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일러스트이자 일본의 파워 불로거이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조금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만화를 그린다.

 

설마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싶은 사람도 있고

우리도 동네에 한 분쯤 존재하는 사람도 있고

이 정도가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하는 사람도 있다.

 

 

 

 

 

옷 가게 에피소드에서 생판 모르지만 무채색 원피스를 들고 딸이 좋아할지 물어보는 아주머니.

작가는 나름 요즘 유행과 날씨 연령대를 고려해 성실히 대답해주지만 결국 아주머니는 자기 사고 싶은 걸로 산다.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걸까?

 

근데 이런 경우는 나도 있다.

같은 디자인의 색깔이 다른 셔츠를 대보면서 어떤 게 어울리는지 자연스레 물어보시길래 조금 밝은 색이 어울린다 했더니 바로 내려놓고 어두운색을 골라 가셨다.

순간 어찌나 무안하던지.. 어르신들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마치 몇 십 년 지기처럼 하실 때.

생판 모르는 분이 자기보다 어리다고 막 반말할 때.

증말 민증 까자고 대들뻔했음.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꼭 일기를 썼다는 작가의 의도가 좋다.

나는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일이 있을 때보다

안 좋은 상황이나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일기를 썼는데 나중에 들쳐볼 때 엄청 내 인생이 우울하고 불행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라도 좋은 일과 좋은 사람들 이야기도 적어두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썼다는 건 평소에 주변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뜻으로도 보아져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무심하게 살아가는 거 같다.

분명 내 주위에도 이 책 속에 그려진 사람들과 비슷한 이들이 있을 텐데 내가 전혀 모른다는 것.

 

좀 특이한 사람들과의 인연이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사람들이다.

역과 지하철 동네에서 스치는 사람들에게 조금 관심을 준다면 나는 더 즐거운 일기를 남길 테고 내 인생이 꽤 재밌었다고 생각할 훗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 엉뚱하고, 재밌고, 이상한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이 넓고도 좁듯이

사람 사는 게 정말 거기서 거기처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화적 차이나 웃음의 코드가 다르다 해도

살아가는 방법이나 모습들은 참 같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인가 보다.

 

 

 

 

 

 

 

아이스티 한 잔 주세요.

 

따뜻한 아이스티 맞으십니까?

 

혹시라도 주문받는 분이 이렇게 대답해도 무안주지 말아요.

이 대답 때문에 가다가다 혼자 웃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이 에피소드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 없이도 임신이 가능하다.

 

앤젤라 채드윅의 XX - 남자 없는 출생은 제목부터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뭔가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할 거 같은 예감이랄까?

 

 

 

난자 대 난자의 인공수정으로 임신이 가능한 연구가 성공한다.

난난수정법이 법을 통과하고 합법적으로 난자 대 난자 인공수정이 가능해졌다.

기자인 줄스는 자신의 동성 연인 로지와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하고 이 프로젝트의 임상실험에 참가한다.

사실 줄스는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지만 로지가 아이를 갈망한다는 걸 알고는 로지와 자신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생기자 기뻐한다.

 

그래, 갑자기 왜 애를 갖고 싶어 하는지는 둘째 치고, 왜 그런 식으로 가지려는 거냐?

.

.

아직 안전한지 모른다며! 실험동물이 되려고?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로지의 부모님은 기뻐했지만 줄스의 아버지는 반대 의견을 보인다. 아내 없이 홀로 딸을 키워온 아버지는 딸이 자신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가난한 동네에서 되풀이되는 여자들의 삶을 딸이 탈피하기만을 바랐던 아버지는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서 달라질 딸의 처지를 걱정한다.

 

무사히 서류와 면접을 통과한 줄스와 로지.

그러나 이 난난수정법을 반대하는 자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우리 딸이 태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세상에서 딸아이를 지켜내는 건 내 몫이다.

 

성을 가르는 염색체는 남자에게 존재한다.

XY로.

XX 염색체끼리는 XX만 만들 수 있다.

결국 이 난난수정법으로 인해 여성들만의 임신이 가능해지면 딸만 태어날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남자의 멸종을 가져올 거라 생각하는 반대자들이 계속 집회를 연다.

 

 

나한테는 남자아이 셋이 있어요.

이번 시술이 성공하면 그 애들이 어떤 세상에서 자라게 될까요? 소수자가 되고 말겠죠.

