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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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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우리에게 주제를 정해 주고 발표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남매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일상을 공유하는 저녁 시간이 펼쳐졌다. 그런 대화를 통해 나는 어른들의 삶과 그들의 속한 더 넓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흐르던 생각이다.
빌 게이츠는 인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회고록을 직접 썼다.
그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한 편의 소설 같았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롤 모델을 찾아내고, 자신의 길을 찾아냈던 아버지와 부유한 가정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받으며 자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빌 게이츠는 똑똑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나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특출났지만 그 외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루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감췄고,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그를 이해하려 하고, 틀안에 가두지 않으려고 했던 부모님의 노력과 인내심은 이 다루기 어려운 아이가 어느 인간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빌 게이츠.
개천에서 용난 스타일이 아니라 갖춰질 건 모두 갖춰진 곳에서 그는 자신의 특징을 알아봐 준 어른들의 배려로 일찍 자신의 길을 찾은 케이스다.
그의 외할머니 가미는 그와 카드게임을 하며 그를 매번 이겼고, 여덟 살의 빌은 할머니를 이기려고 무척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할머니를 이겼을 때 그가 느꼈을 성취감이 어땠을지는 나도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이라 그저 부럽기만 했다.
매해 여름 열 가족이 모여 치리오 모임을 한 것도 인상적이다.
부모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의 가족이 모여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챙겨주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뽑기로 다른 부모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시간들도 그에게는 다른 어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영양분이었다.
중상위층의 어른들은 다양한 직업군에서 중요 직책에 있었기에 이런 모임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들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되었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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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독서를 통해 나는 온갖 종류의 것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한 가지 답을 찾으면 더 많은 질문이 떠오르기도 하고, 깊이 파고들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컴퓨터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에게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깨어있는 어른들이다.
그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엔 컴퓨터의 초창기 시대였고, 컴퓨터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길을 열어준 모니크 로나 부인, 레이크사이드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열린 자세, 대학과 기업이 어린 소년들이라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관심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많이 부러웠다.
지금 우리 학생들에게도 1960~70년대 빌 게이츠가 받았던 그런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걸 알고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표를 짜는 미션을 주는 것도 우리 사회에선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 같아서 비교가 됐다.
자칫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로 남았을지 모를 천재 빌 게이츠.
그의 멘토는 어른뿐만이 아니었다.
켄트는 그의 절친으로 장애를 극복한 학생이었다.
그의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즈니스적 감각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 감각을 배웠던 빌 게이츠는 친구 복도 많은 사람이었다.
정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모든 복을 다 가진 빌 게이츠.
레이크사이드의 선생님들은 나에게 관점 변경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즉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라. 그것이 바로 세상이 발전하는 방법이다. 이는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이의 나에게 본질적으로 낙관적인 메시지였다.
게이츠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사람이다.
그 방어기지는 그가 사색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그건 어른들이 만들어준 장소다.
자연 속에서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이 그가 생각을 키우고, 발전시키고, 그것을 실현할 에너지를 보충하게 했다.
하루 종일 학교에 갇혀서 수능만을 위해 사육당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 역시 대학입시만이 중요한 학교생활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다른 교육관과 시스템 속에서 자란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들...
그래서 다들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던 걸까?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은 그에게 도전과제를 주기 위해 그를 도서관으로 데려간 칼슨 선생님.
그런 그에게 서가의 위치를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사라진 책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미션을 준 카피에르 선생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저자 로버트 풀검이 그의 고등학교 미술 선생이었다.
정말 타고난 인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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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쫓겨날 뻔한 일이 있었을 때 외할머니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건 성공한 사람이 가져야 하는 기본 바탕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윈도우는 컴을 사면 무조건 깔려 있는 것으로 알았고, 실제로 그랬다.
최근 들어 그것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 게 부끄러웠다.
아마도 처음 컴퓨터를 만났을 때부터 장착되어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탓에 가졌던 생각이었다.
여러모로 부러웠던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이 회고록의 에필로그에서 그는 자신은 불로 소득 같은 특권(부유한 미국에서 백인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다.)을 누렸으며 적절한 타이밍의 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어쩜 인류사에 빌 게이츠를 보내기 위해 신이 설계한 딱 알맞은 시기에 그가 태어난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을 장착하기 위해 책을 읽었던 시간과 코딩 작업을 하기 위해 수없이 새웠던 밤들
코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두뇌를 가졌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걸 잘 갈고닦아야 하는 시간들을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 이유를 빌 게이츠가 알려줬다.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읽고 나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일군 성공이라는 이름에 가려졌던 '진짜 성공적 인생'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