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의 정체 - 마침표 없는 정념의 군도를 여행하다
샬롯 카시라기.로베르 마조리 지음, 허보미 옮김 / 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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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샬롯 카시라기에 대해 부러운게 하나 있다면, 그건 그녀가 공주라는 점도,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점도 아니다.

바로 마조리 같은 스승이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오만가지 감정에 대해 스스럼없이 서로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다.

 

감정에 대해 나는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나도 알 수 없다.이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감추고 절제하는 걸 미덕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고 사는데 급급했다.

이 책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감정 수업.

조금 생소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살짝 맛을 본 나로서는 이 수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누군가와 이 책을 같이 읽고 서로가 느낀 점에 대해, 평소 생각했던 점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싶은 욕망.

 

편집의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 책의 글씨체는 고딕체로 되어 있다.

작고 촘촘한 고딕체의 글씨가 쉽게 눈을 피로하게 만든다.

행간의 여유가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책을 읽는 게 약간 버거웠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이 책을 차례로 읽기 보다 그때그때 궁금하거나 느껴지는 감정들을 들춰보는 거였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자 이 책이 하나의 감정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서너 페이지에서 이야기되는 감정들은 그것 자체로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의 목차이다.

목차를 보면서 가장 관심 가는 감정부터 읽어 갔다.

 

 

권태에 빠진 사람은 허공에 잠긴 감정과 감각들로부터 속속 본질을 떼어내어, 사방에 무기력하고 무심한 시선을 던진다. 권태가 견디기 힘든 건 손으로 만져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비현실적인 감각속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권태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현실에서 분리된 듯, 자신이 기계적으로 느릿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봄이라 그런지 나른하면서도 몽롱한 느낌들을 단순하게 봄 타는 걸로 해석했는데 어쩜 그 증상은 내 삶에 대한 권태로움이 아닐까를 생각하며 이 부분을 찾아 읽었다.

 

어쨌든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권태를 경험한다. 근심이 우리를 수다스럽게 만든다면, 권태는 근육 경직을 일으키고 신경 전달을 방해하듯이 모든 말을 마비시켜버린다.

권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직 권태에 이르지 않았거나 혹은 이미 권태의 순간이 지나간 이후, 다시 말해 약간 심심한 상태로 머무를 필요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권태를 다루고자 한다면 먼저 권태를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한다.

 

읽다 보니 나는 아직 권태의 언저리에서 알짱거리는 수준인 거 같다.

감정을 객관화해서 바라본다는 것처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아마도 그것에 대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행복할 거 같다.

 

 

놀림은 가벼움과 신랄함 사이에 자리한다.

놀림은 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상냥한 태도, 유머를 곁들여 신랄함을 무디게 만든 완만한 비판의 모습을 띠곤 한다. 이때 목적은 상대를 위한 선의의 비판, 더 나아가 교육적인 차원의 비판에 있다.

 

 

조롱, 비난, 놀림

비슷한 감정이지만 경중이 있는 감정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나 감정이 수반되는 것으로 자신이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은연중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에서 더 발전해가면 혐오나 중상모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실 감정이라는 건 댐과 급물살 같은 거라 어느 순간 넘쳐버리면 모든 것을 다 쓸어 버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건 이 사회가 감정을 표출하는 것보다는 감추는 것을 더 잘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참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그것은 모두 그동안 젊음의 절제로 잘 참아내던 것들을 나이가 들어가며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 같다.

어른이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더 경험이 많으니까.

은연중 이런 생각들이 억눌렀던 감정들을 표출시키게 되고, 그렇게 꼰대가 되어버리는 게 되는 것.

그 이유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사랑이나 행복, 기쁨, 즐거움, 상냥함 같은 부드럽고 달콤한 감정들은 나뿐 아니라 상대방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감정들이니까 잘 모른다 해도 크게 해가 되는 건 없을 거 같다.

문제는 잘 모르는 안 좋은 감정들이 문제다.

그것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생각해보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대서 오는 많은 문제가 요즘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책으로 읽는 감정 수업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쉬웠던 건 이 새롭게 이해하게 된 감정들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독서모임에 최적화인 책이라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듣는 것도 좋지만

같은 감정에 대한 다른 느낌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감정에 대해, 감정 수업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그런지 읽고 나면 갑자기 수다가 떨고 싶어지는 책이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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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기본 - 의식주 그리고 일에서 발견한 단단한 삶의 태도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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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집 사이즈의 이 책을 받고 훑어보았던 느낌은 깔끔하고 정갈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처음엔 약간의 강박과 결벽을 동반한 작가의 고집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마도 첫 페이지에 걸려있던 글들이 옷차림에 관한 것들이어서 간결하지만 세세한 것들의 목록이 왠지 나에게 위의 느낌들을 가져다주었던 모양이다.

