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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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기만 해도, 내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날 보았을 때 아빠는 그 점을 곧장 넘겨 버렸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첫눈에 나를 사랑해 주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빠가 죽었을 때 내가 떠나보내기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직접 어머니를 위해 아빠를 골랐다. 여섯 살 때였다.

 

 

온예손우.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하다.

 

에우.

강간으로 태어난 혼혈아를 부르는 이름이다.

 

온예손우는 에우이다.

오케케족인 그녀의 어머니가 누루족 남자에게 강간당할 때 어머니의 마을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누루족 무장단체는 오케케족 여자들이 사막으로 가서 이레 동안 아니 여신께 경의를 표하는 피정(避靜)을 기다려 왔다. '오케케'는 '창조된 자들'이란 뜻이다. 오케케족은 낮이 되기 전 창조되었기에 밤처럼 피부가 새카맸다. 그들이 최초의 인간이었다. 한참 후에, 누루족이 등장했다. 누루족은 별에서 왔기에 피부가 태양의 색을 띠었다.

 

 

그렇게 태어난 온예손우에겐 마법이 깃들어 있다.

부당함에서 태어나 모진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소녀는 멈추지 않는 학살과 폭력의 중심지에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새아버지의 죽음으로 온예에게 깃든 마법의 힘이 깨어나고, 그로부터 그녀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그녀가 첫 번째 변신을 했을 때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던 소년 므위타는 온예의 사랑이 되었고, 온예와 므위타는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를 죽이길 원하는 생부. 그런 그에게 복수할 날만은 꿈꾸는 소녀 마법사 온예. 자신의 사부이지만 잔혹함에 그를 벗어나 도망친 므위타. 서로를 잇는 인연은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은 굳건하다.

 

11세 소녀들에겐 할례의식이 치러진다.

에우인 온예는 그 의식을 치룸으로써 나중에 그녀와 함께 여정을 떠날 평생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할례를 치르고 마법사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들여달라 간청하지만 '여자'라서 내쳐진다.

 

 

남녀의 가치와 운명에 대한 구식 믿음. 그게 내가 므위타에게서 유일하게 좋아하지 않는 점이었다. 어떻게 자기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의 중심이 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줄곧 이게 문제였다.

 

 

이 이야기엔 인종, 종족, 학살, 강간, 폭력, 차별, 불평등, 갈등, 마법, 환상 등이 잘 버무려져 있다.

폭력과 강간의 묘사가 사실적이라 마음속에 불꽃이 튀지만 현실은 이야기보다 더 난이도가 있음으로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명의 잔재들도 곳곳에 보인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대를 논하는 건 불필요한 거 같다.

이 이야기 자체가 현실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환상과 마법의 힘을 빌려 이야기한 것이기에.

동물로 변신을 하고, 현계와 이계를 넘나들고, 죽은 자를 되살리고,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춘 마법사 소녀 온예.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 사막을 건너며 자신을 키워나가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어린애들인데 그네들에겐 이미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사실 앞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떤 틀이 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이름처럼 살게 되는 인생이었다.

다혈질이고, 자신을 억제하는 게 제일 힘들었던 온예지만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많은 걸 파괴하고 말았지만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죽음을 쫓았다.

 

 

 

 

서부에서 누루족의 보는 이가 예언하길, 누루 마법사가 나타나 위대한 책에 쓰인 것을 바꿔 놓으리라고 했더랬다.

 

오케케이자 누루인 온예는 예언의 적임자가 된다.

그녀는 위대한 책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을까?

예언서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위대한 마법사라는 건 어떤 존재일까?

 

어쩜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이야기들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온예도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그 길을 걷게끔 유도했기에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게 아닌가 싶다.

모든 걸 잃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누구를 위한 대의를 짊어지는 건지 알 수 없음이다.

