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슈 파랑
기 드 모파상 지음, 송설아 옮김 / 허밍프레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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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네 편의 이야기]

 

어린 시절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를 읽은 뒤로 그의 작품을 읽은 뒤에는 늘 기대를 하게 됩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감사하고도 즐거운 기대인데요, 그의 글에는 미스터리물이 아닌데도 반전이 숨어 있고, 삶의 깊이를 맛보게 해주는 문장과 절묘한 묘사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어요. 이번에 만난 [무슈 파랑]은 생각보다 책의 두께가 얇아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기 드 모파상다운 필력은 여전해서 짧다고 불평할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표제작인 <무슈 파랑>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주인공인 파랑씨는 부유하지만 매우 선량하고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아들인 조르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나 크고 깊죠. 하지만 아내인 앙리에트는 그런 파랑을 조롱하고 경멸합니다. 파랑의 행동과 말들이 자신을 짜증나게 한다며 그를 비난하는 앙리에트의 모습은 저에게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보였어요. 그렇다면 그들의 아이, 조르주에 대한 책임감은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거죠??!! 닥쳐온 파국 앞에 아내는 파랑을 가장 상처줄 수 있는 말을 굳이 꺼내고, 그 말은 파랑의 남은 생애를 지배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러요.

 

파랑의 남은 생애를 상상하면서 제 마음은 파랑과 같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끝없는 고통과 처절한 분노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들을 빼앗긴 아버지의 아픔은 그의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먼서 한층 깊어지는 듯 했는데요, 주인공에게 Parents라는 이름을 붙인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통쾌함과 동시에 허무함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는데, 그 순간을 파랑은 상상하며 살아온 것일까요. 그의 삶이 한 없이 가엾게 여겨졌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예요. <사랑>은 사냥터의 새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재조명함과 동시에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바위가 쩍 갈라질 정도의 추위' 같은 표현이나 암컷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수컷의 모습에서 사랑의 본질을 그리는 표현이 무척 감탄스러웠습니다. <위송 부인의 장미 청년>과 <테오듈 사보의 고해성사>는 물질 앞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인간의 신념을 그리고 있어요. 두 작품 속에도 묘사는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그 풍자와 해학에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그 깊이와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그동안 국내에서는 만나보지 못했던 작품들이었던만큼 더 뜻깊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한편 끝날 때마다 아쉬움을 금치 못했는데, -기 드 모파상 단편선 1-이라고 하는 걸 보아 분명 2도 있다는 뜻이겠죠! 분명 다음 작품들도 준비되어 있을 거라 믿으며 출간될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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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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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제는 하나의 말을 해야 할 때]

 

2023년은 9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23년 9월 1일 리히터 규모 7.9의 위력을 지닌 지진이 일본 관동 지방을 강타한 후, 자연재해보다 더한 지옥도가 펼쳐지죠. 지진으로 입은 직접적인 피해는 말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지진을 계기로 무차별적인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마치 지진 자체가 일어난 것이 조선인 탓인 것처럼. 조선인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라는 소문 때문이었다고 전해지며, 이는 경찰 등 공권력의 개입에 의해 퍼진 것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내부의 두려움을 외부인에게 집중해 폭력을 동원해 쏟아내며 일본인들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은, 이미 과거를 통틀어 여러 번 보여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모과 작가님의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이하여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학살당한 사람들, 그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님이 앞장서 들어주셨고, 이제는 우리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이 책을 통해 아마도 많은 이들이 말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겁니다. 설사 삶에 치여 그들의 목소리를 또 한 번 잊게 된다 해도, 한 번 들려온 그 목소리는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분명 계속해서 울리고 있을 거라 믿어요.

 

관동대지진 이후 벌어진 잔혹한 학살 위에 작가님은 SF 장르를 도입해 민호와 다카야라는 인물을 덧입힙니다. 조선인 유족을 대표하는 민호와 달리, 다카야는 관동에서 그런 학살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단체의 후원을 받아 과거의 현장을 관찰하기 위해 투입되었어요. 싱크로놀로치 채널을 통해 과거로 갈 수 있게 된 민호는 할 수만 있다면 학살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죠. 그런 민호의 바람과는 달리 역사는 쉽게 바뀌지 않고, 민호 또한 역사 속 한 명이 되어 비참한 죽음을 반복할 뿐이에요.

 

분명 역사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호의 개입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해요. 민호의 목소리가 그들의 등을 떠밀고, 선량한 일본인들이 조선인 학살을 막아보려 움직이는 데 힘을 실어주죠. 선조가 히로시마 원폭 사고를 겪어 그 후유증으로 대를 이어 고통스러워했고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으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관동대지진을 바라보려 했던 다카야 또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역사는 변하지 않겠지만 그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이 없다 해서 잔혹한 학살을 묻어버리려고만 하는 들리는 목소리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은 우리가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만 원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의 우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학살과 혐오의 시간을 벗어나 손을 맞잡은 민호와 다카야처럼요.

