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소녀 라임 청소년 문학 38
킴벌리 브루베이커 브래들리 지음, 이계순 옮김 / 라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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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너는 충분히 배울 수 있어. 너를 잘 모르는 사람이 한 말에 귀 기울이지 마. 네가 아는 것, 그러니까 너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장애를 가진 발 때문에 엄마에게 모진 학대를 당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학교도 다니지 않는 에이다.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엄마와 동생 제이미와 함께 살지만 엄마는 에이다를 쓸모없는 년이라고 부르며 걸핏하면 때리고, 싱크대에 가둬둔다.

글은 배운 적도 없고,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게 전부인 에이다의 삶.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모르고 살고 있는 에이다에게도 바깥에서 불어오는 전쟁의 바람은 피할 수 없다.

독일군의 폭격에 대비해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제이미가 학교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한 날.

엄마 몰래 조금씩 걷는 연습을 했던 에이다는 제이미와 함께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한다.

낯선 곳에 도착한 두 남매. 그러나 그 어떤 가정에서도 에이다와 제이미를 선택하지 않는다.

관리자 토튼 부인은 두 아이이들을 데리고 스미스씨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두 아이를 스미스씨에게 맡긴다.

그날로부터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스미스씨는 에이다의 발이 내반족이라는 걸 알아보고 병원에 데려간다.

의사는 어릴 때 치료했었더라면 고칠 수 있었을 거라 말하고 완치는 안되겠지만 수술을 하면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목발을 짚고 조금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에이다.

아이들을 보살피지 못한다고 하던 스미스씨는 에이다와 제이미를 깨끗하게 씻기고, 옷을 사주었으며 음식도 배불리 먹인다.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스미스씨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낯선 곳으로 피난 온 아이들과 자신의 고통 속에 갇혀 외부와 차단하고 혼자 고립되어 고통을 되씹고 사는 수잔이 만남으로서 작은 울림이 생긴다.

옥스퍼드 대를 졸업한 수잔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취직이 어렵게 되고, 결혼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가족과도 소원해지고, 의지가 되었던 친구가 죽자 삶의 의지를 잃은 채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 보살핌을 제대로 받은 적 없는 외로운 두 아이들이 떠 맡겨졌다.

수잔은 엄마와는 다른 시선으로 에이다를 보고, 이끌어주고,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에이다는 이 많은 것들을 누리는 게 두렵다.

어차피 다시 되돌아가야 할 곳엔 이런 것들이 없으니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어쩐지 크리스마스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함께 모인다, 행복하다, 축하한다는 이야기들에 나는 위협을 느꼈다. 내가 그런 것들에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이모는 내가 행복하길 바랐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스미스씨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수잔은 자기를 이모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곳 생활에 적응되면 될수록 에이다는 점점 두려워진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에이다를 보며 가슴이 저릿저릿 해진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누군가가 베푸는 작은 친절도 받아들일 줄 모른다.

평범한 것들도 에이다에게는 특별한 것이다.

이런 것들에 익숙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너무 많은 걸 가졌다. 그래서 몹시 슬펐다.

 

 

에이다의 발을 수술하기 위해 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수잔은 에이다의 엄마에게 편지를 쓰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다 어느 날 반송되어 온 편지를 본다. 이사 갔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실망한 아이들에게 수잔은 전쟁 때문에 잠시 거처를 옮긴 것이니 곧 연락이 올 거라 말한다.

전쟁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마을로 함께 피난 왔던 아이들은 부모들이 와서 거의 다 데리고 갔다.

에이다와 제이미만 빼고.

에이다는 수잔과 함께 하면서 글을 배우고, 조랑말을 키우고, 목발을 짚고 거리를 걷는다.

엄마가 알면 난리 날 일이다.

엄마 때문에 사람들은 에이다가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해왔다.

장애가 발이 아니라 머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제 발은 머리랑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이제 에이다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고 감춰야 할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받았던 학대는 가끔 그녀 마음속에서 뛰쳐나와 통제 불능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수잔은 그녀를 꼭 끌어안고 달래준다.

에이다에 의해 옷이 찢기고, 할큄을 당해도 놓지 않고 그녀를 안고 달래준다.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수잔에게서 받은 에이다에겐 그것이 두려우면서도 갖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전쟁이 코앞에 닥치고 많은 부상병들이 마을로 실려 온 날 에이다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뉴스나 영화관에서 보는 영상에는 이런 장면들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전쟁의 참상을 직접 확인한 에이다에겐 그날이 그녀의 전쟁에서 살아낼 방법을 알려준 계기가 된다.

 

 

마침내 내가  싸워야 하는 대상과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얼마나 막강한 싸움꾼이 되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대가로 부모들이 매주 19실링을 내야 한다는 통지문을 받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엄마를 따라 다시 지옥으로 되돌아온 에이다.

