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8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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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랑을 갈구하던 마리아나가 과연 홀로 설 수 있을까? 물론 그래야만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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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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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베니의 것과 같은, 차분한 목소리의 책 한 권이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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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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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렇게 진한 멜로를 읽는 게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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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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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미스터리의 외피를 쓰고 있긴 하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누가 혹은 왜 죽였느냐‘가 아니다. ‘왜 죽었느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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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산드라 메디치의 딸(알렉상드르 뒤마, 박미경 역. 레인보우퍼블릭북스. 2019. 354쪽)

: 죽은 앙리 2세의 딸이며 현 왕인 샤를 9세의 여동생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그녀의 남편이자 나바르 왕국의 왕인 앙리의 결혼식부터 앙리가 자신의 왕국으로 귀환하기까지의 이야기. 축약본인 건 다 읽고나서 알았다. 이 출판사를 경계했어야 했는데... 오래전 영화 <여왕 마고>를 봤다면 이 책은 안 읽어도 된다. 다들 알다시피, 마고와 앙리의 결혼식은 구교와 신교의 화해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축제의 분위기가 가시기도 전인 성 바르톨로뮤의 날, 구교도들은 축하 사절로 파리에 와 있던 신교도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이 와중에 적진 한가운데에 고립된 나바르의 앙리가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느냐가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 완역이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완역본이었다면 마고가 앙리를 신뢰하는 까닭과 마고의 형제들 간의 갈등, 카트린느의 자식 차별, 마고와 라몰 백작의 애정 등이 더 잘 드러났을 테고 독약과 가짜 편지 등의 도구들도 더 적절히 재미있게 활용되는 걸 보여줬을 텐데.



2. 가르시아 마르케스(권리. 아르테. 2021. 240쪽)

: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라서 집어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보고타를 비롯 콜롬비아의 곳곳을 여행하며 마르케스를 특히 『백 년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책은 사서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도 외면했었는데 이번에 그냥 읽었다. 그리고 구입 안 하길 잘했다 싶었다. 간접 경험으로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보는 건 좋았으나 초반 '호위호식(88쪽)'에서 1차로 정이 떨어졌고 그 뒤로도 이어지는 교정 오류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기획 자체는 좋았지만 작가의 문장도 덜 다듬어진 느낌이어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안 읽을 것 같다. 그냥 『백 년의 고독』이나 한 번 더 읽어야겠다.



3. 콩고, 콩고(배상민. 자음과모음. 2012. 368쪽)

: AD 1만년 발굴된 손가락뼈 하나. 현생 인류의 유전자에 '끼어든 유전자'가 있음을 알게 된 발굴단장은 이 손가락뼈의 주인을 통해 그 비밀을 풀고자 애쓴다. AD 1999년 아이큐 검사에서 78이라는 숫자를 받아 지적장애아로 낙인찍힌 담. 사실은 창 밖을 내다보다 시간이 부족해서 대충 찍었을 뿐이지만 학교와 주위에서는 담을 그냥 바보 취급을 한다. 그런데 전학생 부는 다르다. 담에게 자신은 특별하게 진화했다며 자신과 함께 세상을 바꿔보자고 한다.


액자 소설의 바깥 이야기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부와 담이 정말 진화한 신인류였든 그냥 무모한 꿈을 꾸던 돈키호테였든 서로에겐 서로가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사실 그닥 재밌지는 않았다. 그냥 부와 담 이야기만 해도 충분했을 거 같은데 굳이 액자 소설 형식을 취한 건 작가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에는 이 작가 안 읽을 것 같다.



4. 이야기들(닐 게이먼 외, 장호연 역. 문학동네. 2022. 756쪽)

: 닐 게이먼, 알 사란토니오가 기획하고 엮은 26인의 앤솔러지. 이야기들이 많아서 좋았다. 호러라고는 했지만 무서운 이야긴 없었다. 물론 겪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많았지. 주제가 넓어서 이야기들을 몇 단어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늘 그렇듯, 새 작가를 발견하고 싶은데 새 작가보다는 기존에도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들이 역시나 좋구나 하는 생각을 더 자주 했다. 역시 로런스 블록!