 

그동안 읽었던 판타지들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기승전결이 있고, 모험 뒤엔 무언가를 성취하는 이야기들만 보다가

이 현실과 버무려진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동안 내게 심어진 편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루유는 므위타가 곁에 있지 못할 때마다 내 곁에 머물렀다. 루유는 내가 사라졌을 때 옆에 있었고 같은 장소에 내가 다시 나타났을때도 여전히 거기 있었다.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거기 있었다. 루유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얘기를 나눌 때면 자기가 잠자리했던 남자들이나 다른 사소한 일에 대해 말했다. 루유는 나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판타지 이야기마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게 마련이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쉬움을 주는 캐릭터 말이다.

루유는 온예에게 없어서는 안 될 쉼터이자 은신처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곁에 머물며 내게 가장 필요한 휴식을 제공해 주는 친구.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위해 아낌없이 내달리는 그런 친구는 생에 만나기 힘들다.

이 이야기에서 끝까지 가야만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인 루유.

처음엔 별로였지만 점점 맘에 드는 캐릭터였다.

우정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보여준 캐릭터였다.

그래서인지 온예 다음에 므위타가 떠올라야 하는 게 이야기의 정석이지만 나는 루유에게 마음이 더 간다.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해낸 친구이자, 전사였으므로.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해 마법과 환상으로 이야기했다.

이 책이 바라는 바는 복수가 아니다.

본 마음을 찾아낸 사람들의 공존이다.

누루족 장군의(현실엔 서구 문명) 마법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인간성으로 서로 공존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은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평화와 공존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기에.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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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아프리카 소설 2 키워드로 읽는 아프리카 소설 2
고인환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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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아프리카 소설. 이라고 해서 진짜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이 엮어진 소설집으로 생각했다.

이 책은 아프리카 작가의 소설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과 생각을 적은 것이다.

말하자면 해설집이라 할 수 있다.

아동. 여성. 인종. 고발. 이야기

다섯 개의 키워드로 구분된 아프리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그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을 엮은 책이라는 걸 깨닫고 당황스러웠다.

작품을 직접 보지도 못한 채로 그것에 대한 해설을 적은 글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리뷰에 대한 리뷰.

 

남의 리뷰를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렵다.

게다가 내가 그 이야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점을 찾자면 아프리카 문학 작품들의 맛을 본 접이랄까?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작품들이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그 작품을 어떻게 읽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준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아프리카는 척박한 땅에서 나름의 풍요를 누리며 많은 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이었다.

백인들이 눈독 들이기 전까지는.

백인은 아프리카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었다.

미개하다는 이름하에.

남의 문명을 존중하지 못하는 자들이야말로 미개인인 것을.

 자신들을 침략하고 약탈한 자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제야 조금씩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경희대학교 출판부에서 이제3세계로 분류되는 아프리카의 작품들을 발굴해서 영미권 작품들이 판치는 우리나라에 색다름을 주는 거라 믿었는데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내 불찰이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정체성은 모호합니다. 그들은 조국을 떠나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아프리카를 떠돌며 문화적 혼종성을 체현하고 있는 경계인들입니다. 아프리카 작가들은 제국의 언어로 생산된 자신들의 작품이 아프리카 독자들을 일차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민중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소명의식 또한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배자의 언어와 아프리카 민중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운명을 지녔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여러 곳에서는 학살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이 가진 자원을 빼내기 위한 서구 열강들의 그늘 아래 동족끼리 자행되는 학살과 착취는 영혼이 아름다웠던 아프리카인들을 돈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서구 문명이 아프리카에 뿌린 씨는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대인이라는 문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나라로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같은 그들의 모습을 담은 소말리아의 나디파 모하메드의 <<모래바람을 걷는 소년>>과 알제리의 아시아 제바르의 <<사랑, 판타지아>> 앙골라의 주제 에두아르두 아구아루사의 <<기억을 파는 남자>>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이 책에 제목만 실려있는 책들을 만나 볼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우리나라의 문학에도 서구 중심의 문학작품들 말고 비서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어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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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한강의 기적에서 헬조선까지 잃어버린 사회의 품격을 찾아서 서가명강 시리즈 4
이재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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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바보같이 살고 있는 것일까? 사회적 합의만 이루면 단번에 끝낼 수 있는 경쟁을 왜 끝도 없이 지속하는 것일까?

