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트리플 8
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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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따뜻함이 끝까지,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느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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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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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작품(「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가 정말 좋았어서 나머지 작품들에 대해서도 호감을 담뿍 가진 채 읽기 시작했고, 다 괜찮았다. 비록 플롯이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없지는 않았지만, 저자가 창조해 낸 평범하지만 특별한 인물들이 너무 좋아서, 난 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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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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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저자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하지만 결코 약하지는 않게 이야기한다. 와이라처럼. 비록 사람들에게 학대당하고 잘못 이용되었지만 본성을 잃지 않은 야생동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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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픽션 걷는사람 소설집 11
최지애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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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스타일은 「달용이의 외출」이 가장 좋았지만, 최애로 꼽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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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면도시 part 1 : 일광욕의 날(김동식 외. 올댓스토리. 2020. 248쪽)

: 지구에서 독립한 달. 달에는 12개의 월면도시가 있는데 이 도시들을 지배하는 계급을 '센트럴'이라 부른다. 센트럴은 달의 거주민들에게 달이 원래는 지구의 위성이라는 것을, 달 거주의 시작은 지구로부터의 이주였음을, 더 나아가 지구라는 존재 자체를 감추고 있다. 어느날 달 지하로부터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후에 이 날은 '일광욕의 날'로 불린다. 이 날의 결과로 초능력을 가진 문차일드가 탄생한다. 이 소설집은 이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앤솔러지이다. 


각 작품들의 소재는 다양하고 세계관을 활용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가장 좋았던 건 김동식 작가의「재현」. 대부분의 작가들이 내가 처음 읽는 작가들이어서 다 흥미로웠다. 다만 세계관의 거대함에 비해 작품들은 대체로 소소하달까. 이 시리즈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세계관을 끝까지 잘 활용해서 하나의 큰 이야기가 완성됐으면 좋겠다.



2. 위도우(피오나 바턴, 김지원 역. 레드박스. 2016. 452쪽)

: 남편이 죽었다.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가 마트 앞에서 버스에 치였다. 소식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다시 집 앞에 몰려와 내게 질문을 해댄다. 그 사건의 범인이 남편이라고 생각하냐고. 나는 가장 인간적으로 접근한 여기자 케이트를 집안에 들이고, 그녀와 독점 인터뷰를 하기로 한다. 4년 전 천사같은 세살배기 벨라의 유괴범으로 의심받던 남편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 속 사건의 진실 자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은 지루할 것이다. 화자가 용의자의 아내인만큼, 곁에서 지켜보는 애증의 대상인 남편과 화자 자신의 심리 묘사가 촘촘하다. 남편에 대한 믿음과 믿고 싶은 마음. 남편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며나오는 의심. 가져야 했지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 아내의 시선 외에도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아이를 잃은 엄마, 그리고 용의자 글렌의 시선도 보여진다. 사실 최후의 진실은 좀 시시하지만, 작가의 글솜씨가 나쁘지 않아 읽을만 했다. 



3. 걸리 드링크(맬러리 오마라, 정영은 역. RHK. 2023. 500쪽)

: 여성과 술의 역사. 여성의 술에 관련해서도 역사적으로 유구하게 차별을 당해왔다. 술은 남성의 전유물인양 취급되어 왔으며, 여성에게는 '달달한' 술 혹은 '예쁜' 술을 주는 게 당연시되어 왔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여성은 늘 술의 생산자였으며, 마시고, 팔았다. 메소포타미아의 맥주 여신 난카시를 비롯해서 강력한 해장 능력을 가졌던 클레오파트라, 수녀원의 재정 문제에 큰 도움을 줬던 힐데가르트 성인, 뛰어난 주량과 시작(詩作) 능력을 가졌던 송나라의 이청조, 샴페인 주조 능력자 바르브 니콜과 금주법 시대 밀주의 여왕 클레오, 최초의 헤드 바텐더 에이다 콜먼 등 역사 속 술과 관련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난 술을 끊었다. 가끔 맥주의 알싸한 목넘김이 미치도록 그립긴 하지만 금세 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여성에게 술을 금기시하는 많은 어이없는 관습과 법들을 읽으며 분노했다. 그깟 술이 뭐가 대단해서 공공장소에서 못 먹게 하고 남자들과 한자리에서 못 먹게 하는 건가? 남성보다 잘 만들고 잘 마시고 뛰어난 여성들이 무서웠던 거 아닌가? 생계를 위해 집 부엌에서 술을 빚어 조금씩 팔던 여성들의 모습을 마녀로 형상화한 중세 유럽이나 금주법 시대에 이르러서야 여성과 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걸 받아들인 찌질한 남성들. 지금도 함께 바에 가면 취향과 상관없이 '예쁜 칵테일'을 권하는 남성들. 그 졸렬함에 분노했고, 그걸 멋지게 부숴버린 많은 여성들에게 환호했다. 



