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쓸모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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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여행의 쓸모'를 생각해보는 시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로망이 하나 있었어요. 아이들이 아무리 어려도 여행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가 않더라고요. 아니, 현실적인 어려움보다도 저의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여기 저기 둘러보아야 하는 여행은, 저의 신경을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까지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물놀이가 가능하고 리조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아쉬웠어요. 제 안에서는 여전히 이건 '진짜 여행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전 홀로 훌쩍 떠나는 그 자체를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요. 얼마 전 남편이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관광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홀로 다른 공간에 있는 그가 얼마나 부럽던지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저의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된 이상 욕심내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편안해야 가족들도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물놀이나 휴식이 아닌 여행은 적어도 1년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에 여행서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정여울님의 글이라면요. 여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세상 모든 여행지를 방문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럴 때 깊이 있는 글은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작가가 전달하는 간접적인 경험이, 나의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 우선순위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어디를 가야 나와 내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는가, 조금이라도 더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정여울님의 글과 이승원님의 사진을 보는 내내 마음이 둥둥, 구름처럼 흘러갔어요. 초반에 이어지는 단편적인 글들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 짧게 짧게 읽기에 참 좋았는데요, 마치 어떤 시간의 문이 존재해서 제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찰칵찰칵, 꼭 사진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글들이었다고 할까요. 그 뒤에 이어지는 보다 긴 호흡의 글들을 통해 소개되는 여러 여행지들은 제 영혼에 날개를 달아 순식간에 저를 그 곳으로 인도해주었고요.

 

여행에 대해 여러 시각을 경험할 수 있는 글들이었어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과연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왔지만 그럼에도 또다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한 작가의 희열이 글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왔습니다. 수줍음 때문에 다시 없을 경험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글에서는 제 모습과 겹치는 것 같아 반가웠고 더 많이, 더 오래 여행하기 위해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방법에 대한 글은 신선했어요. 여기에 정여울님이 사랑한 치유의 여행지 TOP 15는 따로 떼어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고, 그 모든 여행지를 거쳐왔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뉴욕,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프랑스 지베르니는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작가님은 여행의 쓸모에 대해 '일상의 뒤치다꺼리에 잠식되지 않는 시간,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시간, 여행하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에게 있어 '여행의 쓸모'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네요. 결혼하기 전에는 지금 여기 있는 나와는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던 게 컸던 것 같아요. 혼자 떠나보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을 마음만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해보는 것. 그 모든 것에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에게 '여행의 쓸모'는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데 있어요. 특히 아이들에게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다고, 현재의 울타리를 넘어서면 너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가득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우리 넷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기억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상하게 정여울님의 글은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늘 그랬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정여울님의 글이라 더 마음이 울렁울렁, 마음 속 날개를 접느라 힘들었어요. 언젠가의 여행을 또 한 번 기약하며, 가고 싶은 장소 리스트라도 작성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출판사 <스튜디오오드리>를 통해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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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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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운명을 써나가는 용감한 소녀, 세상을 구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에서 나아가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 중 하나가 '심청전'입니다. 눈이 먼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바다에 제물로 바쳐졌다가, 용왕님의 자비로 연꽃을 타고 인간 세상에 다시 돌아와 왕과 결혼하죠. 어렸을 때부터 늘 궁금했었어요. 심청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해서 목숨을 구했는데, 그렇다면 바다가 노여워할 때마다 제물로 바쳐진 여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하고요. 바다에 몸을 던진 소녀들은 심청이보다 효심이 지극하지 못하거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했던 걸까요? 아마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전해내려온 이야기겠지만, 모두 심청이처럼 자발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을 거예요. 꽃다운 나이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한때 용왕의 사랑을 받dms 황제가 다스렸던 세상. 그 황제가 북쪽 세력의 침략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용왕이 분노해 이 세계는 극심한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용왕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소녀들을 제물로 바쳐왔어요. 빼어난 미모 때문에 일찌감치 제물로 낙점된 심청, 그런 심청을 사랑하는 이가 미나의 오빠 준입니다. 마침내 심청이 제물로 바쳐지게 되던 날, 미나는 사랑하는 오빠를 위해 심청 대신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죠. 눈을 뜨고 마주한 곳은 혼령들의 세상. 그 곳에서 만난 신(god 이 아닙니다) 과 기린, 남기와 함께 미나는 용왕의 분노를 잠재우고 저주를 풀어야 합니다.

