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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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우리에게 주제를 정해 주고 발표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남매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일상을 공유하는 저녁 시간이 펼쳐졌다. 그런 대화를 통해 나는 어른들의 삶과 그들의 속한 더 넓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흐르던 생각이다.

빌 게이츠는 인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회고록을 직접 썼다.

그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한 편의 소설 같았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롤 모델을 찾아내고, 자신의 길을 찾아냈던 아버지와 부유한 가정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받으며 자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빌 게이츠는 똑똑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나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특출났지만 그 외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루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감췄고,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그를 이해하려 하고, 틀안에 가두지 않으려고 했던 부모님의 노력과 인내심은 이 다루기 어려운 아이가 어느 인간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빌 게이츠.

개천에서 용난 스타일이 아니라 갖춰질 건 모두 갖춰진 곳에서 그는 자신의 특징을 알아봐 준 어른들의 배려로 일찍 자신의 길을 찾은 케이스다.

그의 외할머니 가미는 그와 카드게임을 하며 그를 매번 이겼고, 여덟 살의 빌은 할머니를 이기려고 무척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할머니를 이겼을 때 그가 느꼈을 성취감이 어땠을지는 나도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이라 그저 부럽기만 했다.

매해 여름 열 가족이 모여 치리오 모임을 한 것도 인상적이다.

부모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의 가족이 모여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챙겨주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뽑기로 다른 부모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시간들도 그에게는 다른 어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영양분이었다.

중상위층의 어른들은 다양한 직업군에서 중요 직책에 있었기에 이런 모임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들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되었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배웠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독서를 통해 나는 온갖 종류의 것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한 가지 답을 찾으면 더 많은 질문이 떠오르기도 하고, 깊이 파고들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컴퓨터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에게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깨어있는 어른들이다.

그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엔 컴퓨터의 초창기 시대였고, 컴퓨터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길을 열어준 모니크 로나 부인, 레이크사이드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열린 자세, 대학과 기업이 어린 소년들이라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관심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많이 부러웠다.

지금 우리 학생들에게도 1960~70년대 빌 게이츠가 받았던 그런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걸 알고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표를 짜는 미션을 주는 것도 우리 사회에선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 같아서 비교가 됐다.

자칫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로 남았을지 모를 천재 빌 게이츠.

그의 멘토는 어른뿐만이 아니었다.

켄트는 그의 절친으로 장애를 극복한 학생이었다.

그의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즈니스적 감각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 감각을 배웠던 빌 게이츠는 친구 복도 많은 사람이었다.

정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복을 다 가진 빌 게이츠.




레이크사이드의 선생님들은 나에게 관점 변경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즉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라. 그것이 바로 세상이 발전하는 방법이다. 이는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이의 나에게 본질적으로 낙관적인 메시지였다.



게이츠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사람이다.

그 방어기지는 그가 사색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그건 어른들이 만들어준 장소다.

자연 속에서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이 그가 생각을 키우고, 발전시키고, 그것을 실현할 에너지를 보충하게 했다.

하루 종일 학교에 갇혀서 수능만을 위해 사육당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 역시 대학입시만이 중요한 학교생활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다른 교육관과 시스템 속에서 자란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들...

그래서 다들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던 걸까?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은 그에게 도전과제를 주기 위해 그를 도서관으로 데려간 칼슨 선생님.

그런 그에게 서가의 위치를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사라진 책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미션을 준 카피에르 선생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저자 로버트 풀검이 그의 고등학교 미술 선생이었다.

정말 타고난 인복이 아닐 수 없다.





하버드에서 쫓겨날 뻔한 일이 있었을 때 외할머니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건 성공한 사람이 가져야 하는 기본 바탕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윈도우는 컴을 사면 무조건 깔려 있는 것으로 알았고, 실제로 그랬다.

최근 들어 그것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 게 부끄러웠다.

아마도 처음 컴퓨터를 만났을 때부터 장착되어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탓에 가졌던 생각이었다.

