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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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다쿠미와 아내 레이코의 아들 도키오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은 뇌신경이 차례차례 죽어버리는 병으로, 십대 중반까지는 아무런 징후도 나타나지 않지만 그 시기를 경계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먼저 운동신경을 서서히 잃게 된다.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장기 기능도 저하되면서 누워 보내는 생활이 2,3년 지속되다가 의식 장애가 나타나고, 마지막에는 의식을 완전히 잃고, 조만간 뇌기능이 정지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괴로움 속에서, 다쿠미는 문득 기억의 한 조각 속에서 아주 오래 전 '도키오'를 만났던 일을 레이코에게 털어놓는다. 지금 도키오는 스물세 살의 자신을 만나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크게 한 방을 노릴 뿐 성실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스물세 살의 미야모토 다쿠미 앞에 정체 불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자신을 도키오라고 밝힌 그는, 일단 자신과 다쿠미가 친척관계라고 하면서 가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사귀고 있던 지즈루가 어떤 경비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달라고 부탁하고, 다쿠미는 마지못해 면접을 보러 가지만 또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벌컥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지즈루에게 변명하기 위해 도키오와 함께 지즈루의 집에 찾아간 다쿠미를 맞이한 것은, 그녀가 떠난 텅 비어버린 방. 지즈루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그녀가 일하던 술집으로 가보지만,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쫓기고 협박까지 당하게 된다. 한 남자와 오사카로 떠난 듯한 지즈루.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평소 근성없고 불성실한 다쿠미지만, 어째서인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도키오로 인해 지즈루를 찾아나서는데!

 

한편 다쿠미에게는 해결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사실 그는 미야모토 집안의 양자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친모인 도조 스미코가 가끔 미야모토 집에 방문해 그와 아주 약간의 시간을 보냈었다.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혼자 다쿠미를 낳아 키웠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에 결국 아들을 양자로 보냈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알려온 것은, 스미코가 재혼해 들어간 집의 의붓딸이었다. 결코 가지 않으리라 결심한 다쿠미에게, '나중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이야기한다'는 말을 남기는 도키오다. 지즈루를 찾으러 가는 도중, 다쿠미는 결국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도키오가 나타난 이후 어쩐 일인지 그의 말에 휘둘리는 것 같은 다쿠미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의젓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그가 싫지 않다. 도키오가 없었다면 친어머니를 만나러 가지도, 지즈루를 찾는 데 그리 열성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키오를 만나 인생의 한 계단을 도약해 성숙한 어른으로 변모해가는 다쿠미는, '나는 당신 아들이야. 당신을 만나러 미래에서 왔어.'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결국 태어난 아들에게 도키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가슴 뭉클한 결말.

 

언젠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백하게 결심하는 다쿠미는, 그렇게라도 해서 도키오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리라.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준 그를. 만약 내가 다쿠미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이자 아들이었으니까. 미스터리 제왕의 면모 뿐만 아니라 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각을 잃지 않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 따스함이 찬란하게 빛나는 멋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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