 

미국이 주목하는 영어덜트 작가 악시 오의 [바다에 빠진 소녀]는 우리의 가장 유명한 고전소설 중 하나인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에요. 대신 심청이 아니라 미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나의 운명은 나의 것, 내가 운명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자신을 쫓아오게 만드는 주체적인 캐릭터를 부각시켰습니다. 여기에 미스터리함과 로맨스가 가미되어 환상적인 판타지 문학을 창조해냈어요. 혼령들의 세상에서 한달이 지나면 미나 역시 혼령으로 변해버린다는 설정, 용과 이무기들의 전투, 탈과 다이 등 혼령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들은 흡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심청전'을 기반으로 다양한 우리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선녀와 나무꾼' 같은 전래동화, 은장도와 댕기, 비단 끈과 까치 설화 등의 등장이 이야기를 한층 더 풍부하게 해요. 이런 작품이 미국에서 탄생해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기도 합니다. 작가 악시 오는 한국계 미국인 2세대로 한국사와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는데요, 아시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물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 문화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인들이 읽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지만 청소년들이 읽으면 분명 열광하게 될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해요. 무엇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미나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것일 테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향수를 느끼면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미나의 사랑과 성장을 그리고 있는 [바다에 빠진 소녀]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봅시다.

 

**출판사 <이봄>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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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프럼 더 우즈 보이 프럼 더 우즈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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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무더위를 잊게 해 줄 할런 코벤의 신작!!]

 

바야흐로 스릴러의 게절, 여름입니다! 스릴러는 어느 계절에 읽어도 항상 재미나지만 유독 여름에 더 끌리는 것은, 스릴과 긴장감으로 무더위를 잊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 아닐까요. 스릴러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이름, 바로 할런 코벤입니다! 저에게 할런 코벤이란, 하나의 작품 안에서 여러 번의 반전으로 뒤통수를 마구 때리는 작가 중 하나예요. 뒤통수를 자꾸 맞아도 즐거운 것은 그 순간 깜짝 놀라는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거든요. 저에게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만큼이나 어지간해서는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보이 프럼 더 우즈]에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뉴저지주 라마포산 숲에서 여섯 살에서 여덟 살로 추정되는 '야생 소년'이 발견되었는데요, 이 아이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 '와일드'입니다. 자신이 왜 숲에 버려진 건지, 도대체 얼마 동안 숲에서 살아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죠.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며,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가 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와일드는 특수부대에 들어가기도 했다가 탐정으로 일하기도 했다가, 아주 복잡한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왔어요.

 

그런 그를 받아들여준 이는 데이비드. 숲에서 와일드를 처음 만나고도 당황하지 않은 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와일드와 소중한 친구가 된 데이비드는, 하지만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후 데이비드의 아들 매슈의 대부로서 이 가족을 보살펴주던 와일드는, 어느 날 매슈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아요. 학교에서 잔인하게 따돌림을 당하던 나오미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거죠. 나오미의 실종 앞에서 와일드에게도 말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매슈. 그런 아이의 부탁에 와일드와 매슈의 할머니이자 변호사로 일하는 헤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나오미의 실종,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음모와 진실이 와일드의 손에서 밝혀져요!!

 

