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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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궁의 벽 안은 비어 있고 복도는 미로였다. 그건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이 숨은 장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것들을 파헤칠 것이다. 아주 낱낱이.



<십만왕국> 제목에서 아주 방대한 이야기의 서사가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데뷔작이기에 뭔가 아쉬운 점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나는 이 경탄스러운 이야기가 그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처음부터 이렇게 완벽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이 이야기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

* 신들의 전쟁

대혼돈에서 태어난 나하도스, 어둠의 군주는 억겁의 세월을 홀로 존재했다. 그러다 그에게 동생 이템파스 광명의 신이 생겼다. 둘은 서로의 반대 영역으로 견제하고, 싸웠다. 그러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됐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형제이자 연인인 둘 사이에 대지의 여신 에네파가 끼어들었다. 에네파가 성장하면서 그녀는 이템파스의 영역을 조금씩 보이지 않게 건드리며 변화를 추구했다. 나하도스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이었지만 이템파스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둘이었던 사랑은 셋으로 변했고, 나하도스와 에네파는 뜻을 함께 했다.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이템파스는 에네파를 죽인다.

그로 인해 신들의 전쟁이 발발하고 승리를 거머쥔 이템파스는 나하도스와 그의 자식들을 자신의 피조물인 아라메리에게 복종 시켰다.

인간의 노예가 된 신이라니!!!



* 예이네

아라메리의 후계자였던 엄마는 한때는 전사의 나라였으나 신들의 전쟁 이후 가장 한미한 종족이 되어버린 다르의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예이네는 엄마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 테카르타에게 부름을 받고 하늘왕궁에 도착한다.

후계자로 인정받고 승계식을 치러야 하지만 예이네는 자신이 절대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쓰임은 따로 있으니까...

그러나 예이네가 하늘궁전에 온 목적은 따로 있다. 바로 엄마를 살해한 살인자를 찾기 위함이다.

예이네는 하늘궁정에 도착하자마자 괴물의 습격을 받지만 어린아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렇게 예이네는 노예가 된 신들과 만나게 된다.





때때로 나는 내 육신에 담긴 영혼보다 내 핏줄에 흐르는 피가 더 무섭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소녀 예이네.

그녀의 몸에 깃든 영혼의 무게와 엄마의 살인범을 찾겠다는 의지와 그녀를 노리는 다른 후계자들과 그녀를 이용해 자신들의 자유를 찾으려는 신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거기에 더해서 어둠의 군주 나하도스와 사랑에 빠지는 예이네의 욕망은 이 이야기를 로맨스로 만들어 버린다.

어쩜 이리도 어색한 곳 없는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신과 인간의 사랑과 복수와 질투와 파괴의 이야기를.

3부작의 1편을 읽었을 뿐인데 이미 하나의 시대를 마감한 느낌이다.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난 예이네.

전세가 역전된 이템파스가 겪을 앞으로의 고난.

자유를 얻은 나하도스와 그의 자식들의 앞날에 무엇이 있을까?

십만왕국에서 무너진 왕국으로 그리고 신들의 왕국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실타래는 전혀 예측 불허다.

신들의 능력과 그 신들을 노예로 삼은 높은 피의 인간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신들을 착취하는 모습도, 신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을 고문하는 데 사용하는 필경사의 마법도, 같은 혈족이지만 높은 피의 상위 1%들이 누리는 천상의 권위 밑에서 낮은 피의 혈족들이 하인으로 부려지는 이 십만왕국의 모습은 지금 이 현실과 다를 것이 없다.

모든 부와 기술을 거머쥔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 가는 이 세계에서 점점 '신'이 되어가는 인공지능의 발달은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그 순간 무너진 왕국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필멸자들의 운명이 어떠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렇게 신들의 왕국이 되어가는 미래가 인간에게는 어떻게 작용할까?