5. 반에 반의 반(천운영. 문학동네. 2023. 300쪽)

: 오랜만에 - 10년 만이란다 - 나온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집. 4편(「우니」,「명자씨를 닮아서」,「내 다정한 젖꼭지」,「봄밥」) 정도가 연작인데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다정도 병'인 사람들의 이야기. 겉으로야 틱틱대지만 결국은 정에 이끌리는. 조금은 갑갑하고 때로는 속 터지지만 결국은 나도 "당연히 우린 함께죠. 고마워요 내 편 해줘서"(32쪽)라는 말에 눈물 흘릴 수 밖에. 가장 좋았던 작품은, 제목부터 너무나 좋았던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어」.



6. 퍼핏 쇼(M.W.크레이븐, 김해온 역. 위즈덤하우스. 2023. 488쪽)

: 실책으로 정직중인 수사관 워싱턴 포. 중범죄분석섹션의 스테파니 플린 경위는 그를 찾아가 현재 수사중인 연쇄살인사건에 합류해 달라고 청한다. 컴브리아 지역의 거대한 돌 유적지 '환상열석'에서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된 시신들이 발견된 것. 포는 거절하지만, 세번째 피해자의 시신에서 포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게 발견되었다는 중거를 보이자 합류하게 된다. 이 증거는 뛰어난 분석가 틸리 프래드쇼가 발견했다. 이 둘이 '이멀레이션 맨'을 잡기 위해 파트너가 됐다.


직감을 따르며 옳다는 확신이 있으면 절차 따윈 무시하고 직진하는 워싱텀 포와 천재적인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고 있지만 사회성 부족만 놓고 보면 자폐스펙트럼인 듯한 틸리 브래드쇼.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하는 티키타카가 정말 재밌었다. 이야기 전개 중 단서가 되는 소금창고 시신을 알게된 게 너무 우연이라 이 부분이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마저 작가의 의도였다. 포가 범인이 누군지 깨닫는 순간에야 나도 알았다(364쪽). 결말도 정말 맘에 들었다. 현실적이지만 사이다도 있으면서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포는 근래에 만나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7. 마더 코드(캐럴 스티버스, 공보경 역. 폴라북스. 2023. 476쪽)

: 2049년 나노구조 생체 무기의 부작용으로 인해 해독제 생산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바이러스가 퍼지고, 인류 종말을 피할 수 없음을 예감한 미 국방연구소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아이들 배아와 그 배아를 품고 출산하고 기를 수 있는 로봇을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50대의 로봇은 사막을 향해 날아간다. 2054년 사막, 카이는 로봇 로지의 자궁 밖으로 나온다. 로지는 카이에게 영상과 대화 등을 통해 인간 세상과 지혜를 가르친다. 


그냥 무난한 SF를 기대했는데 아포칼립스 소설이었다. 난 인류멸망 이런거 안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이 소설은 흥미롭다. 사실 중간에 이론 나오는 부분은 지루했지만,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모성을 과연 과학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는 난자를 제공한 여성의 영혼을 로봇에 동기화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단순히 가치관과 성격만으로는 그렇게 말하기 힘들지 않나? 


그럼에도 마지막 챕터는 감동적이었다. 양육이란 결국 함께 자라는 거라고, 엄마가 아이를 가르칠 뿐 아니라 아이에게서 배우기도 하는 거라고.



8. 단순한 이야기(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이혜주 역. 문학동네. 2022. 448쪽)

: 카톨릭 신부 도리포스는 막역한 지우가 사망하면서 딸의 후견인으로 자신을 지명하자 받아들인다. 비록 그녀가 개신교이긴 하지만. 곧 밀너 양이 도착하고, 도리포스 신부는 당시의 다른 영애들과 달리 발랄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그녀의 성정에 당황한다. 그녀는 사교계에서 이런저런 염문을 몰고 다니며 파문을 일으키는데, 막상 도리포스가 염문의 대상인 공작을 결혼으로 압박하려 하자 그녀는 자신은 공작과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한다.


주인공의 결혼 장면이 이렇게 마땅치않기는 처음이다. 미스 밀너는 혼자 살았어야 했다. 당대의 여성에 대한 시각과는 맞지 않는 성격에 재산도 있으니 기질이 다른 사람과 결혼으로 묶이느니 그냥 혼자 사는 게 낫지. 아무리 사랑해도 사랑은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작품 자체는 재미있고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 귀족들의 위선과 돌려까기 대화 스킬은 정말이지 따라가기 힘들었다. 게다가 남성 캐릭터들이 다 비호감. 그중 샌퍼드 신부는 진짜 짜증나서 제발 이 캐릭터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정도. 하지만 2부에 이르면 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2부는 미스 밀너의 딸 머틸다의 이야기. 2부가 차라리 편하게 읽히기는 했지만 역시 백미는 1부. 좋은 책이며 좋은 작가였다.



