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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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자욱한 안개에 잠겨 있는 숲길을 더듬어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화사한 햇살 아래 숲 우듬지 아래로 느리게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를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그런 것.

 

 

 

 


사자(死者)들은 이렇게 되돌아온다. 때로는 칠십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뒤에도 얼음에서 빠져나와, 반들반들해진 한줌의 뼛조각과 징이 박힌 신발 한켤레로 빙퇴석 끝에 누워 있는 것이다.

 

 

 

 

 

창비에서 제발트의 글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민자들과 토성의 고리.

내가 선택한 건 이민자들이다.

 

4명의 이민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단편처럼 에세이처럼 사실처럼 이야기처럼 담겨있다.

사진들이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쩜 그것조차도 제발트의 숨겨놓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4명의 이민자들 중 3명은 유대인이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다른 나라로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들 마음속에서 그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같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타국에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고통은 전혀 짐작도 못할 일이다.

두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혼자 남았다는 사실은 끝끝내 그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거 같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후두가 아니라 가슴 언저리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파울이라는 사람은 함석을 비롯한 여러가지 금속부품으로 조립해놓은 기계이며, 어느 한군데가 조금만 고장나도 완전히 궤도에서 이탈해버리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독일인들의 정신적 빈곤과 기억상실,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린 그들의 교묘함으로 인해 내 머리와 신경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또렷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페르버의 고향을 찾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한다.

과거를 짚어 가는 여행.

그곳에서 나는 독일인들의 망각을 보게 된다.

수많은 삶을 파괴한 그들은 정작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나.라는 화자에 대해 아무것도 나와 있는 건 없지만 나는 제발트로 짐작하고 읽어갔다.

읽어가면서 이것이 실화라고 단정 지었다.

진짜 살아있었던 사람들을 제발트가 만나고 기록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쩜 이 모두는 제발트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자 작가로서 하나의 사실을 눈여겨보고 그것에서 사실을 끄집어 내어 기록 형식으로 써 내려간 그 어떤 것이 바로 이 이민자들이다.

 

제발트 역시 이민자였으니까.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그는 나의 어머니의 외삼촌이었다.

일찍 이민을 가서 유대인의 집사로 일했다.

그는 독일인이었다.

그는 타국에서 자신이 모시고 있던 집안이 몰락하는 걸 지켜본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말년을 전기충격요법을 받으며 그곳에서 죽는다.

그의 기록은 세세하나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남겨 놓지 않았다.

 

제발트의 글은

가랑비 같다.

언제 젖는지도 모르게 스며들어 적시는.

 

글을 읽는 동안 산책을 한 느낌이다.

아주 먼 곳까지

제발트의 묘사의 힘이 나를 그곳에 있게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내내 흑백영화 한 편이 상영되었다.

 

읽어 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세계가 있었다.

이제 그 세계 안으로 들어선 나는

다시금 그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안도한다.

계속 꿈속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비가 내리는 동안

제발트와 작별을 했다.

마치 비가 일부러 내려주었던 거 같다.

 

그저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조금 다른 시선이 생겼다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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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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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요시도 자기가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 충동적으로 노파를 죽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나에겐 그런 형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게 바로 그 피다.

 

 

 

매달 벚꽃 모양의 파란 소인이 찍힌 편지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들춰낸다.

나오키를 위한 일이었지만

결국 나오키를 껄끄러운 존재로 만들어 버린 일.

사람들의 눈초리로부터 벗어나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살인자의 가족.

언제까지 이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까?

 

 

나오키는 지금까지 피해자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이 저지른 짓에 충격을 받아, 형과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이런 일을 당했으니 나는 얼마나 불행한가. 한탄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편지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때문에 행복한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었다.

2006년 이후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나는 나미야 잡화점급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 어떤 행복도 주지 않았다.

 

아주 많은 생각할 거리만 남겨주었다.

 

알다시피 게이고는 범죄소설의 대가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범죄를 만들어 내고, 범인을 창조한 그이기에  범죄자 가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폐쇄적인 일본 문화에서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나오키는 홀로 남아 그 모진 시선들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하지만 매번 그가 한시름 놨다고 생각할 때쯤 형의 일이 항상 그의 발목을 잡는다.

우연이었든, 고의였든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난 후 태도에 변화가 온다.

그것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나오키에겐. 

그것이 오로지 자신에게 한했을 때는 어떻게든 견뎌냈지만 가족이 생긴 나오키에겐 정말 피해 가고 싶은 일이었다.

 

 

 


뭔가를 선택하는 대신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는 거야. 인생이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 형을 포기하기로 한 나오키.