"변화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난 나하도스가 말했다. 데카르타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물렸지만 나하도스의 눈빛에 적개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변화해야 할 것이다. 아라메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아무런 변화도 동요도 없는 세상을 유지했다.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었지. 앞으로는 피를 흘려서라도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준엄한 나하도스의 말이 앞으로 가졌던 모든 것을 잃을 지경에 놓인 아라메리족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오랫동안 누렸던 권력을 내려놓고 다른 민족과 함께 상생하는 삶을 마련할까? 아니면 전쟁이라는 무기를 들고 끝없는 반목과 대립을 이어나갈까?

앞의 몇 페이지를 읽으며 복잡한 이야기라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몇 페이지의 복잡함은 이야기의 복잡함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부족함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주 새로운 세상을 정말 판타스틱하게 펼쳐낸 N. K. 제미신의 필력에 계속 감탄하며 읽었다.

판타지를 좋아하지만 이렇다 할 판타지 소설이 없어서 아쉬웠던 중에 <십만왕국>을 만났다.

내겐 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하여 새로이 생명을 부여한 <십만왕국>

드라마화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 이야기를 상상이 아니라 이미지로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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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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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추측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싹쓸이는 경찰이 분명해요. 저는 그것밖에 몰라요."



어쩌다 킬러가 된 스릴러 작가 핀레이 도너번. 그녀에겐 비밀을 감추고 베이비시터로 자리 잡은 베로라는 파트너가 있습니다.

핀레이가 뜻하지 않게 시체를 데리고(?) 집에 온 날 베로는 핀과 함께 시체를 처리하면서 그녀에게 킬러가 되기를 종용합니다.

그 대가로 받는 돈에 대한 지분도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는 거 보면 베로도 분명 범상치 않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당신의 비밀을 묻어드립니다>는 어쩌다 킬러 시리즈 세 번째 이야깁니다.

아주 빠르게 출간되는 시리즈 환영입니다~

어둠의 경로에서 살인 의뢰를 받아 감쪽같이 해치우는 일명 "싹쓸이"

전편에서 핀레이의 남편을 죽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가 핀레이와 맞짱 떴던 암살자죠.

감옥에 있는 마피아 보스 펠릭스는 핀레이에게 씩쓸이를 싹.쓸.이. 하라고 명령합니다.

마피아 보스에게 약점 잡힌 핀레이와 알 수 없는 자들에게 쫓기는 베로는 싹쓸이가 경찰이라는 제보를 믿고 그를 찾아 시민을 위한 경찰 아카데미에 참가합니다.





꽤 그럴듯했다. 싹쓸이가 경찰이라면 그를 찾는 최선의 방법은 함께 일하는 형사들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내 언니 조지아는 강력볌죄팀 소속이지만 마약조직범죄 수사팀 형사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싹쓸이의 일에 걸림돌이 될' 사건을 맡을 형사라면 분명 마약조직범죄팀일 것이다.

문제는 닉이 그 팀 소속이라는 사실이었다.





언니는 강력계 형사이고 핀레이와 썸 타는 닉은 마약조직범죄 형사.

시민 경찰 아카데미에 참가한 핀레이와 베로는 싹쓸이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요?

전편들에 비해 액션신(?) 많은 이번 편.

과연 누가 싹쓸일 것이냐를 두고 내심 의심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랬다면 완벽한 반전이라고 혼자 킥킥거리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작가님에게 뒤통수 맞았음!

게다가 밉상인 전남편 스티븐!!!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준 핀레이에게 고마워서 착해진 줄 알았더니!

스티븐 너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당한 보수를 청구했을 뿐이야. 일감도 신중하게 골랐고. 죄질로 말할 것 같으면 나보다 나쁜 사람들이었지. 죽어도 싼 인간들."



싹쓸이의 이 말인즉슨 그가 죽이려 했던 핀레이의 전남편 스티븐은 '죽어 마땅한 인간?'

도대체 뭐로 죽어 마땅한 인간이 된 거니 스티븐?

