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풀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권도희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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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독한 가족 스릴러는 처음이야!

 

 

<시크릿 플레이스>를 읽기 전 부랴부랴 전편격이라 할 수 있는 <페이스풀 플레이스>를 읽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시크릿 플레이스>에 나오기 때문에 미리 읽어 두고 싶었다.

 

 

사실 한심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다. 십 대 소녀들이 매일같이 겪는 그렇고 그런 얘기. 하지만 바로 그 일이 이번 주에 있었던 모든 사건들로, 지금 이 방으로 우리를 이끈 것이다.

 

 

지긋지긋한 가족과 동네를 떠나 경찰이 된 프랭크.

어느 날 자신을 찾는 다급한 동생의 전화 한 통이 그를 다시 페이스풀 플레이스로 이끈다.

 

같이 도망치기로 한 날 홀연히 사라진 프랭크의 첫사랑 로지.

그녀의 가방이 범죄의 온상이었던 16번지 벽난로에서 발견된다.

 

연을 끊고 살았던 가족이 있는 곳.

첫사랑 로지의 흔적이 남은 곳.

 

누가!

왜?

로지를 죽였을까?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로지의 죽음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남동생 케빈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발을 빼려야 뺄 수 없는 이 지긋지긋한 동네. 그리고 그의 가족.

원하지 않았던 가족 상봉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프랭크가 원하지 않았지만 그의 딸 홀리도 몰래 자신의 가족을 만나왔다는 걸 알게 된다.

 




촘촘한 이야기가 스릴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스릴러의 탈을 쓴 문학작품이다!

 

누가 로지를 죽였는가?

누가 케빈을 죽였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자신은 이 사건에 관여할 수 없는 프랭크는 휴가를 내고 단독으로 사건에 뛰어들지 않고(!) 살인수사과의 신참 스티븐을 꼬드겨 자신에게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브로큰 하버>에서 인상적인 형사로 뇌리를 강타했던 케네디가 여기서 프랭크에게 엄청나게 깨진다(?)

케네디가 이렇게 바보스럽게 보일 줄이야!

 

술이 들어가면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그런 아빠에게서 동생들과 엄마를 지켜야 했던 맏이들.

아이들을 끊임없이 단속해야 했던 엄마의 걱정은 삐뚤어진 참견으로 상처를 남기는 언제나 도돌이표인 학대가 된다.

이웃 간의 불화와 자그마한 동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피 끓는 청춘들...

 

 

더블린은 시한폭탄을 안고 묵묵히 항해하는 떠돌이 배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프랭크의 딸 홀리의 영리함은 더 가슴을 에이게 만든다.

 

필력 좋은 작가의 글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쫄깃하다 못해 찡하기까지 한 이야기 앞에서 멘탈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타라 프렌치.

미국 스릴러의 속도에 익숙한 독자들은 타라 프렌치의 아일랜드식 스릴러에 적응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타라의 작품에서 범인을 잡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사건이 발행하기까지 응축된 시간들과 상황들과 감정들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들이 한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뼛속까지 내려가는 울림이 있는 스릴러가 된다.

 

타라 프렌치의 글은 독자들에게 익숙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게 바로 타라 프렌치의 매력이다.

 

스릴러 덕후들이라면 꼭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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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번 버스의 기적
프레야 샘슨 지음, 윤선미 옮김 / 모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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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가면 88번 버스를 타고 프랭크, 리비, 딜런이 달렸던 노선 그대로 다녀보고 싶다.

 

"에이, 그렇지 않아요. 말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해요.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니까요. 알죠?"

 

 

8년 사귄 사이먼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배낭 두개를 매고 런던에 도착한 리비.

그녀는 언니네 집으로 가기 위해 88번 버스를 탄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 신사 프랭크를 만난다.

서슴없이 말을 건네는 프랭크는 의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리비를 무장해제 시킨다.

 

60년 전 88번 버스에서 만난 빨강 머리의 아가씨.

그녀의 당찬 모습에 반한 프랭크. 그녀가 버스에서 그려준 자신을 그린 그림 한 장을 간직하고

그녀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잃어버린 프랭크는 그날 이후 그녀를 만날까 싶어 시간이 나는 대로 88번 버스를 탄다.

 

프랭크의 사연을 들으며 리비는 #88번버스의그녀 를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프랭크의 요양사 딜런이 그녀를 도와 버스 정류장마다 #88번버스의그녀 를 찾는 포스터를 붙인다.

프랭크의 소원은 이루어질까?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그들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았다.

60년 전 그녀의 모습이 리비의 모습이었다.

 

부모의 의지를 꺽지 못해 자신의 길을 관철시키지 못한 프랭크와 리비에게 88번 버스의 그녀가 남긴 선물은 프랭크에서 리비에게로 이어진다.

못된 남자를 만나서 아이를 갖게 된 여자들의 이야기도 리비에게로 대물림된다.

그러나 그렇게 답습하는 이야기는 조금씩 나아진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그녀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더 나은 자리를 잡아간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기적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88번 버스의 기적>은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으면서도 현실적이다.

