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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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내게는 종합선물 세트 같은 책이었다.

소설집에 담긴 단편들 제각각이 현실을 풍자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현실을 도피하고자 소설을 읽는 나에겐 버거운 존재들이라

현실을 품고 있으면서도 비현실적인 임성순의 이야기는 읽고 나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사장님이 악마예요를 읽으며 정말 악마들이 걱정할 만큼 악랄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우리 군단은 최근 지옥으로 유입되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 자선과 보건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중이야. 피임 기구를 널리 보급하고, 제3세계에 관련 교육도 하고, 가능하면 인간 영혼을 최대한 멘탈계로 올려 보내고, 인구 증가율을 감소시켜 아스트랄계의 에너지 포화 위기를 해결하려 하는 거지.

 

이 인구 증가율 감소 정책은 우리나라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셈이니 악마들의 계획이 잘 먹히고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참 많이 씁쓸했다.

지옥에 사람들이 많아서 져서 악마들이 자선사업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이런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마음이 와닿아서 많이 씁쓸했다.

인류 낚시 통신이라는 이 기발한 제목도 그렇다.

요즘 많이 보이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의 벗겨진 민낯이 아니라 가면을 본 느낌이 허탈하다.

허울 좋은 가면 아래의 민낯들.

이것을 임성순은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을 희소하게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이들은 이십 년전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세력으로 뛰어들어 인류를 희소하게 만들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욕하든 변절했다고 떠들든 상관없었다. 이상을 실현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겁니까. 인간의 가치가 사물보다 떨어지는 세상이니 당연히 돈의 흐름에 거치적거리는 존재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건 휴머니즘으로 구할 인간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는 잉여일 뿐이지요.

 

돈이 전부인 사람들의 세계에서 인간은 저런 존재인 것이다.

그것을 글로 확인한 기분이 많이 아프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실을 보여주는 소설의 진정성이다.

현실은 항상 소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으니.

오래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를 만났을 때의 신선함을 오랜만에 느껴본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현실을 볼 때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더 잘 인식하게 된다.

이 소설집이 내겐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의 모순을 제대로 짚어 주는 거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그리고 또 어떤 작가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지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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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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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임수와 거짓말, 위협과 루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가도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해하게 됐다.

 

 

 

재정난에 허덕이며 난민 문제 해결에 지쳐있던 저자는 머리를 식힐 겸 떠난 낚시 여행에서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인 트링 박물관에서 새의 깃털이 도난당한 사건을 듣는다.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쳐야겠다는 사명감으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사건을 파헤친다.

 이 소설이자 에세이이자 다큐 같은 글은 그렇게 수많은 기록과 자료와 인터뷰를 거쳐서 태어났다.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플루트 연주자였던 에드윈이 트링 박물관에 몰래 들어가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수십 종의 새들을 훔쳤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새의 깃털이 대체 뭔데?

그걸 훔쳐서 뭐 하게?

하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돌 때쯤 장래가 촉망되는 플루트 연주가가 왜 깃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깃털들이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아직도 그것을 고수하려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이롭게 만든다.

 

플라이 타이어.

그것이 에드윈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플라이낚시에 사용하는 깃털 미끼를 만드는 사람을 지칭한다.

고작 낚시 때문에 깃털을 훔쳐? 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 깃털이 희귀종이고, 구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희귀종이거나 멸종된 새의 깃털은 부르는 게 값이다.

 

이 책의 앞부분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삶의 절반 이상을 오지로 돌며 희귀종 새들을 수집. 박제해서 박물관에 보냈다.

 

 

 


에르메스 가방과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가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더 이국적이고 더 비쌀수록 더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 새의 깃털일 것이다. 수컷 새는 암컷 새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신의 깃털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어왔지만, 인간세계에서는 그 깃털을 이용해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 사회적 신분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새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자기들끼리만 지내면서 너무 아름답게 변해버렸다.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들이 인간에게 살해됐다.

박물관 때문이 아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 바로 여성들의 패션 때문이었다.