아, 이 양파 같은 이야기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베로도 스티븐도 핀레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도대체 정직한 사람이 없는데 설마 나중에 닉도 정직하지 않으면 어쩌지?

온갖 생각에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안타까웠는데 그 와중에 마약왕 펠릭스가 감옥 탈출을~~~

겨우 잡은 싹쓸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아카데미 옥상에서 통구이가 될 뻔했던 핀레이와 경찰들~

이제 핀레이는 아이들의 아빠가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네요.

근데 지금 아이들은 아빠랑 있어~ 어떡해!!

그러나.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돈을 안 준대요.

핀레이가 쓴 소설이 너무 밋밋하다고.

킬러와 경찰의 찐한 로맨스가 필요하답니다.

핀레이는 베로와 조지아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디저트(?) 먹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요?

과연 핀레이는 디저트를 먹게 될까요?

빨리 먹고 뜨거운 장면을 쏟아부어야 책도 출간되고 돈도 받을 텐데 말이죠~

이중 삼중 사중으로 밀려드는 사건들이 한순간도 쉬지 못하게 하는 어쩌다 킬러 시리즈~

핀레이와 베로. 도대체 이분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쭉~~~ 지켜보고 싶습니다~

재밌는 스릴러가 읽고 싶은 분들

남들한테 말 못 할 비밀을 가지고 계신 분들

대리 모험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다음 편 이야기는 왠지 동네를 떠나서 더 넓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될 거 같아서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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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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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님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멀쩡한 모습으로는요! 도대체가, 벌집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겁니까?"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내란으로 인해 뒤숭숭한 정국이 <얼음 속의 여인>의 시작이다.

슈르즈베리 인근의 우스터시에서 온 피난민들이 슈르즈베리로 몰려오고 그 와중에 우스터의 귀족 자제인 두 남매가 실종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두 남매의 부모는 세상을 뜨고 그들의 보호자는 모드 황후 편이다. 수도사들은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자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그만 그들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18살의 에르미나 위고냉과 13살의 이브 위고냉.

두 사람을 찾기 위해 휴가 나서고, 브롬필드 수도원의 수사가 도적떼들에게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에 캐드펠은 부상자를 보살피러 달려간다.



고집스러운 18살 에르미나의 사랑의 도피 행각으로 인해 동생 이브와 그들을 돌봐주던 힐라리아 수녀는 외딴곳에 남겨졌고, 누나를 찾으러 나선 이브는 길을 잃고 헤매다 친절한 농부의 도움으로 캐드펠 수사를 만나 보호를 받지만 힐라리아 수녀는 얼음 속에 갇힌 채 죽음을 맞는다.

전편들 보다 조금 복잡한 상황으로 전개되는 <얼음 속의 여인>은 내란으로 정신없는 틈을 타 약탈을 일삼는 도적떼들의 이야기가 함께 이어져 그 어느 때보다 독자를 긴장 속에 빠지게 한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민가를 털어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불까지 질러 모든 것을 불태우는 도적떼 무리는 가뜩이나 내란으로 인해 피난을 온 사람들로 정신없는 도시를 더 정신없게 만든다.

거기에 위고냉 남매를 데려오기 위해 모드 황후 편에 선 외숙부가 몰래 보낸 자는 자칫 잡히면 첩자로 간주되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캐드펠 수사는 이브를 보살피며 사경을 헤매는 엘리어스 수도사를 간호한다.

헤어진 남매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에 눈먼 에르미나는 무사할까?

힐라리아 수녀는 누가 죽였을까?





13살 꼬마 이브 왜 이렇게 어른스럽고 용감하니?

에르미나 이제 세상을 좀 알겠니? 남자 보는 눈이 나아져서 다행이구나~

휴 베링어 득남을 축하해요~

캐드펠 수사님도 축하할 일이 있죠?



