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땅 캐드펠 수사 시리즈 17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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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집을 떠나 수도사가 된 것은 그의 자유였겠지만, 그가 떠났다고 해서 그녀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녀는 새 남편을 얻을 수도 없잖아요. 수도사든 뭐든 그녀에겐 아직 남편이 살아 있으니까요. 그게 과연 공평한 일인가요?"


수도원에 기증된 땅에서 검은 머리카락의 뼈만 남은 시체가 발굴된다.

누군가 애도하며 묻어 둔 여자의 시체.

그녀는 누구일까?



그의 마음 뒤편에는 사람을 갉아먹는 저 하찮은 의심들이 늘 자리를 잡고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도공이었으나 갑자기 수도사가 되겠다고 수도원으로 떠난 남편.

홀로 남겨진 아름다운 아내는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

캐드펠과 휴는 이 뼈만 남은 시체가 바로 그녀일 거라 짐작하고 수도사가 된 그녀의 남편 루알드를 의심하지만 그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그 땅을 기증한 장원의 둘째 아들로 1년 전 갑자기 수도사가 된다며 멀리 있는 베네딕트 수도회로 떠난 설리엔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수도원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고향을 찾는다.


비슷한 시기에 수도사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난 두 남자.

뼈만 남은 채 기증된 땅에 묻힌 여자.

휴는 스티븐 왕을 도우러 떠나고 홀로 남은 캐드펠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게 될까?





"하지만 거짓말의 명분 같은 건 있을 수 없어요. 거짓말은 결국 재난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몸이 병들어 극심한 고통으로 벼만남은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만 전해야 할까?

멀쩡한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쇠약하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는 기분은 어떤 걸까?

우리도 주변의 환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알 권리를 단절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중세 시대 결혼 전 아버지에 묶이고, 결혼 후 남편에게 묶이고, 남편이 없을 때는 아들에게 묶이게 되는 여자들의 삶이란...

그런 생각 없이 자신의 신념만을 생각한 루알드 수사의 그 이기심은 온당한가?

어린 나이에 홀로 죄의 몫을 감당하려 했던 청년의 마음은?

죽은 자의 명예를 위해, 산 자들의 명예를 위해 고요히 묻을 줄 알았던 중세의 사건 처리 방식이 매력적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이번에도 청춘 남녀의 로맨스가 담겨있지만 그들이 주인공은 아니었다.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오랜 병환으로 누워있는 사람에게 이웃으로써 방문해서 환담을 나누는 모습도 중세 시대만의 매력인 거 같다.


<욕망의 땅>을 읽으며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여성들.

중복되지 않는 이야기로 이루어지는 시리즈의 매력과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이 빛나는 작품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시리즈 전권을 쌓아두고 읽어가다 보면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읽으면 좋은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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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세 번째, 미국에 가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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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약서를 열네 번쯤 연이어 읽는다. 너무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말이 그렇다는 거다). 내가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미국 출판사에 초청을 받은 주인공은 심정이 복잡하다.

이 사실을 남편 로버트에게 말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다.

그 와중에 런던에서 알게 된 트레시더 부인이 여행길에 아들과 함께 들려서 차 한잔 마시고 가겠다고 통보를 한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거절할 수 없다!


이 트레시더 부인 정말 짜증 난다.

런던에 있는 주인공의 집을 세를 주라고 닦달한다.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결국 그 얘길 하려고 집에 들른 것인데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해버리는 이 여자에 대한 불만을 전혀 쏟아내지 못하고 일기에다 적어버린다.


일기엔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을 잘 쓰는데 실제 마주한 상황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이 여자.

남편에게 매번 전전긍긍하고

아이들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하며

하녀에게도 할 말 못 하고 혼자 이불 킥~ 하는 이 여자.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착해서 환대를 받으며 미국인의 친절을 듬뿍~ 받는 이 여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도시를 다니지만 자신의 개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속상한 이 여자.






옛 플랑드르의 풍경 속에서 옛 플랑드르 시청의 옛 플랑드르 시계가 종을 울린다. 아서와 내가 정말 아름다운 소리라고 입을 모으는 순간, 보이지 않는 확성기에서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드디어! 새로 나온 치약을 소개합니다! 뜬금없는 광고에 옛 플아드르 분위기는 산산이 깨지고 아서와 나는 질색하며 클럽으로 가서 그의 가족을 만나 훌륭한 점심을 먹는다.

미국에 대한 온갖 소문을 듣고 직접 방문한 주인공에게 미국은 참 친절하다.

많은 파티에 초대를 받고, 생각 보다 많은 청중 앞에서 서고, 시카고 박람회까지 다녀온다.

파티의 연속, 다양한 사람들의 환대, 그 안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이 여자.

영국에서 보다 미국에서 더 작가 대접을 받는 거 같은 이 여자.


그녀의 일기를 일고 있음 키득키득 웃음이 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짠하다.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일기를 통해 쓴소리를 하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거절'에 대해 확고함을 가지고 있지만 한때는 '거절'을 못해서 혼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다가도 이불 킥을 했던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해 본다.