 

 

 

 

 

 

 

 

 

 

월리스가 목숨 걸고 구해서 박물관으로 보냈던 새들의 표본이 21세기에 플라이낚시에 쓰이는 미끼를 만들기 위해 훔쳐졌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지금도 대다수가 알지 못하는 거 같다.

19세기에 여성들의 패션의 완성은 모자였다.

그 모자에 어떤 새로 장식하느냐에 따라 신분의 높이를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세기도 힘든 새들이 모자 장식이 되기 위해 살해되었다. 인간에 의해.

그리고 또 다른 용도로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살해되었다.

 

 

 

 

스무살의 에드윈에게 박물관의 새를 훔쳐야겠다는 생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정당화됐다. 그 새들만 있으면, 플루티스트로서 야망도 실현하고, 타잉계에서 그동안 누리고 싶었던 지위도 누리고, 가족도 도울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새의 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므로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험이 될 것 같았다.




 

1년 가까이 박물관은 도둑맞은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범인 에드윈은 잡혔지만 아스퍼거 진단을 받고 풀려났다.

에드윈은 총 299마리의 표본을 훔쳤고, 102마리만 이름표가 붙은 온전한 상태로 박물관에 돌아갔다.

하지만 사라진 나머지 새들의 행방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만 빼고는.

 

 

 

법의 헛점을 노리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범죄자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허술하게 빠져나가게 두는 것도 법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드윈은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박물관에 돌아오지 못한 표본들과 함께.

 

현실은 이렇게 깜깜하다.

저자는 에드윈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교묘하게 모두를 속였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라진 표본들은 지금도 플라이 타이에 목매는 사람들에 의해 몰래 거래되고 있으니까.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박물관에 고이 모셔두기보다는 자신들의 타잉에 새의 깃털이 이용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범인은 수만 달러의 이득을 챙기고 박물관과 앞으로의 연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끼쳤지만 단 하루도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어쨌든 재판 방식이 그러니까요. 때로 법은 희생자나 피고인, 모두에게 아주 불공평하죠.

 


범죄소설이자 다큐이고, 에세이 같으면서도 어딘지 소설 같은

이 정체를 정의하기 힘든 이야기 하나가 내게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박물관의 존재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수많은 종들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얼마나 빠르게 사라져갔는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얼마나 잘 침묵하는지.

 

갖지 못하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심은 그것이 설사 무언가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책이다.

실화임에도 마치 꾸며진 이야기인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취미 때문에 사라진 역사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것에 대한 경각심 없이 안일하게 판단을 내린 법은 또 누구의 책임일까?

잘못임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침묵하는 이는 누구의 책임일까?

 

현실은 이렇게 그저 암담할 뿐이다.

깃털도둑은 알지 못한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준 책이고, 관심 없던 세계를 눈여겨보게 해준 책이다.

 

대다수의 눈을 속일 수 있다 해도

진실을 좇는 단 한 명의 눈은 속일 수 없다.

그리고 늘 그 한 명의 눈이 대다수의 눈에 덮인 두터운 눈꺼풀을 벗겨 낼 수 있음이다.

 

이 책이 그 한 명의 눈이 되어 자신들의 죄를 침묵으로 회피하고 있는 그들에게 단죄가 되길 바랄 뿐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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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엄마 디즈니의 악당들 5
세레나 발렌티노 지음, 김지혜 옮김 / 라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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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델은 두 언니와 죽음의 숲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걱정거리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이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싶었다.

그거면 되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서재에서 몰래 엄마의 책을 훔쳐 읽었다.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모르겠어? 그건 우리의 마법이기도 하다고! 엄마가 독차지하고 있는 거야! 그래, 설령 엄마가 영원히 산다고 쳐, 그리고 우리도 그렇다고 해보자. 그럼 끝도 없는 나날들을 뭘 하면서 보낼 건데?

둘째 프림로즈는 마법을 싫어했다.

죽음의 숲에서 세 자매와 영원히 살고 싶어 했다.

지금처럼 지내면 되지! 함께 죽음의 숲을 거닐면서 말이야. 다 함께, 영원히!

첫째 헤이즐은 고델과 프림로즈의 완충지대로 동생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큰언니였다.