엄마는 다시 손찌검을 하고, 그녀에게 외출을 불허한다.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다지만 자신의 아이를 이렇게나 방치하는 부모가 있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했지만

세상에 널려있는 삶 중엔 이해 못 할 삶도 있는 법이다.

가족이라고 무조건 아끼고 사랑하고 그런 거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가족이라서 더 아프고, 더 상처를 주고, 더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에이다와 제이미. 그리고 수잔.

이 세 사람은 고립된 삶을 살아가다 우연한 기회에 같이 살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돌보며 가족보다 더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피를 나눈 사람들보다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더 가족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 맨발의 소녀.

요즘 의도치 않게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는데 다행히 살벌한 공포보다는 그 상황에서도 사랑과 희망과 의지를 불태우는 이야기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될 수 있다.

에이다에겐 수잔이 엄마를 대신할 테고

수잔에겐 에이다가 곁에 있어줄 테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서로 든든하게 살아갈 것이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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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 : 마크 트웨인 단편집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3
마크 트웨인 지음, 신혜연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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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대를 살았던 작가를 알아가는 시간이 이렇게 유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허클베리핀과 톰소여의 작가로만 기억했던

마크 트웨인.

 

그에게 넘치도록 있었던 재치와 블랙 유머가

21세기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니

사후 100년 동안 저작권을 인정해야 한다던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여덟 편의 산문과 두 편의 단편이 실린 최면술사.

난 단편보다는 산문들이 좋았다.

 

책 제목과 같은 최면술사.

어린 소년의 눈에 띄고 싶어 하는 갈망이 거짓을 인내하게 만들었으나 결국 그 거짓은 진실이 되어 오랜 시간이 흘러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거짓이 되었다.

 

잘 꾸며진 거짓이 진실이 되어 사람들 마음에 새겨지면 진실을 눈앞에서 흔들어도 결코 인정하지 않게 된다.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세월을 부정 당하기 싫은 인간 내면을 잘 보여준 최면술사.

 


거짓 위에 세워진 영광이란 머지않아 상당히 불쾌한 마음의 짐으로 바뀌게 마련이에요.

 

사람들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그 거짓을 다시 되돌리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


 

감기 치료법을 읽다 보면 이토록 무모할 수도 있을까? 싶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벌지 못하는 형 이야기는 왜 그리 답답하고 짠한지.

 

딸 수지의 일기에 적힌 마크 트웨인은 괴짜 그 자체이다.

 
 

아빠, 사탄 좀 혼내주세요. 저 밖 온실에 있는데 계속 거기서 움직이질 않아요. 범죄가 아래층에서 울고 있는데 말이에요!

 

어미 고양이 이름을 사탄으로 지어놓고

새끼 고양이 이름을 범죄로 지어 놓으면

저런 상황이 발생하는 법이다.


 

아빠는 어디에든 유머가 숨어 있지 않은 글은 좀처럼 쓰지 않으신다. 앞으로도 그러실 것 같다.

 

 

이토록 정확하게 자신을 알던 수지가 요절하고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수지가 살아있었다면 아빠를 능가하는 작가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요즘 4달러가 유행이지만

마크 트웨인은 3달러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정말 교묘하게도 소설이라고 써놓다니

마크 트웨인의 재치의 끝은 어디인가!

 

저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죽어서까지 붙어다닐 엄청난 명성 두개를 얻었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선생님의 책을 거절했다는 것, 그리고 그 덕분에 유일무이한 19세기 최고의 멍청이 후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석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많지 않다.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에 마크 트웨인을 넣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거 같다.

 

책 소개를 할 때

마크 트웨인을 웃음과 모험으로 기억한다고 썼다.

책을 읽고 나니 그를 다르게 기억하고 싶어졌다.

 

마크 트웨인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해학과 선견지명을 가진 멋스러운 작가이다.

 

진정한 글멋을 아는 작가

마크 트웨인.

 

그를 알아가는 시간 동안 모처럼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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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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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자욱한 안개에 잠겨 있는 숲길을 더듬어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화사한 햇살 아래 숲 우듬지 아래로 느리게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를 걷는 것.

제발트를 읽는다는 건

그런 것.

 

 

 

 


사자(死者)들은 이렇게 되돌아온다. 때로는 칠십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뒤에도 얼음에서 빠져나와, 반들반들해진 한줌의 뼛조각과 징이 박힌 신발 한켤레로 빙퇴석 끝에 누워 있는 것이다.

 

 

 

 

 

창비에서 제발트의 글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이민자들과 토성의 고리.

내가 선택한 건 이민자들이다.

