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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평점 :
비슷한 것만 같은 이른바 힐링 소설들 중 어떤 건 지루하고 어떤 건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가 뭘까? 단순히 책을 읽을 당시의 심리 상태 때문인가? 내 기분 때문에? 아니면 내용의 작은 차이?
난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 때만 해도 연속으로 스릴러를 읽었으니 잠깐 쉬는 기분으로 피가 흐르지 않는 이야기를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금세 이야기에 빠져든 건 재니스 때문이었다. 마냥 긍정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호탕하게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거나 혹은 마냥 착하지도 않은. 기생충같은 남편 마이크를 못 떠나고 진상 고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삼키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낼 줄 아는.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꼭꼭 숨기는. 재니스에게서 난 나 자신을 봤다.
비록 청소 도우미지만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유능한 재니스. 고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재니스는 고객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낼 줄 안다. 지나가면서 슬쩍 듣는 이야기들 뿐 아니라 고객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듣는 이야기들. 가장 유능한 청소 도우미로서 고객을 선택해서 일할 수 있지만 재니스는 비호감 그래그래그래 부인이 맡긴 부인의 시어머니 B부인을 외면하지 못하고, 거절하려 찾아갔지만 결국 서로의 진가를 알아본 두 사람은 청소 도우미와 고객의 관계를 맺게 된다. 재니스는 그래그래그래 부인의 남편이자 B부인의 아들인 아니아니지금은안돼 씨가 B부인을 현재 살고 있는 대학 건물에서 내쫓으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얘기 자체는 어쩌면 뻔하게 흘러 가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니스가 자신의 이야기는 외면한 채 현상 유지만 하던 삶에서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마음 속에 있던 오래된 짐을 덜어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서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여러 흥미로운 고객들의 이야기와 함께 조금씩 보여진다.
좋은 게 좋은 건 아니다. 평생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꼭 내가 지켜줄 필요는 없다. 내게도 나만의 이야기가 있고, 내 이야기를 잘 만들어가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