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엄마 디즈니의 악당들 5
세레나 발렌티노 지음, 김지혜 옮김 / 라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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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델은 두 언니와 죽음의 숲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걱정거리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이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싶었다.

그거면 되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서재에서 몰래 엄마의 책을 훔쳐 읽었다.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모르겠어? 그건 우리의 마법이기도 하다고! 엄마가 독차지하고 있는 거야! 그래, 설령 엄마가 영원히 산다고 쳐, 그리고 우리도 그렇다고 해보자. 그럼 끝도 없는 나날들을 뭘 하면서 보낼 건데?

둘째 프림로즈는 마법을 싫어했다.

죽음의 숲에서 세 자매와 영원히 살고 싶어 했다.

지금처럼 지내면 되지! 함께 죽음의 숲을 거닐면서 말이야. 다 함께, 영원히!

첫째 헤이즐은 고델과 프림로즈의 완충지대로 동생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큰언니였다.

고델! 넌 뭐가 목적이니? 네가 말한 대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야? 아니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야?

그럼에도 죽음의 여왕이자 세 자매의 어머니는 고델에게 자신의 마법을 물려주려 한다.

그래. 내가 떠나고 나면 네가 보호해야 해. 가장 중요한 의무야! 나처럼 오래도록 살 계획이라면 이 꽃, 라푼젤을 잘 간수해야 한다. 이건 과거의 치욕으로부터 너와 네 언니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야.

.

.

난 네 언니들을 사랑하지만, 너야말로 진정 내 딸이란다, 고델.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딸.

그들 가족에겐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마법의 의식을 치르는 동안 고델은 엄마의 힘의 원천인 라푼젤 꽃에 불을 지른다.

언니들을 헤치는 엄마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저 언니들과 함께 조용히 살아가고자 했을 뿐인데

라푼젤 꽃이 타들어가자 엄마는 재로 변해 버렸다.

마법도 전수받지 못하고, 엄마를 죽인 고델.

라푼젤 꽃도 다 타고 한 송이만 남았다.

언니들은 시름시름 앓고 언니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차도가 없다.

그때

세 마녀가 나타난다.

죽음의 숲에 걸려있는 마법을 뚫고 나타난 세 마녀.

그들은 진정 고델에게 도움을 주는 마녀들일까?

라푼젤의 가짜 엄마 고델의 이야기다.

고델이 어째서 라푼젤을 납치했는지 그 이유가 들어있다.

이 이야기에도 어김없이 세 자매 마녀들이 등장한다.

악당 시리즈에 감초처럼 등장할 모양이다.

모든 악을 뿌리고 다니는 이 세 자매의 이야기 또한 나쁜 뜻은 없었다.

다만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 노력들이 결국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고통을 주고 시련을 주는 게 절대적 문제라면 문제일 뿐.

라푼젤은 꽃 이름이었다.

영원과 젊음을 지켜주는 생명의 꽃.

고델이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주어지는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나쁜 일 같다.

고델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했다면 자신의 힘으로 언니들을 살려내고 가짜 엄마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을.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은 그 힘을 노리는 이들로 인해 시련을 겪으면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디즈니 악당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게 이 시리즈의 목표일까?

앞으로 나올 악당들은 좀 살았으면 좋겠네.

그래야 뭔가 밸런스가 맞을 거 같아서.

이 디즈니 악당 시리즈도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새로 태어나고 싶다.

디즈니 만화의 다양성을 보고 자라면 뭔가 달라진 어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시리즈가 말하는 바는 아마도 이런 거 아닐까.

누구든 악당이 될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어둠의 이면에도 한때는 밝음이 존재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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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티드 캔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1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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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1.

유명한 추리소설가 존 렉스맨은 사채업자 살인사건에 휘말려 수감된다.

그와 친분이 있는 경시청 경찰국장 티엑스가 나서서 무죄를 입증하지만 바로 그날 렉스맨은 탈출하여 자취를 감춘다.