 

 

 

 

 

 

 

서가명강 시리즈 4.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이 질문 같은 제목을 읽음과 동시에 드는 부정과 긍정의 두 갈래 길이 반반으로 내 머리를 울린다.

한국 밖에서는 살아본 적 없는 머리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한국 밖에서 살고 있는 동생들의 말을 떠올리는 머리는 '네'라고 대답한다.

 

"돈 있음 한국이 젤 살기 좋아."

터전이 외국인 동생은 한국에 올 때마다 그리 말한다. 아마도 모국어를 마음대로 쓸 수 있고, 한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건 두 번째 문제고, 일단은 그래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거 같다.

밤 문화가 발달해 있음에도 총기 휴대가 합법화되지 않고,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교통이 편리하고, 무엇이든 다 배달이 가능하고, 걸어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는 한국이뿐이라는 게 그네들의 생각이다.

자연재해에서도 비교적(?) 안전지대이고, 테러에도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린 휴전국가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우선은 돈 있으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또한 한국이란다.

무엇을 원하든 하루 아니면 이틀 이내에 해결이 되는 곳이 한국이라서.

 

하지만 정작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그네들이 겪지 못하는 갈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갈등도 만성이 되어 이젠 갈등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사회학적으로 풀어낸 한국의 현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의 현대사를 사회적 관점에서 공부한 느낌이다.

우리가 생각하던 생각하지 않던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한 모든 문제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이야기해주는 족집게 같은 책이었다.

정말 사회학에 대해서 1도 관심 없었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사회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설명해주어야 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통계와, 관점과, 방향 제시가 이 책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

지금 이 정체된 시간은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문제를 위한 문제만을 앞세우며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과거에 머무르려 하는 사고방식들이 모이고 모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전쟁 이후로 부단한 노력으로 나라를 발전시킨 세대와 그 세대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비교적 풍요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세대와 그 두 세대 사이에 끼어서 과도기의 정체성을 가진 낀 세대들이 서로의 의견을 일치 시키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수하려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다.

 

나는 끼인 세대다.

부모님 세대의 부지런함과 단결된 모습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모습을 보며 성장해서

풍요로움을 누리는 세대로 거듭나는 동안 사라진 많은 것들을 추억하며 사는 세대인 것이다.

세대마다 모두 고달픔이 있겠지만 어중간한 과도기 세대만큼 고달픔으로 점철된 세대가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낸 적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이쪽도 저쪽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 지금 시절이 확연히 달라서 그 달라짐을 몸소 겪어낸 과도기 세대는 중간에서 주장을 내려놓고 있는 꼴이다.

 

3불. 불신, 불만, 불안의 사회는 아마도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군사정권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경제성장의 기틀은 빨리 마련했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억눌려있었다. 그리고 국민의 손으로 찾아낸 민주주의 역시 구시대적인 정치인들의 손에서 곤죽이 되고 말았다.

 

정. 재계의 유착으로 나라는 유례없이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곪아가는 인권과 노동자들의 권리는 일절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심한 적자는 바로 '신뢰의 적자'다.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 서로 협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정치권은 각자의 정파적 이익을 넘어서는 일에는 합의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부가 하는 일에 매우 냉담하고, 한때는 중요한 중재자 기능을 했던 시민사회도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이 신뢰는 정치권과 기업들이 다 까먹었다고 생각한다.

큰일이 생길 때마다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나라를 살려냈던 국민들에게 그들이 무엇으로 보답(?)을 했는지 지금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멀리 보는 안목의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혁에는 이들을 보는 불특정 다수의 미지근한 박수보다 기득권을 잃는 집단의 결격한 저항이 더 크기 마련이다.

 

 

이래서 근시안적인 행정이 계속되고, 그래서 그 모든 결과의 부당함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 한꺼번에 되돌아오고 있는 느낌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인권, 복지, 모든 면에서 우리는 그동안 무시하고, 외면했던 문제들을 더 이상 무시하고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고, 앞날을 계획하며, 썩어버린 고목들을 잘라내 버려야 할 때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지만 그 리더십은 미래에서 오는 것이어야 한다.