9. 고독사 워크숍(박지영. 민음사. 2022. 388쪽)

: 특정인에게 발견되는 심야코인세탁소 명함. QR코드를 통해 접속하면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할 수 있다. 고립되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열 두 번에 걸쳐 올리는 것. 


"우리는 언젠가 고독사할 겁니다. 다만 저는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도 슬픔이 되지 않고 죄의식을 남기지 않는 고독사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슬픔을 지우기 위해 더 오래 애써 살아 내는 것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세상은 이미 너무 슬프고 우리가 하루에 지울 수 있는 슬픔이란 아주 작으니까요," 283,284쪽. 크게 공감했다. 다만 내가 원래부터 읽고 싶었던 내용은 아니었다. 이 워크숍은 너무 형식적이고 교훈적이다. 너무 희망적이고. 



10. 심판의 날의 거장(레오 페루츠, 신동화 역. 열린책들. 2021. 264쪽)

: 1909년 가을. 나(요슈 남작)는 지인이자 궁정 배우인 비쇼프 집에 친구들과 함께 연주를 하기 위해 방문한다. 사실 예전에 비쇼프가 투자했던 건이 잘 되지 않았기에 비쇼프가 알고 충격을 받기 전에 미리 가서 그가 알지 못하게 하려던 것.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나는 계속 허둥지둥 말실수를 하고, 분위기가 쳐지는 와중에 비쇼프는 이상한 자살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저녁 식사 직전, 잠시 자리를 비운 비쇼프는 혼자 별채에 머무는데 갑자기 총성이 두 발 울리고 비쇼프가 죽은 채 발견된다. 아무도 그의 별채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과거 비쇼프 부인과의 인연과 이번 투자 건 등과 맞물려 비쇼프를 자살로 몰아갔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추리물로 시작하지만 오컬트로 방향을 튼다. 초반에는 화자의 어리바리한 행동이 좀 답답하기도 했고, 엔지니어의 헌신이 잘 납득이 안 가기도 했다. 그래도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다만 마지막은 조금 안타까웠다. 물론 이렇게 꺾는 게 이 작가의 특기이기도 한 듯. 두 권 만에 믿고 읽는 작가가 되었다, 내게.



11. 굿 걸 배드 걸(마이클 로보텀, 최필원 역. 북로드. 2023. 584쪽)

: 15세 피겨 선수 조디가 숲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소녀는 마을 축제 후 사촌의 집에서 자기로 되어 있었는데, 집으로 가는 외진 오솔길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이 사건에 불려온 심리학자 사이러스 헤이븐. 그 자신도 범죄 피해의 생존자인데, 자신처럼 범죄 현장에서 살아남아 발견된 소녀가 보호 시설에서 적응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그 소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소녀 이비 코맥은 사이러스를 통해서 보호 시설을 벗어나고자 한다.


처음에 이비 코맥의 이야기와 조디 살해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감이 안 잡혔는데, 사이러스와 이비가 콤비로 활동하게 될 줄이야. 이비의 캐릭터가 좀 감당하기 힘들긴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라면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인 거지(그래도 힘들었다). 게다가 조디 살해 사건도 너무 주먹구구식이고 해결이 늦어서 읽으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DNA 검사를 먼저 하고 용의자를 다그쳤어야지. 심증만 갖고 일단 몰아붙이기부터 하면 어떻게 하니? 이게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각종 검사 결과들이 툭하면 미국까지 다녀와야 해서 너무 답답했다. 미드를 너무 봤나. 암튼 그래도 이 두 콤비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궁금할 수 밖에 없도록 작가가 잘 썼다.