강간으로 시작되는 결혼. 일단 일이 벌어지면 대개의 가문에서는 흉한 소문과 불화를 초래하느니 차라리 둘을 결혼시키는 편이 낫겠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먼저 여자를 취한 뒤 결혼에 이르는 일은 실제로 흔히 벌이지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게 정말 치를 떨게 만든다.

가해자와 평생을 살아야 하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우리나라에도 그런 경우가 많았을 텐데 다들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살아냈을까?

<얼음 속의 여인>은 다양한 시대적 문제점들을 들춰냈다.

왕권 다툼으로 인한 정세 불안과 혹독한 추위에 오갈 데 없는 백성들을 약탈하며 살인을 벌이는 도적 떼와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게 되고 그것을 노리는 인간들의 파렴치한 행태에서 용케 빠져나오지만 그로 인한 희생이 참혹했다는 사실.

그리고 캐드펠의 과거가 그의 눈앞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유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친근한 호기심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나긴 침묵도 불편하지 않았고, 대화를 나눌 땐 두 사람 모두 나직하고 평화로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마치 평생 서로를 알고 지내온 것만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 대목을 읽는데 찌리리 촉이 왔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캐드펠의 과거의 유산이 이렇게 나타날 줄 상상도 못했네!

어딘가에서 꼭 다시 만날 것을 예감하면서 이번 <얼음 속의 여인>은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미리 맛보게 해주었다.

작품 속 혹독한 겨울은 날씨 자체도 혹독했지만 정세도 혹독해서 아직 덜 온 우리의 겨울이 혹독할 거 처럼 느껴져 씁쓸했다.

휴 베링어처럼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잘'하는 관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5권은 단순미에서 오는 재미와 감동이 있었는데

6편부터는 복잡미가 가미해서 뭔가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오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이번 편에서는 캐드펠 수사가 사랑의 작대기 노릇은 못했지만 더 커다란 인연을 만났으니 독자로서 충분히 즐거웠다~

앞으로 캐드펠 수사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그것이 더 궁금해지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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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인문학 30day 고윤(페이서스코리아)의 첫 생각 시리즈 3부작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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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지친 마음을 챙기며 무너지기 전에 삶을 돌보길 바란다.



첫 생각 시리즈 3부작의 세 번째 이야기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제목부터 나를 한 대 치는 거 같았다.

제목을 자꾸 되뇌기만 해도 내가 어디가 잘 못 되어가는 중인지 인식이 되는 게 신기했다.

아마도 무의식의 나는 알고 있는 걸 현실의 나가 자꾸 회피했나 보다.

이 제목만으로 내 잘못을 내가 깨닫게 되는 이상한 경험 때문에 이 책이 굉장히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다양한 증후군으로 표현되는 증상들은 현대인이면 하나씩 혹은 서너 개쯤 지니고 있는 증상이다.

나 역시 지나왔던 길에서 겪어낸 증상들도 있었고, 앞으로 걸릴지도 모를 증상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난 게 반가웠다.

지나온 증후군은 그때의 나를 이해하는데 필요했고, 걸릴지도 모를 증후군들을 살피며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

짧은 내용이지만 그래서 더 각인이 되는 거 같다.

좋은 얘기도 길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저 그런 얘기가 되니까.

한 꼭지의 이야기 끝에는 유명인들이 남긴 말이 담겼다.

그 챕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서너 줄로 요약한 명언들이 또다시 무릎을 치게 한다.

주목받고 싶지만 과도한 관심은 피곤했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내가 인정하는 건 인색했던 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지만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너덜 해진 마음이 싫어서 칩거를 택했던 나.

몇 백 개의 전화번호를 다 지워내고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전화번호만 남긴 나.

철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나.

한때 내가 와이트 섬리딩 증후군에 걸렸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걸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 많다.

어른은 나이 먹으면 저절로 되는 게 아닌데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책이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일깨워 주는 거 같다.

그래서 전작들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여름 어느 날

아끼는 동생이 책 한 권을 샀다며 내게 보여줬다.

그 책이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였다.