 

**<래빗홀>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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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번 버스의 기적
프레야 샘슨 지음, 윤선미 옮김 / 모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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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하고 포근한, 달콤쌉싸름 초콜릿 같은 이야기]

 

부모님의 강요로 다니던 의대를 그만두고 남자친구 사이먼의 회사에서 경리 일을 맡아보던 리비. 8년이나 만난 그와의 결혼을 꿈꿨지만 리비가 맞닥뜨린 것은 사이먼의 이별 통보입니다. 합리적이지만 냉정한 언니의 집에서 조카를 돌보며 숙식을 해결하게 된 리비는 어느 날 88번 버스에 올랐다가 노인 프랭크를 만나요. 60년 전 단 한 번 만났던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 후로 오랫동안 그녀를 찾아헤맸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프랭크를 위해, 리비와 프랭크의 요양보호사 딜런 그리고 수많은 이웃들이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60년 동안 첫사랑을 찾아다닌다니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60년이라니,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 수많은 세월동안 첫사랑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는 걸까요.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특별히 부탁하지 않았어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된 데는, 프랭크의 그런 간절함을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할까요.

 

[88번 버스의 기적]은 프랭크의 첫사랑을 찾는 이야기이자 리비의 성장담이기도 해요. 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차마 밝히지 못한 채 의대에 진학했지만 공부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결국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리비. 그 후로도 리비의 삶은 주체적이라기보다 누군가, 특히 사이먼에게 의지해왔던 시간들이었죠. 하지만 그 사이먼이 이별을 통보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 와중에 프랭크와 딜런을 만나고 새롭게 그려보게 된 미래 속에서 마침내 리비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걸어나가게 됩니다. 물론 이 책은 리비와 딜런의 러브스토리이기도 하고요!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우리와 서양의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리비와 사이먼의 관계가 정말 쿨하게 그려져 있더라고요. 아무리 친구로 만났고 오랜 시간 함께 해 왔다고 해도, 헤어진 마당에 어찌 그렇게 합리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뭔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알쏭달쏭한 기분이었습니다.

 

작품에는 리비와 프랭크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페기'라는 한 여인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도 함께 실려있는데요, 저는 당연히 이 페기가 프랭크의 첫사랑 그녀일 줄 알았어요. 그러나 반전! 이 달콤쌉싸름한 반전 앞에서 마음이 몽실몽실해졌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르는 [88번 버스의 기적].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여러분도 저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 스푼은 더 달달하게 바뀌어 있을 거예요.

 

아, 프랭크와 첫사랑 그녀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내셔널 갤러리'였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요. 저도 예약했는데, 그 매력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출판사 <모모>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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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me 일 센티 플러스 미 - 매일 더 나은 1cm의 나를 찾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1cm 시리즈
김은주 지음,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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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이 책은 나를 위한, 모두를 위한 책입니다]

 

저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책들을 잘 읽지 않는 편이에요. 그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다른데 그가 이렇게 해서 잘 되었다 식의 이야기는 읽으나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럼에도 저 또한 에세이를 찾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마음이 힘들거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운명같은 문구가 짠!하고 나타나주기를 바라거든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제 앞에는 꼭 그런 책들이 나타나주곤 했었어요. 마치 기도하는 심정으로 읽다보면 단 하나의 문장으로도 구원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나타난 제 운명책은 바로 [1cm+me] 입니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이 때만이 아니더라도 제가 챙겨 읽는 몇 안 되는 에세이 중 하나인 이 책이, [1cm] 출간 10주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재정비되어 찾아온 지난 일러스트들과, 40여개의 새로운 일러스트들로 반가움과 힐링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답니다.

 

[1cm] 시리즈 하면 역시 귀엽고 예쁜 일러스트를 먼저 떠올리실텐데요, 이미지만 내세운 에세이들과는 달리 문구에도 깊이가 담겨 있어요. 그것은 아마도 김은주님과 양현정님의 콤비 플레이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각자의 장점을 내세워 독자에게 그야말로 최상의 책을 선물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느 한쪽이 무너지지 않고 두 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탱해준다는 그 느낌이, 참 좋습니다.

 


 

두근두근, 어떤 문장이 나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줄까 기대하며 펼친 책 속에서 <독서라는 더하기와 빼기>라는 챕터가 먼저 눈길을 끕니다.

 

어떤 책은 좋은 생각을 더하기 위해 읽지만

어떤 책은 나쁜 생각을 쓸어내기 위해 읽는다.

p41, 42

 

딱 지금의 제 상황과 어울리는 문장이라 가슴에 훅 들어왔어요. 제가 이 책을 펼친 이유가 바로 '나쁜 생각을 쓸어내기 위해서'였거든요. 복직을 앞두고 고민이 어마어마해요. 평소에도 자잘한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저에게 환경이 달라진 아이를 두고 복직하는 것은 거대한 벽을 맞닥뜨린 것이나 다름 없는 느낌입니다. 유치원이라면 퇴근 후에 아이를 찾으러 가도 충분한 시간이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해 일찍 하교하는 아이를 위해 동선을 짜고 제가 없는 빈자리를 메꿔줄 방안을 찾는 게 여간 머리 아픈 게 아니더라고요. 거기다 7월에 있었던 너무나 슬픈 소식으로 인해 복직해도 제가 굳건하게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도 더해져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꾸만 나쁜 쪽으로 기울어지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어쩌면 이리도 제 마음을 딱 아시는지!! 이것이 운명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1cm] 시리즈에는 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해주는 글들이 많았어요. 이번에도 그런 문장이 눈에 띄어 소개해봅니다.