12. 미래과거시제(배명훈. 북하우스. 2023. 344쪽)

: 저자의 감수성이 많이 변형된 듯. 난 이 저자의 감수성을 좋아했는데. 그나마 표제작이 가장 좋았다. 전처럼 모든 작품들을 다 좋아하며 읽을 수가 없었다. 지루하거나 어이없기까지 한 작품도 있었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13. 패스토럴리아(조지 손더스,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23. 248쪽)

: 이 작가의 단편을 좋아해서 도서관 신착도서에서 발견하자마자 집어들었는데 실망했다. 표제작은 그나마 전에 읽었던 단편집과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기에 그럭저럭 읽어냈지만 그 외 「시오크」를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먼저 읽은 작품들에서의 기발함은 사라지고 평범한 루저들의 지랄맞은 현실에서의 도피를 위한 몽상만 가득해서 지루했다. 다 공상하다 깨지는 패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상상만큼 멋있게 살지도,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도 못한다. 새드 엔딩들.


그나마 이 작품들이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라 다행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르도의 링컨』보다 앞선 작품들. 그래서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읽을 기운이 났다. 



14. 함께 걷는 소설(백수린, 천선란 외. 창비. 2023. 244쪽)

: 우정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 청소년이 대상이라고 하는데, 어른들에게도 꽤 울림을 준다. 청소년들도 읽으면서 현재의 우정과 앞으로 성인이 되서 생겨날 혹은 지속될 우정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대비할 수 있을 듯. 마냥 교훈적이지도 않고 모든 인물들이 호감형이거나 선도적이지 않고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천선란. 마음 아프기도 했다.



15. 잔류 인구(엘리자베스 문, 강선래 역. 푸른숲. 2021. 416쪽)

: 개척행성에서 자신에게 함부로 구는 아들과 자신을 멸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며느리를 참아주며 함께 살아가는 오필리아. 어느 날 행성 관리주체인 컴퍼니로부터 해당 행성에서 전면 철수한다는 통보를 받고 다들 이주를 준비하지만, 오필리어는 생산 연령에서 벗어난 자신이 추가 비용 부담의 대상이며 이동 중 극저온 탱크 안에서 사망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고심한다. 마침내 모두가 떠나는 날 오필리아는 몰래 숲으로 숨어들어 행성에 남는 데 성공한다. 혼자서 마을의 발전 시설이며 여러 집들을 둘러보고 정상화한 뒤 텃밭을 가꾸며 보내던 중, 이 행성의 다른 곳에 착륙하려던 사람들이 지적 존재에 의해 공격당하고 죽었다는 교신을 듣게 되고, 행성에 다른 지적 존재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책 소개글을 읽었을 때부터 말렌 하우스호퍼의 『벽』이 생각났는데 저자가 감사의 글에서 언급해서 기뻤다. 책 초반부터 오필리아가 좋았고 이 책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좋았다. 나이 든 개체의 지혜와 지식을 인정하고 적절히 활용하며 대우할 줄 아는 그들이, 만장일치를 지향하는 그들이, 소외를 싫어하는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모든 지식을 받아들일 줄 아는 그들이 좋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중에 행성에 온 '인간 대표'들이 너무 싫었다. 남이 말을 하면 곧이곧대로 들어주란 말이야. 외롭지 않다고, 떠나기 싫다고! 쓸모 없다는 건 편견 때문이다. 누구나 어디에든 쓸모가 있다. 마음을 열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나 자신이 얻게 되는 게 더 많아질 것이다.


그들과 함께 콜로니 3245.12에 살고 싶다.



16. 테라피스트(B.A. 패리스, 박설영 역. 모모. 2021. 420쪽)

: 번역가인 앨리스는 집안 대대로 살던 시골집을 떠나 연인 레오와 함께 살기 위해 런던의 '더 서클'이라는 고급 주택 단지로 이사한다. 장거리 연애 중이었던 그들은 레오의 잦은 출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함께 있을 시간을 늘리려던 것. 익숙한 환경과 친한 사람들을 모두 떠나온 앨리스는 이곳에 정착하고 새 친구들을 사귀고자 집들이 파티를 여는데 초대한 이웃들 중 늦게 온 한 남자가 있다. 이웃 톰으로 착각해서 문을 열어줬던 앨리스는 그가 집안을 둘러본 후 사라졌다는 걸 알아채고, 이웃들에게 묻지만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앨리스는 레오가 이 집을 싸게 구하게 된 배경을 뒤늦게야 알게 되는데...


