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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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마라. 너의 인생에서 몇 분을 훔쳐내 누군가와 숲속에서 잠깐 같이 있는 게 전부인 식으로는 살지 마. 너 스스로를 위해 네 날개를 써야 하는 거야.

 

 

 

양들의 침묵을 능가하는 캐릭터의 탄생이라는 말에 이 글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겼다.

도입부에 나온 액화 화장 기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이야기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기도 했고.

세월이 흘렀으니 그보다 더 진보된 무언가를 보여주겠지!

이런 나의 생각은 이야기가 펼쳐짐에 따라 점점 조바심을 치게 되었다.

생각보다 짧은 분량의 책 때문이었다.

제법 두께를 자랑할 줄 알았는데 얇은 책에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저며 놓았을지가 읽으면서도 궁금했다.

한스 피터.

그는 액화 화장 기계로 여자들을 포장해서 팔아먹는 인간 말종이다.

그리고 도저히 더는 팔아먹을 수 없는 여자들은 이 액화 화장 기계가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린다.

그런 그의 눈에 카리 모라가 들어온다.

카리 모라.

마이애미 해변가에 위치한 저택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평범한 미모의 여성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삶은 일찍부터 투쟁의 역사로 시작한다.

카리는 한스의 위험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그를 피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저택엔 상상도 못할 금이 숨겨져 있었고, 그래서 그 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그곳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한스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도 그 금을 캐내려 움직였다.

굉장한 흥미를 가진 소재였다.

그래서 부푼 기대감으로 이야기를 읽었다. 삽시간에.

이 이야기엔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퇴장한다.

꼭 뭔가 이유가 있어서 등장한 거처럼 나타나지만 별반 하는 일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어쩜 작가의 노림수가 그것일 수도 있다.

금 이야기를 빼고 액화 화장 기계와 한스와 카리로만 이야기가 꾸려졌더라면 더 농밀하고 정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많지 않은 분량을 금을 빼내는데 소진하는 바람에 한스와 카리의 대결이 싱겁게 끝나 버렸다.

뭔가 무지막지하게는 아니더라도 신경을 야금야금 조여오던 전작에 대한 느낌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작가가 방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가 마무리를 급조한 거 같다.

아님 몇 개의 챕터가 뭉텅이로 사라졌던가.

유려한 문체는 마치 킬링타임용 영화 한 편을 눈으로 읽은 거 같은 느낌을 주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겨주고 끝난다.

기대 심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읽고 나서 이렇게 아쉬운 이야기는 처음이다.

금 찾기 이야기만 하거나

액화 화장 기계 이야기만 하거나

한 가지로 만 우물을 팠더라면 맑고 시원한 물로 우물이 가득 찼을 텐데.

두 가지를 다 쫓다가 곁가지만 남은 느낌이다.

아쉽고 아쉽다.

흥미로운 소재와 빠른 몰입감으로 킬링타임용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들에겐 안성맞춤.

양들의 침묵을 생각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내려놓고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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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 미래를 혁신하는 빅데이터의 모든 것 서가명강 시리즈 6
조성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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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포기하고 말 타고 다니는 것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빅데이터를 취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빅데이터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그것이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빅데이터에 대한 '감'을 잡긴 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알고 나니 두려움이 생긴다.

내 두려움의 원천은 내가 하고 있는 이 블로그부터 시작해 SNS를 통해 올린 나의 생각이나 사진, 글 등이 모두 어딘가에 저장되어 하나의 자료로 쓰인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이 바로 빅데이터의 일원이다.

내가 끄적거린 것들을 지운다고 해서 그것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뭔가 굉장히 찜찜하다.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쓰인다면 아무런 탈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큰 문제를 불러올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미래는 코앞에 다가와 있다.

30년 전과 지금은 다른 세상이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뒤는 지금과는 더 다른 세상일 것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야 지는 세대라 치부한다 해도 지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입시를 위한 교육만 해서 그 아이들이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의 뇌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미래의 인공지능의 뇌를 채워주는 일들을 하고 있다.