여러모로 부러웠던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이 회고록의 에필로그에서 그는 자신은 불로 소득 같은 특권(부유한 미국에서 백인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다.)을 누렸으며 적절한 타이밍의 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어쩜 인류사에 빌 게이츠를 보내기 위해 신이 설계한 딱 알맞은 시기에 그가 태어난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을 장착하기 위해 책을 읽었던 시간과 코딩 작업을 하기 위해 수없이 새웠던 밤들

코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두뇌를 가졌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걸 잘 갈고닦아야 하는 시간들을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 이유를 빌 게이츠가 알려줬다.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읽고 나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일군 성공이라는 이름에 가려졌던 '진짜 성공적 인생'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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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력 (양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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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죽일 수는 없다



70쇄를 찍어서 양장 리커버로 새롭게 나온 <어른의 어휘력>은 내게 금기를 깬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노트 정리를 잘해서(공부하고는 무관함) 내 노트 빌려주는 대가로 강의실 자리를 맡아주던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는데 그런 좋은 기능을 어느새 상실하고 말았다.

얼마 전 읽은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에서 손웅정 선생은 책에 밑줄 치고, 메모하고, 완전히 내 것이 될 때까지 사용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못했다.

나는 책에 낙서는 고사하고, 밑줄 긋기도 못해서 붙여 두었던 인덱스도 떼어내는 성격인데 <어른의 어휘력>을 읽으며 그 강박에서 탈피했다.

익히고 싶은 단어들을 공책에 쓰고

인덱스를 붙이다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펜으로 꼬불꼬불한 밑줄까지 그으며 이 책을 읽었다.

곁에 두고 두고두고 읽으리라는 생각에

이 책을 깨끗하게 읽는 건 안 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했다.

너무 신났다!!!




어휘력은 말뜻뿐 아니라 말맛도 파악하는 능력이다.


내가 상당히 말을 잘못하며 살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은.

내가 당연시했던 말들이 틀리거나 무례하거나 쓰지 말아야 하는 말들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생각했다.

처음엔 그랬다.

읽다 보니 그런 잘못 들을 고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배웠으니 알차게 써야 한다.


사람을 평가하면서 세를 과시하는 어휘를 쓰지 않도록 조심하자. 인간의 도구화를 피할 길 없는 세상이라지만 이것만 지켜도 영혼을 다치는 사람들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주고받는 말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반성이 없지만 남에게 들은 말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았음을 토로한다.

하지만 속담에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했다.

쉽지 않지만

나부터 말투와 어휘들을 고쳐가기로 했다.

말 예쁘게 하는 사람들의 말을 열심히 들으면서 나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지.

이 책에 그은 밑줄과 받아 적은 어휘들을 실생활에서 잘 쓰고 싶다.

나 자신을 위해서...

다시 공부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진 속에 있는 노트 필기는 다른 노트에 초성별로 정리해야지.

예전 노트 필기 실력을 다시 소환할 때다.

필사가 별건가?

내가 공부한 것들을 잘 정리하는 것도 가장 좋은 필사 방법이겠지.

이 책은 한두 번 읽는다고 읽었다고 할 책이 아니다.

곁에 두고 수시로 꺼내 읽으면서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 책이다.

교과서처럼 달달 외우면서 내 생활에서 사용해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이 인쇄를 하고, 많이 팔렸는지 알 거 같다.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냥 이 책을 읽는 그 자체로 나 자신을 반성하고

내가 받은 말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그리고 좋은 말을 쓰고자 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말을 할 때 조금 더 신경 써서 하게 된다.

그리고 사라지는 우리 입말들이 그리워진다..

다시 그 말들을 들을날이 있을까?

책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이제야 몸에 익히는 중이다.

<어른의 어휘력>은 내게 여러 방면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다.

나를 덮고 있었는 어떤 장막을 걷어 준 책이며, 공부하는 재미를 다시 일깨워 준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강렬하게 나를 바꾸게 하는 책이 있다.

내겐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올해는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자신을 바꾸게 하는 그런 강렬한 책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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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 - 곰 세 마리부터 아기 돼지 삼 형제까지 흥미진진한 영국 동화 50편 드디어 시리즈 3
조셉 제이콥스 지음, 아서 래컴 외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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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편의 동화는 익숙한 듯 다른 느낌으로 읽혔다.