좋은 사회란 구조와 개인, 제도와 생활세계 간의 긴장과 역동적 균형을 통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사회다. 이런 품격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 사회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재열 교수의 강의를 국회의원들이 들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보너스 대신으로 한 권씩 읽게 하면 어떨까?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에 대해서 확실한 통계와 자료로 설명해주고

그 해법도 같이 제시해준 이 책 한 권이 그들이 앞으로 임기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이 책을 이해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 책은 효자손이다.

내 마음속에 가라앉혀 놓은 현실의 문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냉정하게 알려주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내 손 닿지 않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으니 효자손이랄밖에.

 

관심 없다 생각하고 외면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사실 내가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준 책.

이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무관심을 잘 건드려준 책이었다.

소설도 아닌데 플레그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읽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안다는 건

그만큼 내게 힘이 생긴다는 걸 의미한다.

 

아는 게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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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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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내게는 종합선물 세트 같은 책이었다.

소설집에 담긴 단편들 제각각이 현실을 풍자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현실을 도피하고자 소설을 읽는 나에겐 버거운 존재들이라

현실을 품고 있으면서도 비현실적인 임성순의 이야기는 읽고 나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사장님이 악마예요를 읽으며 정말 악마들이 걱정할 만큼 악랄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우리 군단은 최근 지옥으로 유입되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 자선과 보건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중이야. 피임 기구를 널리 보급하고, 제3세계에 관련 교육도 하고, 가능하면 인간 영혼을 최대한 멘탈계로 올려 보내고, 인구 증가율을 감소시켜 아스트랄계의 에너지 포화 위기를 해결하려 하는 거지.

 

이 인구 증가율 감소 정책은 우리나라가 이미 실천하고 있는 셈이니 악마들의 계획이 잘 먹히고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참 많이 씁쓸했다.

지옥에 사람들이 많아서 져서 악마들이 자선사업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이런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마음이 와닿아서 많이 씁쓸했다.

인류 낚시 통신이라는 이 기발한 제목도 그렇다.

요즘 많이 보이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의 벗겨진 민낯이 아니라 가면을 본 느낌이 허탈하다.

허울 좋은 가면 아래의 민낯들.

이것을 임성순은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을 희소하게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이들은 이십 년전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세력으로 뛰어들어 인류를 희소하게 만들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욕하든 변절했다고 떠들든 상관없었다. 이상을 실현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겁니까. 인간의 가치가 사물보다 떨어지는 세상이니 당연히 돈의 흐름에 거치적거리는 존재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건 휴머니즘으로 구할 인간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는 잉여일 뿐이지요.

 

돈이 전부인 사람들의 세계에서 인간은 저런 존재인 것이다.

그것을 글로 확인한 기분이 많이 아프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실을 보여주는 소설의 진정성이다.

현실은 항상 소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으니.

오래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박민규를 만났을 때의 신선함을 오랜만에 느껴본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현실을 볼 때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더 잘 인식하게 된다.

이 소설집이 내겐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의 모순을 제대로 짚어 주는 거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그리고 또 어떤 작가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지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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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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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임수와 거짓말, 위협과 루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가도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해하게 됐다.

 

 

 

재정난에 허덕이며 난민 문제 해결에 지쳐있던 저자는 머리를 식힐 겸 떠난 낚시 여행에서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인 트링 박물관에서 새의 깃털이 도난당한 사건을 듣는다.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쳐야겠다는 사명감으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사건을 파헤친다.

 이 소설이자 에세이이자 다큐 같은 글은 그렇게 수많은 기록과 자료와 인터뷰를 거쳐서 태어났다.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플루트 연주자였던 에드윈이 트링 박물관에 몰래 들어가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수십 종의 새들을 훔쳤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새의 깃털이 대체 뭔데?

그걸 훔쳐서 뭐 하게?

하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돌 때쯤 장래가 촉망되는 플루트 연주가가 왜 깃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깃털들이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아직도 그것을 고수하려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이롭게 만든다.

 

플라이 타이어.

그것이 에드윈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플라이낚시에 사용하는 깃털 미끼를 만드는 사람을 지칭한다.