이 작가 특유의 '찜찜함'이 처음부터 깔린다. 집의 비밀(?)을 알게 된 후의 레오의 반응이 가장 못마땅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앨리스 혼자 갖은 고생을 다하고 상처받고 정신적 타격까지 입는 게 진짜 짜증났다. 물론 읽는 내내 너무 순진하게 사람을 믿는 앨리스도 답답했고. 전체적인 스토리는 잘 짜였지만 범인이 좀 작위적이랄까. 범인은 처음부터 짐작 가능했고 그래서 앨리스가 더 답답했다. 어쨌든 결말은 그나마 다행. 



17. 파인 다이닝(최은영 외. 은행나무. 2018. 232쪽)

: 음식보다는 그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라고 윤이형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으나, 요리하는 행위보다 아무래도 음식에 더 치우친 게 맞는 거 같다. 물론 음식 자체는 소재에 불과하지만. 윤이형 작가와 서유미 작가는 다른 데서 읽은 거였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은선 작가의 「커피 다비드」와 김이환 작가의 「배웅」. 특히 이은선 작가는 심상하고도 세련되게 아픔을 풀어냈다. 이 작가를 기억해 두어야 겠다.



18.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프시케(테오도어 슈토름, 배정희 역. 문학동네. 2018. 288쪽)

: 「임멘 호수」를 전에 읽었는데 좋았던 기억 때문에 읽었고, 역시나 좋았다. 뭐랄까, 서양 낭만주의 근대 문학의 정석 같은 느낌. 「백마의 기사」는 세 겹의 액자 소설로서, 유럽 시골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령 기사의 전설을 얘기해준다. 혁신적인 제방을 쌓음으로써 마을을 지키고자 했지만 현실 앞에 무너진 완벽주의자의 성공과 몰락이 거대한 자연의 힘에 맞서고자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함께 잘 그려진다. 「프시케」는 상당히 귀여운(?) 사랑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야말로 낭만주의의 현현같은 이야기. 여성과 남성의 공간이 철저히 구분되던 시대에 우연히 접촉한 이성과 영원히 맺어진다는 설정은 얼핏 로맨스의 클리셰같기도 하지만 여주인공의 나이(어린이는 벗어났지만 성인은 되기 전인)와 남주인공의 직업(예술가), 장소(해수욕장)의 설정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많은 것을 드러내준다. 


그래도 역시 백미는 「임멘 호수」.



19. 반전이 없다(조영주. 연담. 2019. 344쪽)

: 안면인식장애로 휴직중인 형사 친전. 정년퇴직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손자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가 손자가 '우비 할아버지'를 무서워 한다는 걸 알고 나름 정보를 수집하던 중, 그 우비 할아버지인 독거노인이 자신의 집에서 책더미에 깔려 죽었다는 얘길 듣고 현장을 찾았다가 사고가 아닌 살인임을 직감한다. 게다가 책더미 속 특정 추리 소설들의 뒷부분이 다 사라졌다는 걸 발견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반전이 없는 게 아니라 결말이 없는 거. 모든 추리 소설이 반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반전이 반드시 뒷부분에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큰 기대를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초반에 김나영 형사 캐릭터가 너무 비호감이어서 살짝 짜증났다. 남의 병을 그렇게 테스트하다니, 인성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뭐, 그게 현실이라면 할 말은 없다. 책 속 진실은... 뭔가 작가가 꽤 묵직한 진실을 드러내도록 설계하고 싶어서 욕심을 낸 거 같은데 전혀 설득이 되지 않았다. 디테일 오류들은 물론이고 문장력도 떨어진다. 



20. 소수의 고독(파올로 조르다노, 한리나 역. 문학동네. 2012. 416쪽)

: 素數다. 일곱 살 알리체는 아버지 때문에 타기 싫은 스키를 억지로 타며 대회를 준비한다. 긴장감 때문에 스키복 안에 큰 실수를 한 날, 알리체는 혼자 하강을 하다 추락 사고를 당하고, 어둡고 소심한 성격을 지닌 채 자라나 10대가 되자 거식증상마저 보인다. 정신지체 장애 쌍둥이 여동생이 있는 마티아. 학교에서도 한 번도 여동생과 별개로 여겨진 적이 없다. 처음으로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어느 날, 함께 집을 나선 여동생이 공원에 가고 싶어하자 공원 한구석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친구집으로 향한다. 처음 즐거운 하루를 보냈지만 여동생은 실종되고 마티아는 자해를 하지 않으면 숨이 막힌다. 열 다섯 살이 되도록 남자 경험이 없는 알리체를 반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이 도와준다며 학교에서 친구와 단 둘이서만 지내는 마티아를 파티에 초대한다.