약간 바보들의 대행진 같은 느낌이랄까?

어리숙한 사람, 예쁘고 잘 생긴 남자와 여자, 마음씨 착한 사람, 나쁜 마녀, 욕심 많은 인간, 자기 보다 잘난 사람을 못 참는 사람들.

그들이 일궈내는 이야기엔 잔혹함과 무지와 바보스러움과 경악할 이야기들이 담겼다.

영국 동화에 제일 많이 나오는 이름은 '잭'

이 소년은 거인들을 속이고 그들을 죽이는 재주가 있다.

그뿐인가,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잭과 콩나무>는 그나마 귀여운 이야기였다.

<거인 사냥꾼 잭>은 거인 처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영국 동화엔 거인이 참 많이 나온다.

어쩜 아주 오래전 영국엔 정말 거인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동화는 헛소리 같지만 전혀 헛소리는 아니니까.

<닮지 않은 자매>와 <우물의 세 머리>에선 친절을 베푼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밀짚모자>, <고양이 가죽>, <골풀 외투>는 신데렐라 탄생의 배경 같다.

이 이야기를 읽었던 누군가는 재투성이 신데렐라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에선 게으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운 좋은 사람들 이야기도 많다.

<톰 팃 톳>을 읽으며 한 달 내내 아마로 실을 자은 새가 불쌍할 정도다.

나는 마법에 걸린 왕이 새로 변한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이름을 못 맞추는 왕비를 보다 못해 자기가 일부러 이름을 알려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아무 생각 없는 왕비만 행복하게 잘 살았다!

<게으름뱅이 잭>은 또 어떤가.

내가 게으름뱅이 잭의 엄마였다면 복창이 터져서 죽어버렸을 거다~

영국 동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고담의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다.

고담은 배트맨을 연상시켜서 꽤 하드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웬걸?

아! 정말 이렇게 바보들만 사는 동네였다니!

게다가 잘난 척들은 오지게 하는 양반들만 사는 곳이 바로 '고담'이라~

이 제목에 곁들인 속담 또한 "너 난 날 내 났다"라는 잘 뜯어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중간중간 만나는 아서 래컴의 컬러풀하고 환상적인 삽화가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했지만





페이지 사이사이 깨알처럼 박혀 있는 존 바튼의 그림들이 훨씬 동화의 매력을 살려냈다.

자주 들어서 아는 이야기도 고전처럼 원작으로 읽으니 새롭게 느껴지고, 내가 아는 이야기들이 많이 각색된 이야기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림 동화와 이솝 우화와는 다른 결의 영국 동화.

아서왕과 멀린도 나오는 거 보면 이 책에 담긴 50편의 동화는 영국인들에게 오랜 시간 웃음과 교훈을 준 이야기 같다.

이 이야기들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이 영국 문학 곳곳에 스며있을 거 같다.

이야기에서 배울 점을 제목 아래에 속담으로 연결시켜 둔 편집이 맘에 든다.

우리나라 동화처럼 권선징악이 확실하고 매듭이 분명하게 지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엔 기분이 찝찝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이 이야기들이 어딘가에서 진행 중인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그게 더 즐거웠다.

열린 결말은 내게 또 다른 상상의 시간을 주니까..

머리 식힐 책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을 동화다.

동화라서 마냥 아름다울 거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원래 동화는 잔혹한 현실을 위트 있게 꼬아 놓은 이야기라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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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책세상 세계문학 12
샬럿 브론테 지음, 신해경 옮김 / 책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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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쓰임이 있어. 나는 여기서 팔 년을 쓰였지.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쓰이는 거야. 그 정도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는 실행해볼 만하지 않아? 그래, 그래, 그런 목표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 그걸 달성한 수단을 짜낼 정도로 돌아가는 머리만 있다면.'



제인 에어를 읽었음에도 내 기억엔 그리 남아있지 않았다.

이번에 <제인 에어>를 읽으며 왜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제인과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틀안에서 자라고, 울타리 안에서 그 세상이 다라고 생각했었던 사람이었다.