4. 레이디 소피아의 연인(리사 클레이파스, 박미영 역. 큰나무. 2004. 368쪽)

: 28세의 소피아.자작의 영애였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하녀와 다름없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은 도둑질을 하다 잡혀서 갤리선에서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얹혀 살던 친척집에서 잘못된 연애 사건으로 이제 갈 곳조차 없어진 소피아는 판사 로스의 집에 집사로 들어가게 된다. 사실 동생의 복수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로스에게 그녀는 점점 끌린다.


이런 로맨스 소설 진짜 오랜만이다. 난 그냥 로코인줄 알았어. 이런 본격 HR 스타일인 줄은... 오랜만에 신선했다. 읽으면서, 요즘 애정씬은 나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사실적이고 야하구나 했다. 그냥 몇 시간 머리 식혔다.



5. 이상한 나라의 평범한 심리 상담소(이원이. 믹스커피. 2023 352쪽)

: 저자는 오랫동안 상담사를 꿈꾸었던 사람으로, 변두리 특성화 학교의 상담 교사를 시작으로 삼성그룹의 상담사를 거쳐 현재 자신의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와 필드에서의 경험을 담은 상담서, 그리고 약간의 자기계발서가 합쳐진 듯한 내용이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특히 인간 관계에서 비롯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최대한 답을 주려 애쓴다. 


대놓고 말하기도 하고 돌려 말하기도 하지만 저자가 계속 하는 말은 '죽지 말라'이다. 막연한 희망 고문이나 대책 없는 '힘내세요'가 아닌 애정어린 부탁이고 당부이다. 그게 참 좋았다. 비록 책 내용은 내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건 삐딱한 내 마음 상태때문이었을 게다. 암튼 저자의 따뜻함이 좋았다.



6. 휴가지에서 생긴 일(마거릿 케네디, 박경희 역. 복복서가. 2023 532쪽)

: 1947년 콘월 해안가. 절벽 아래 펜디잭 호텔이 하루만에 감쪽같이 사라진다. 절벽이 붕괴되어 호텔마저 묻혀버린 것. 붕괴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미 관계가 틀어져 버린 페일리 부부, 가난한 코브 부인과 세 딸, 기퍼드 경 부부와 네 남매, 거만한 참사위원 랙스턴과 그의 딸 그리고 호텔 주인 시달 부부와 세 아들 제리, 더프, 로빈과 고용원인 낸시벨과 미스 엘리스. 있어 보이는 척 하고 싶은 여성 작가 애나와 그녀의 곁에 빈대처럼 붙어있는 어린 작가 지망생이자 애인 등 총 24명의 등장인물 중 일부는 살아남고 일부는 죽는다. 대체 누가 살아남았을까?


무고한 사람의 고통이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지키고 있다는 딕 시달의 말(137쪽)이 복선일지 궁금해 하며 읽어나갔다. 책 날개에 이 책이 카톨릭의 7가지 죄(시기, 분노, 탐식, 탐욕, 나태, 교만, 정욕)을 기반으로 쓰여졌다고 해서 주의하며 읽다가 나중에는 골이 좀 아팠다. 나름대로 정리를 하긴 했지만. 약간의 코믹 요소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도덕극 분위기도 난다. 가장 중요한 건 7가지 대죄를 짓지 않는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해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것. 즉 착하게 살아라 이다. 연민을 갖고 마음을 열면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7. 바다에 빠진 소녀(악시 오, 김경미 역. 이봄. 2023. 365쪽)