티엑스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서 잡지 못하는 레밍턴 카라.

그가 렉스맨의 탈출에 관여했다고 생각하고 추궁하지만 그는 교묘하게 회피하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고위직들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을 무렵 카라가 그의 밀실에서 살해된다.

 

고전 추리물.

현대물에 찌든 내 감성에 고전 추리물이 싱겁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기우였다.

오히려 현대물에서 느끼지 못하는 쫄깃함과 오로지 명석한 머리로 추리를 하며 끈질기게 몰아가는 묘미가 더 생생하다.

티엑스라는 인물은 경찰국장이면서도 범인의 집에 잠입하여 금고도 열어보고, 집도 둘러보는 도둑(?) 같은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티엑스가 하는 일은 매우 광범위했다. 사람들은 티엑스를 런던 경시청에서 '불법적인 일'을 도맡아 하는 부서 책임자라고 여겼다. 그에 관한 유명한 소문 하나는, 만약 누군가가 금고 열쇠를 잃어버려도 티엑스가 30분 안에 그 금고를 열 수 있는 절도범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카라라는 인물은 요즘 범죄물에 나오는 사이코패스의 원형 모델이라는 느낌이 든다.

겉으론 세련되고, 멋지고, 귀족 신분의 신사이지만 그 뒤에서 그가 벌이는 행위는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파괴적이고 비신사적이다.

여러분은 대부분 레밍턴 카라에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그가 저지른 무자비한 악행들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고, 또 그가 신이 만든 창조물 중 오점이자 사악하고 야비한 이기주의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아주 극소수의 범죄자들에게서나 발견되는 살인에 대하 강한 충동과 고통에 대한 강한 욕정을 추구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거기에

약간의 연애담까지 종합선물세트로 준비된 추리소설이다.

마지막 부분은

이 이야기의 묘미이자 온갖 트릭이 밝혀지는 관계로 찬란한 피날레를 장식하던 옛 방식이라고 나 할까?

이 옛 방식이 참 맘에 든다.

가끔은 모든 게 덜 공식화되었던 옛날 방식이 더 멋있게 느껴질 때가 있는 데

이 이야기의 결말이 바로 그렇다.

부디 저의 자만을 용서하길 바랍니다. 어찌 되었건 저는 여러분 앞에 이 사건을 설명해야 하고, 상당한 경험과 분벼력을 지닌 여러분은 제가 이제껏 허구의 범인들 마음을 잠입해왔듯이 지금 역시도 이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의 마음을 좇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또 만약 범인의 마음을 좇을 수 없어도 레밍턴 카라를 죽인 살인범의 심리 상태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주 많은 작가 에드거 월리스.            

킹콩의 원작자로 많은 작품을 써서 다작 작가란 타이틀도 가졌다.

추리소설로 만난 그의 생각의 틀이 참 신선해서 좋다.

지금 읽어도 촌스럽지 않은 게 그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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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잘레스 씨의 인생 정원 -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배운 삶의 기쁨
클라우스 미코쉬 지음, 이지혜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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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질주하던 커리어의 고속열차에서 난생처음으로 강제로 하차당한 셈이니 울어야 할 것도 같고, 의미를 찾지 못하던 직업에서 해방되었으니 웃어야 할 것도 같았다.

 

 

은행원 니클라스는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는다.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린 그는 안달루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곤잘레스 씨를 만난다.

 

자신의 밭에서 일평생 농사만 짓고 살고 있는 곤잘레스 씨와 도시남 니클라스의 만남.

일만 아는 독일인과 느긋한 스페인 농부는 어떤 교감을 가지게 될까?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그저 그렇게 흔하디흔한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귀농을 꿈꾸는 도시 사람의 이야기일 거라고.

이런 맥락의 이야기들이 최근 들어 많이 나왔고, 느림의 미학을 외치며 시골생활 예찬을 하는 책들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곤잘레스 씨와 니클라스의 조합도 그러려니 했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곳에 플래그를 붙이게 될 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야. 요즘 세상에서는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니 말이지.