내 안의 무엇은 그 틀을 깨고 싶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제인 에어는 나를 가로막는 틀을 자꾸 깨고, 부수고, 나아갔다.

나는 그게 부러우면서도 싫었다.

아마도 싫었던 이유는 제인이 가진 그 강인한 정신이 나에게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진 틀을 깨기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부터니까.

그 이전엔 순종적이고, 여자로서 지녀야 하는 덕목들이 내 발목을 잡았고, 난 한 번도 그걸 깨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

그렇게 깨어진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저 내 현실 그대로의 안온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제인 에어를 읽으며 나는 그녀의 생각이 성숙해짐에 따라 스스로를 책임지며 나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떨렸다.

내가 처음 만났던 제인에게서 지금 내가 보던 모습을 봤더라면 지금하고는 다른 나로 살고 있을까?





"위치! 위치라니! 당신의 위치는 내 심장 속이야. 그리고 지금이나 앞으로나 감히 당신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가지에 있지. 자, 갔다와요."



로체스터의 열렬함이 꼭 능숙한 바람둥이 같아서 순진한 제인의 혼을 빼내려는 거 같았다.

유려한 말솜씨가 나이 어린 소녀를 성숙한 여자로 만들어 버려서 정신을 빼놓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로체스터와 제인의 나이 차이 때문에도 거부감이 있었던 거 같다.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지 못한 어린 나에겐...



"아니, 너는 스스로를 떼어내야 해. 아무도 널 도와서는 안 돼. 너는 스스로 네 오른눈을 뽑아야 해. 스스로 네 오른손을 잘라야 해. 네 심장은 산 제물이 되어야 하고, 너는 네 심장을 찌르는 사제가 되어야 해."


위기의 순간마다 제인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한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의 그녀는 무적이다.

그렇게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언제부터 놓쳤을까?

나는 제인을 만나는 동안 내가 나를 놔버린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했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멈춰버린 순간이 언제인지, 나와의 시간을 갖지 않은 지가 얼마나 됐는지, 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다.


나는 그의 슬픔에서도 빠져나가야 한다.



많은 사랑들이 상대방의 슬픔에 절여져서 스스로의 생각을 접는 모습을 많이 봤다.

내가 주체가 아닌 상대방을 우선으로 두는 행위가 숭고한 사랑이라 믿는 어리석음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그것이 어떤 불행을 가져오는지 숱하게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18살의 제인 에어는 단호했다.

그의 슬픔으로부터 제인 에어를 지켜냈다.

그러기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상황들을 이해할 시간을 충분하게 가질 수 있었기에 장애를 가진 로체스터를 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쩜 그랬기에 손필드에서 벗어나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었겠지..

안 그랬다면 손필드의 불꽃놀이에 자신을 불태웠을지도 몰라.



신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 힘을 주셨소.



신존의 이 말은 제인 에어를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그 힘을 온전하게 잘 활용한 건 제인 에어니까.

신존(다른 버전에선 세인트 존)이라는 이름이 참 낯설지만 이렇게 번역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다.

이 신존이란 인물을 꿰뚫어 보는 제인의 무의식이 새삼 존경스럽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혜안을 가지고 있다니! 그래서 많은 여성 팬을 갖게 되었겠지만..

그건 아마도 제인이 마음이 하는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해주는 말보다는 남들의 말에 좌지우지되고 마는 요즘 사람들에게 제인은 경각심을 주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의 결함을 느끼고 용기를 갖게 되었다. 나와 같이 있는 사람은 나와 동등한 자였다. 내가 논쟁할 수 있는, 내 논리가 정연하다면 저항할 수 있는 자 말이다.



논리가 있는 것과 냉정한 것은 다르다.

제인은 논리가 있었고 그건 그녀의 생각하는 힘이었다.

<제인 에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생각하는 힘'이 아닐까?

충분히 생각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자의 행보는 어지럽지 않다.

고전을 다시 읽을 이유 하나를 또 찾아냈다.

로체스터와 신존과 제인의 대화를 곱씹으며 상대를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법을 다시 배운 기분이다.