: 심청전을 재해석한 영어덜트 판타지 로맨스. 마을에서는 해마다 태풍이 오는 시기에 한 명의 소녀를 바다에 바친다. 하지만 이번 년도에 제물로 선정된 심청은 '나' 미나의 오빠와 연인 사이이다. 나는 배에 몰래 숨어들어간 오빠를 따라 배에 올랐다가 인당수에서 심청 대신 물에 뛰어든다. 바다 밑 세상에서 깨어난 나는 곧 손에 매여있는 붉은 끈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궁으로 가 잠들어 있는 용왕을 발견한다. 끈을 끊어버리려는 차에 세 명의 무사가 나타나고, 그들이 바다 밑 세상의 유력 가문 중 하나인 연꽃 가문의 '신'과 그의 충신 '기린'과 '남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은 나의 영혼인 까치를 잡아둔 뒤 나를 쫓아내는데...


혼란의 바다 밑 세상을 구하고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미나의 모험담이자 사랑 이야기이다. 이를 위해 용왕의 아픔을 해결해야 하고, 죽은 혼만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생령으로서도 살아 남아야 한다. 한국의 정통 설화에서는 그냥 모티브만 따왔을 뿐 전혀 새로운 세계관이다. 초반에는 가문의 수장을 '군주'라고 부르는 거에 거부감이 들었으나 - '군주'는 명백히 임금이라는 뜻 아닌가 - 그냥 이 소설 속 세계관이 이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 밖에도 익숙한 듯 생소하기도 하고 한국적이라기보다는 그냥 동양적 모티브인 듯한 설정들도 많았지만 대체로 재밌게 읽었다. 특히 선녀와 나뭇꾼, 흥부와 놀부 등의 한국 설화를 솜씨 좋게 녹여낸 게 좋았고, 신은 왜 응답하지 않는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만들어 낸 것도 좋았다. 


다만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은 한국 설화 모티브가 아닌, 작가 자신이 완전히 새로이 창조해 낸 세계를 바탕으로 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다.



8. 오늘 밤 안녕을(마이클 코리타, 김하락 역. RHK. 2012.406쪽)

: 경찰에 잠깐 몸 담았다가 찜찜하게 퇴직한 링컨 페리는 베테랑 경찰이었고 집안 전체가 경찰이어서 경찰 조직에서 존경을 받는 조 프리처드와 탐정 사무소를 차린다. 별 볼 일 없는 사건들만을 소소하게 처리하던 중 역시 탐정이었던 웨인 웨스턴의 사건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인은 웨인은 아버지 존. 웨인은 죽었고 웨인의 아내와 어린 딸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존은 아들이 아내와 딸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누명을 벗겨 달라고 했고 링컨은 조사를 시작하는데, 클리블랜드 최고 부자 제러마이어 허버드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저자가 어린 나이에 쓴 데뷔작이라고, 엄청나게 훌륭하다고 극찬이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성폭행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젠더 의식(45쪽) 때문에 책 덮을 뻔 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생각한다면, 볼 짱 다 본 거 아닌가? 그치만 사건의 진실이 궁금해서 꾹 참고 읽었다. 글솜씨가 나쁘지는 않지만 사건의 많은 부분들이 우연에 의해 해결되고, 미국 클리블렌드가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전반적으로 상당히 올드한 분위기이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거 보면 그렇게 옛날도 아닌데... 그래도 링컨 페리가 꽤 매력 있어서 다음 이야기도 읽어볼 생각이다.



9. 밤의 경비원(루이스 어드리크, 이지예 역. 프시케의숲. 2023. 580쪽)

: 1953년 9월. 노스다코다주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이른바 '종결' 법안이 발의된다. 치페와 족의 의장인 토머스 와샤스크는 이 법안을 막고자 한다. 한편 퍼트리스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도시로 나간 언니가 연락이 끊기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퍼트리스는 자신이 나가서 찾아보기로 한다.


