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5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근삼 옮김 / 빛소굴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그림은 언제까지 젊음을 유지하고 있겠지. 6월의 오늘 이후로는 결코 늙지 않을 거야. 만약 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게 나 자신이고, 늙어가는 게 이 초상화라면! 그렇다면...... 그렇다면......난 모든 걸 다 내놓을 거야! 그래,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내놓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이라도 내놓을 거야!"



소원을 빌 때는 신중히..

그러나 그렇게 신중하게 빈 소원보다는 무심결에 마음에 있는 소리가 울릴 때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6월의 어느 날 도리언 그레이가 무심코 바랐던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다.

자신을 복제해 놓은 것 같은 초상화가 자기 대신 늙어버렸으면 했던 그 바람은 누구의 힘인지 모를 힘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도리언 그레이가 세상의 때, 세상의 악, 추함과 어리석음과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느낄 때마다 세월의 상처를 입는 것은 초상화였다.

나 대신 늙어가는 초상화 속의 내 모습을 두려움과 동시에 희열을 느끼며 바라보는 도리언 그레이.

그가 조금 더 영글었을 때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그가 헨리를 만나기 전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는 다른 생각으로 살았을까?






이 그림에는 죄의 타락을 드러내 보이는 명백한 상징이 있다. 인간이 그 영혼에 가져다주는 파멸의 부단한 흔적이 있다.



스펀지 같은 사람이 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스펀지처럼 주변의 것들을 흡수한다.

다만 흡수되는 것의 대부분이 사람들이 경계하는 것들이라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도리언 그레이에게 헨리가 그랬다.

묘하게 격동시키는 말들도 도리언의 순수함에 타격을 주고, 그를 어둠으로 이끈다.

신랄한 이야기로 그를 자극하고 그가 갈등하는 걸 즐긴다.

그날 그림이 완성되는 날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빌었던 그 소원도 헨리 때문이다.

영글지 못한 순수함에 교묘한 불안을 조성해서 흔들리게 만드는 뱀 같은 혀.

바질이 헨리에게 도리언을 소개하지 않으려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죄는 죄를 부르고

악은 악을 부르고

그것에 물든 마음에 양심이 피어난다.

도리언 그레이는 결국 자기 파괴의 화신이 되었다.

그는 자기 대신 늙어가고 변해가는 초상화를 보면서 그저 회피하려고만 했다.

회피야말로 상황을 더 악화 시키는 것인데.

마흔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 갈 건지는 스스로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을 얻었지만 동시에 불안도 함께했다.

그가 자신의 초상화를 매일 보며 마음을 다졌더라면 어땠을까?

젊음도

부도

명예도

권력도

그걸 다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순수한 영혼에 악의 씨앗을 뿌리는 헨리 같은 사람에게서 조언을 구한 도리언의 잘못일까?

그에게 헨리를 소개한 바질의 잘못일까?

사람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남을 눈을 통해서 자신을 보려 할 뿐이다.

그것이 도리언 그레이가 헨리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그의 말을 듣고 흔들리는 이유다.

도리언 그레이가 믿어야 했던 건 자신의 초상이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삶의 가치가 반영되는 초상을 믿었더라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오스카 와일드의 이 이야기는 돌고 돌았을 뿐

철학자들이 말하는 '고독'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사람의 비참한 말로가 아닐까?

헛되이 돌아다니며 사람들 틈에서 영양가 없는 시간을 보내느니

그 시간을 자신의 초상을 마주하며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자신의 완성을 꿈꾸는 철학자들이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드는 이유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너 자신을 알라'는 오스카 와일드식의 또 다른 버전이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남의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살라는 경고다.

휘둘리고 흔들리는 삶은 결국 내가 나를 해치는 삶이라는 걸 도리언 그레이가 말해주고 있는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간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추체험이 있다. 직접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 마치 과거의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 공간은 나로 하여금 역사의 시간 속에 몰입하게 해 주는 드라마 세트장인 셈이다.



종로구에서 태어나 종로구에서 내리 살아온 나는 내가 늘 다니던 길과 장소에 그렇게 많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궁궐과 몇몇 사적들만 알고 있었지 내 발길 닿았던 곳곳에 역사가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그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를 읽는 시간은.

서양의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지켜낸 강화도는 임금의 피난처였다.