 

 

정자를 기증받아야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레즈비언 커플들은 자신들만의 유전자로 자신들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정자를 기증받아 그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키운다는 게 줄스는 싫었다.

이젠 자신과 로지를 반반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제 남자들이 피 묻은 사슴을 동굴로 끌고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여자는 없으니까.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 없이는 아이를 만들 수 없잖아. 우리가 필요하니까, 그걸 우리가 상기시키니까 분노하는 거야."

 

"하지만 여자들이 다 이런 식으로 아기를 가질 것도 아니고, 인구 비율이 어쩌고 남자가 멸종하고 어쩌고, 이런 쓰레기들에 대응하는 사람이 왜 없어? 난 사람들이 이런 거짓이랑 선동을 너무 쉽게 믿는다는 게 걱정돼."

홍슈가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언론 탓이지."

 

비밀리에 진행되던 임상 실험은 누군가의 폭로로 줄스와 로지의 신원이 공개되고 만다.

줄스는 기자로서 언론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이가 아주 드물다. 직장 상사인 매튜는 한시도 줄스를 가만두지 않고 들들 볶는다. 기삿거리를 내놓으라고. 그리고 일부러 그녀를 난난수정 반대파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취재를 보낸다.

언론은 그녀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집까지 공개되어 줄스와 로지는 24시간 카메라에 노출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각종 SNS에서 그녀들을 비방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니며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참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서 언론이 돌아가는 방식과 사람들이 비범하지 않은 주제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소한 차이로 법은 통과되었지만 앞으로 남자들이 멸종할 거라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한자리 꿰차려는 정치인

자신의 아들들이 나중에 소수자가 될 거라 미리부터 걱정하는 어머니들

종교적인 이유로 절대 불가를 외치는 종교인들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 달라질 딸의 삶을 걱정하는 줄스의 아버지

임신한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마냥 행복해하는 로지

아이가 생기고 언론과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며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는 줄스

핏줄에 연연해하는 로지의 엄마

자신의 정자를 기증하려고 했던 로지의 친구 앤서니

같이 임상실험에 참여 임신에 성공했으나 중간에 아이를 잃은 커플들의 태도 변화

묵묵히 줄스를 응원하며 그녀 편이 되어준 동료 톰과 애비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녹아들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매 챕터마다 새로운 긴장에 가슴 조이며 마지막으로 갈수록 마치 범죄 영화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느낌을 받는다.

 

당신들 아이는 평범하게 살 수 없을 거예요.

.

미안해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이 아이는 기적의 아이가 될 거고, 사람들은 궁금해할 거예요.

 

 

지독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세상에서 처음과,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줄스와 로지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그들의 아이는 난자와 난자로 이루어진 최초의 인간이 될 테니까.

 

재밌는 건 책 곳곳에도 나오지만 여성들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면 남자가 멸종 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이 평화롭고, 전쟁이 사라지며 공평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정말 여자들만 태어나고 남자가 사라질까?

여태 우리는 남아 선호 사상 속에서 숱하게 희생되는 여자아이들을 보아왔다.

어릴 때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딸만 줄줄이 낳다 보니 딸이라고 판명되면 아이를 지우는 엄마들을 목격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가 멸종될 거란 생각을 한 여자들은 없었다.

근데 왜 남자가 멸종될 거라 지레짐작하게 될까?

 

이야기라 그렇다 생각하며 현실의 랑에게 물었다.

"만약 난자와 난자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거 같아?"

"남자 수가 줄겠지. 여자들이 많아지면 전쟁은 사라지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여자들이 많아지면 정말 전쟁이 사라질 거 같아? 여자들도 전쟁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못 들었다.

모른다는 회피성 발언만 들었다.

같이 살고 있는 남자에게서 들은 이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남자들 자신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호전적이라는 것을?

아니면 여자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지 않고 피난만 다니니까 여자가 많아지면 자연 전쟁도 없어질 거라 생각하는 걸까?

책에서 앞으로 경찰과 소방대원과 군인이 사라질 거라 발언하던 정치인 프라이어의 말이 생각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자들이 많아지면 이런 직업들이 사라질 거라 생각할까?

 

이 이야기 한 편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올바른 정보를 듣고 있는 걸까?

언론이 모든 것을 공평하게 다루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자신들 입맛대로 자신들 이익대로 짜 맞추어 가는 걸까?

 

만약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난난 수정법이 성공해서 여자들끼리만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는 과연 이 법안에 찬성하게 될까?