보석 베어링 공장 야간 경비원 토머스 와샤스크. 공장의 뛰어난 노동자 퍼트리스(픽시) 퍼랜토. 부족 판사 모지스 몬트리스. 퍼트리스의 동생 포키의 복싱 코치 로이드 반스.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저기 블루와 그녀의 아들이자 뛰어난 복싱 선수 우드 마운틴. 퍼트리스의 언니 베라. 미네소타대학의 원주민연구학자 밀리 클라우드. 토머스의 가족들. 아내 로지와 아들 웨이드, 아버지 비분. 치페와 족 여러 명의 사연과 삶이 보여진다. 저자가 자신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고 하는데, 보호 종료를 앞두고 걱정과 부담에 매몰되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토머스를 통해 당시 원주민들의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대우를 볼 수 있고, 퍼트리샤를 통해 원주민 젊은이들의 애정사와 당시에 원주민 여성들이 공동체 안에서 또 도시에서 어떤 식으로 이중의 억압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원주민들의 가난하고 소소하지만 따뜻한 생활을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들이 당한 부당함에는 계속 분노했지만. 이 작가가 계속 써주어서, 그리고 계속 번역 출간이 되어서 정말 좋고 감사하다.



10. 고통에 관하여(정보라. 다산책방. 2023. 340쪽)

: 테러범 '태'는 형사들에게 인도되어 그곳에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그 전세기에는 테러로 부모를 잃은 제약회사의 대주주 '경'이 타고 있고, 또 현재 제약회사의 대표인 '현'도 동행한다. 숙소에 도착하고 밤이 오자 경은 태가 있는 방으로 가 묶여 있는 그와 관계를 한 후 묻는다. 12년 전의 그 사건을. 한 제약회사에서 중독 증상도, 부작용도 없는 완벽한 진통제를 개발하고 약이 보편화되자 이번에는 고통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종교가 나타난다. 경은 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실험체로 쓰이며 갖은 고통과 학대를 당했고, 종교 단체의 사주를 받은 테러범 태에 의해 부모를 잃었다.


처음부터 책 속 사건의 윤곽을 잡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책 속 현재에 또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이의 범인을 추적하기 위한 형사들의 움직임과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서술이 번갈아 보이며 차츰 이야기 속 진실에 다가간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사람의 현재. 멀리 돌고 돌아왔지만 경과 현이 함께 있는 지금의 현재가 진실보다 더 미래를 밝힐 것이다. 



11.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에이미 하먼, 김진희 역. 미래지향. 2023. 500쪽)

: 1853년, 캘리포니아로 가는 마차 70여대. 갑자기 원주민 수 족이 습격한다. 나오미 메이의 남동생이 장난으로 쏜 화살이 지나가던 원주민을 꿰뚫은 것. 수 족은 닥치는 대로 백인들을 학살하고, 갓난 동생을 안고 있던 스무 살의 나오미와 아기를 납치한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존 라우리는 곧 이들을 추적한다. 몇 개월 전 이 여정이 시작될 무렵 모두 이 여정의 짐을 꾸릴 때, 백인과 원주민 포니 족의 혼혈인 존은 노란 드레스를 입은 나오미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백인 아버지 가게에서 일을 하던 존은 자신만의 삶을 꾸리고자 메이 가족이 포함된 오리건 트레일에 합류하고 젊은 과부 나오미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관심을 숨긴다. 나오미는 임신한 어머니와 남동생들을 돌보며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뻔한 이야기일까봐 망설였는데, 예상보다 더 다채로웠고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줬다. 어릴 때 읽었던, 백인을 보기만 하면 무조건 죽여버리는 잔인하고 냉혹한 인디언 이야기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혼혈이기에 '핏쿠 아쑤(두 발)'로 불리는 존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원주민들이 백인과 공존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 그들만의 당연한 관습과 논리와 삶의 방식들, 그리고 존과 나오미의 사랑이 촘촘하게 얽혀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자아낸다. 원래 실화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저자의 남편이 존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해피엔딩을 희미하게나마 확신할 수 있어서 좋았다. 