둘의 인연은 17년을 이어지지만 둘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소수는 고독할 수 밖에 없다. 1과 자기자신으로만 나눌 수 있는 숫자. 쌍둥이 소수(거의 근접한 두 소수가 한 쌍을 이루는 것)는 인간들의 기만일 뿐이다. "그 사이엔 항상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짝수가 있"(174쪽)기 때문에. 그래서 결말이 그러해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다만 그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게 날 위로해 줬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들을 했다고.



21.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보니 가머스, 심연희 역. 다산책방. 2022. 352쪽. 288쪽)

: 1950년대. 엘리자베스 조트는 화학자다. 하지만 다니고 있는 연구소에서는 여자 과학자를 인정 자체를 안 하고 있다. 실력은 엘리자베스의 발끝에도 못 미치면서,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그녀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녀의 연구를 홀라당 가져다가 자신의 성과로 만들어 버리고 연구 후원금을 가로채는 걸 당연시 하는 남자들. 이 와중에도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연구소의 간판 스타 과학자 캘빈 에번스만은 그녀를 과학자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준다. 캘빈과 연인이 되고 동거를 하는 엘리자베스. 


근래 읽었던 책들 중 가장 열받고 가장 통쾌한 이야기. 무려 70여 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남자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역자는 엘리자베스가 지치지 않아서 자신도 지치지 않았다지만 난 중간중간 심호흡을 하며 읽었다. 1950년대에 미혼모로, 여성 과학자로, TV쇼 여성 진행자로 살기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의 연속이다. 그나마 해피엔딩을 믿고 버틸 수 있었다. 현실의 눈으로 볼 때 약간의 판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통쾌한 결말 덕분에 뒷맛이 달콤해서 좋았다. 삶이 힘들 때마다 다시 읽고 싶은 소설이다. 마치 엘리자베스가 굽는 브라우니처럼. 



22. 소년들(앙리 드 몽테를랑, 유정애 역. 문학동네. 2018. 488쪽)

: 카톨릭 학교 파르크 콜레주. 철학 과목 우수자 상급생들로 이루어진 아카데미와 그들의 보호 그룹인 후배들. 알방은 이전 학교부터 알던 세르주와 짝이 되고, 그와 점점 더 가까워지며 특별해진다.


1912년에서 1913년이 배경인데, 1차 대전 직전의 시기임에도 파르크 콜레주에서는 사회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들만의 세상. 얼핏 보면 이상적인 학교다. 교장 신부는 사랑 지상주의자이며 상당히 유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알방이 세르주와의 우정이 육체적으로 치우치는 걸 깨닫고 다시 정신적으로 방향을 돌리고자 하며 '새생활'울 추구하겠다고, 그렇지만 입맞춤은 계속 할 거라고 하는 말에도 흔쾌히 찬성할 정도다. 하지만 알방과 세르주가 초콜릿 보관실에 있을 때 보인 입장 변화는 아무리 세르주를 특별히 아끼는 드 프라츠 신부에게 설득당했다 할지라도 꽤나 위선적이고 기만적으로 보인다. 알방은 이 사건으로 크게 흔들린다. 


이 책에 너무 큰 기대를 가졌나보다. 책 속에 녹아들기 힘들었다. 난 퀴어 문학에 전혀 반감이 없는데도 학교 내에서 선배-후배 짝이 너무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그들만의 특별한 관계가 용인된다는 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이해되지 않았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다는데, 앞에서도 말했듯 그들만의 세상이었으리라. 커플이 맺어지고 헤어지는 것도 너무 교조적이었다. 알방의 사춘기적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교사라는 신부들도 똑같이 유치하다는 것도 은근 짜증스러웠고. 다만 후반부에서 알방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은 조금 짠했다. 후반부 때문에 이 책이 살 수 있었을 듯.