읽어보지 못한 책이지만 존재감은 알았던 책이었다.

"왠지 이 책이 끌리더라고요. 서점에서 한 꼭지 읽어봤는데 사야겠다 싶어서 샀어요."

그 아이가 책을 샀을 때 그 마음을 이제야 제대로 알 거 같다.

매일 한 꼭지씩 읽으며 내 마음을 짚어보는 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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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의 갈림길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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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를 죽이지 않았어요. 변호사님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건 그거예요."



전작 <변론의 법칙>에서 누명을 쓰고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했던 미키 할러는 자신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회생의 갈림길>은 미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변호해서 승리를 거머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승리는 수많은 죄수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고, 그들의 억울한 사연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의 콜라보로 엄청난 기대를 갖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내 마음에 해리의 모습이 칼날처럼 박혀온다.

아니, 미키 할러 시리즈라서 그런 건가? 보슈가 왜 이렇게 나약하게 그려졌지? 병들고, 늙고, 경찰도 아닌 해리 보슈. 그리고 '형'이란 호칭을 쓰지만 뭔가 지시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멘트들... 내가 보슈를 할러 보다 몇 단계 위에 두었나 보다 ㅠ.ㅠ

어쨌든 할러는 보슈에게 억울하다는 사연들을 살펴보고 거기서 정말 억울할 거 같은 사연을 고르는 역할을 맡긴다.

오랫동안 살인사건 전담 경찰이었던 보슈의 촉을 믿는다는 뜻이었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 보슈는 하나의 편지에서 촉이 발동한다.

보안관 부관이었던 전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인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는 루신더 샌즈의 사연은 미키의 구미를 당겼고, 그녀를 만나 본 이후에 그들은 이 사건을 맡기로 한다.





나는 교도소 문밖에 서서 산 자들의 땅으로 돌아오는 내 의뢰인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었다. 루신더 샌즈가 그런 의뢰인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연료탱크를 가득 채웠고 부활의 도로를 다시 달려갈 준비가 돼 있었다.




인신청구 소송을 하고 루신더 샌즈 사건을 연방 법원으로 가져간 미키 할러는 깐깐한 판사와 사사건건 입에 거품 물고 달려드는 검사를 맞아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보슈와 할러의 촉이 맞았다.

이 루신더 샌즈 사건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을 알아내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야만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를 거론하며 법은 루신더 샌즈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사면초가에 빠진 미키 할러.

어째 미키의 특기이자 자랑거리인 트릭이 없어서 서운하다 했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화려하게 등장할 줄이야~





보슈는 흐르는 세월이 과거에는 옳았던 일을 현재에는 그렇지 않은 일로 바꾸어 놓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40년 넘게 살인사건 전담 경찰로 지냈던 보슈와 물불 안 가리고 의뢰를 맡아 자신의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했던 할러.

그들은 기존의 일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서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낀다.

살인자를 잡아넣는데 초점을 맞췄던 전직 형사와 어떤 의뢰인이 되었던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나갈 길을 찾았던 변호사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역량을 쏟아붓는다.

그래서 앞으로 이 두 사람이 만들어 갈 이야기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최고의 베테랑들이 모여 가장 어려운 숙제를 풀어내는 이야기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계속 긴장모드를 이어가게 한다.

그리고 아무리 솜씨 좋게 사건을 은폐하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어도 누군가는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을 위해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도 치가 떨리지만, 직업윤리를 져버리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버젓이 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치가 떨린다.

얼마나 많은 이런 비리들이 약한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웠을까?

악명 높은 변호사 미키 할러는 이제 누명을 쓴 죄수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해리 보슈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지만 연륜으로 버티는 중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서로를 모르고 살았던 형제가 이제라도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모습은 오랜 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보고 싶다는 내 마음은 욕심일까?

욕심이라 해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억울한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미키 할러.

미키 할러가 그동안 쌓아 올린 악명은 아마도 이런 수호자가 되기 위한 가시밭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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