12. 수선화 살인 사건(에드거 월리스, 허선영 역. 양파. 2019. 343쪽)

: 백화점 사장이자 엉터리 시인 손튼 라인은 경리과 직원 오데트 라이더 양을 부른다. 자신의 정부가 되라는 제안을 하는 것. 파랗게 질려 거절한 오데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손튼. 한편 경리과장 밀버그의 횡령을 의심한 손튼은 탐정 잭 탈링을 고용하기 위해 불러 밀버그와 대면시키다 문득 오데트를 횡령범으로 몰기로 한다. 그런데 다음날, 손튼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가슴 위에는 수선화 다발을 얹은 채로.


추리의 속도가 더딘 편이다. 이게 내가 둔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사건의 가장자리만 겉도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읽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 소설들에서 속도감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싶기도 했고. 드러난 진실은 좀 황당하기도 하다. 어쨌든 작가는 범죄의 진실보다는 권선징악이 더 중요했던 거 같고, 이는 내게도 마찬가지여서 잘 읽었다.



13. 유품 정리사(정명섭. 한겨레출판. 2019. 395쪽)

: 화연은 한밤중에 이상한 냄새에 깬다. 연기가 자욱한 집. 서둘러 아버지가 계신 사랑채 쪽으로 간 화연은 아버지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역모 혐의를 받던 아버지가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된 사건. 어머니는 외삼촌이 있는 과천으로 내려가지만 화연은 남아서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한다. 포도청에 가서 담당포교 완희에게 재수사를 촉구하는데, 완희는 생뚱맞게 자살한 여인들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일을 제안한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받아들이는 화연.


작품 배경만 조선시대일 뿐,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현대나 당시나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화연의 손을 빌려 그런 여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건 좋았다. 비록 좀 어거지는 있을지언정. 다만 여러 디테일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했는데 특히 혜경궁을 '대비'라고 칭하는 게 그랬다.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혜경궁을 실제로 그렇게 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조대에 대비는 엄연히 영조비인 정순왕후 아닌가? 혜경궁은 비로 책봉된 적이 없다.



14. 토미의 무덤(알렝 블로티에르, 홍은주 역. 문학동네. 2020. 279쪽)

: 이민노동자 의용유격대 소속이었던 토마 엘레크. 열 여섯 살부터 이미 레지스탕스였던. 1942년, 고등학교를 그만둔지 1년 후 지원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 점령하에 있었고, 프랑스의 유대인들은 1940년부터 이미 경찰청에 신분등록을 해야했고 순차적으로 차별 조치를 당했다. 토미는 독일 보급품을 나르는 열차를 탈선시키는 일에 주로 투입된다.


작품 속 화자는 영화감독이고 토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한다. 토미 역에 맞는 배우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중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던 아름다운 청년을 길에서 발견한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점점 이 배역에 매몰되어간다. 작가는 이 지점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평범한 레지스탕스 이상이었던 토미의 존재감에 점차 전도되는 현대의 열 일곱 살 소년의 모습을. 소설 자체는 마치 르포르타주 같다. 가브리엘과 토미의 모습이 생생하다. 정말로 이런 세미다큐가 있을 것만 같고, 있다면 꼭 찾아서 보고 싶다. 어린 레지스탕스 이야기이지만 신파로 흐르지 않는 것도 좋았다.



15. 무죄추정 1.2(스콧 터로, 한정아 역. 황금가지. 2007. 331쪽, 331쪽)

: 검찰총장 연임을 결정하는 선거 운동이 한창인 때, 수석부장검사 러스티 사비치는 현 검찰총장의 최측근으로서 검찰총장 대신 많은 일을 떠맡는다. 그런데 역시 부장검사인 캐롤린이 살해된다. 이 사건을 맡게된 러스티는, 검찰총장 선거 전에 사건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한편 과거 고인과 불륜 관계였던 게 드러날까봐 자신의 통화기록을 지워달라고 몰래 요청한다. 그런데 증거물 중 유리컵에서 러스티의 지문이 발견된다.


