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ㅣ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평점 :

공간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추체험이 있다. 직접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 마치 과거의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 공간은 나로 하여금 역사의 시간 속에 몰입하게 해 주는 드라마 세트장인 셈이다.
종로구에서 태어나 종로구에서 내리 살아온 나는 내가 늘 다니던 길과 장소에 그렇게 많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궁궐과 몇몇 사적들만 알고 있었지 내 발길 닿았던 곳곳에 역사가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그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를 읽는 시간은.
서양의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지켜낸 강화도는 임금의 피난처였다.
한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역사를 품고 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몰래 염하를 건너 정족산성에 도착한 양헌수와 군사들.. 그들이 없었다면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은 루브르에서나 볼 수 있었을 테지...
일제가 미두 거래, 주식, 금광 개발 등을 통해 일부 한국인이 벼락부자가 되도록 놔둔 것은 ㅅ람들에게 현실을 잊게 하는 마약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를 통해 식민 통치의 부당함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이 있었다. 한탕주의의 만연은 일제가 한국인에게 뿌려 놓은 새로운 의식 문화였다. 근대화, 식민화는 한국인의 의식까지도 변화시켰던 것이다.
인천 제물포항에서 쌀을 수탈하던 일본이 우리에게 심어준 한탕 주의.
그 온상이 되었던 곳. 차이나타운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곳.
인천은 스치듯 지나쳤던 기억뿐이라 언젠가 이 책에 담긴 장소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길의 이름은 영어로 "Kings's Road"라고 이름 붙였다.
좁은 골목길로 도망치던 고종의 모습을(아관파천) 떠올리면 그곳의 이름을 '왕의 길'로 이름 붙인 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명동 일대의 땅은 질어서 진고개란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 가난한 이들이 살았던 이곳은 지금 한국의 금싸라기 땅이 됐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도성 안에 살게 된 계기를 만든 일본공사관이 있었다.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는 남산 조선총독부가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미츠코시 백화점은 그대로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남산, 명동, 남대문에 이르는 길을 저자는 '국치의 길'이라고 명명했다.
자주 찾는 곳이었는데 그런 역사적 사실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명동과 남대문에 갈 때는 이 책에 담긴 곳들을 다녀보자 생각한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를 읽으며 가장 열받았던 장은 4장 독립운동의 현장 효창공원이다.
효창원이란 이름으로 조선 왕실의 가족묘가 있던 숲이 우거진 효창원. 이곳에 있던 1원, 3묘가 서삼릉으로 옮겨지고 일본인을 위한 공원과 행사장을 만들었다.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을 만든 것처럼.
해방 후 이곳에 김구 선생이 애국지사의 묘소를 만들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분의 유해를 모셨다.
그러나 이승만은 순국선열의 묘를 이장 시키려 했지만 여론을 의식해서 이루지 못했다.
그대신 그는 보란 듯이 효창운동장을 만들었다.
순국선열들의 묘소에 우거진 15만 그루의 나무를 베고 연못을 메워 운동장을 만들었다.
이 대목을 읽는데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한때 재봉 공장들이 즐비했던 창신동.
지금은 새롭게 변신 중인 창신동.
동대문 가기 전에 지나치던 동네 창신동.
그곳이 한때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무려 1961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니 정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낙산공원이 예전에 돌산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채석장이 있었다는 게 이해는 되지만 처음 듣는 거라 내가 낳고 자랐던 옆 동네의 과거가 새롭게 다가왔다.
확실하게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역사인 거 같다.
내 발길 닿는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었고, 역사의 증인이었다.
장소는 모든 걸 품고 말없이 달라는지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
무심코 다니던 길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느낌이 들 거 갔다.
한동안 시청 일대를 다닐 일이 있는데 이 책을 들고 가야겠다.
책에 나온 장소들을 찾아 다시금 그 역사의 현장을 생각하며 느껴보고 싶다.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긴다.
아이들과 서울 거리를 걸을 때 이런 역사를 설명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