와일드의 출생의 비밀도 궁금했지만, 그 문제는 이번 작품에서 다뤄지지 않습니다. 시리즈로 기획된만큼 다음 작품에서 밝혀질 것 같은데, 저도 헤스터만큼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우리 조금만 참기로 해요. 그 보다는 이 10대들의 폭력, 어쩌면 좋을까요.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한 사람의 내면을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언행들에 한숨이 나옵니다. 사라지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돼요. 그래서 나오미가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요. 여기에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만한 스캔들이 개입되다니,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지만 이 또한 작가님의 덫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 할런 코밴은 호흡 곤란을 겪게 하는 작가였어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반전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자주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 호흡이 좀 더 깁니다. 예전 읽은 작품들이 자주 등장하는 반전으로 인해 가볍게 슉슉 읽을 수 있는 리듬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반전보다 캐릭터 구축과 긴 호흡에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그래도 역시, 재미있습니다! 마음 먹고 읽기 시작하고 한 자리에서 휘리릭 2/3정도 읽고, 아이들이 하원한 뒤에도 틈틈이 읽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다음 편이 너무 기다려져요. 대체 왜 와일드가 숲에 버려지게 된 건지, 아니 버려진 게 맞는지, 그의 출생의 비밀은 무엇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차라리 다음 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읽을 것을요! 빨리 다음 편을 내놓으시지 말이쥬!!

 

**출판사 <문학수첩>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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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은 부모는 없다 - 사춘기에 가려진 아이들의 진짜 고민과 마주하고 이해하기 바른 교육 시리즈 30
성진숙(우리쌤) 지음 / 서사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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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와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시간]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울컥합니다. 나도 분명 아이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는데 왜 자꾸만 상처를 주게 되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해봐요. 요즘은 특히 부쩍 말을 잘하게 된 두찌와 핑퐁게임을 하는 느낌이예요. 엄마는 나 별로 안 사랑하는 것 같아, 엄마는 나한테 맨날 화만 내, 엄마는 왜 내 말 안 들어줘. 분명 저는 두찌 엄청 사랑하고 맨날 화만 내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하던 것도 멈추고 집중하거든요. 그런데 두찌는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요. 첫찌는 첫찌대로 엄마는 나보다 튼풀이만 더 예뻐하는 것 같아, 엄마 내가 말하고 있잖아-하며 서운함을 토로합니다. 그 와중에 저희집 영째, 옆지기도 옆에서 같이 말해요. 자기 얘기 좀 들어달라고요. 그럼 이제 한 명씩 줄을 세워놓고 이야기를 듣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거죠.

 

아이들이 자랄수록 육아가 정말 보통일이 아니구나 느낍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면 오케이였던 보육의 시기를 지나 이제 학습과 정서까지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시기로 진입했다는 걸 실감해요. 부모 또한 육체 피로의 단계에서 정신적 피로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는 겁니다. 저 나름 주변에서 엄청난 인내심을 가진 엄마라는 말 듣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 아니에요. 좋고 싫은 거 분명하고 하기 싫은 거 진짜 하기 싫어하면서 눈 감아버릴 때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듯이 우리 아이에게만은 어떻게든 나의 나쁜 점을 보여주기 싫잖아요. 혹시라도 그런 내 모습을 닮을까봐요. 그런데 엄마인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화산 폭발하듯, 말 그대로 뚜껑이 열릴 때가 있어요. 그럼 이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쏟아지고, 그리고 또 후회하고, 자책하는 단계를 밟게 됩니다. 그러면서 엄마의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는 것 같아요. 나는 왜 이럴까, 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자꾸 상처를 주게 되는 걸까.

 

자녀교육에 관한 책인만큼 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는데, [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은 부모는 없다] 속 성진숙 선생님도 같은 절차를 밝고 계신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엄마이자 교사인 그녀의 모습은 바로 제 모습이기도 하거든요. 18년 경력에 고학년 담임만 9년으로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이신 선생님이 만난 아이들, 그 아이들의 고민,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느꼈던 어려움과 집안에서 갈등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 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이 눈높이로 이해하기'가 실려 있어 아이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마무리 되어 있고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마냥 어리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 고민과 생각을 담고 있을 줄이야. 책 속 아이들에게 제 아이들이 투영되더라고요. 엄마가 아니라 조금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양한 상황이 제시되어 있지만 제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였습니다. 아마 많이 들어보시고 공감하시는 말일 거에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학교에서 '각 반의 분위기와 담임교사의 분위기가 점점 닮아간다'는 모습에 대해 기술하신 부분이 확 와 닿았습니다. 왜 학교에서 학급 관리 하는 것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집안 분위기 조성에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못썼던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랄까요. 결국 아이들 개개인의 삶의 태도나 말투, 일상에서의 행동의 근원지는 부모라는 겁니다. 이 챕터를 읽고 나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무게감이 갑자기 더 커지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 말씀처럼, 세상의 모든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실 거예요. 저 또한 그렇고요. 그런데 우리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한 번 크게 심호흡 해봐요. 내가 정말 우리 아이 말을 잘 들어주고 있는 게 맞나, 대화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아이인 게 맞나, 아이가 '손님'이나 어른이어도 내가 이렇게 화를 낼 수 있는가 등등 지금 상황을 체크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 과정에 이 책이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은 부모니까요!