SNS와 이메일과 문자 등으로 소통하는 모든 것들이 데이터에 저장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나도 모르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료가 쌓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된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끔찍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을 좀 더 쉽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지금 준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빅데이터로 무장한 인공지능에 의해 이 사회가 장악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의 뇌에 해당하는 빅데이터를 관장하는 누군가가 모든 걸 독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얻으면 그 이상의 것을 내놔야 하는 것이 비단 마법뿐은 아닌가 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알아가야 하는 시기라 생각된다.

무지한 보통 사람에게도 그나마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신 저자에게 감사하다.

아주 조금.

관심 없는 분야였던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나는 빅데이터에서 어떤 모습으로 정의되어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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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냉정 - 난폭한 세상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박주경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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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온기'를 말하고자 합니다. 서늘한 냉소와 끓는 증오 대신 희망의 온기를 지피려는 데 간절한 소망이 닿아 있습니다. 이 글이 땔감이라면 아궁이는 독자들의 마음이겠지요. 거기서 군불이 지펴지면 얼어붙은 마을의 굴뚝에 다시 연기가 돌 것이고 저 멀리 희망의 봉수대에도 횃불이 피어오를 것임을 믿습니다.

 

 

전직 기자이자 현직 KBS뉴스 앵커의 글을 읽어 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맛'을 본 그의 글은 날카로움을 온기와 유머로 적당히 버무려 놓은 글이었다.

그래서 읽으면서는 쉽고 재밌게 읽었지만 뒷맛은 곱씹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운을 남겼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좌절하고, 안타까워하고, 감동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모든 일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긁어 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성능 좋은 효자손처럼.

좀 더 명료한 언어로

좀 더 냉철한 다짐으로

좀 더 따뜻한 감정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에 대해 기자로서, 사회인으로서,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사람으로서 낱낱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무언가로 치우치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적이어서 좋다.

 

날카로움에 베인 상처에 덧나지 말라고 반창고를 붙여준 느낌이랄까.

 

우리 교육은 원점으로 돌아가 이런 기본 미덕을 가르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외워서 사지선다 답안을 채우는 일에만 주력할 게 아니라 교양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초 덕목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런 것들이 실생활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교양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

 

영국에 있는 동안 내가 절실하게 느낀 기분이 저 글에 담겨있다. 우리가 그동안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다 놓친 것들 말이다.

'듣기'에서 딱 멈추기가 사실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는 꼭 무언가 말을 덧붙이고 반응을 보이고 나아가 상대의 문제를 '고쳐주고 싶어' 무리하게 파고들다가 도리어 상대 감정을 진흙탕 속으로 잡아끄는 경우가 많다.

 

이 대목에서 반성 많이 했다.

어릴 땐 과묵할 정도로 말없이 듣기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정신없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의 기질이 그러했던지라 쉽게 고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의 남은 인생 동안 '듣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행동이나 이목구비는 당장 바꿀 수 있어도, 얼굴에 묻어나는 삶의 이력은 쉽게 '성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대를 살고 있다.

내 얼굴이 어떤지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울적했다.

지금부터라도 멋진 삶의 흔적을 남기도록 노력해 보자.

많은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읽었다.

그만큼 공감 가는 문장이 많다.

누군가의 글은 한없이 날카롭기만 하고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곧기만 하고

어떤 이의 글은 늘 감정적이고

어떤 이의 글은 언제나 암울했다.

 

이 글은 날카로움의 온기가 스며들어 있는 글이다.

 

 

사실.

난 박주경 앵커의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새벽 뉴스를 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뉴스를 거의 안 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뉴스가 하루 종일 전달자의 얼굴과 목소리만 달라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재생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날부터 뉴스는 하루 한 번만 보거나 요즘은 아예 안 본다.

그래서 이분의 얼굴과 목소리를 모른다.

하지만 글로서 그를 그려 본다면 그는 냉정 맞은 열정으로 가득 찬 모습일 것이다.

이토록 많은 것을 다루는 목소리가 한결같은 걸 보니 말이다.