이 소녀가 여인이 되어가는 모습은 참 경이롭다.

고집 세고, 앙칼지며 마음껏 분노를 표출하던 제인의 마음 바닥에는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이 존재했다.

그 억울함이 템플 선생님의 지혜로 풀어진 다음에야 제인은 제인 다워질 수 있었다.

제인 같은 억울함을 분노로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템플 선생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것 또한 고전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지혜인 거 같다.

아마도

내가 나에게서 멀어졌다고 느껴지는 그때마다 이 책을 다시 펼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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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애덤스 이야기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2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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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서운 것이었다. 그는, 니컬러스 애덤스는, 그 안에 있는 어떤 자질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자질은 영원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라질지도 몰랐다.



<바질 이야기>를 읽고 나서 닉 애덤스 역시 비슷한 시대를 통과한 소년의 이야기라 생각했었는데 <닉 애덤스 이야기>는 첫 이야기부터 뭔가 살벌하면서도 위험한 삶의 여정 같았다.

닉의 등장은 겁 많은 소년이었다.

아버지와 삼촌과 밤낚시를 온 닉은 혼자 텐트에 있게 되자 무서워서 총을 세 발 쏜다.

아버지와의 신호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총을 쏘라는. 덕분에 겁쟁이라는 말을 듣게 됐지만.

인디언 부락에서 난산의 고통에 신음하는 산모를 돕는 아버지 곁에서 심부름을 하던 닉은 생명의 탄생과 동시에 아내의 괴로운 비명소리를 감내하지 못한 남편의 자살 현장을 보게 된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되는 밤.

그것이 닉 애덤스의 첫인상이었다.






동생과 닉은 서로만을 사랑할 뿐,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다. 다른 가족은 그들에게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닉 애덤스 이야기>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위험한 십 대의 닉 곁에 여동생이 있다.

사냥 금지 동물을 죽인 이유로 수렵 감시인에게 쫓기며 동생과 근친상간적인 뉘앙스를 띄운다.

닉 애덤스라는 인물이 헤밍웨이를 대변하는 느낌이라서 이 부분에 약간 멈칫했다.

낚시를 좋아하고, 글을 쓰며 어딘지 동떨어진 세상을 살고 있는 느낌을 가진 닉 애덤스.

전쟁터에서 횡설수설하며 자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청년이 전쟁의 참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으로 보여서 마음이 애잔해졌다.



닉은 헬렌의 기분이 안 좋을 때 글이 제일 잘 써졌다. 딱 그만큼의 불만과 불화가 필요했다.



가정을 가진 닉 애덤스

자신의 아들과 함께 하면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닉 애덤스.

친구와 스키를 타며 자유를 만끽하는 닉 애덤스.

그의 내면은 닉의 이야기처럼 자꾸 세월을 건너뛴다.

바질이 질서정연한 성장기를 보냈다면

닉 애덤스는 월든 같은 성장기를 보인다고나 할까?

자연 속에 버티면서 어디로 튈지 모를 감수성을 가진 남자가 자신을 누르며 사는 방법은 글쓰기였다.

자신이 위대한 작가가 되리라는 걸 알았던 닉 애덤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어린 헤밍웨이와 청년 헤밍웨이와 중년의 헤밍웨이가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새롭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건 아니다. 모든 것은 결국 부진해진다.




힘 있는 문체는 배경 묘사에 탁월해서 마치 내가 그 숲에 숨어서 닉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투박한 듯 세련된 문체는 묘하게 중독적이라서 읽고 있는 내내 삶을 살아내는 닉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거칠고 잔인한 느낌과 함께 다정하고 세심하며 굳건한 느낌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닉 애덤스.

단편이 주는 다채로움이 <닉 애덤스 이야기>의 최대 묘미다.

그래서 닉 애덤스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려 명의 동명이인의 삶을 그려 놓은 거 같다.

그게 바로 헤밍웨이인 거 같다.

실제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새로운 내 모습도 결국엔 부진한 모습이 되기에 부진함을 떨치기 위해 매해 또다시 새롭게 다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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