그래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 가 본 적 있는 거리들의 모습이 계절을 달리해서 떠오르고

다음에 가게 되면 88번 버스를 타고 프랭크, 리비, 딜런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달렸던 코스를 더듬어 보고 싶다.

 

"세월이 지나니 생각이 바뀌더라고. 뭐 내가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원해서 그녀를 찾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늙었지. 난 그녀를 찾아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았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가치를 남겨 두었다.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리비와 딜런은 그들의 가족조차도 알지 못하는 진실과 진심을 알게 된다.

프랭크의 처지를 보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가하는 '삶의 참견'에 대해 생각해 본다.

 

태어날 땐 선택권 없이 태어났다 해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최선의 선택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

나 자신만이 온전하게 내가 원하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만큼이나 영국의 부모들도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걸 보니 역시나 답답하다.

그럼에도 좋은 기운으로 오지랖 넓게 사람들의 인생에 참견해서 그들의 인생을 바꿔 놓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88번 버스에서 맺은 인연들이 서로의 인생에 어떻게 참견하는지를 읽다 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처럼 훈훈한 마음으로 잠깐의 기적을 꿈꾸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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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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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문체가 쌓여서 결국 백조처럼 날아오르는 이야기.

 

 

"나처럼 되면 안 돼!"

나기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이치카의 고독이 제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불쾌했던 이치카의 눈. 그것은 예전의 내 눈이 아니었던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고독한 아이의 눈.

 

 

여자가 되어 고향 히로시마를 떠나 성전환 수술을 받을 돈을 모으고 있던 나기사는 어느 날 졸지에 조카 이치카를 맡게 된다.

뉴하프의 삶을 살면서 진정한 여자가 되기를 소망했던 나기사에게 이치카는 짐이었지만 그녀를 돌보는 대신 고향에서 보내주는 돈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기 때 보고 못 본 조카 이치카는 사촌 누이의 딸이다.

키가 크고 예쁜 얼굴을 가졌지만 표정도 말도 없는 아이다.

두 사람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진정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 꼭 모성애가 필요했을까?

 

발레에 재능이 있는 이치카는 전학 첫날부터 학교에서 폭력적인 아이로 자리 잡았지만 그녀 자신이 학대 피해자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팔뚝을 물어뜯는 자해를 하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치카는 말이 없는 아이로 살고 있었다.

 

그런 이치카가 짐스럽고 답답하지만 나기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만 맡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방어막이 되어 주었으니까.

그러나 이치카의 춤을 보고 이치카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비싼 발레 레슨비를 감당하고, 이치카에 대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면서 나기사는 모성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전부가 되었어야 했을까?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릴 정도로?

 

일본에서 수많은 상을 받은 영화의 원작 소설 <미드나잇 스완>

꽉 막힌 일본의 현실 앞에서 나도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느낌이다.

닫힌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의 모습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미즈키의 변신이 훨씬 주인공답게 느껴졌다.

 

이치카가 고생 끝에 백조처럼 날아오르려 할 때 그녀의 발목을 잡은 건 그녀를 방치했던 엄마였다.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하며 이치카를 찾아온 엄마 사오리는 나기사의 자리를 뺏어 버렸다.

아니, 나기사에게 영원히 뺏겨버릴지 모를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사오리는 이치카와 나기사 사이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왜 모든 인물들이 그렇게 극단적이어야만 했을까?

 

자식을 자신의 물건처럼 취급하는 부모.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게 하려는 부모.

그 어느 부모도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아이는 물건이 아니고, 대리만족이 아니니까...

 

꿈을 이루고 싶었던 백조들

누군가는 훨훨 날아올랐고.

누군가는 훨훨 날아오를 준비 중이고.

누군가는 훨훨 날아 사라졌다...

 

삶에 대해서

인생의 기회에 대해서

다른 정체성을 찾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 싶다.

우리에게 초난강으로 알려진 구사나기 츠요시의 연기가 보고 싶다.

나기사라는 역을 그가 완벽하게 소화했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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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술사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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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게만 내려오는 괴물을 물리치는 방법!

 

 

 

 

이헤에는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영혼이 부서질 정도로 비극적인 일을 겪은 젊은 처녀에게 어지간한 위로나 격려는 별 소용이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치카가 이런 식으로 항간의 신기한 이야기, 업보 이야기, 온갖 인생담을 듣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실을 자아내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꿰매어 수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헤에 숙부의 이런 배려로 오치카는 미시마야 흑백의 방에서 괴담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오직 들어주는 청자 입장인 오치카.

그러나 그 시간은 오치카 역시 성장하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듣는 시간이 곧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는 시간이라는 걸 오치카는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깨닫게 된다.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편에서는 진짜 괴담 모임에 오치카가 초대를 받는다.

늘 혼자 단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오치카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돌아가며 괴담을 발표하는 자리는 생소하지만 흥분된다.

그 자리를 이끌어 가는 주인의 모습에서 배울 점을 찾고 다양한 이야기와 사람들의 반응에서도 오치카는 남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경청한다.

이미 에도에서 오치카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한 번 터진 둑은 다음에는 더 쉽게 터진다. 악행을 저지르고도 발뺌하는 데 성공하면 두 번째 악행은 더욱 쉬워진다.