 

긍정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닌

'상식'

 

나쁜 일을 예상하다가 나쁜 일을 겪으면

실망도 적을 것이라는 이유로,

 

좋은 일을 기대할 때의 설렘과 즐거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p148, <긍정 이론> 中

 

현 세태와 잘 어울리는 문구도 있었습니다.

 

상처받아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은데

상처를 준 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아이러니한 것은 상처를 준 사람조차 힐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범죄자, 학폭 주동자와 그 부모, 사내 왕따 주동자, 괴롭힌 사람마저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p 81, <힐링 말고 사과가 필요할 때> 中

 

따스한 느낌이 대부분인 글귀 중에서 <힐링 말고 사과가 필요할 때>는 촌철살인이라고 해도 좋을 강함을 풍깁니다. 자신의 잘못은 알지도 못한 채,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상대방에게만 사과와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저는 유독 얼마 전 벌어진 서이초 선생님 사건이 생각나 마음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이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한 사람들로 넘치게 된 건지, 잘못을 인정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된 건지요. 부디 우리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성스러운 그림들과 글들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좋은 생각으로 이끌어주는 긍정적인 책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목의 'me' 부분에 스티커로 자신의 이니셜을 붙여 자신만의 책으로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어요. 이렇게 제 이니셜을 붙여놓고 보니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오직 나만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요. 더위에 지치고 일에 치이고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꼭 읽어보시기를요. 소소하게 건네는 위로가 얼마나 큰지, 여러분도 저처럼 운명의 문구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출판사 <허밍버드>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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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 타임스 - 외국인이 본 신기한 100년 전 우리나라
이돈수.배은영 지음, 토리아트 그림 / 제제의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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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함께 보고 싶은 역사책]

 

역사 공부를 하면서 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부분이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변화와 격동의 시기였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도 하지만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헤매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철기 시대까지 초롱초롱 빛나던 눈빛이 삼국시대부터는 사그라들고 고려 시대로 넘어가면 거의 혼절.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 그나마 아는 이야기들이라고 반가워하며 신나게 듣다가 근현대사로 넘어가면 다시 머릿속에 태풍이 부는 모양입니다. 그런 저와 아이들에게 딱! 너무 필요한 책이 출간된 것 같아요. 근현대사를 단순히 종이에 적힌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고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음을 알려주는 책, [꼬레아 타임스]입니다.

 

[꼬레아 타임스]는 '외국인이 본 신기한 100년 전 우리나라'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요. 저는 책의 설정인 줄 알았는데 각각의 사진에 대해 몇 년 몇 월 며칠에 쓰인 기사인지까지 아주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근현대사 100년의 이미지를 통해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을 재조명할 수 있어요. 사진도 크고 글자도 큼지막해서 일단은 어린이용이라고 분류되어 있지만 성인인 제가 봐도 너무 유익한 책이에요. 꼬레아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근현대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해를 도와주는 자료집입니다.

 

첫 사진은 <이채로운 조선인의 모습>으로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 1909년 12월 4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사진 기자 톰 브라운이 직접 본 조선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남성들이 쓰던 '갓'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톰 브라운에 의하면 갓은 '말총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뻣뻣하고 투명한 모자'로 묘사되어 있고, 두루마기는 수의를 연상시켜 오싹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기사와 함께 1904년 3월 5일자에 실린 그림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흰 옷에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문 채 밀밭을 지나는 조선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갓에 대해 '이색적인 모자'라고 서술합니다. 사실 지금의 제가 봐도 참 신기한 물건인데 서양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보고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납니다.

 

혹시 '석전'이라는 말 들어보셨을까요? 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는데요, 조선의 민속놀이였대요! 강이나 개천,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편을 갈라 돌을 던지며 싸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라고 합니다. 주로 정월대보름에 행해졌고, 지역에 따라서는 단오나 추석에도 벌어졌는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가 전쟁 대비 군사 훈련으로도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이것을 무예 훈련으로 여긴 일본에 의해 1908년 한양에서 석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니, 또다시 가슴에서 불길이 활활 솟아오릅니다!

 

이 밖에도 서울에 자동차가 최초로 나타났을 때, 대한제국 황제의 행차, 한성에서 열린 전차 개통식,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한 조선 수신사의 모습, 조선 왕비의 암살, 총으로 이토 암살 등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들, 몰랐지만 알면 더 좋을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생활에 치여 역사를 잊고 산 어른들, 이제 막 역사 공부를 시작해 흥미를 붙인 학생들, 어린 아이들 모두와 함께 보고 싶은 책입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제제의숲>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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