 

 

 

곤잘레스 씨의 정원에서 정원일을 도우며 니클라스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곤잘레스 씨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을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삶의 가치

인간의 가치

시간의 가치

물질의 가치

노동의 가치

생명의 가치

나눔의 가치

사랑의 가치

 

 

 

그는 어떤 물건이든 돈으로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한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조차 적잖은 돈이 들지 않았던가.

그의 세계에서는 죽음조차 공짜가 아니었다.

 

 

 

농사는 노동의 대가를 지불한다.

자연의 법칙이 그렇다.

예전처럼 사는 게 싫어서, 힘든 노동이 싫어서, 노동에 비해 턱 없이 모자른 노동의 대가가 싫어서

다들 도시화되고, 산업화되어 버렸다.

홀로 꿋꿋이 퇴비를 만들어가며 유기농 농사를 짓는 곤잘레스 씨의 정원엔 독약이 뿌려지지 않은 먹거리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비싸지만 그곳에서 채소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땅에 골프장을 지어서 한몫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주변의 땅을 사들이고, 남아있는 곤잘레스 씨의 땅을 헐값에 사기 위해 곤살레스 씨를 궁지로 몬다.

어디서 많이 보아온 일들이다.

 

 

 

 


지금껏 그는 느림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발리 돌아가야 했다. 교통, 경력 쌓기, 심지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세상이 몰락하기 시작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 지 모른다. 무슨 일이든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나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의미 있는 뭔가를 창출해내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곤잘레스 씨의 정원

그곳에서 일을 하며 인생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메워가는 니클라스.

하지만 곤잘레스 씨를 협박하는 사람들의 횡포는 늘어가고 니클라스는 그를 돕고 싶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차에 화물차 연대가 파업을 선언하고 하루 이틀 사이에 대형 마트의 물건들이 동이 나면서 곤잘레스 씨 정원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선다.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어 놓는 곤잘레스 씨를 보며 니클라스도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귀농이나 농사짓기, 시골생활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찰나의 순간에 느끼는 이 시대의 불공정한 시스템과 현대인의 잘 못된 소비습관에 대해

곤잘레스 씨의 정원을 통해 우리를 일깨워주는 지혜의 책이다.

 

 

 

세상 모든 일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조바심을 치며 고통받게 돼 있어. 최악의 경우에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 들다가 생명체의 조화로운 리듬을 망가뜨리고 말지.

 

 


우리는 이미 필요한 걸 다 가졌어. 그런데 더 많이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

 

 

소유욕.

이미 다 가지고 있지만 최신, 새것으로 교체하기 위해 더 비싼 값을 치르고, 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고, 다 쓰지도 못할 기능들을 가진 것들을 탐한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더 많은 일을 해야한다.

현대사회가 끊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이다.

 

 

 

 

 

 

 


계획적 진부화라는 말을 들어본적 있나?

일부러 한정된 기간에만 제대로 기능하도록 제품들을 조작한다는 의미지. 프린터, 휴대전화, 자동차, 옷가지도 다 마찬가지야.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견고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러면 당연히 사람들이 소비를 덜 할 것 아닌가. 휴대전화가 10년을 간다면 뭣 하러 2년마다 바꾸겠나. 말하자면 꾸준히 이익을 내려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불필요하게 대량으로 낭비하고 있는 거야. - 176페이지

 

 

이 이야기에는 지금의 현실을 꿰뚫는 시선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모두 배부른 자들을 더 배불리기 위한 것임을 콕  찍어 이야기해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말과 광고에 속아 현명한 소비를 하지 못하고 결국엔 자신들의 삶의 질을 더 망가트리고 있다.

 

 

 

 

 

 

 


천연자원을 둘러싼 전쟁이 지속되고 환경오염까지 일으키는 상황을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이냐, 아니면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와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냐는 결국 개개인의 소비행동을 통해 결정하게 되지.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열려있어.