고델! 넌 뭐가 목적이니? 네가 말한 대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야? 아니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야?

그럼에도 죽음의 여왕이자 세 자매의 어머니는 고델에게 자신의 마법을 물려주려 한다.

그래. 내가 떠나고 나면 네가 보호해야 해. 가장 중요한 의무야! 나처럼 오래도록 살 계획이라면 이 꽃, 라푼젤을 잘 간수해야 한다. 이건 과거의 치욕으로부터 너와 네 언니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야.

.

.

난 네 언니들을 사랑하지만, 너야말로 진정 내 딸이란다, 고델.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딸.

그들 가족에겐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마법의 의식을 치르는 동안 고델은 엄마의 힘의 원천인 라푼젤 꽃에 불을 지른다.

언니들을 헤치는 엄마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저 언니들과 함께 조용히 살아가고자 했을 뿐인데

라푼젤 꽃이 타들어가자 엄마는 재로 변해 버렸다.

마법도 전수받지 못하고, 엄마를 죽인 고델.

라푼젤 꽃도 다 타고 한 송이만 남았다.

언니들은 시름시름 앓고 언니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차도가 없다.

그때

세 마녀가 나타난다.

죽음의 숲에 걸려있는 마법을 뚫고 나타난 세 마녀.

그들은 진정 고델에게 도움을 주는 마녀들일까?

라푼젤의 가짜 엄마 고델의 이야기다.

고델이 어째서 라푼젤을 납치했는지 그 이유가 들어있다.

이 이야기에도 어김없이 세 자매 마녀들이 등장한다.

악당 시리즈에 감초처럼 등장할 모양이다.

모든 악을 뿌리고 다니는 이 세 자매의 이야기 또한 나쁜 뜻은 없었다.

다만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 노력들이 결국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고통을 주고 시련을 주는 게 절대적 문제라면 문제일 뿐.

라푼젤은 꽃 이름이었다.

영원과 젊음을 지켜주는 생명의 꽃.

고델이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주어지는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나쁜 일 같다.

고델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했다면 자신의 힘으로 언니들을 살려내고 가짜 엄마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을.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은 그 힘을 노리는 이들로 인해 시련을 겪으면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디즈니 악당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게 이 시리즈의 목표일까?

앞으로 나올 악당들은 좀 살았으면 좋겠네.

그래야 뭔가 밸런스가 맞을 거 같아서.

이 디즈니 악당 시리즈도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새로 태어나고 싶다.

디즈니 만화의 다양성을 보고 자라면 뭔가 달라진 어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시리즈가 말하는 바는 아마도 이런 거 아닐까.

누구든 악당이 될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어둠의 이면에도 한때는 밝음이 존재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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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티드 캔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1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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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1.

유명한 추리소설가 존 렉스맨은 사채업자 살인사건에 휘말려 수감된다.

그와 친분이 있는 경시청 경찰국장 티엑스가 나서서 무죄를 입증하지만 바로 그날 렉스맨은 탈출하여 자취를 감춘다.

티엑스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서 잡지 못하는 레밍턴 카라.

그가 렉스맨의 탈출에 관여했다고 생각하고 추궁하지만 그는 교묘하게 회피하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고위직들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을 무렵 카라가 그의 밀실에서 살해된다.

 

고전 추리물.

현대물에 찌든 내 감성에 고전 추리물이 싱겁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기우였다.

오히려 현대물에서 느끼지 못하는 쫄깃함과 오로지 명석한 머리로 추리를 하며 끈질기게 몰아가는 묘미가 더 생생하다.

티엑스라는 인물은 경찰국장이면서도 범인의 집에 잠입하여 금고도 열어보고, 집도 둘러보는 도둑(?) 같은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티엑스가 하는 일은 매우 광범위했다. 사람들은 티엑스를 런던 경시청에서 '불법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부서 책임자라고 여겼다. 그에 관한 유명한 소문 하나는, 만약 누군가가 금고 열쇠를 잃어버려도 티엑스가 30분 안에 그 금고를 열 수 있는 절도범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카라라는 인물은 요즘 범죄물에 나오는 사이코패스의 원형 모델이라는 느낌이 든다.