그런 그의 선택을 잘 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편지 좀 그만 보내면 좋을 텐데. 나오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답장을 안 하는 게 자기를 피하기 때문이라는 걸 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자기가 보내는 편지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에 동생을 옳아매는 쇠사슬이라는 걸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나오키의 선택 앞에서 그를 매정하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츠요시의 편지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죄는 밉지만, 미워해야 할 사람이 없었기에 더 안타까웠던 이야기였다.

 

생각할 문제들을 툭~ 던져 놓았지만 게이고는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그건 아무리 그라도 결론을 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범죄의 희생자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편지.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오키가 내 주위에 있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하는 사람일까?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어제 보다 더한 범죄가 판을 치는 시간대에 살고 있다.

평등하지만 불평등하고

불합리하지만 합리적이고

공평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는 시간대에서 나는 오늘의 피해자이지만 내일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환경에 살고 있음이다.

그래서 옛말 그른 것이 없다는 이치를 또 한 번 깨닫는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는.

 

노래를 틀지 않았음에도 내 머릿속에서 이매진이 무한 재생되고 있다.

편지와 함께 봄날이 간다.

산다는 건 어떠한 결론도 미리 낼 수 없음을 이렇게  또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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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여왕 백 번째 여왕 시리즈 4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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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자에게, 심지어 신성 속에서도 하나의 신에게 종속되어야 하는가? 그래야지만 내 가치가 실현되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해 그림자처럼 섬기는 것이 내 운명인가?딸, 자매, 아내..., 언제쯤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내 삶, 내 운명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백 번째 여왕으로 시작된 여왕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무릇 시리즈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 권.

마지막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되느냐가 시리즈의 결정권을 갖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약한 소녀에서 전사의 여왕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끝낸 칼린다.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총망라되면서 시리즈의 백미는 물처럼 흘러간다.

 

 

 

 

 

 

악마 쿠르와의 싸움에서 오른손을 잃은 칼린다는 데븐마저 쿠르의 손에 잃고 만다.

아니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븐은 저승에 갇혀서 밤마다 그녀를 찾아온다.

칼린다와 아스윈은 데븐을 저승에서 데려오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인간세계로 가는 길을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곳, 이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매 순간 조금씩 먹어 치우고 있다.

 

 

칼린다는 그런 데븐을 위해 저승으로 그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저승을 통과하려면 그녀에겐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녀는 불의 신 엔릴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과연 신은 칼린다의 기도를 들어줄까?

 

그동안 수많은 시련을 거친 칼린다에게 닥친 마지막 시련은 저승에서의 사투다.

데븐을 찾아가는 저승으로의 여정에서 그동안의 시리즈에서 알게 모르게 깔아두었던 복선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 이야기의 정점으로 치닫는다.

 

수메르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여왕 시리즈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들과 닮은 거 같으면서 조금 다르다.

신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로 묘한 책략을 썼다.

신도 갖지 못하는 게 있다니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자 인간의 의지이다.

 

칼린다가 반신반인인 부타로 탄생한 이유가 바로 이 마지막권에 들어있다.

자신의 전생과 지금 생에서의 사랑 사이에 갈등하게 되는 칼린다는 무사히 저승을 통화해서 데븐을 데려올 수 있을까?

 


여자들은 자기 결정권이 필요하다.

 

증오하는 자신의 아버지와 모습이 똑같은 아스윈은 칼린다의 도움으로 반군을 물리치고 반히에 입성한다.

그는 아버지의 독재를 버리고 백성과 함께하는 새 세상을 꿈꾸지만 아버지 타렉이 뿌려놓은 불신의 불씨는 깊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꺼지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어 서로 보완하며 공생의 관계를 꿈꾸던 아스윈은 급기야 무능한 왕자로 낙인찍히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아스윈을 괴롭히는 로케쉬는 악마의 도움으로 아스윈을 몰아내고 궁궐을 차지한다.

사막에 버려진 아스윈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타렉은 여자들을 소유하고, 노에로 만들었다.

서열 토너먼트를 개최하여 자신의 처첩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었고, 수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서슴지 않았다.

반신반인인 부타들을 괴물로 만들어 보는 대로 처형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과 복수심을 심어놨다.

그의 아들 아스윈은 타렉의 잔재를 지우려 노력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에 스며든 두려움과 경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증오의 뿌리 깊은 마음은 사실 조작된 것이었다.

타렉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자, 신화를 자신에게 맞게 조작하고, 부타들을 괴물로 만들어 살육을 감행했다.

그런 폭군에게 길들여진 백성들은 아스윈의 유화정책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마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는 거 같아 쓴웃음이 났다.