 

**출판사 <서사원>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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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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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 여사가 안내하는 탈출과 복수의 가족 잔혹극]

 

책을 읽다보면 종종 두통이 엄습해올 때가 있습니다. 혹시 저같은 독자 분들이 또 계실지 모르겠는데, 주로 읽기 불편한 상황이 등장한다든지, 꿈속까지 쫓아올 것 같은 공포스러운 장면이나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을 읽을 때 겪는 증상이에요. 그런 작품을 쓴 작가의 책에는 또다시 손을 대기가 무척 어려워지죠. 저에게는 '조이스 캐롤 오츠'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읽고 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오츠 여사의 글은 또 읽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오츠 여사 작품의 매력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지만 [카디프, 바이 더 시]는 '여성'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인상적인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표제작 <카디프, 바이 더 시>는 어린 시절 입양된 클레어가 갑자기 친할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잊고 살았다고 여겼던 자신의 출생. 인생에서 한쪽으로 미뤄두었던 출생과 입양에 대한 궁금증이 막힌 댐이 무너지듯 흘러넘치고, 결국 클레어는 자신의 '진짜' 고향으로 향해요. 그 곳에서 맞닥뜨린 이모할머니들과 작은 아버지 제러드, 그리고 가족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클레어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어디쯤으로 이끌어가고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듯한 인상을 남기며 마무리됩니다.

 

[카디프, 바이 더 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인물들이에요. 입양되기는 했지만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잘 성장해왔고 미술을 전공해 연구 중인 클레어는 물론, 집 안팎에서 성적으로 희롱당하며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느껴지는 길고양이에게 집착하는 <먀오 다오>의 미아, 이기적이고 차가운 강사 사이먼과의 원하지 않은 관계로 임신한 채 그 사실을 밝히지도 못하고 자신과 이성적인 관계를 원하는 노교수 사이에서 흔들리는 <환영처럼 : 1972>의 앨리스, 전처가 아이를 살해하고 자살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전처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어버린 <살아남은 아이>의 엘리자베스까지 모두 자신 이외의 환경 때문에 상처받고 흔들리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내면의 상처와 불안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조차 통제력을 잃은 여성들. 그녀들에게 종교는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무엇도 아니며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등장합니다. 앨리스에게 폭력을 가한 사이먼이 '예수님, 성모님, 요셉님!'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조소가 새어나와요. 클레어가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을 살해했다고 믿는 제러드 또한 신부가 되려고 준비했다가 실패한 인물로, 어쩌면 오츠 여사는 인간의 삶에서 종교의 힘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교란 무의미한 것으로 등장합니다.

 

연약하고, 남성들의 물리적인 힘과 통제, 개개인의 트라우마로 상처받은 그녀들이지만 그럼에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요. 의붓딸인 미아 앞에서 성기를 드러낸 양아버지에게 커다랗게 코웃음을 치며 비웃는 미아나, 임신한 상태로 아이의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앨리스를 보면 그래도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결연히 이어나가려고 하는 의지가 보임과 동시에, 어째서 여성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하는 슬픔 같은 것도 느껴져요.

 

에드거 앨런 포의 여성형이라는 평가를 받는 오츠가 보여준 4가지 가족 잔혹극은, 어쩌면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구태여 서술하지 않는 것들을, 오츠 여사이기에 종이에 옮겨 적을 수 있었던 거죠. 때로는 스릴러인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환상특급을 보는 것 같기도 한 그야말로 '광기'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네 편의 이야기. 오츠식 고딕 서스펜스 세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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