 

4명의 이민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단편처럼 에세이처럼 사실처럼 이야기처럼 담겨있다.

사진들이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쩜 그것조차도 제발트의 숨겨놓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4명의 이민자들 중 3명은 유대인이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다른 나라로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들 마음속에서 그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같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타국에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고통은 전혀 짐작도 못할 일이다.

두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혼자 남았다는 사실은 끝끝내 그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거 같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후두가 아니라 가슴 언저리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파울이라는 사람은 함석을 비롯한 여러가지 금속부품으로 조립해놓은 기계이며, 어느 한군데가 조금만 고장나도 완전히 궤도에서 이탈해버리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독일인들의 정신적 빈곤과 기억상실,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린 그들의 교묘함으로 인해 내 머리와 신경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또렷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페르버의 고향을 찾아간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한다.

과거를 짚어 가는 여행.

그곳에서 나는 독일인들의 망각을 보게 된다.

수많은 삶을 파괴한 그들은 정작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나.라는 화자에 대해 아무것도 나와 있는 건 없지만 나는 제발트로 짐작하고 읽어갔다.

읽어가면서 이것이 실화라고 단정 지었다.

진짜 살아있었던 사람들을 제발트가 만나고 기록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쩜 이 모두는 제발트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자 작가로서 하나의 사실을 눈여겨보고 그것에서 사실을 끄집어 내어 기록 형식으로 써 내려간 그 어떤 것이 바로 이 이민자들이다.

 

제발트 역시 이민자였으니까.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그는 나의 어머니의 외삼촌이었다.

일찍 이민을 가서 유대인의 집사로 일했다.

그는 독일인이었다.

그는 타국에서 자신이 모시고 있던 집안이 몰락하는 걸 지켜본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말년을 전기충격요법을 받으며 그곳에서 죽는다.

그의 기록은 세세하나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남겨 놓지 않았다.

 

제발트의 글은

가랑비 같다.

언제 젖는지도 모르게 스며들어 적시는.

 

글을 읽는 동안 산책을 한 느낌이다.

아주 먼 곳까지

제발트의 묘사의 힘이 나를 그곳에 있게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내내 흑백영화 한 편이 상영되었다.

 

읽어 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세계가 있었다.

이제 그 세계 안으로 들어선 나는

다시금 그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안도한다.

계속 꿈속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비가 내리는 동안

제발트와 작별을 했다.

마치 비가 일부러 내려주었던 거 같다.

 

그저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조금 다른 시선이 생겼다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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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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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요시도 자기가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 충동적으로 노파를 죽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나에겐 그런 형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게 바로 그 피다.

 

 

 

매달 벚꽃 모양의 파란 소인이 찍힌 편지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들춰낸다.

나오키를 위한 일이었지만

결국 나오키를 껄끄러운 존재로 만들어 버린 일.

사람들의 눈초리로부터 벗어나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살인자의 가족.

언제까지 이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까?

 

 

나오키는 지금까지 피해자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이 저지른 짓에 충격을 받아, 형과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이런 일을 당했으니 나는 얼마나 불행한가. 한탄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편지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때문에 행복한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었다.

2006년 이후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나는 나미야 잡화점급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 어떤 행복도 주지 않았다.

 

아주 많은 생각할 거리만 남겨주었다.

 

알다시피 게이고는 범죄소설의 대가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범죄를 만들어 내고, 범인을 창조한 그이기에  범죄자 가족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폐쇄적인 일본 문화에서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나오키는 홀로 남아 그 모진 시선들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하지만 매번 그가 한시름 놨다고 생각할 때쯤 형의 일이 항상 그의 발목을 잡는다.

우연이었든, 고의였든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난 후 태도에 변화가 온다.

그것이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나오키에겐. 

그것이 오로지 자신에게 한했을 때는 어떻게든 견뎌냈지만 가족이 생긴 나오키에겐 정말 피해 가고 싶은 일이었다.

 

 

 


뭔가를 선택하는 대신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는 거야. 인생이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 형을 포기하기로 한 나오키.

그런 그의 선택을 잘 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편지 좀 그만 보내면 좋을 텐데. 나오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답장을 안 하는 게 자기를 피하기 때문이라는 걸 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자기가 보내는 편지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에 동생을 옳아매는 쇠사슬이라는 걸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나오키의 선택 앞에서 그를 매정하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츠요시의 편지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죄는 밉지만, 미워해야 할 사람이 없었기에 더 안타까웠던 이야기였다.

 

생각할 문제들을 툭~ 던져 놓았지만 게이고는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그건 아무리 그라도 결론을 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범죄의 희생자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편지.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오키가 내 주위에 있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하는 사람일까?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어제 보다 더한 범죄가 판을 치는 시간대에 살고 있다.