법정신이 많을 것이고 상당히 지루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었는데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처음에는 러스티의 무죄를 믿었지만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는 그 믿음이 흔들렸는데, 러스티의 변호사 스턴이 너무나 노련하고 확실하게 검사를 압박하고 재판을 유리하게 풀어나가 나도 믿게 됐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진실 자체보다는 이기는 것. 이겨서 자유를 지키는 것.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 요약하면 별거 아닌 이야기이지만 긴장감있게 잘 풀어내서 진짜 법정에 있는 듯 숨죽이고 읽었다. 심리묘사도 디테일이 훌륭하다. 다만 이 사건 자체는 초동수사만 잘 했어도 풀렸을 사건이다. 그리고 유전자검사가 쉬워진 요즘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야기겠지. 범인은 처음부터 의심가던 그 사람이었다.



16. 토끼와 해파리(전삼혜. 아작. 2022. 374쪽)

: 작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 첫 작품 「안드로이드 고양이 소동」이 귀여워서 계속 이런 분위기이리라 기대했으나 작품에 따라 무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이 작가의 사람들 - 특히 청소년들 -과 세상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선은 날 흐뭇하게 했다. 빌런이 빌런일 수 밖에 없는 이유까지 다 포용하는, 하지만 필요 이상의 연민은 보이지 않는. 



17. 페이스풀 플레이스(타나 프렌치. 권도희 역. 엘릭시르. 2022. 647쪽)

: 22년 전 겨울날, 프랭크는 몰래 사귀던 로지와 함께 런던으로 도망치기로 하고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지만 로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마을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빈집에도 가봤지만 로지의 필체로 쓰여진 쪽지 한 장을 발견했을 뿐이다. 프랭크는 쪽지를 그 자리에 놔두고 혼자서 더블린으로 와서 노력 끝에 경찰이 된다. 잠복수사과에서 일하던 중, 가족 중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던 여동생에게서 빈집에서 로지의 여행가방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페이스풀 플레이스로 향한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라고 한다. 난 먼저 읽은 『브로큰 하버』의 분위기가 좋았어서 이 책도 선택했다. 사건 전개는 조금 답답하다. 아니, 주인공인 프랭크의 현실이 답답하다. 피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사건수사에서 배제되지만 수사를 계속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가족과의 관계는 더 나빠질 수도 없이 엉망진창이고. 사실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해야 하나. 프랭크의 가족들이 불러 일으키는 짜증들이. 유일하게 괜찮았던 케빈마저... 


작가는 전작에 이어 인간의 이기심을 이야기한다. 가족 간에도, 사랑하는 사이에도 우선하는 이기심. 어쩌면 자기보호본능일 수도 있겠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했다. 프랭크가 최선을 택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차선은 되지 않을까. 프랭크를 다독여주고 싶은 밤이었다.



18. 환상서점(소서림. 해피북스투유. 2023. 311쪽)

: 동화작가 지망생 연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습작에 매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글은 지지부진하다. 답답한 마음에 산에 올랐는데 등산로가 아닌 길로 갔다가 절벽에 이른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당황한 연서 앞에 푸른 도포를 입은 남자가 나타난다. 갑자기 몰아친 돌풍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남자의 품에서 눈을 뜬 연서. 남자는 절벽 아래 자신의 서점으로 연서를 데려간다.


전생의 인연과 기다림. 내용 자체는 클리셰일 수 있지만 아이디어도 좋고 전개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문장이 너무 엉망이다. 처음엔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이 어울리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어색한 문장들이 늘어나고 비문도 꽤 있었다. 그런데 이건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편집자가 충분히 메워줄 수 있는 부분인데. 문장만 좋았어도 이야기의 기시감 정도는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 작가를 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19. 한밤의 시간표(정보라. 퍼플레인. 2023. 259쪽)

: 연구소에는 많은 연구실이 있지만 열어볼 필요는 없다. 야간 근무자는 그저 순찰을 다니며 연구실 문이 잘 잠겨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연구소에는 많은 물건들이 있고, 그 물건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귀신 이야기' 연작인데, 무섭지는 않다. 작가 특유의 신기한 이야기가 속시원한 권선징악과 함께 펼쳐진다. 연구소에 관해, 화자에 관해 그리고 선배에 관해 누구도 대놓고 얘기해주지는 않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 간단명료함 속에서 드러나는 차갑고도 신비로운 기운이 환상적이다. 역시 정보라.