 

 

니클라스가 곤잘레스 씨의 정원에서 보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깨닫고 달라지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현명한 소비에 대해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현명한 소비를 하며, 노동의 대가로 이루어지는 농업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느림의 미학이란 결국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진 것들이 내 몸에 쌓여갈 때 그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에너지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임을 말하는 거 아닐까?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고, 빠르게 나아가고, 빠르게 변화되는 속에서 우리가 미쳐 챙기지 못하고 놓쳐 버린 것들이

결국은 나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병들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열린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네. 끊임없이 배움을 즐기고, 낯선 것을 대할 때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을 품게나. 두려움은 행복의 가장 큰 적이거든. 중요한 건 결국 그게 아닌가? 행복하게 사는 것 말이야.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래서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어떤 위기가 와도 서로 도우며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아서.

현혹되는 삶보다는 현명한 삶을 바란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한다면 조금 더 많은 좋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을 거 같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에피소드가 결국 언젠간 우리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

자급자족이 안되는 세상에서 나는 그 위기를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한때 시골생활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꿈만 꾸던 시간이었다.

귀농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이었다.

매일을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내야 하는 삶은 도시에 찌든 내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꾸고 싶다.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내는 삶을.

 

 

곤잘레스 씨의 정원에는 못 미치더라도

느리게 살면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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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풀빛 그림 아이 71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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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칠 년 동안 매미는 묵묵히 일했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고.

 

매미는 인간이 아니니까.

 

인간과 공존하며

인간이 시키는 일을 하지만

그 어떤 대우도 받지 못하는 매미.

 

회색빛 그 안에서 녹색 광선처럼 매미는 존재한다.

숀 탠의 그림은 무채색으로 빛난다.

숨 막히는 도시 속에 갇힌 사람들의 심장처럼.

매미는 17년의 긴 세월을 지나 은퇴한다.

옥상 난간에 서 있는 고달퍼 보이는 뒷모습은

거대하고 화려한 비상을 앞두고 있음을 예견하지 못한다.

 

 

은퇴는 제2의 인생의 시작점이다.

화려하고 우아하게 변신하여 훨훨 날게 될지

곤두박질치며 추락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매미는 화려한 변신을 한다.

훨훨 날아 숲으로 들어간다.

 

매미들은 모두 날아 숲으로 돌아간다.

가끔 인간들을 생각한다.

웃음을 멈출 수 없다.

 

 

 

매미에게서 찌들고 허덕이는 인간 군집을 본다.

매미의 변신에서 틀을 깨고 다른 인생을 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세상은 인간을 더 이상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

사회의 부속품.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이다.

 

 

그것이 회색빛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홀로 녹색을 띤 매미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

 

 

많은 시점에서

우리는 인생 궤도를 수정해간다.

용감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자유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매미는 온몸으로 얘기한다.

화려한 비상이 남아 있음을.

 

 

나이에 상관없이

물질적 유무에 상관없이

지금 어떤 삶을 사느냐에 관계없이

준비가 되었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어느 시기에 도달하면

변신의 시간이 주어진다.

 

 

공평하게 오지만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

 

 

 

 

 

 

 

매미가 십칠 년 동안 묵묵히 일만 했을까?

모진 시간 동안 비상을 꿈꾸며

남들이 알지 못하는 준비의 시간을 가졌으리라.

화려한 날개 뒤엔

그런 지난한 시간이 있었음을

선명한 붉은색이 하늘 가득 푸른 숲으로 날아간다.

그림책은

가끔

뇌리를 스치는 순간을 잡아채는 재주를 지녔다.

숀 탠의 매미는

나에게 변신의 순간을 준비하라는 계시처럼 보인다.

화려한 날갯짓을 할 시간이 언제든

한 번은 올 것이다.

껍질을 벗고

날아올라

숲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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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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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말로 원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소다.

 

 

하나의 산봉우리에 이야기 하나.

저마다 산을 오르는 여자들이 지닌 현실은 서로 다르지만 그만큼 서로 비슷하다.