 

기록처럼 쓰인 이 글을 읽어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자세를 바로 하게 되었다.

뭔가 바른 태도를 지니지 않고 읽기에는 글 자체가 말끔해서였다.

그렇게 읽게 된 짤막한 글들이 "뭐 이렇게까지~"의 시답잖은 생각에서 시작했다가

"나도, 나만의 뭔가를 정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막역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무언가의 틀 속에 나를 집어넣는 거 같아서 일부러 회피했던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단상을 마주하고 보니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 바로 이 기본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가족을 위해 참는다'는 생각을 일종의 미학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희생하여 전체가 행복해진다니, 가족이건 회사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아닐까요?

 

 

가족에 대한 이런 신선한 생각을 유지하며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이분은 아내와 딸. 이렇게 세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있는데 각자의 공간을 가지고 살고 있다.

아침은 각자 알아서 챙겨 먹고, 각자의 공간에선 각자의 휴식을 취하고 거실에서 모여 가족의 정을 나눈다.

뭔가 현대적이지만 정 없어 보이는 이 대목에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그런 공간을 사수하지 않고서는 사람은 절대 휴식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족과의 관계도 사회성이 필요하다.

온전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런 공간을 가져보기 전까지는 결코 모른다.

가족이니까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처럼 피곤한 건 없다.

사생활 침해 같은 말이 아니라 예의에 관한 얘기다.

공용화된 가정에선 누군가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건 거의 엄마의 몫이다.

집안일. 이것이 누군가의 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걸 살면서 나도 깨닫게 되었다.

청소, 설거지, 빨래, 쓰레기 치우기

매일 반복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일들이지만 누군가가 맡아서 하지 않으면 늘 불편함을 주는 것들이다.

나는 하기 싫은 것.

그걸 대신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산다.

왜? 당연한 거니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설령 좋은 관계라 해도, 서로 신뢰하고 있어도, 그런 '관계속의 나'에서 벗어나 '온전히 혼자인 나'로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으면, 사람으로 넘쳐대는 숲속에서 꾸미지 않는 그대로의 나는 미아가 돼버릴 겁니다.

 

 

 

 

 

 

한 창때는 그저 보이는 곳에만 신경을 쓰고 살았다.

옷이나 소품 등은 신경 써서 고르지만 정작 가구나 살림도구는 대충이었다.

이유는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다.

 

 

 

매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에 돈을 들이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가구나 전자제품은 오래 쓰고 매일 쓰는 것들이다.

실용성을 무시하고 그저 예쁜 디자인과 그때그때 눈에 들어 산 것들은 쉽게 고장이 나거나 싫증 나거나

망가지거나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것 역시 물건에 대한 기본 정신 없이 구매한 탓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싸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오래 두고 보아도 견고하고 무탈하게 쓸 수 있는 것들을 고르는 안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목이다.

 

 

 

 

 

 

 

이 책은 작지만 알찬 책이다.

살다가 중간중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내가 옳게 가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절실하게 알고 싶을 때가 있다.

뭔가 방향을 잃고 헤맨다고 생각될 때가 바로 그런 때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내가 자꾸 주위에 줏대 없이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지고, 자꾸 도망치고 싶고, 나를 찾고 싶었던 그런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도피처를 찾았더랬다.

그 잠시의 시간 동안 나는 나와 타협을 했던 거 같다.

나를 들여다보고, 나만의 무엇을 찾기보다는 쉽게 가는 길에서 적당한 타협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쉽게 가고자 했던 것들이 결국은 나만의 기본을 버리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비단 정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 전반에 대해서 나만의 기본 없이 무작정 무언가를 따라가기만 했던 시간들...

 

자고 일어나면 사람들의 관심사가 바뀌고

자고 일어나면 세상의 패턴이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만의 기본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삶의 질을 좌우한다.

 

남한테 보이기 위한 것들에서 탈피해서

나를 위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정해나가기 시작할 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 진정한 나야말로 남들에게도 진정한 사람으로 통할 것이다.

 

마쓰우라 야타로의 나만의 기본.

별생각 없이 읽었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책이다.

사소함을 간과하며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그중에 가장 크게 잃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를 찾기 위해

나만의 기본을 만들어 보는 것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인 거 같다.

기본을 잃고 살다가 기본을 갈구하는 나를 본다.

그동안 내가 가장 찾고 싶었던 건 기본을 아는 나였다.

이 책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내게 그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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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로 간 소신
이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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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개인사를 엿보는것이 구구절절하지 않은 것으로는 처음이다.
아마도 저자의 이력때문인 거 같다.
교육신문 편집장으로 재직중인 저자가 기자로서 다져온 글쓰기의 내공이 곁들여진 이 에세이는 기록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다.