겉으론 세련되고, 멋지고, 귀족 신분의 신사이지만 그 뒤에서 그가 벌이는 행위는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파괴적이고 비신사적이다.

여러분은 대부분 레밍턴 카라에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그가 저지른 무자비한 악행들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고, 또 그가 신이 만든 창조물 중 오점이자 사악하고 야비한 이기주의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아주 극소수의 범죄자들에게서나 발견되는 살인에 대하 강한 충동과 고통에 대한 강한 욕정을 추구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거기에

약간의 연애담까지 종합선물세트로 준비된 추리소설이다.

마지막 부분은

이 이야기의 묘미이자 온갖 트릭이 밝혀지는 관계로 찬란한 피날레를 장식하던 옛 방식이라고 나 할까?

이 옛 방식이 참 맘에 든다.

가끔은 모든 게 덜 공식화되었던 옛날 방식이 더 멋있게 느껴질 때가 있는 데

이 이야기의 결말이 바로 그렇다.

부디 저의 자만을 용서하길 바랍니다. 어찌 되었건 저는 여러분 앞에 이 사건을 설명해야 하고, 상당한 경험과 분벼력을 지닌 여러분은 제가 이제껏 허구의 범인들 마음을 잠입해왔듯이 지금 역시도 이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의 마음을 좇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또 만약 범인의 마음을 좇을 수 없어도 레밍턴 카라를 죽인 살인범의 심리 상태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주 많은 작가 에드거 월리스.            

킹콩의 원작자로 많은 작품을 써서 다작 작가란 타이틀도 가졌다.

추리소설로 만난 그의 생각의 틀이 참 신선해서 좋다.

지금 읽어도 촌스럽지 않은 게 그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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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잘레스 씨의 인생 정원 -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배운 삶의 기쁨
클라우스 미코쉬 지음, 이지혜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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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질주하던 커리어의 고속열차에서 난생처음으로 강제로 하차당한 셈이니 울어야 할 것도 같고, 의미를 찾지 못하던 직업에서 해방되었으니 웃어야 할 것도 같았다.

 

 

은행원 니클라스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는다.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린 그는 안달루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곤잘레스 씨를 만난다.

 

자신의 밭에서 일평생 농사만 짓고 살고 있는 곤잘레스 씨와 도시남 니클라스의 만남.

일만 아는 독일인과 느긋한 스페인 농부는 어떤 교감을 가지게 될까?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그저 그렇게 흔하디흔한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귀농을 꿈꾸는 도시 사람의 이야기일 거라고.

이런 맥락의 이야기들이 최근 들어 많이 나왔고, 느림의 미학을 외치며 시골생활 예찬을 하는 책들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곤잘레스 씨와 니클라스의 조합도 그러려니 했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곳에 플래그를 붙이게 될 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야. 요즘 세상에서는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니 말이지.

 

 

 

곤잘레스 씨의 정원에서 정원일을 도우며 니클라스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곤잘레스 씨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을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삶의 가치

인간의 가치

시간의 가치

물질의 가치

노동의 가치

생명의 가치

나눔의 가치

사랑의 가치

 

 

 

그는 어떤 물건이든 돈으로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한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조차 적잖은 돈이 들지 않았던가.

그의 세계에서는 죽음조차 공짜가 아니었다.

 

 

 

농사는 노동의 대가를 지불한다.

자연의 법칙이 그렇다.

예전처럼 사는 게 싫어서, 힘든 노동이 싫어서, 노동에 비해 턱 없이 모자른 노동의 대가가 싫어서

다들 도시화되고, 산업화되어 버렸다.

홀로 꿋꿋이 퇴비를 만들어가며 유기농 농사를 짓는 곤잘레스 씨의 정원엔 독약이 뿌려지지 않은 먹거리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비싸지만 그곳에서 채소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땅에 골프장을 지어서 한몫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주변의 땅을 사들이고, 남아있는 곤잘레스 씨의 땅을 헐값에 사기 위해 곤살레스 씨를 궁지로 몬다.