고작 낚시 때문에 깃털을 훔쳐? 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 깃털이 희귀종이고, 구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희귀종이거나 멸종된 새의 깃털은 부르는 게 값이다.

 

이 책의 앞부분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삶의 절반 이상을 오지로 돌며 희귀종 새들을 수집. 박제해서 박물관에 보냈다.

 

 

 


에르메스 가방과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가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더 이국적이고 더 비쌀수록 더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 새의 깃털일 것이다. 수컷 새는 암컷 새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신의 깃털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어왔지만, 인간세계에서는 그 깃털을 이용해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 사회적 신분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새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자기들끼리만 지내면서 너무 아름답게 변해버렸다.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들이 인간에게 살해됐다.

박물관 때문이 아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 바로 여성들의 패션 때문이었다.


 

 

 

 

 

 

 

 

 

 

월리스가 목숨 걸고 구해서 박물관으로 보냈던 새들의 표본이 21세기에 플라이낚시에 쓰이는 미끼를 만들기 위해 훔쳐졌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지금도 대다수가 알지 못하는 거 같다.

19세기에 여성들의 패션의 완성은 모자였다.

그 모자에 어떤 새로 장식하느냐에 따라 신분의 높이를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세기도 힘든 새들이 모자 장식이 되기 위해 살해되었다. 인간에 의해.

그리고 또 다른 용도로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살해되었다.

 

 

 

 

스무살의 에드윈에게 박물관의 새를 훔쳐야겠다는 생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정당화됐다. 그 새들만 있으면, 플루티스트로서 야망도 실현하고, 타잉계에서 그동안 누리고 싶었던 지위도 누리고, 가족도 도울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새의 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므로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험이 될 것 같았다.




 

1년 가까이 박물관은 도둑맞은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범인 에드윈은 잡혔지만 아스퍼거 진단을 받고 풀려났다.

에드윈은 총 299마리의 표본을 훔쳤고, 102마리만 이름표가 붙은 온전한 상태로 박물관에 돌아갔다.

하지만 사라진 나머지 새들의 행방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만 빼고는.

 

 

 

법의 헛점을 노리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범죄자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허술하게 빠져나가게 두는 것도 법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드윈은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박물관에 돌아오지 못한 표본들과 함께.

 

현실은 이렇게 깜깜하다.

저자는 에드윈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교묘하게 모두를 속였다는 걸 느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라진 표본들은 지금도 플라이 타이에 목매는 사람들에 의해 몰래 거래되고 있으니까.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박물관에 고이 모셔두기보다는 자신들의 타잉에 새의 깃털이 이용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범인은 수만 달러의 이득을 챙기고 박물관과 앞으로의 연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끼쳤지만 단 하루도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어쨌든 재판 방식이 그러니까요. 때로 법은 희생자나 피고인, 모두에게 아주 불공평하죠.

 


범죄소설이자 다큐이고, 에세이 같으면서도 어딘지 소설 같은

이 정체를 정의하기 힘든 이야기 하나가 내게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박물관의 존재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수많은 종들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얼마나 빠르게 사라져갔는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얼마나 잘 침묵하는지.

 

갖지 못하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심은 그것이 설사 무언가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책이다.

실화임에도 마치 꾸며진 이야기인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취미 때문에 사라진 역사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것에 대한 경각심 없이 안일하게 판단을 내린 법은 또 누구의 책임일까?

잘못임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침묵하는 이는 누구의 책임일까?

 

현실은 이렇게 그저 암담할 뿐이다.

깃털도둑은 알지 못한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준 책이고, 관심 없던 세계를 눈여겨보게 해준 책이다.

 

대다수의 눈을 속일 수 있다 해도

진실을 좇는 단 한 명의 눈은 속일 수 없다.

그리고 늘 그 한 명의 눈이 대다수의 눈에 덮인 두터운 눈꺼풀을 벗겨 낼 수 있음이다.

 

이 책이 그 한 명의 눈이 되어 자신들의 죄를 침묵으로 회피하고 있는 그들에게 단죄가 되길 바랄 뿐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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