미국에서 그녀가 실수를 하면 어쩌지?

미국에서 뭔 일이 있는 거 아닐까?라는 나의 오지랖은 쓸데없는 거였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미국에서 충분히 자신을 누렸다.

영국에 두고 온 아이들과 남편을 떠올리며 울적해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작가로 대접해주는 미국에서의 여행이 그녀 인생에 가장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을 거 같다.


100년 전 이 여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환경과 시대만 달랐을 뿐 지금 우리와 그리 다를 게 없다.

이 소소한 일기를 읽는 시간에 마음이 온기로 차올랐다.

평범해 보이는 데 평범하지 않은 그녀.

평범해 보이지 않는데 지극히 평범한 그녀.

그녀의 재치만점 일기가 그 당시 여성들의 속내를 대변해 줬기에 그토록 인기가 있었던 거 같다.

다들 그녀처럼 살았을 것이다. 

사소함에 안달하고 큰일에 오히려 대범해지며 이웃들에게 상냥하기 위해 일기장을 불태웠던 여인.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마음도 가볍게 해준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시대적 특권이라는 걸 그녀를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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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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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오파트라 (위협적으로). 그가 가면, 그대들에게는 재수 없는 날만 펼쳐지리라. 오, 내가 내 아버지만큼 잔인한 성정을 지녔다는 사실을 그에게 부끄럼 없이 보일 수 있다면, 그대가 그리 말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리! 왜 그가 떠나기를 바라는가?

    16살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만남은 스핑크스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16살이 지금의 16살과 같다고 생각하면 그거야말로 오산이 아닐까?


    그녀는 12살에 언니가 일으킨 쿠데타로 아버지가 쫓겨나는 걸 지켜봤다.

    얼마 후 아버지는 로마의 지지를 얻어 왕좌를 탈환한다.

    그 과정을 지켜봤던 클레오파트라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16세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카이사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를 통해 안토니우스의 존재도 알게 된다.

    연약한 소녀의 모습으로 로마의 최대 권력자 둘을 녹여냈다.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엔 그들의 첫 만남과 클레오파트라가 기지를 발휘해 카이사르를 이집트에 묶어 놓는 과정을 그렸다.

    로마인들도 이집트인들도 카이사르가 로마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그걸 원치 않는 건 클레오파트라였다.

    곁에 두고 구워삶아야지 눈에서 멀어지면 금방 제정신을 차릴 카이사르를 로마를 보낼 순 없었을 것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속내를 모른다.

    카이사르 조차도....


    이 영리한 소녀는 이미 많은 걸 알아버렸고, 왕좌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그녀는 요부로 치부되고 그녀의 기지로 이집트에 발이 묶였던 그들을 한낮 사랑놀이에 정신이 팔려 속절없이 파괴된 인물로 그려냈다.


    나는 이 소녀가 누구보다 냉철하고, 정치적이며, 교묘했다고 생각한다.


    이 희극에서 카이사르는 그렇게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기 늙은 것만 한탄하는 늙다리 같아 보인다.

    역사가 말하는 그렇게 위대한 영웅이라면 클레오파트라의 속임수를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클레오파트라가 성장하고 똑똑해졌다고 이 희곡은 말하고 있다.

    버나드 쇼의 감각도 역사의 틀을 깨지는 못했나 보다.



    그가 그런 눈치도 못 챌 만큼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진 이유가 뭘까?

    이 희곡을 읽고, 같은 연극을 본다 하더라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와 두 남자의 21세기 현대적 해석이 절실하게 필요한 거 같다.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파라오의 오명을 벗겨주는 연구를 부지런히 했으면 좋겠다..


    카펫에 돌돌 말려 카이사르를 만나러 갔던 영특한 소녀의 꾀는 지금 생각해도 신박하다.

    이런 기지를 펼칠 수 있었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가 버나드 쇼 보다는 훨씬 읽기 편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시대가 희곡의 시대였기 때문인 거 같다.


    누군가 새로운 클레오파트라를 탄생시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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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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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초반에 피를 토해가며 죽어가는 쥐들의 모습 때문에 괴로웠다.

    어떤 징조가 보일 때 예민하게 그걸 간파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 리외는 자꾸 출몰하는 쥐들의 죽음에 의문을 갖지만 그의 이야기는 무시된다.

    돌이킬 수 없는 때가 되어야 공권력은 움직인다.


    읽는 내내 코로나 시국이 떠올랐다.

    집순이인 나로서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그리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기꺼이 규칙을 지키고자 했지만 내 의지가 아닌 것은 곧 자유의 박탈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언제나 편안했던 집순이의 생활이 갑자기 답답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도 도시가 봉쇄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도시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자유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이 이 고약한 역병을 물리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이 느닷없는 이별은, 어떤 모호함도 없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었으며, 아직 너무나 가까우면서도 이미 너무 멀어진 그 존재의 기억을 마주하며 우리는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준비 없이 이루어진 이별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상처를 잘 극복하고 있는 걸까?




    역병은 값을 지불하지 않죠.


    역병은 값을 지불하지 않지만 인간은 많은 것을 지불했다.