이 이야기는 정말 여자들에게만 최적화된 이야기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지만 그 어떤 결정도 내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 이야기가 상상에만 그칠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근 미래에 어쩜 난난수정이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생각은 어떨 거 같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 겨울의 약혼자들
크리스텔 다보스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몹시 기분이 나빴던 어느 날, 신은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세계를 산산조각 냈다.



첫장부터 이야기가 범상치 않을거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읽어갈수록 마주하게되는 이 새로운 세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정말 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판타지를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이야기의 탄생이다!




물건을 읽는 건 말이야, 잠시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이의 과거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거란다. 하지만 거울로 드나드는 것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지. 배짱이 있어야만 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기 위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자기 얼굴을 감추는 사람들,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 실제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들, 그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손끝으로 사물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오펠리는 거울을 통해 이동하는 재주도 지녔다.
평범하게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녀에게 약혼자가 생긴다.
다른 아슈 출신의 남자. 키가 크고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그녀를 찾아온 약혼자는 그녀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가족과 이별할 시간도 주지않고 오펠리와 그녀의 샤프롱인 이모 로즈를 데리고 자신의 아슈인 폴로 떠나버린다.

그곳은 환영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얼음대륙처럼 차가운 곳에서 오펠리는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그녀의 약혼자에게 적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는 궁중 고위 관리직이지만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가족조차도.

이제 오펠리는 그 살벌한 곳에서 살아남기위해 애를 써야한다.
사방이 적인 그곳에서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그의 약혼자와 그와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무리에 맞서야 하는 어리고 여린 오펠리의 이야기. 가 다는 아니라는데 이 이야기의 매력이 팍팍 터진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보적인 상상력으로 창조된 세계는 많은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다보스의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속의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세상이다.

신이 산산조각낸 세계는 아슈로 다시 태어나고 각각의 아슈는 정령을 구심점으로 개성에 맞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표지의 그림처럼.


클랜 사이의 적대 관계 때문에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진솔한 사람들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생각을 단련시키고 싶었고,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고, 자신의 힘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이것이 오펠리였다.
약하고 어리고 꾸미지 않아서 마냥 어리숙하게 보이는 이 소녀에겐 굳은 심지와 뚝심이 있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강인함.
그것이 오펠리의 힘이다.

그런 그녀가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는 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이야기는 상당히 감동스럽다.
어째서 이 작품이 이렇게 늦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애통할지경이다.
심지어 데뷔작인데 말이지~

1권 보다 더 흥미진진해질 두번째 이야기가 빠르게 출간되길 고대한다.

정말 색다른 세상을 여행하고픈 이들에게
판타지에 굶주린 이들에게
시리즈를 환영하는 이들에게
표지에 반한 이들에게 이야기에는 더 반할거라고 장담 합니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탑승 준비가 되셨다면.
스스로 아무힘도 없이 나약하다고 생각한다면.
꿈을 꾸고 싶다면.
달달한 거 말고 고난을 이겨내는 사랑이 보고 싶다면.
거울로 드나드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색다른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이야기로 초대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자크.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은 없는 거 같다.

이번에 녹색광선에서 발자크의 작품 중 두 편을 미지의 걸작이란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영생의 묘약과 미지의 걸작 두 편이 실린 책의 표지는 녹색광선이라는 출판사 이름에 걸맞은 녹색의 실크 표지를 띠고 있는 양장본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책머리에 쓰인 발자크에 대한 이야기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겼다.

 

조만간 나는 한 재산 장만할 겁니다. 문필가로서, 아니면 정치계에서, 아니면 언론계에서, 아니면 결혼을 통해서, 아니면 어떤 사업상의 일확천금을 통해서 말입니다.

 

 

츠바이크 평전에 실린 발자크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야망을 다각도에서 펼쳐보고 싶어 했던 발자크.

그의 문학 세계는 어땠을까?

 

 

영생의 묘약

 

사랑하는 아들아, 바보짓을 해도 네가 재미있는 것만 하거라.

 

이렇게 무한의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방종하게 큰 돈 후안.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그는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아버지의 비밀을 듣게 된다.

자신이 죽으면 비밀 서랍에 있는 영생의 묘약을 사용해 자신을 부활시키라는 말을 들은 돈 후안.

그는 아버지로부터 그 묘약을 훔친다.