한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역사를 품고 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몰래 염하를 건너 정족산성에 도착한 양헌수와 군사들.. 그들이 없었다면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은 루브르에서나 볼 수 있었을 테지...



일제가 미두 거래, 주식, 금광 개발 등을 통해 일부 한국인이 벼락부자가 되도록 놔둔 것은 ㅅ람들에게 현실을 잊게 하는 마약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를 통해 식민 통치의 부당함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이 있었다. 한탕주의의 만연은 일제가 한국인에게 뿌려 놓은 새로운 의식 문화였다. 근대화, 식민화는 한국인의 의식까지도 변화시켰던 것이다.



인천 제물포항에서 쌀을 수탈하던 일본이 우리에게 심어준 한탕 주의.

그 온상이 되었던 곳. 차이나타운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곳.

인천은 스치듯 지나쳤던 기억뿐이라 언젠가 이 책에 담긴 장소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길의 이름은 영어로 "Kings's Road"라고 이름 붙였다.

좁은 골목길로 도망치던 고종의 모습을(아관파천) 떠올리면 그곳의 이름을 '왕의 길'로 이름 붙인 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명동 일대의 땅은 질어서 진고개란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 가난한 이들이 살았던 이곳은 지금 한국의 금싸라기 땅이 됐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도성 안에 살게 된 계기를 만든 일본공사관이 있었다.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는 남산 조선총독부가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미츠코시 백화점은 그대로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남산, 명동, 남대문에 이르는 길을 저자는 '국치의 길'이라고 명명했다.

자주 찾는 곳이었는데 그런 역사적 사실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명동과 남대문에 갈 때는 이 책에 담긴 곳들을 다녀보자 생각한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를 읽으며 가장 열받았던 장은 4장 독립운동의 현장 효창공원이다.

효창원이란 이름으로 조선 왕실의 가족묘가 있던 숲이 우거진 효창원. 이곳에 있던 1원, 3묘가 서삼릉으로 옮겨지고 일본인을 위한 공원과 행사장을 만들었다.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을 만든 것처럼.

해방 후 이곳에 김구 선생이 애국지사의 묘소를 만들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분의 유해를 모셨다.

그러나 이승만은 순국선열의 묘를 이장 시키려 했지만 여론을 의식해서 이루지 못했다.

그대신 그는 보란 듯이 효창운동장을 만들었다.

순국선열들의 묘소에 우거진 15만 그루의 나무를 베고 연못을 메워 운동장을 만들었다.

이 대목을 읽는데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한때 재봉 공장들이 즐비했던 창신동.

지금은 새롭게 변신 중인 창신동.

동대문 가기 전에 지나치던 동네 창신동.

그곳이 한때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무려 1961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니 정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낙산공원이 예전에 돌산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채석장이 있었다는 게 이해는 되지만 처음 듣는 거라 내가 낳고 자랐던 옆 동네의 과거가 새롭게 다가왔다.

확실하게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역사인 거 같다.

내 발길 닿는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었고, 역사의 증인이었다.

장소는 모든 걸 품고 말없이 달라는지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

무심코 다니던 길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느낌이 들 거 갔다.

한동안 시청 일대를 다닐 일이 있는데 이 책을 들고 가야겠다.

책에 나온 장소들을 찾아 다시금 그 역사의 현장을 생각하며 느껴보고 싶다.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긴다.

아이들과 서울 거리를 걸을 때 이런 역사를 설명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는 여전히 집 안에 그와 함께 있었다. 가까운 곳, 때로는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그러나 늘 시야 바로 너머에 잠복해 있었다.




그와 그녀는 중고품 가게에서 눈이 마주쳤다.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지만 몇 달 후 우연히 또 마주친다.

그리고 그동안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애나와 바움가트너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바움가트너>는 중간 이름이다. 폴란트계 유대인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어느 하루 냄비를 태워먹고, 그 냄비를 치우다 손에 화상을 입고, 전기 검침원을 지하실로 안내하다 넘어져서 무릎을 다친 날

바움가트너는 애나가 죽은 지 10년이 되었다는 걸 불현듯 느낀다.

폴 오스터는 누군가 무심히 지나치다 불현듯 깨닫게 되는 찰나의 감정이나 기분, 상황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내는 재능이 있다.