23. 사라진 숲의 아이들(손보미. 안온. 2022. 452쪽)

: 요리 연구가 어머니와 대학 교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채유형.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던 그녀는 대학 후배라는 변호사 윤종의 전화를 받고 외주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한다. 사회적 이슈 추적 프로그램을 만드는 팀의 최피디 수하로 들어간 유형은 감당하기 힘든 최피디의 비위로 맞추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애쓰는데, 마침 윤종이 담당한 10대 청소년 치정 살인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형의 캐릭터 때문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좀 산만한 느낌이다. 분량이 적지는 않지만 이 안에서도 작가가 여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욕심을 냈다는 게 너무 잘 드러나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유형의 내면의 어둠, 마음 기댈 곳 없는 10대들의 방황과 그 틈새를 파고들어 가스라이팅을 하는 어른들, 베트남 참전 군인들과 파견 직원들의 보상 문제 등을 모두 엮어 넣으려니 어느 것 하나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건 그냥 주인공 캐릭터의 설득력 없음에 기인하는 지도 모르겠다. 다만 진형사가 정말 매력적이다. 빵에 집착하고 후배와의 약속을 칼같이 지키며 형사답지 않게 저질 체력이지만 진실을 위해서라면 맹목적인. 이 작가를 그만 읽어야겠다 생각했다가 알라딘 책 소개글에서 진형사 시리즈의 시작이라길래 더 읽어보기로 했다.



24. 옅푸른색 잉크로 쓴 여자 글씨(프란츠 바르펠, 윤선아 역. 강. 2016. 232쪽)

: 자수성가해서 오스트리아 교육부 차관까지 오른 레오니다드. 가난한 역사 선생의 아들이었지만 대학 때 옆방 친구가 자살하면서 남겨준 연미복 한 벌과 자신만의 유려한 춤솜씨와 외모로 부유한 상속녀인 아내의 눈에 들어 여기까지 왔다. 평소와 같던 1936년 10월 아침, 옅푸른색 잉크의 여성 글씨체로 쓰인 편지 봉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평온하기만 했던 삶. 레온은 그 글씨체가 18년 전 아내와 떨어져 있을 때 정을 통했던 베라의 글씨임을 알아본다.


세상 찌질한 하남자의 굴곡 심한 감정 변화를 잘 보여준다. 문제를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어하다가 문제의 실체가 예상과 다름을 확인하고 안심했다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는 상상력으로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키우고 거기에 압도되었다가 진실을 마주하고 안심하는. 그 와중에 그의 행태를 보면 정말이지... 특히 결말에 다다라 베라와 만나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가는 단순히 레온의 찌질미에 있는 게 아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독일의 압박하에 있던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상황과 그 상황에서 소위 국가 지도자라는 인물들의 위선과 이기심은 간결한 문장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길지 않은 분량으로 하루 동안 고위 관료의 행적을 서술한 것만으로 이렇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해 준 명작이다.



25. 사랑의 모약(루이스 어드리크, 정연희 역. 문학동네. 2015. 472쪽)

: 1981년 부활절 전날밤, 준 캐시포는 버스를 타기 위해 추운 거리를 걷고 있다. 문득 들여다 본 술집 창 안에서 어떤 남자가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고, 준은 남는 시간 동안 술을 한두 잔 마시기로 한다. 굶주렸던 준은 남자가 사 준 달걀과 술을 먹고 남자의 픽업트럭에서 관계를 가진다. 이 남자만은 다르기를, 이 남자만은 원주민 치페와 족 여자를 일회용 취급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실망한 준은 남자의 트럭에서 나와 고향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물위를 걷듯 눈밭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18쪽)."


준은 돌아왔으나 돌아오지 못했다. 준의 사망 보험금으로 아들 킹은 새 차를 구매하고, 준 숙모를 좋아했던 앨버틴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1930년대와 80년대를 오가며, 치페와 족 캐시디 집안과 라마르틴 집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챕터는 두 집안의 인물 중 한 명이 화자이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데 사실 연작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앞장에 가계도부터 보여주고 시작하길래 약간 긴장했는데 그냥 챕터마다 그 인물에 집중하면 된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이 가고, 모든 인물들이 설득력있으며, 모든 삶이 각자의 페이소스를 드러낸다. 아름답고 씁쓸하다. 인생이 그렇지 뭐, 하며 흘려보내기엔 원주민들의 상황과 그들을 휘두르는 외부의 힘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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