은이와 윤이 두 딸의 아빠로서 어느날 시골집에서 족보인 선원속보가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면서 냄비 받침으로 용도변경된 장면을 목격하고 아이들에게 뿌리의 역사를 쉽게 들려주겠다는 목적의식으로 시작한 글에 살이붙고 또 붙어 오랜시간이 지난후에야 비로소 책이되었다.

그래서 자그마한 소신이 달나라로 가버렸던 것이다.



재밌고 유익했다.
군더더기 없는 글에 아빠의 애정어린 마음과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담이 어우러져 마치 소설처럼 읽혔다.

최초 시작했던 글들은 두 딸들이 어린 나이일 때 쓰여서 그런지 뭔가 알콩스럽고 달콩스러운 느낌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잊혀진 폴더속에서 잠들어 있던 글들에
2018년 다시 코멘트를 넣어 완성된 글엔 이제는 숙녀가된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걱정의 마음이 좀 더 냉철한 시선으로 담겼다.

개인사이지만
그 개인사에 더해진 시대상이 적절히 스며있어 현대사를 관통한 느낌이 든다.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관통한 젊음이 아니던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글로 써준 아빠를 가진 은이와 윤이가 부러웠다.
내 기억속 내부모의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로 전해질뿐.
나는 엄마. 아빠. 두분의 어린시절이 어땠는지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책을 덮고 가장 아쉬운게 있다면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

무릇 족보란게
아버지 가계도인것을 감안하더라도
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풀어 놓으실 수 있었다면
엄마의 기록도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윤이가 물었을 거 같다.
"근데 왜 엄마 이야기는 없어?"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키워드가 있다.
밥상머리교육.

저자와 부인 모두 교육계와 관련이 있어서인지
아이들과 차 한잔 마시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저녁을 다 같이 먹고
차 한잔 마시며 나누는 담소가 아이들에게 피가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위대한 업적을 가진 이들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수많은 개인들이 역사를 지키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 묻혀질뻔했던 지극히 사소한 개인사가 있다.
달나라로 간 소신.
이 소신에 묻어갈 수많은 현시대 아버지들이 보인다.
그들 역시 이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기에.


꿈꾸던 세상에 꿈은 없고,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을것 같은 시간을 버틴 것은 내게 주어진 가족보다 내가 만든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식구들이 살아야 하기에 집이 있어야 했고, 그 식구들이 살아야 했기에 감취진 용기를 드러낼 엄두가 없었다.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한 미련한 소신을 아직까지 부여잡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다. 86세대는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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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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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에세이가 섞인 이 책엔 동네 목욕탕에 얽힌 작가의 추억들이 담겼다.

비슷한 문화를 가졌기에 별생각 없이 읽어가던 이 목욕탕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부분도 담겨있다.

 

우린 남탕과 여탕의 구분이 명확한데 일본은 카운터가 남탕과 여탕에 걸쳐 있나 보다.

자연 카운터에 앉은 사람은 남탕 여탕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그게 아무렇지 않다.

여탕에 주인아저씨가 들어와서 대야와 의자를 정리한다는 건 우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여기선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남탕과 여탕 사이의 벽은 위 천장 부분이 뚫려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부를 수 있다.

 

문화적 충격이다.




알몸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났는데, 며칠 전 목욕탕에서 근사한 장면을 목격했다.

목욕하고 나온 아주머니 둘이 벌거벗고 탈의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데 거기에 카운터 청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동참한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어색함이라고는 없이 날씨 따위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세 사람을 보니 절로 웃음이 번졌다. 앞을 가리네 마네 따위의 문제에서 완전히 졸업한 자들의 홀가분함이 저런 걸까.

여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수줍음을 알아야한다, 같은 말이 진부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나도 동네 목욕탕에서 저렇게 맨몸으로 카운터 청년과 잡담을 해보고 싶다.

 

 


 

 

이 부분은 내 정서랑은 맞지 않아서 곰곰이 음미해 본다.

문화적인 차이라고 이해해도 저 정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로망이 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접하게 되어 당연한 게 되었겠지만 비슷한 목욕 문화를 가진 내게는 그 자체가 쇼킹이다.

 

 

 

 

 

 

어쨌든 이 책엔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있고 상당 부분은 내 어릴 때와 비슷하다.

요즘은 예전과 같은 동네 목욕탕 대신 사우나가 많아져서 대형화되어 동네 단위 소규모 목욕탕은 오래된 동네에 한 곳 정도 남아 있는 게 보통이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젤 당혹스러웠던 건 동네 꼬마 녀석들을 만났던 것.

목욕탕에서 아는 남자애를 본다는 건 그 애가 아무리 꼬맹이라도 훅~ 꺼져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캠프를 다녀와서 동생들 데리고 목욕 같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비몽사몽간에 목욕을 한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때였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 목욕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목욕탕 간다고 했다가 동생들이 한바탕 난리를 쳤다.

"언니가 나 등밀어줬잖아. 생각 안 나?"