20.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브라이언 무어, 고유경 역. 을유문화사. 2023. 440쪽)

: 1950년대 벨파스트. 주디스 헌은 40대의 독신 여성이다. 이제 막 하숙집을 옮겼다. 주디스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이모의 손에 자랐고, 이모 병간호를 하다 혼기를 놓쳤다. 이제 그녀는 하숙집에서 높은 평가를 바라며 조심스레 수집해 둔 패물을 걸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하숙집에는 과부인 하숙집 주인 라이스 부인과 마마보이 아들 버나드, 라이스 부인의 오빠이자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귀국한 제임스 매든, 그리고 어린 하녀 에밀리가 있다. 주디스는 첫 아침 식사에서 매든과 말이 통함을 느낀다.


꽤나 사실적이다. 가여운 주디스. 결말이 너무 마음 아프지만 그게 현실이겠지. 자신만의 논리로 세상을 향한 객관적인 시각을 닫아버린 주디스가 우스울 수도 있지만 모든 걸 주디스의 탓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세상은 독신 여성에게 충분히 잔인하다.



21. 탱크(김희재. 한겨레출판. 2023. 280쪽)

: 지방의 작은 마을 뒷산 공터에 덩그러니 놓은 컨테이너. 이용자들은 이걸 탱크라고 부른다. 이 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탱크를 예약한 도선은 산 입구에 도착하자 산불이 났음을 알아챈다. 얼른 가서 기도하고 내려오면 되겠거니 했지만 불은 점점 강해진다. 도선은 자기보다 앞서 탱크를 예약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탱크의 문을 여는데, 망연자실한 한 남자가 죽은 걸로 보이는 다른 남자를 부둥켜안고 있다.


사건이 이루어지고 문제가 드러나고 전개되는 과정이 사실적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진실을 보여주는 방식이 흥미롭다. 사실은 둡둡의 기도가 이루어진 거라는 거, 그게 좋았다. 안타깝지만은 않았다. 모든 기적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가가 공평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만약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나 또한 경악하고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다가 결국 잊었겠지만, 이 책 안에서는 괜찮았다. 이런 게 균형감각이구나, 작가의 역량이라는 게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싶었고 새로운 이야기꾼을 발견한 거 같아서 좋았다. 신인답지 않은 능숙함이 보였달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 두어야 겠다.



22. 호(정보라. 읻다. 2023. 216쪽)

: '나' 최기준은 어느 밤 버스를 탔다가 주취자가 난동을 부리는 걸 목격한다. 난동 중에 버스가 큰 사고가 날 위험에 처하고, 난 옆자리의 탐스러운 갈색 머리를 풀어헤친 여성이 시키는 대로 해 주취자를 제압한다. 그녀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 나는 그녀의 오피스텔로 가서 사랑을 나누고 그녀의 명함을 받아오지만 다음날이 되자 명함의 글자는 사라지고 없다.


狐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구미호를 만난 어리숙하고 대책없는 남자의 이야기이고, 이런 남자를 믿어볼까 하는 구미호의 이야기이며, 여우에게 홀린 손자를 구해내려고 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말은 누구의 입장이냐에 따라 해피하기도 하고 새드하기도 하다. 그래도 난 해피엔딩을 믿어보고 싶다. 현실이었다면 최기준의 누나처럼 굴었겠지만.



23. 도어(서보 머그더, 김보국 역. 프시케의숲. 2019. 372쪽)

: 작가인 '나'는 집안일을 해줄 사람을 구한다. 친구가 한 사람을 추천하는데, 친구는 '그녀가 너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마을 공동주택의 관리자이자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는 에메렌츠가 나와 남편을 만나러 오고, 곧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에메렌츠는 여러 사람을 도와주고 여러 집 일을 하지만 조금도 비위를 맞춰 주거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에메렌츠는 공동주택에서 살면서 자신의 집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가사 도우미와 지적인 여성 작가의 우정 따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완전히 어긋나버린 방향과 기저에 깔린 서로 전혀 다른 곳을 향하던 생각들. 화자는 에메렌츠에게 자잘하게 계속 찔리고 찔리고 찔리면서 그녀를 견뎌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깊은 상처는 화자로부터 에메렌츠에게로 주어진다. 프롤로그에서 화자가 얘기했듯, 비록 그녀를 구하고자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에메렌츠의 애정을 가질 자격이 없다. 