그리고 그 한결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온기가 독자들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띄울 것이다.

작은 불씨야말로 언젠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될 터이니 그가 말한 대로 우리는 아궁이의 불씨를 잘 지켜가도록 해야 할 거 같다.

언젠가 화르르 불타오르 게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살맛이 나지 않았을 그동안의 삶에 작은 희망을 일구어 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걱정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현역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우리의 냉랭했던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날 생에 첫 계단에 발을 내딛던 아이의 뒷모습이 마치 '데자뷰'처럼 아버지 뒷모습에 겹친다. 내 늙은 아버지의 등을 보는 일은 어느 순간 내 어린 아들의 등을 보는 일과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언론은 국민들의 등 뒤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옳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옳은 결정을 유도해야 하니까.

한 달 살이를 하고 돌아온 내 나라는 공사판보다 더 시끄러운 정치판의 생쇼를 지켜보느라 내내 씁쓸했었다.

어제 기자 간담회 사이사이 이 글을 읽으며 조금은 희망이 생겼다.

많은 기레기들이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단 한 사람을 보았기에 우리의 미래가 당당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주경 앵커가 앞으로도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줄 진정한 언론인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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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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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에 젖는 것을 개의치 않기 때문에 우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산은 내게 언제나 미스터리인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비가 오기 직전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른 때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진다. 어쩌면 우산들은 도쿄 지하의 작은 아파트에 모여 사는지도 모른다.




책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를 만나게 해주는 인연.

내게 브라우티건의 책이 몇 권 있는데 정작 읽은 것은 바로 이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이다.

그러니 이 책이 나와 브라우티건을 만나게 해준 다리였다.

이 이야기는 짧은 생각의 연속이다.

마치 자려고 누웠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밤을 꼴딱 새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 밤에 머릿속에 끝없이 떠오르던 생각의 단상들을 한 줄도 빼먹지 않고 써 내려간 느낌이다.

사실과 환상과, 상상과 공상의 경계를 나누지 못할 모호한 이야기들의 발상으로 가득한 한 권이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곳에 바람은 없다.




이 작품은 도쿄에서 몬태나 주까지 가는 특급열차가 중간에 서는 정류장의 기록이라고 브라우티건은 말했다.

그래서 수많은 정거장 만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짧고 간결하고 한 페이지 남짓하는 이야기들의 이야기.

그곳엔 서로 다른 문화의 사각지대에 서 있었던 자신의 모습과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과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긴 여행의 시간들을 견뎌내기 위한 단상들과

소소한 일화들이 뒤섞여서 엮어진 환상특급 같은 말들이 담겨있다.

고양이는 멜론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전에 고양이가 멜론을 먹는 걸 보지 못했다. 나는 고양이에게 멜론이 무슨 맛일지 상상해봤다. 고양이가 매일 먹는 먹이 중 멜론 맛이 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단편이라기에는 모자란 단상들의 모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아쉽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생각의 타래를 옮긴 글들이 마구잡이로 정형화된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해질 때도 있고

킥킥거리며 웃음 지을 때도 있고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도 있고

아! 하며 탄식이 나올 때도 있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글을 만난 기분을 표현할 길 없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그 사람이 여자란 걸 알아차린 순간, 다른 모든 것은 배경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복병처럼 만나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별뜻 아닌데도 별뜻처럼 읽히고

별일 아닌데도 별일처럼 해석되는 그런 문장들.

읽는 내내 나도 그 기차 안에서 덜컹거렸다.

수많은 정거장마다 뜻 모를 이야기들의 단상들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도쿄 몬태나 특급 열차는 나와 브라우티건의 사이를 정거장마다 당겨놓았다.



문제는 우리가 나눌 추억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예전에 만났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었더라면 나는 이 글들의 정체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를 추억할 글들이 내겐 없기에 나는 그에 대해 이 짧은 글들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이 글이 그와의 추억이 되어 다음 글들에선 추억거리를 나눌 만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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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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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3권 잃어버린 사랑을 읽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은 책은 나의 애꿎은 상상력을 무력화 시켰다.