"언니가 나 머리도 감겨줬잖아? 우리 목욕 갔다 왔어. 어디 아파?"

 

마스다 미리.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글은 처음 접했다.

목욕탕에 대한 추억으로 책 한 권을 만들 정도라니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나로서는 마스다 미리 입문으로 재미난 이야기와 충격적(?)인 이야기가 넘실대는 여탕에서 생긴 일을 읽은 것이 그녀를 각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마스다 미리 하면 그녀의 로망을 떠올리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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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9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천은실 그림, 정지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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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아는 책이었다.

고전 명작동화.

여러 번 읽었던 책이었지만 이 책을 받고 나서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 기억 속비밀의 화원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인도에서 낳고 자란 메리는 하룻밤 사이에 부모님을 콜레라로 잃고 혼자 살아남는다.

부모의 품에서가 아닌 하인들의 손에서 자란 메리는 고아가 되었어도 울지 않는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마르고, 성깔 있고, 안하무인이었다.

아름다웠던 엄마와는 전혀 다르게 못생긴 아이였다.

사람들은 메리를 후견인인 고모부가 살고 있는 요크셔 미셀스와이트로 보낸다.

그곳에서 메리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비밀의 화원.

3월 봄기운이 완연한 봄날이었다. 이 책이 내게 전해진 날은.

매일 밤 잠자기 전에 야금야금 읽어 나갔다.

메리가 컴컴한 황무지를 지나 저택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았고, 매일 저택을 돌아다니다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는 걸 보았고, 콜린의 울부짖음을 듣고, 디콘을 만나 죽어가던 화원을 살려내는 걸 보았다.

아이들의 보살핌으로 비밀의 화원이 나날이 봄을 맞아 새롭게 피어나듯이 책을 읽는 나의 현실에도 조금씩 봄이 찾아 들었다.

 

익히 아는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이렇게 빠져든 적은 이 책이 처음이다.

아마도 이 책이 내가 좋아하는 양장본이기도 했고, 중간중간 들어있는 일러스트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천은실 작가의 그림은 세련되었고, 화려한 색감이 눈에 띄었으며, 묘하게 비밀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요크셔 사투리를 가장한 충청도 사투리에 있었다.

 

아이구, 메리 아가씨! 왜 그랬슈? 그러믄 안 되는디! 아가씨때미 내가 큰일 나게 생겼네유. 난 아가씨헌티 콜린 도련님 얘기는 입도 벙긋허지 않았는디. 아가씨 때미 큰일 나게 생겼어유. 보나마나 난 여기서 쫓겨날 거구먼유. 아이구, 우리 엄미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겄네!

 

이 사투리 때문에 이야기가 더더욱 재미있게 느껴졌다.

사투리를 글로 읽는 느낌이 이런거였다니!

이것이야말로 신의 한 수 가 아닐런지~

 

구수한 사투리와 더불어 황무지에서 부는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고, 흙 내음을 맡으며 나날이 살이 오르고, 물이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싱그러운 게 또 있을까?

메리, 콜린, 디콘.

이 세 아이는 10년 동안 감추어졌던 비밀의 화원을 조금씩 살려낸다.
화원이 살아날 때마다 아이들은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고, 웃음을 찾아갔다.

 

 

 

 

 

 

 

 

지난 세기에 사람들이 발견한 새로운 것 가운데 하나는, 생각이 단지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전기만큼 강력하며 햇빛처럼 좋을 수도, 독약처럼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슬프거나 나쁜 생각이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내버려 두면 성홍열균이 몸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그대로 계속 놓아두면 영영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

.

콜린처럼 기운 빠지게 만드는 나쁜 생각들이 마음속에 들어올 때 용기를 주는 좋은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단호하게 밀어낸다면 누구에게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한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게 많이 아쉬웠다.

비밀의 화원에 새싹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는 동안 나의 세상에도 비가 오고, 바람이 따듯해지고, 꽃들이 폈다.

마사와 디콘이 사투리로 얘기하는 동안 내 마음 언저리에서도 그 사투리를 쓰던 어른들의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이젠 곁에 없는 사람들을 잠시 추억했던 시간.

아마도 그러한 이유가 이 책을 조금씩 나눠 읽게 했는지도 모른다.

 

한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없다...

나쁜 생각이 나를 좀먹어 갈 때마다 이 책을 펴들고 그림을 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찾아 읽고, 요크셔 사투리를 글로 누려봐야겠다.

나쁜 생각을 단호하게 밀어낼 좋은 생각들과 좋은 기운을 이 책이 담뿍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봄처럼 싱싱하고

봄처럼 따뜻하고

봄처럼 설레이는 책이었다.

 

내 마음에도 비밀의 화원이 생겼다.

좋은 생각들을 심어두는.

언젠가 그곳에 영글대로 영근 생각들이 활짝 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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