타의 말을 믿지 않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하나하나 인지하면서 자신이 정말로 육군 대장 가모 노리유키의 집, 가모 저택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가모 대장의 죽음에 얽힌 비밀 한 가운데에 서게 됩니다.

 

어려운 작품이 아닌데 개인적으로 내용 정리가 쉬운 작품은 아니었어요.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군대 용어들이 등장하기 때문인 듯 한데, 어느 지점만 넘어서면 두꺼운 책의 페이지가 슉슉 넘어갈 정도로 매우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우리가 타임슬립을 생각할 때 빠지지 않는 논란이 '과거의 사실을 바꾸면 미래도 바뀔 수 있나'에 관계된 것이잖아요. 미미 여사는 이것에 대해 '역사는 바꿀 수 없고, 이미 정설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에 이의를 제기해 그런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 기존 통설에 수정을 가하는 역사 수정주의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삼송 김사장님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저는 2·26사건이 등장할 때부터 내심 불안했어요. 쇼와 11년, 1935년이면 일본이 제국주의를 발판 삼아 전쟁에 한창이던 시절, 우리 민족을 핍박하던 시절이기 때문이죠. 비록 아무리 좋아하는 미미 여사라 할지라도 만약 일본의 군부가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과 그 후 미친 영향들에 대해 정당화하려고 한다면, 나는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을 아무 거리낌없이 읽을 수 있을까 하고 우려했어요. 다행히도 그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고, 정말로 삼송 김 사장님의 말씀대로라면 어쩌면 미미 여사는 일본이 과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에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여행자인 히라타의 고뇌는, 지금까지 타임슬립을 즐거움으로만 생각했던 제가 한 번도 고려하지 못했던 지점이었어요. 어떤 사건이 벌어질 지 이미 알고 있는 그로서는 큰 사고를 막아보려 애쓰지만 대신 그에 준하는 사고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에 좌절감과 함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인물입니다. 이에 그는 역사를 방관하거나 '가짜 신'으로 살기보다 자신이 돌아간 역사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살고 죽기를 희망해요. 그의 고뇌가 굉장히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다카시가 쇼와 11년의 시대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어떻게든 현대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준 하녀 후키가 사망하는 미래를 보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또한 감동적입니다. 한 인간의 결심을 바꾸는 것이 결국에는 타인을 향한 애정과 연민이라는 점이, 전쟁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인지 한층 강렬하게 다가와요.

 

감동받은 포인트가 꽤 많은데 너무 많이 이야기했다가 오히려 책을 읽기 전인 독자들에게 누를 끼칠까 두렵습니다.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결말 부분 또한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 아련함이란!! 역사 속에서 개인은 매우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겠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에도시대물 뿐만 아니라 역시 현대물도 재미있게 쓰시는 미미여사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요 (며칠 전 하라 료 작가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더니 마음이 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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