평등하지만 불평등하고

불합리하지만 합리적이고

공평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는 시간대에서 나는 오늘의 피해자이지만 내일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환경에 살고 있음이다.

그래서 옛말 그른 것이 없다는 이치를 또 한 번 깨닫는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는.

 

노래를 틀지 않았음에도 내 머릿속에서 이매진이 무한 재생되고 있다.

편지와 함께 봄날이 간다.

산다는 건 어떠한 결론도 미리 낼 수 없음을 이렇게  또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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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여왕 백 번째 여왕 시리즈 4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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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자에게, 심지어 신성 속에서도 하나의 신에게 종속되어야 하는가? 그래야지만 내 가치가 실현되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해 그림자처럼 섬기는 것이 내 운명인가?딸, 자매, 아내..., 언제쯤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내 삶, 내 운명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백 번째 여왕으로 시작된 여왕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무릇 시리즈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 권.

마지막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되느냐가 시리즈의 결정권을 갖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약한 소녀에서 전사의 여왕이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끝낸 칼린다.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총망라되면서 시리즈의 백미는 물처럼 흘러간다.

 

 

 

 

 

 

악마 쿠르와의 싸움에서 오른손을 잃은 칼린다는 데븐마저 쿠르의 손에 잃고 만다.

아니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븐은 저승에 갇혀서 밤마다 그녀를 찾아온다.

칼린다와 아스윈은 데븐을 저승에서 데려오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인간세계로 가는 길을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곳, 이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매 순간 조금씩 먹어 치우고 있다.

 

 

칼린다는 그런 데븐을 위해 저승으로 그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저승을 통과하려면 그녀에겐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녀는 불의 신 엔릴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과연 신은 칼린다의 기도를 들어줄까?

 

그동안 수많은 시련을 거친 칼린다에게 닥친 마지막 시련은 저승에서의 사투다.

데븐을 찾아가는 저승으로의 여정에서 그동안의 시리즈에서 알게 모르게 깔아두었던 복선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 이야기의 정점으로 치닫는다.

 

수메르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여왕 시리즈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들과 닮은 거 같으면서 조금 다르다.

신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로 묘한 책략을 썼다.

신도 갖지 못하는 게 있다니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자 인간의 의지이다.

 

칼린다가 반신반인인 부타로 탄생한 이유가 바로 이 마지막권에 들어있다.

자신의 전생과 지금 생에서의 사랑 사이에 갈등하게 되는 칼린다는 무사히 저승을 통화해서 데븐을 데려올 수 있을까?

 


여자들은 자기 결정권이 필요하다.

 

증오하는 자신의 아버지와 모습이 똑같은 아스윈은 칼린다의 도움으로 반군을 물리치고 반히에 입성한다.

그는 아버지의 독재를 버리고 백성과 함께하는 새 세상을 꿈꾸지만 아버지 타렉이 뿌려놓은 불신의 불씨는 깊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꺼지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어 서로 보완하며 공생의 관계를 꿈꾸던 아스윈은 급기야 무능한 왕자로 낙인찍히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아스윈을 괴롭히는 로케쉬는 악마의 도움으로 아스윈을 몰아내고 궁궐을 차지한다.

사막에 버려진 아스윈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타렉은 여자들을 소유하고, 노에로 만들었다.

서열 토너먼트를 개최하여 자신의 처첩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었고, 수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서슴지 않았다.

반신반인인 부타들을 괴물로 만들어 보는 대로 처형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과 복수심을 심어놨다.

그의 아들 아스윈은 타렉의 잔재를 지우려 노력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에 스며든 두려움과 경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증오의 뿌리 깊은 마음은 사실 조작된 것이었다.

타렉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자, 신화를 자신에게 맞게 조작하고, 부타들을 괴물로 만들어 살육을 감행했다.

그런 폭군에게 길들여진 백성들은 아스윈의 유화정책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마치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는 거 같아 쓴웃음이 났다.

 

판타지 소설의 모든 묘미가 가득 들어있는 여왕 시리즈.

신화와 전설이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

여자가 곁가지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의지대로 나아가는 모습이 경이로운 이야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전생과 환생

저승과 이승

신과 인간

악마와 인간

죽음과 윤회

반신반인

 

이 모든 요소가 치열하게 잘 짜여져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지막 권이 백미라고 말한 데는 이 이야기를 읽지 않고는 이 시리즈를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고만고만한 판타지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도 이 여왕 시리즈의 매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불모지인 판타지 장르에서 당분간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기억될 여왕 시리즈.라고 말하고 싶다.

 

강인함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칼린다는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읽는 동안 내내 소녀감성이었다.

어른이 된 내게 잠시나마 소녀소녀 한 감성을 선사해준 여왕 시리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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