막대한 부와 묘약을 지닌 채 그는 거칠 것 없는 인생을 살았고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아들에게 당근과 채찍 같은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순종적인 아들로 키워내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 영특함을 발휘면서.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았던 돈 후안.

그래서 사는 동안 영생을 꿈꾸며 준비를 철저히 했었다.

 

그의 시선은 모든 것을 깊이 탐구했고 사회적 삶의 원리를 꿰뚫었다. 무덤을 통해 세상을 본 만큼, 세상을 더 잘 파악했다. 그는 인간들과 사물들을 분석했고, 역사를 통해 재현되는 과거, 법에 의해 형성되는 현재, 종교를 통해 밝혀지는 미래를 단번에 이해하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던 돈 후안은 과연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얻은 영생의 묘약은 그에게 어떻게 작용했을까?

 

살면 살수록 그는 의심이 더 많아졌다.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는 자주 용기가 무모함이 되는 것을 알아챘다. 신중함이 비겁함이 되고, 관대함이 교활함이 되며, 정의가 범죄가 되고, 섬세함이 어리석음이 되고, 성실함이 조직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걸 알게 된 돈 후안의 꿈은 이루어질까?

 

인과응보.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친다.

죽음에 대한 빚이 어떻게 되돌아오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

누군가로부터 소중한 것을 빼앗으면 그것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는지 섬뜩하게 보여주는 이 단편이 발자크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다.

 

 

 

 

미지의 걸작

 

 

발자크가 프랜호프라는 화가의 입을 빌려 당시의 화풍을 질타하고 미래지향적 화풍을 설교한 작품. 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자크 리베트가 1991년 누드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로 만들었다.

이 책의 뒤편은 이 누드 모델 영화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보게, 어린 친구. 결국 중요한 건 마지막 붓의 터치야.

우리 중 누구도 이면에 숨겨진 것의 의미를 알진 못하지. 이 점을 잘 알아야만 하네.

 

 

젊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일갈을 한 프렌호퍼는 자신만의 미지의 걸작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젊은 화가 푸생은 자신의 아름다운 애인을 프렌호퍼의 모델로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애인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으로 갈등한다.

 

 

 

 

이봐, 너무 많은 지식은 무지와 마찬가지로 결국 부정(否定)에 이르게 되지.

 

 

 

 

발자크는 이 이야기로 그 시대의 곧이곧대로의 표현력을 질타함으로써 다른 표현력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작가로서 그 당시 그림들을 보며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입체감이 부족한 그림들이 그의 상상력을 방해했던 모양이다.

프렌호퍼는 그 부족한 상상력을 붓질 한 번으로 만회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이 살아나는 과정을 표현해 내면서 발자크는 미래의 화풍을 글로써 표현해 내었다.?

어쩜 이 작품 이후의 그림들이 어느 화가에게 영감을 주었는지도 모르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이름은 들었지만 잘 모르는 작가의 단편들이 엮어진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소개하는 출판사가 많은 부분에서 독자들을 이해시키려 노력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책머리와 부록이 없었다면 이 미지의 걸작은 내게 그야말로 미지의 걸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이 작품에 이런 의미가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길을 잡아준 것이 바로 이 책의 묘미이자 출판사의 신의 한 수라 생각한다.

 

이 두 편의 이야기로 발자크를 알게 된 나는

발자크가 너무 앞선 시대를 산 게 아닌가 싶다.

요즘 세상을 살았다면 그는 아마도 다양한 곳에서 실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감각들을 맘껏 펼쳐 볼 수 있었을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지요의 얘기처럼 능력 대신 평화가 보장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원해서 그런 힘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닌데....

.

.

빼앗길 것이 남아 있는 한, 도시가 존재하는한 완전한 평화란 익인들에게 꿈만 같은 이야기.

 

 

 

날개에 치유의 능력이 있는 익인들.

키는 작지만 커다란 날개와 힘이 도시인들보다 센 익인들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며 그들만의 땅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을 도시에 공급하며 산다.

 

은각과 미과

은각은 은각마가 죽으면 그 눈동자를 세공하여 만든 보석이고

미과는 일종의 마약성분처럼 기분을 좋게 하는 나무 열매이다.

도시인들은 이 보석을 얻기 위해 은각마를 잡아다 억지로 교배하는 실험도 했으나 그들이 원하는 바를 갖지는 못했다.

 

힘이 있어도 그 힘을 이용하지 않는 익인들

그 힘의 원천을 알고자 하는 도시인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이방인.