 

 

사람의 악행을 꿰뚫어 보는 아기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거나, 저지른 사람 앞에서 자지러지게 운다.

평소에는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은 착한 아기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어서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는데 그 아이의 울음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은 아이를 맡아서 키우게 된다. 그러나 그 아기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딸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게 될 걸 알았을까?

 

아비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비극은 어쩜 예견된 것이었을까?

 

괴이한 일을 이야기하거나 들으면 일상생활에서는 움직일 일이 없는 마음속 깊은 곳이 소리도 없이 움직인다. 무엇인가가 웅성거린다. 그 때문에 무거운 생각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득 정화된 듯한, 혹은 각성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절기마다 얼굴이 바뀌는 사람이 있다.

젊은 나이에 방탕한 생활을 해서 가족으로부터 절연을 당했던 사람이 돌아왔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를 안쓰러워 하던 동생이 그를 거둔다.

예전 같지 않은 착실함을 지녔으나 절기마다 하루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형.

그러나 조카딸이 어느 날 그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중간 상인.

<흑백>에 등장했던 이 상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서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연결시켜주는 일을 한다.

이번 편에도 등장한 이 이름 모를 상인은 한 남자에게 다짜고짜 다가와 약속이라는 걸 하게 만든다.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반강제적으로 얼렁뚱땅 후려쳐서 한 계약.

절기마다 죽은 사람의 얼굴로 바뀌는 남자는 남겨진 가족들에게 그 얼굴을 보여주러 찾아다닌다.

그러다 어느 절기에 바뀐 얼굴로 죽은 자의 동네를 찾았다가 죽도로 얻어맞게 된다.

이 계약은 어떻게 끝이 날까?

 

"그러므로 마구루를 죽이기는 불가능합니다. 원한은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죽여도 죽여도 남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수 마구루.

그 괴수를 막을 수 있는 무기를 다루는 자는 대대로 여자에게만 전수된다.

이편의 제목이기도 한 <피리술사>

이 괴수를 손 피리로 홀려 스스로를 잡아먹게 한다는 설정이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하다.

그러나 남자들의 세계에서 이런 괴물을 퇴치하는 법을 여자가 전수받는다.

그로 인해 그 마을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귀하게 대접받는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두려워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지금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뭘까?

우리의 삶은 두려움을 망토처럼 두르고 나아가는 삶이 아닐까?

그렇다면 미미 여사가 괴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그 안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내는 오치카처럼 우리를 단련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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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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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버리고, 이야기하고 버리고.

괴담을 모으는 건 괴이한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집을 읽으며 에도시대의 일본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열 살 정도 되는 아이들도 일꾼으로 여기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오치카처럼 결혼 전 친척 집에 맡겨져 에도의 물을 입힌다든지

사촌들 간의 결혼도 그렇고, 가업을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이는 방식도 새삼스럽지 않다.

 

미시마야 주머니 가게의 흑백의 방에서는 괴담을 모집한다.

<안주>의 이야기는 괴이한 듯 슬픈 이야기가 담겼다.

 

쌍둥이를 용납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저주 때문에 함께 자라지 못한 쌍둥이.

큰집과 작은 집으로 분리되어 살게 된 아이들

그러다 한 아이가 죽는다. 나머지 한 아이를 정성을 다해 키우기로 다짐하지만 낳은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의 질투는 시어머니의 저주를 타고 아이를 괴롭힌다.

결국 천연두신의 은혜(?)를 입은 오카쓰의 가호 아래 오우메는 늦은 결혼을 한다.

 

이 아이가 가는 곳마다 물이 달아난다.

마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신.

약속을 지키는 아이에게 봉인 해제된 신은 가는 곳마다 물이 마르게 한다.

과연 미시마야에서도 물이 마를까?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에게 사람은, 그것을 없애는 존재다.

 

 

수국저택의 구로스케.

사람을 그리워한 집의 염원이 만들어낸 구로스케.

서로에게 상극임을 알면서도 우정을 쌓아가는 노부부와 구로스케의 사연이 감동적이다.

 

"가슴속 답답함은 다른 사람한테 털어 놔야 풀리는 법이에요"

 

 

요즘같이 '경청'이 사라지는 시대에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집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그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감추고 살았던 이야기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을 얻는 모습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게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며 성장해가는 오치카를 보면서 내 닫힌 마음도 성장하는 느낌이다.

오치카는 아마도 에도시대의 정신과의사이거나 상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묘한 이야기들 사이에 숨어 있는 건 사람의 마음이다.

외로운 마음

고통스러운 마음

질투와 시기

사랑받고 싶은 마음

자신의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

좀 더 큰 성공을 바라는 마음

그러나 그런 것들을 위해서는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을 잘 지켜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자기 욕심을 앞세우면 안 된다는 뜻이다.

 

100개의 이야기가 모아지면 이 시리즈도 끝날 것이다.

그 100개의 이야기에 담긴 인간사를 독특한 이야기와 함께 짚어 보는 것도 이 괴담집을 읽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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