결혼 적령기를 지난 여자

불륜을 저지른 여자

결혼의 기로에 서 있는 여자

이혼을 앞둔 여자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을 시작한 여자

마흔에 단체 만남에서 만난 남자와 산에 온 여자

 

등산을 잘 하는 여자

산을 처음 오르는 여자

산에 오른지 오래된 여자

혼자인 게 좋은 여자

혼자는 불안한 여자

과거를 회상하는 여자

미래를 꿈꾸는 여자

 

제각각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산 하나와 연결되어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이야기 따라 나도 같이 산에 오른다.

미덥잖은 동료가 의외의 궁합으로 친구가 되고

집안 행사 때면 비가 오는 자매들의 산행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것이야말로 미숙하다는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상징인 야리가타케 정상에 거절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 혼자 힘으로라도 생각했던 건 사실은 자신의 페이스를 맞춰주었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힘들어할 때마다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주었던 아버지가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몇 번을 오르고자 했던 산은 번번이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것이 항상 다른 사람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었다.

다른 사람이 발목을 잡은 게 아니었다. 스스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창에 발이 미끄러져 균형을 잃었다. 이 산길은 내 인생인가, 아니면 언니 눈에 비친 내 인생인가. 길이 질척거리는 데다 높게 죽죽 뻗어 있었을 나무들이 여기 와서 마구잡이로 구부러져 길을 막고 있는 것 같다.

 

 

 

일찍 결혼한 언니 덕에 양파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 나.

하지만 사람들 눈에 그녀는 나이 먹었음에도 시집도 안 가고 취직도 안 하고 아버지 연금에 빌붙어 사는 한심한 여자이다.

자매의 산행은 언니의 잔소리로 막을 내릴 거 같았지만, 언니에겐 언니만의 문제가 있었다.

 

 

사람은 크든 작든 짐을 지고 있다. 단, 그 짐은 옆에서 보면 내려놓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는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저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 이야기의 조연으로 출연한다.

이 이야기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그녀는 다음 이야기에 출연한다.

끊어진 거 같았던 이야기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이어진다.

 

신선하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더 그렇다.

이번엔 누가 등장할까?를 생각하며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

여자들의 등산일기로.

여자들의 등산일기는 그녀들을 묶어주는 매개체이다.

등산 사이트에서 얻은 정보로 산을 오르는 그녀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알던 서로 모르던

 

여전히 내겐 일본 이름들이 낯설고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아서 힘들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곳곳에 그 흔적들을 교묘하게 흘려 놓아서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느낌이다.

그 와중에 그녀들은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방식으로 등장하여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쪼개진 단편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엮어가다니 새삼 더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가나에의 소설은 고백 이후에 두 번째인데 확연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맥락이 엿보인다.

모든 관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읽으면서 생각했다. 가나에 선생은 정말 이 모든 산을 다 올라 본 걸까?

정상까지 오르면서 이 이야기를 구상했을까?

왠지 곳곳에 그녀의 흔적들이 보이는 거 같다.

마치 흔한 주변인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해 있는 거 같다.

 

일본의 많은 소설들이 우리보다 앞서가는 세계를 보여주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좀 더 앞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아직도 결혼이란 관습에 묶여있고, 남자에게 의지해야 좋게 생각되는 모습들이 보여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즈키의 모자가 나는 제일 맘에 들었다.

 

내가 만든 모자는 내가 모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바쁜 매일매일에서 건져 올린 누군가의 자유로운 시간과 함께할 수 있다.

나도 슬슬 새로운 풍경을 잘라내러 가볼까.

 

 

산을 오르며 곤란을 겪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문제들을 산을 오르며 생각하고, 고민하고, 터뜨리고, 날려버린다.

정상에서 마주하는 풍경 너머로.

 

그녀들이 하나씩 쓰게 될 모자가

그녀들과 함께 자유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인생 어느 부분에서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자유의 모자를 쓰시길.

그리고 같이 산에 오르길.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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