어디서 많이 보아온 일들이다.

 

 

 

 


지금껏 그는 느림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발리 돌아가야 했다. 교통, 경력 쌓기, 심지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세상이 몰락하기 시작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 지 모른다. 무슨 일이든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나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의미 있는 뭔가를 창출해내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곤잘레스 씨의 정원

그곳에서 일을 하며 인생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메워가는 니클라스.

하지만 곤잘레스 씨를 협박하는 사람들의 횡포는 늘어가고 니클라스는 그를 돕고 싶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차에 화물차 연대가 파업을 선언하고 하루 이틀 사이에 대형 마트의 물건들이 동이 나면서 곤잘레스 씨 정원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선다.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어 놓는 곤잘레스 씨를 보며 니클라스도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귀농이나 농사짓기, 시골생활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찰나의 순간에 느끼는 이 시대의 불공정한 시스템과 현대인의 잘 못된 소비습관에 대해

곤잘레스 씨의 정원을 통해 우리를 일깨워주는 지혜의 책이다.

 

 

 

세상 모든 일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조바심을 치며 고통받게 돼 있어. 최악의 경우에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 들다가 생명체의 조화로운 리듬을 망가뜨리고 말지.

 

 


우리는 이미 필요한 걸 다 가졌어. 그런데 더 많이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

 

 

소유욕.

이미 다 가지고 있지만 최신, 새것으로 교체하기 위해 더 비싼 값을 치르고, 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고, 다 쓰지도 못할 기능들을 가진 것들을 탐한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많은 일을 해야한다.

현대사회가 끊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이다.

 

 

 

 

 

 

 


계획적 진부화라는 말을 들어본적 있나?

일부러 한정된 기간에만 제대로 기능하도록 제품들을 조작한다는 의미지. 프린터, 휴대전화, 자동차, 옷가지도 다 마찬가지야.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견고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러면 당연히 사람들이 소비를 덜 할 것 아닌가. 휴대전화가 10년을 간다면 뭣 하러 2년마다 바꾸겠나. 말하자면 꾸준히 이익을 내려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불필요하게 대량으로 낭비하고 있는 거야. - 176페이지

 

 

이 이야기에는 지금의 현실을 꿰뚫는 시선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모두 배부른 자들을 더 배불리기 위한 것임을 콕  찍어 이야기해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말과 광고에 속아 현명한 소비를 하지 못하고 결국엔 자신들의 삶의 질을 더 망가트리고 있다.

 

 

 

 

 

 

 


천연자원을 둘러싼 전쟁이 지속되고 환경오염까지 일으키는 상황을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이냐, 아니면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와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냐는 결국 개개인의 소비행동을 통해 결정하게 되지.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열려있어.

 

 

니클라스가 곤잘레스 씨의 정원에서 보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깨닫고 달라지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현명한 소비에 대해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현명한 소비를 하며, 노동의 대가로 이루어지는 농업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느림의 미학이란 결국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진 것들이 내 몸에 쌓여갈 때 그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에너지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임을 말하는 거 아닐까?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고, 빠르게 나아가고, 빠르게 변화되는 속에서 우리가 미쳐 챙기지 못하고 놓쳐 버린 것들이

결국은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병들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열린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네. 끊임없이 배움을 즐기고, 낯선 것을 대할 때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을 품게나. 두려움은 행복의 가장 큰 적이거든. 중요한 건 결국 그게 아닌가? 행복하게 사는 것 말이야.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래서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어떤 위기가 와도 서로 도우며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아서.

현혹되는 삶보다는 현명한 삶을 바란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한다면 조금 더 많은 좋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에피소드가 결국 언젠간 우리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

자급자족이 안되는 세상에서 나는 그 위기를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한때 시골생활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꿈만 꾸던 시간이었다.

귀농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이었다.

매일을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내야 하는 삶은 도시에 찌든 내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꾸고 싶다.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내는 삶을.

 

 

곤잘레스 씨의 정원에는 못 미치더라도

느리게 살면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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