 

익인과 도시인 사이의 혼혈.

몸집은 도시인들과 비슷하지만 날개는 턱없이 작아서 익인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비오.

 

현 시행의 배다른 동생이자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존재 루.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도시인에게 잡힌 비오가 루를 납치하여 탈출하면서 이어진다.

이를 통해 루는 도시인으로서 익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두 이방인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은 익인들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늘 조심하고 눈에 안 띄기를 바라며 살던 루에게 익인들의 공간은 그녀를 받아들이고 그녀 자체로 봐주는 이들의 품에서 한없는 자유를 누리게 만든다.

비오와 루.

이 두 사람의 마음은 이어질까?

그들을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까?

 

 

코앞에서 들여다본 것은 아니었으나 청년들의 담갈색(비오는 갈백색) 어깨와 등은 정말이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 어깨에 날개가 따로 비집고 나올 만한 상처나 절재선은 없었고 등판이 깃털로 뒤덮여 있지도 않았다. 그들의 날개가 어디에 감추어져 있다가 솟아 나오는지, 모든 것을 인과 논리로 분석하려는 도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의문을 품고 때론 뜯어보고 싶다는 폭력적인 열망마저 품게 되는 게 큰 무리도 아니겠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은 그것의 실체를 파악해야만 사라진다.

익인들의 날개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엔 도시인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들이 날고자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그들을 날개 했다.

도시인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익인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것을 항의하러 간 익인은 실종되었다.

도시를 관장하는 시행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짚이는 자는 있었다.

도시의 무력은 익인들의 평화를 깨기 위해 행진할까?

자신들의 잘못을 무력으로 입막음할까?

시행의 동생을 납치한 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도시인은 무엇을 하게 될까?

 

 

베푸는 겁니다. 무엇이든 나눠 주는 거지요. 자기가 가진 거라면 하다못해 한 줌의 체온이라도 말입니다. 조각내서 나눠 줄 수 없으니 그 순간 눈앞에 있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마음의 전부를 주는 것, 그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존재를 이렇게 온 마음으로 대하는 종족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까?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이토록 다정한 종족을 이야기 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들이 가진 치유의 능력 또한 생명을 살리는 데 있어 자신들의 온 힘을 나눠주는 것이기에 그래서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런 그들에게 가해지는 도시인들의 욕심이 점점 부풀어 올라 멸종해가는 그들을 일망타진할 것만 같아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책장을 넘겨야 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언가는 옳고 바람직하거나 다른 것은 그릇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아.

 

 

 

 

이 이야기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 문장이다.

다름을 올바르게 정의한 것.

그리고 그것을 따르도록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진 자의 마음가짐.

그래서 이 이야기를 손에서 놓고도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나 보다.

 

다른 것과의 공존.

그것을 이해하는 힘 때문에...

 

 

그 어떤 새도 영원히 허공에서만 살 수 없고 언젠가 땅에 두 발을 디디고 내려앉아야 한다면, 네가 그의 유일한 영토이니까.

 

 

 

사랑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도 되는 건가요?

날개를 접을 수 있는 유일한 영토.

나는 누군가의 진정한 영토일까?

아님 나는 내가 안착할 수 있는 진정한 영토에 발을 디디고 선 게 맞나...

 

 

 

한군데 정박하지 않고 앉은 자리를 끊임없이 박차고 떠나는 거야말로 날개를 가진 자의 운명 아닐까.

 

 

 

그 운명을 이해하는 자는 날개가 없어도 그 날갯짓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

 

이야기 곳곳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다름의 이해와

공존의 이해와

사랑의 이해와

기다림의 이해였다.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잔인하고 잔혹하고 숨 가쁜 이야기에 숨 막혀하던 마음에

오랜만에 단비를 뿌려주고 나니 마음이 한층 유해진 기분이다.

 

구병모 특유의 문체는

마치 무성영화를 틀어 놓고 변사가 그 내용을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다.

우스꽝스러운 목소리가 아닌

감성 풍부한 목소리로 익인과 도시인의 상반된 모습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거리는 모습을 설명해주어서

듣는 이들의 가슴에 온화한 기분을 선사해주는 느낌이다.

 

날개를 가진 자도

날개를 갖지 못한 자도

모두 날 수 있는 이야기.

 

버드 스트라이크.

 

또 하나의 완전한 꿈이 완성된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