    다시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카뮈는 그 시련을 겪는 동안 묵묵히 상황을 써 내려가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쓴다.

    환자를 돌보는 리외, 어떻게든 백신을 만들어 보려는 카스텔,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애쓰다 결국 포기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랑베르.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손을 보탰던 타루.

    봉쇄가 장기화 됨에 따라 피곤에 절여지는 그들의 모습에 내 숨이 막혀온다.







    카뮈는 역병이 닥쳤을 때 봉쇄된 도시에서 서서히 변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들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코로나 이전의 나와 같지 않다.

    수많은 죽음을 보았던 시간.

    인간의 힘으론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던 그 무력했던 시간들이 자꾸 오버랩된다.


    그러나.

    그런 시간도 흘러간다.

    지금 우리는 살아남았고, '그것'을 이겨냈다.


    <페스트>를 읽으며 나는 살아남은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코 그 이전과 같을 수 없지만 그 이전의 삶으로 서서히 복귀하고 있는 '우리'

    이미 잊은 듯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우리의 기억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코시국 시절에 읽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시절에 읽었다면 나는 다른 부분에서 분노했겠지만 지금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깊이 묻어 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에 적절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책에서는 'peste'는 '전염병', 'la peste'는 '역병'. 'épidémie'는 '돌림병'으로 구분해 번역했다. 실제 카뮈는 그렇게 철저히 구분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를 읽기 전 역자의 글을 꼼꼼히 읽었다.

    번역에 있어서 이정서의 번역은 많은 이들에게 화제가 되었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가지고 있던 다른 출판사의 페스트와 비교해 봤다.

    비교해 보니 느낌이 달랐다.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알만한 출판사들이 시대가 바뀌고 독자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번역을 그대로 쓰면서 인쇄만 재탕하고 있는 것은 분명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제일 좋은 사람이 떠나는 겁니다."



    쥐들이 되돌아온 사실이 이렇게 기쁠 일이었던가!

    쥐들이 다시 찍찍거리고, 거리에 고양이가 나타난 사실로 역병이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평상시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오히려 큰일이 벌어졌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게 결국은 그것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임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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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몰 프레임
    조성환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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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환 작가의 <스몰 프레임>엔 두 편의 그래픽노블이 실려있다.

    창조의 시간을 보여주는 <제네시스> 그리고 죽음의 시간을 보여주는 <무명 사신>


    아담과 이브의 탄생처럼 먼 우주에서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고 그것에서 거인이 탄생한다.

    동물과 식물을 거리낌 없이 잡아먹고살던 거인은 외로움을 느끼고 어느 날 그의 몸에서 또 다른 거인이 탄생한다.

    같지만 다른 두 거인.






    과일만 먹고, 말을 하는 여자 거인에게 남자 거인은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말을 배워보지만 지적 차이가 나는 그 둘은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 거인의 몸에서 새로 태어나는 생명...


    세상은 그렇게 시작한다.


    아담과 이브의 공식을 살짝 비튼 느낌이 나는 <제네시스>.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된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줄어들지 않는 인간의 숫자는 저승사자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강제사.

    의학 발달로 인해 연명되는 인간들을 강제 소환하는 저승사자의 임무를 맡게 된 신참은 사람들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지 못하고 인간으로 강등되고, 신참이 주고 간 신무기인 우산의 존재는 고참 저승사자 역시 감정을 누르고 있을 뿐 인간의 목숨을 강제로 뺏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걸 알려준다.


    <무명 사신>을 보면서 이 지구상에서 공존의 이유를 모르는 종족인 인간들만 득시글해지는 현실이 보인다.

    그 현실을 타개하고자 사신들은 어떻게 인간을 효율적으로 수거(?) 할지를 논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모든 방법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거나 일어날 확률이 높은 일들이기에 간담이 서늘하다..



    인간 세상 모든 것들이 정해진 규칙대로 가야 하는 거라면 인간이 만들어 낸 사신의 존재도 그들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하는 법.

    그러나 그들에게도 애당초 감정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을 상대하다 보내 측은지심이 생기는 걸까?

    어떤 인간은 미련 없이 목숨을 빼앗고,, 어떤 인간 앞에서는 유예를 주는 사신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신들도 어떤 인간에게는 자비를 베푸니  저승사자라고 다를까.



    창조의 이야기와 죽음의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겼다.

    배우 구교환과 함께 프로젝트 구상 중에 만들어진 <무명 사신> 그래서 그런지 사신의 이미지가 구교환과 닮았다.


    아주 짧은 시간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그래픽노블이지만 어째서인지 찬찬히 음미하게 된다.

    탄생의 의미도 죽음의 의미도 깊게 생각할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보다.


    <무명 사신>을 읽다 보니 타노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넘치는 건 모자라니만 못하다고 했다.

    지구는 인간종만을 위한 것이 아닐진대... 인간은 군림하기 위해 자연과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자연의 역습이 인간의 최대 시련이 될 때 그것은 사신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 같다..


    어딘가에서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무명 사신>

    그가 고민에 빠져 생각하는 모습으로 앉아 있음에 감사해야 할 사람이 나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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