제목만으로 유추했던 잃어버린 사랑의 잔상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통쾌하게 사라졌는지 신선하기까지 했다.

나쁜 사랑에 대한 나의 편협한 사고로 나는 거의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추억담만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기적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힘든 임무를 완수한 후 마침내 부담감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성인이 된 딸들이 아빠가 있는 캐나다로 떠나고 홀로 남은 레나의 심정을 접하는 순간 아이를 길러 보지 못한 내 감성에도 한 줄기 바람이 휘리릭 불어온다.

저 느낌이 어떤 건지 알 거 같다.

 

홀가분한 나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 셈이다.

누군가를 보살필 의무 없이, 누군가의 시선 없이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의 자유.

 

나는 다음 학기 수업에 필요한 택을 차에 잔뜩 싣고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날씨는 쾌청했고 열린 차창으로 건조한 여름 내음이 진하게 밀려 들어왔다.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휴가를 떠난 레나는 그곳에서 자기 자신의 과거를 엿본 게 되는 니나와 엘레나 모녀를 만나게 된다.

어린 나이에 딸 둘을 낳아 자신의 젊음과 커리어를 놓아버리고 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던 나날들.

그 시간들이 처음엔 기쁨과 계획 속에서 그녀의 필수적인 일과였다면 두 번째 기회에서는 그녀 자신을 놓아버리는 시간이 되었다.

 

철저하게 자기의 시간을 주도하던 여자가 발목을 잡힌 채로 바쁘게 출장을 다니는 남편 덕에 두 아이를 양육해야만 했던 그 시절. 아마도 레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우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성애와는 별개로 레나에겐 탈출구가 없었다.

독박 육아는 그녀를 조금씩 갉아 먹었고, 급기야 아이들에게 보여서는 안되는 모습까지 보이고 말았다.

그런 자신의 끝을 알 수 없음에 아이들을 떠났던 레나는 자신의 시간을 찾지만 3년 동안의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자책감이 그녀를 갉아먹어갔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니나를 보며 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은 충동과 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낀다.

 

페란테의 글은 감정을 낱낱이 드러냄과 동시에 신랄한 표현으로 그 상황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까지도 그 상황을 겪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레나의 충동과 니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로사리아의 준비되어 있는 모성애라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이야기를 읽었다.

뭐라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서 이 모든 걸 뭉개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를 나도 모르게 원하게 되었다.

정말 모두가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해일 같은 일이 일어나서 모두가 구속에서 해방되는 획기적인 일이 벌어지기를 애태웠다.

 

엄마와 딸.

서로의 모순됨을 가장 잘 아는 관계.

엄마는 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 딸은 엄마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본다.

비앙카와 마르타에게서 나와 닮은 면을 볼 때마다 나는 뭔가 찜찜했다. 딸들이 내 자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가장 뛰어난 면이 딸들의 육체에 제대로 접합되지 못한 것 같았다. 딸들이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내 모습을 흉내 내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3년의 시간은 레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힘든 시기였지만 아이들은 기억하기 싫어하고

레나는 자꾸 기억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버림받은 사람은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고, 버린 사람은 속죄하고 싶은 시간.

 

니나를 통해 레나는 자신과 같은 상황의 그녀를 동정함과 동시에 경멸하기도 한다.

평범한 휴가지에서 평범하지 못했던 두 여인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잃지 않는다는 건 어떤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은 결국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아서 갖게 되는 상실감이 아닐까.

 

모성애를 강요당하는 세상에서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는 여자들이 많을 것이다.

엄마는 이래야 하고 그래야 한다는 그 부담감 사이에 갇혀서 어떻게든 쥐어짜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레나를 통해서 니나를 통해서 로사리아를 통해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분신을 두고

한 여자는 자신을 찾아 나섰고

한 여자는 자신을 찾기 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걸 선택했고

한 여자는 당연한 것처럼 그 자리를 꿰어 찰 날만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잃게 될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무엇을 희생하던 결국 잃어버린 사랑의 상실감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은 언제나 보답을 필수로 달고 다니지 않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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