"아주 예리한 칼로 사람의 심장을 찌르면, 그 사람은 바로 쓰러지지 않는다. 에메렌츠를 잃었다는 의식이 지금 우리 마음에 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차후에 우리를 동요하게 하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심장을 찔린 우리는 나중에 땅으로 쓰러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351쪽)



24. 원통 안의 소녀(김초엽. 창비. 2019. 88쪽)

: 지유는 원통 안에서 돌아다닌다. 도시의 공기를 정화하는 나노봇 에어로이드에 알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노봇은 공기 정화 뿐 아니라 기상 현상까지 통제할 수 있지만 지유에게는 오히려 감옥 같다. 어느 날 실수로 공공기물을 파손한 지유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소외된 두 존재의 교감.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아니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록 누군가는 주류에서 밀려나고 누군가는 소외된다. 어쩌면 배척은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지유는 인간들의 의지와 관련이 적을지 모르겠지만 노아의 경우에는 인간 의식이 문제의 원인이다. 그래서 결말이 정말 합당하게 느껴졌다. 지유가, 노아가 괜찮기를...



25. 붉은 무늬 상자(김선영. 특별한서재. 2020. 223쪽)

: 평생 시달려 온 아토피 때문에 시골 이다학교로 전학 온 벼리. 벼리를 기숙사에 데려다 주던 엄마가 은사리 마을에서 우연히 폐가를 발견한다. 한쪽이 무너져 내리긴 했지만 정성들여 지었을 게 분명한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 엄마는 이 집을 손수 복원하기로 하고 벼리는 그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로 한다. 작은 방을 치우던 중 붉은 무늬 상자가 발견되고, 벼리는 그걸 대청마루에 단정히 놓인 가죽 구두와 나란히 놓는다. 뭔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상자. 한편 벼리는 전학 초기에 자신에게 다가와주었던 세나가 은근히 신경쓰인다. 소문이 안 좋아서 밀어내긴 했지만, 왠지 가죽 구두를 보니 세나가 떠오른 것.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늘 요즘 애들이 정말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설마 이렇게 착하겠어? 이렇게 순진하다구? 언론에서 읽는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장난 아니던데? 벼리와 세나도 장난 아니기는 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러웠고 똑똑했다. 어쩌면 어른인 'Shoot' 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나서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언제인지를 아는 아이들. 현실에서도 책 속에서처럼 시원하게 일이 풀린다면 좋을 텐데. 나이브한 생각일지라도 이렇게라도 정의가 구현되는 이야기를 읽어서 좋았다. 



26. 린든 샌즈 미스터리(J.J.코닝턴, 최호정 역. 키멜리움. 2023. 351쪽)

: 1차 대전 후. 조용한 휴양지 린든 샌즈에는 폭스힐스 저택이 있고, 소유 가문인 포딩브리지 일가 중 관리를 위임받은 폴과 그의 여동생 줄리아는 근처 호텔에 묵고 있다. 폭스힐스의 주인인 조카 데릭은 전쟁 참전 후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다는데 이후로 소식이 없다. 그런데 줄리아가 어젯밤 그가 돌아왔고 전쟁 중 부상으로 얼굴이 엉망으로 변했다고 한다. 폴은 그가 정말 데릭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런데 폭스힐스의 관리인인 피터 영감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처음에는 뻔해 보였던 사건이 살인이 한 건 더 일어나면서 조금 복잡해진다. 하지만 범인은 처음 의심했던 대로다. 그런데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난 증거에 의해 범인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범인의 동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더 궁금해 하는 편이라서 이야기가 완전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동기가 너무 뻔해서. 하지만 중간에 살짝 방향을 어지럽히는 요소가 있기도 했고 살인을 어떻게 저질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해서 주의깊게 읽었다. 막판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추가되기도 했고, 책 속에서의 확실한 권선징악이 꽤 즐거웠다. 경찰청장 클린턴 드리필드 경 시리즈 4권이라는데, 나머지 이야기들도 출간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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