70대의 노교수는 한결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그 하루 동안 그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기억들은 그를 잠시 멈추게 하거나, 그가 하려던 무언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바움가트너>를 읽는 내내 나는 나의 70대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이 어떻게 흐르는지,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생각은 과거의 기억으로 껑충껑충 징검다리를 놓는다.


바움가트너는 그녀가 자기 몸으로 하는 일은 그녀가 알아서 할 바이고 따라서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애나 또한 그가 알아서 할 일은 그녀가 관여할 일이 아님을 알았기에 구태여 그에게 물은 적이 없었다.



어딘지 샌님 같은 바움가트너는 물러설 때를 알았다.

그것은 비겁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바움가트너식 합리적인 방어.

그는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고, 그다지 미워하지 않았으며, 그다지 원망하지 않았다.

주디스에게 청혼한 날 그녀의 반응 앞에서 그가 무기력하게 돌아섰냐면 아니다.

그는 주디스와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바움가트너가 좋다.

'무리' 하지 않는 사람. 바움가트너.

언제나 선을 지키는 사람 바움가트너.

그러나 꽤 현실적인 사람 바움가트너.

아버지의 장례에서 어머니에게 곧 무너져 내릴 그 도시를 떠나라고 말하는 바움가트너를 보며 세상 물정 모르는 글쟁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품을 건 품고

버릴 건 버리고

뒤돌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불현듯 한순간의 시간에 과거로 달려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도 아니고

현실과 과거 사이에 끼어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고약한 늙은이도 아니다.

바움가트너에겐 책과 글쓰기와 사색. 세 가지 동무가 있다.

인생의 동반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텅 빈 공허함을 채워주는 세 동무들.

그는 끊임없이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운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소소한 인연들을 믿는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가 평화롭다. 이 평화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서로에게 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바움가트너처럼 늙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의 마지막 장.

애나를 닮은 애나의 남겨진 글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의 방문을 기다리며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잠시 드라이브를 즐기던 바움가트너.

인간의 마지막은 정말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폴 오스터는 독자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나는 두 갈래로 내 맘대로 엔딩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르지만 크게 다를 거 같지 않은 나의 70대를 바움가트너를 통해 미리 들여다봤다.

과거가 쏜살같이 달려와 현실에 머무는 과정을

부모의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을

내 삶에 가장 중요했던 명장면들을 되살려보는 과정을...

스웨덴의 오베와는 또 다르게 미국의 바움가트너는 조용히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인터뷰집
애덤 바일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예술가든 자기가 뭔가에 대한 해답을 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작품은 수난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좋은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애덤 바일스는 파리의 유서 깊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문학 디렉터로 일하면서 10년간 인터뷰한 작가들 중 최고의 인터뷰를 엄선해서 책으로 엮었다.


아는 작가들은 알아서 반가웠고, 모르는 작가들은 궁금해서 반가웠다.

애덤 바일스가 짧지만 임팩트 있게 작가 소개를 하는 장면이 매회 인상적이다.

그가 작가 소개를 하는 대목을 읽으면 나도 덩달아 설레게 된다. 


퍼시벌 에버렛의 유머

올리비아 랭의 고독

말런 제임스와 조지 손더스의 역사적 인물

칼 오베 크네우스고르의 소설을 빙자한 회고록

콜슨 화이트헤드와 레니 에도로지의 인종차별

하리 쿤즈루의 음악

레일라 슬리마니와 미리엄 테이브스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이야기

제스민 워드의 죽음

카를로 로벨리와 아니 에르노의 시간

제니 장의 두 문화 사이에 살면서 느끼는 혼란

미나 칸다사미의 가정폭력


내가 키워드로 분류한 작가들의 작품은 읽어 본 것도 있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책들은 목록에 달아놨다.

하지만 번역되지 않은 책들도 있어서 언젠간 그분들의 작품도 우리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랐다.

키워드로 분류하지 못한 작가님들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애덤 바일스는 작가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가 있다.

이토록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는 처음인 거 같다.






바르도의 링컨을 읽었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팁을 이 책에서 얻었다.

링컨의 이야기가 성경과 닮았다니~ 이런 생각은 작가라서 하게 되는 걸까?



책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말하는 일이고, 그것이 책의 힘입니다. 그런 문학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을 뿐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요. 단지 상을 못 받을 뿐이죠.