 

판타지 소설의 모든 묘미가 가득 들어있는 여왕 시리즈.

신화와 전설이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

여자가 곁가지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의지대로 나아가는 모습이 경이로운 이야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전생과 환생

저승과 이승

신과 인간

악마와 인간

죽음과 윤회

반신반인

 

이 모든 요소가 치열하게 잘 짜여져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지막 권이 백미라고 말한 데는 이 이야기를 읽지 않고는 이 시리즈를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고만고만한 판타지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도 이 여왕 시리즈의 매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불모지인 판타지 장르에서 당분간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기억될 여왕 시리즈.라고 말하고 싶다.

 

강인함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칼린다는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읽는 동안 내내 소녀감성이었다.

어른이 된 내게 잠시나마 소녀소녀 한 감성을 선사해준 여왕 시리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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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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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우리의 삶에 해결사가 될 수 없어.

오직 우리 자신만이 해결사가 될 수 있을 뿐이야.

 

 

 

 

동창회.

 

학창 시절의 친구들만큼 허물없는 친구는 없다.

어린 시절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니까.

 

기윤도 동창회를 갔다.

삼십 대의 그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회사를 다니고, 고만고만한 가정을 꾸리고, 고만고만한 고민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기윤은 그들 사이에서 과거로 파고들었다가 현실로 나오면서 괴리감을 느낀다.

그는 그때도 지금도 아웃사이더였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친구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는 과거로 돌아간다.

 

물론이지. 저항 의지를 갖는 그 순간부터 이미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거야.

 

 

고등학생 기윤에게 최대 관심사는 '멋' 이었다.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상민이를 따랐다. 진정한 멋의 우정이라 믿었던 상민과의 우정은 기윤의 착각이었다.

한동안 소속감에 우쭐했던 자만심은 그들로부터 떨궈져 나오면서 손상되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책 속으로 숨었다.

읽지 않고 들고만 다니는 책들을 빌리고 반납하며 그는 졸업식 때 독서왕이라는 타이틀이라도 타고 싶었다.

민재를 만나기 전까지는.

 

민재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현실에 붙잡힌 채 날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태세를 갖춘 그런 청춘이었다.

기윤은 상민에게서 겉멋을 배웠다면, 민재에게서는 속멋을 배웠다.

학교에서의 강요와 학칙과 부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직했던 그들만의 레지스탕스는 화려하고 무모한 장난으로 오히려 모든 학생들을 더 엄격하고 더 부당함 속으로 몰고 갔다.

급기야 경찰까지 개입한 일련의 사건들이 기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 무렵

기윤과는 노선을 달리했던 조용한 레지스탕스 민재는 학교에 대자보를 붙인다. 자신의 이름을 넣은.

조목조목 부당함에 대해 반박을 가하는 그의 글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걸 민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책장이 하나의 지도라면 읽은 책들은 내가 여행한 곳이고, 읽지 못한 책들은 내가 앞으로 여행할 곳이야. 나는 이 세계를 모두 여행할 거야. 그리고 저곳도.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 민재를 떠올리며 기윤은 자신이 민재를 모방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정처 없었던 여행과

정처 없었던 그림과

정처 없었던 자신의 정체성

 

그것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성장을 촉진시키는 매개가 있는 법이다. 삶엔.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깨닫게 되는 그 순간

전과는 달라진 나를 보게 된다.

 

어린 기윤의 가슴에 품어진 민재의 말들이 어른이 된 기윤의 마음에 다시 품어졌을 때

기윤은 더 이상 그전과는 다른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상실의 슬픔

저항의 의미

미완의 성장

 

이 모든 것들이 압축되어 들어있는 레지스탕스.

 

읽고 나서 더욱더 레지스탕스라는 제목과 몽상가들이라는 출판사 이름이 더 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몽상가들의 레지스탕스. 그리고 이우.

 

어느 날,

불현듯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소설을 썼다.

 

표지 그림에서 기윤을

소설을 쓰기로 결심해서 소설을 썼다는 말에서 민재를 떠올린다.

 

 

기윤에게 데미안이자, 개츠비였던 민재는

결국 그의 영원한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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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탄두리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지명숙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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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행로를 지나다 우리 어머니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1969년 여행 가방 두 개를 들고 네덜란드에 도착한 마마 탄두리.

도착하자마자 여행 가방을 침대 밑에 두고 간호사 근무에 들어갔다.

 

파키스탄 태생으로 전쟁으로 인도로 피난 온 마마 탄두리는 가난과 전쟁 두 가지 인생 고난을 어릴 때부터 몸소 겪은 사람이다.

신분제도가 있는 인도에서 그녀는 어느 배의 선장을 간호했다.

