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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그녀는 여전히 집 안에 그와 함께 있었다. 가까운 곳, 때로는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그러나 늘 시야 바로 너머에 잠복해 있었다.
그와 그녀는 중고품 가게에서 눈이 마주쳤다.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지만 몇 달 후 우연히 또 마주친다.
그리고 그동안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애나와 바움가트너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바움가트너>는 중간 이름이다. 폴란트계 유대인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어느 하루 냄비를 태워먹고, 그 냄비를 치우다 손에 화상을 입고, 전기 검침원을 지하실로 안내하다 넘어져서 무릎을 다친 날
바움가트너는 애나가 죽은 지 10년이 되었다는 걸 불현듯 느낀다.
폴 오스터는 누군가 무심히 지나치다 불현듯 깨닫게 되는 찰나의 감정이나 기분, 상황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내는 재능이 있다.
70대의 노교수는 한결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그 하루 동안 그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기억들은 그를 잠시 멈추게 하거나, 그가 하려던 무언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바움가트너>를 읽는 내내 나는 나의 70대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이 어떻게 흐르는지,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생각은 과거의 기억으로 껑충껑충 징검다리를 놓는다.
바움가트너는 그녀가 자기 몸으로 하는 일은 그녀가 알아서 할 바이고 따라서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애나 또한 그가 알아서 할 일은 그녀가 관여할 일이 아님을 알았기에 구태여 그에게 물은 적이 없었다.
어딘지 샌님 같은 바움가트너는 물러설 때를 알았다.
그것은 비겁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바움가트너식 합리적인 방어.
그는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고, 그다지 미워하지 않았으며, 그다지 원망하지 않았다.
주디스에게 청혼한 날 그녀의 반응 앞에서 그가 무기력하게 돌아섰냐면 아니다.
그는 주디스와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바움가트너가 좋다.
'무리' 하지 않는 사람. 바움가트너.
언제나 선을 지키는 사람 바움가트너.
그러나 꽤 현실적인 사람 바움가트너.
아버지의 장례에서 어머니에게 곧 무너져 내릴 그 도시를 떠나라고 말하는 바움가트너를 보며 세상 물정 모르는 글쟁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품을 건 품고
버릴 건 버리고
뒤돌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불현듯 한순간의 시간에 과거로 달려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도 아니고
현실과 과거 사이에 끼어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고약한 늙은이도 아니다.
바움가트너에겐 책과 글쓰기와 사색. 세 가지 동무가 있다.
인생의 동반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텅 빈 공허함을 채워주는 세 동무들.
그는 끊임없이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운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소소한 인연들을 믿는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가 평화롭다. 이 평화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서로에게 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바움가트너처럼 늙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의 마지막 장.
애나를 닮은 애나의 남겨진 글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의 방문을 기다리며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잠시 드라이브를 즐기던 바움가트너.
인간의 마지막은 정말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폴 오스터는 독자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나는 두 갈래로 내 맘대로 엔딩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르지만 크게 다를 거 같지 않은 나의 70대를 바움가트너를 통해 미리 들여다봤다.
과거가 쏜살같이 달려와 현실에 머무는 과정을
부모의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을
내 삶에 가장 중요했던 명장면들을 되살려보는 과정을...
스웨덴의 오베와는 또 다르게 미국의 바움가트너는 조용히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