아직도 소설이 이전 세대 때와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레이철 커스크의 말이 인상적이다.


키르케가 꼭 인간처럼 말하는 무서운 여신이라는 정보 하나로 새로운 키르케를 만들어 낸 매들린 밀러.

한 문장에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작가의 재능이 놀랍다.



나는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바꿀 만큼 거대한 힘은 없지만 경계는 설정할 수 있다.


이런 멋진 말을 한 레디 에도로지의 작품 <내가 더는 백인과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제목만 읽어도 그 마음이 와닿는다. 요즘 내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바꾸고 싶은 제목이다. <내가 더는 어르신들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로.



인터뷰는 조금 딱딱하고 형식적인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그런 모습이 없어서 좋았다.

그건 질문자의 질문이 작가의 입을 제대로 열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질문이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고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아낸 질문자의 진심이 담긴 질문에 작가들은 저절로 자신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하게 되는 거 같다.


여기 나온 작가의 책들을 모두 읽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일 테지만 내가 읽은 책들이 많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구할 수 있는 책들은 구해서 읽고 나서 다시 이 인터뷰를 읽고 싶다.

작품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궁금했던 것들을 이 인터뷰를 통해 알아낼 수 있을 테니.


책을 덮으면서 한강 작가님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인터뷰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노벨상을 받으셨으니 이 유서 깊은 장소에서 한강의 인터뷰가 이루어져 그분이 못다 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단순히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이 인터뷰집에 의의를 두자면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선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를 찾는 방법도,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과정도 모두 개성 있어서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진가를 다했다고 할까.


우리에게도 이런 장소와 이런 질문자가 있는 인터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느낀 이 경쾌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인터뷰를 주관하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때 저 길로 가고 싶었는데

그때 저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그때 저 사람을 구해주고 싶었는데

그때 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는데

그때 저 여자를 따라가고 싶었는데

그때 저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때 저 문을 열고 싶었는데

그때 저 옷을 입고 싶었는데

그때 저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그때 저 호텔에 묵고 싶었는데

그때 저 책을 읽고 싶었는데

그때 저 기회를 잡고 싶었는데



발터 벤야민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은 <고독의 이야기들>이 처음이다.

마치 카프카를 읽은 것과 비슷했지만 참 달랐다.

카프카가 자신 안에 갇힌 고독이라면 벤야민은 다양한 맛의 고독을 음미하게 했다.



툭툭 끊기는 이야기들 앞에서 답답한 느낌보다는 아련한 느낌이 든다.

마치 다 적지 못한 뒷얘기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 같아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놓는다는 건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찰나의 생각들을 글로 잡아 놓은 이야기들이 나를 가볍게 한다.

그러면서 발터 벤야민이 나름 업계에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면 전혀 세상에 나올 일이 없을 거 같은 글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들의 첫 페이지엔 제목과 함께 파울 클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피카소가 그린 거 같은 그림들을 보면서 벤야민의 글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딘가 난해하고 무엇을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인상적이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잡다한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무심한 듯 적어 놓은 글을 그저 무심하게 읽었기에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고

이 글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애써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읽다가 말다가, 말다가 읽다가 했다.

편집자의 해제를 읽으면 도움이 됐겠지만 그건 내게 선입견을 줄 테니 읽지 않았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그의 무의식과 의식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물었다. "어째서 두 분은 눈치를 못 채신 겁니까? 제가 한 말은 사실일 수 없었는데." 잠시 말이 없던 남자는 이렇게 답했다. "맞습니다. 저도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거짓말은 아니겠지. 저 사람이 나한테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어떤 부부와 산책을 하던 그는 파이프가 없어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자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열 걸음도 가기 전에 다른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찾는다. 그는 즉시 되돌아와 그들과 헤어진 지 1분도 안 되어 연기가 피어오르는 파이프를 물고 파이프가 자기 집 탁자 위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얼버무리고 산책을 하다 그가 그들에게 자신의 거짓말에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대목이다.

이 한 대목에서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읽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평소의 삶이 어떤지...

어떤 글은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냥 그걸 읽었다는 느낌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의 고독들이 그렇다.

내가 어느 한순간 스치듯 느꼈던 그 한 부분을 나는 잊었지만 벤야민의 글에서 향수처럼 만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고독의 이야기들>은 그 몫을 다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