가문의 대를 이을 장손인 선장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연의 상처를 안고 네덜란드로 향한 마마 탄두리.

그녀는 선장과 절절한 편지를 주고받지만 이루어질 수 없음에 마음은 더 괴로울 뿐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그녀는 그녀에게 반한 한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을 들어준 일례는 아버지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며, 그게 그러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걸핏하면 밀방망이를 들고 내리치며 호통을 치고

물건값은 무조건 반값 이상으로 깎고 보며

집 한 채 값도 서슴없이 깎아내는 이 어디에도 없는 캐릭터의 마마 탄두리는 얼핏 그저 웃기기만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 같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전쟁의 악몽에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고, 제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큰아들이 지적장애인으로 판명되고, 그것이 그들의 큰 아들을 잠깐 옆집에 맡기고 그들이 처음으로 산책을 반 시간 정도 하고 돌아온 날 이미 경기를 일으키고만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어미의 심정이라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막무가내식의 마마 탄두리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가족사를 담아냈다.


 


어쩌면 나는 벌써 그때부터 폭탄이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을 파괴시키고 말 폭탄.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의 표현을 빌리면, "한 집안에 작가가 태어나면 그 집안은 일단 끝장이다."

 

 


 

 

 

 

 

탄두리 엄마의 셋째 아들이자 이 책의 저자인 에른스트는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엄마의 바람을 져버리고 작가가 된다.

그리고 그의 가족사를 적어 책으로 만든다.

유럽에서 공존의 히트를 하고 엄마도 유명인이 되었지만 마마 탄두리에 대한 이야기는 마냥 재밌지만은 않다.

가난한 나라에서 살기 좋은 유럽으로 온 탄두리 엄마에게 그곳은 말짱한 것을 버리는 나라였는지도 모른다.

인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녀는 쓸만한 모든 쓰레기들을 주워와 집안에 쟁여 놓는다.

싼 물건은 고양이 밥이라도 잔뜩 사다 쟁여 놓는 그녀의 모습에서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우리 어머니도 실은 통행증을 필수로 지참하고 다녀야만 할 사람이었다. 성명, 생년월일과 아울러 "당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신속히 이분의 곁을 벗어나십시오."라는 경고문이 명시된 통행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가족을 희생(?) 시키는 스타일이랄까?

이 책을 읽으며 네덜란드 사람들이 참 약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

탄두리 엄마가 한국에 살았어도 과연 저 행동들이 먹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지적장애인 아들과 더불어 마마 탄두리 역시 마음의 장애가 있는 분이 아닐까 싶다.

뭔가 풀지 못한 응어리가 그녀 안에 가득해서 무엇이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을 형성했는지도 모른다.

그녀 곁에서 묵묵히 참아내는 그녀의 남편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먼 과거는 어둠의 장막이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수치심의 자물쇠가 어머니 입을 꼭꼭 걸어 잠가버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거지나 다름없었던 생활, 그러니까 아주 까마득한 오래전의 삶에 대한 악몽 때문에 아직도 한밤중에 잠을 깨곤 한다. 비명 소리 끝에 입을 벌린 채 깨어난 어머니는 심야의 어둠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머니의 기억 속 깜깜한 절벽 보다는 몇백 배 더 밝으니까.


 


 

가난의 기억은 지금 모든 걸 풍족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다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여행을 갈 때면 가방만 수십 개는 싸야 하고, 숙소를 정하지 않고 싼 곳을 찾다 자동차에서 먹고 자고,

어딜 가던 상대를 윽박질러 자기가 원하는 걸 쟁취하는 이 인도 탄두리 엄마.

 

어쩔 땐 짠하고

어떨 땐 너무하다 싶고

어쩔 땐 제정신이 아닌 것도 같고

어떨 땐 참 별난 캐릭터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런 삶을 같이 살아내고 있는 가족이 있음에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아름답게 채색하거나 어머니의 그런 행동들을 동정심으로 이끌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어간 이야기는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유도할 뿐이다.

풍족한 유럽의 나라에서 살지만 반은 가난한 나라의 아들인 작가는 삶과 주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백하다.

그래서 일종의 푸념처럼 읽혀지는 이 이야기는 어쩜 특이한 성격의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아픈 형으로부터 평범하지 않은 가족 안에서 살아야 했던 작가의 자신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의 주인공 마마 탄두리 보다는 그녀의 남편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그 무던하고 무난한 성격이 바로 삶을 통달할 수밖에 없는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죽음 앞에서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그에게 그녀의 마음의 짐은 거뜬히 흘려 버릴 수도 있는 가벼운 깃털 같은 기분일 수도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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