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인생 그림책 Dear 그림책
하이케 팔러 지음,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 사계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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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0부터 99

그 사이들

인생의 이야기가 그림 속 장면으로

짧은 글로 담겼다.

꼬물꼬물한 조카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떠 올렸을 감정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내 아이를 낳으면 온갖 상념이 흐르겠지만

갓 태어난 조카를 보며 떠오르는 상념에는 다른 시각이 흐른다.

같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와는 다른 행복과 걱정과 사랑이 흐른다.

좀 더 객관적인.

그래서 이 이야기가 조금은 더 다가온다.

작가가 느낀 느낌이 어떤 건지 알고 있음으로.

첫 조카를 마주한 순간은 끝없는 신기함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누군가에게 말해주듯 보아진다.

가장 아끼는 누군가에게

살짝 뒤에 서서

그렇단다.

그런 거지.

그럴 거야.

그렇겠지.

그럴 테지.

그런단다.

 

 

 

잠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오래전

나를 보던 가장 가까운 누군가가

소리 없는 눈 맞춤으로

조근조근 해주었던 얘기를 듣는 느낌이다.

이 책의 절반쯤에 와 있는 내가

앞으로의 나에게 미리 귀띔해주고픈 말이기도 하다.

텍스트에 지루해질 쯤

쌓여 있는 책들 사이에서 버거운 시간에도

서점으로 향하는 마음을 멈추지 못하고

래핑 되어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집에 와서 슥슥슥 넘겨 보는 마음이

느긋해진다.

100

지나온 날과 살아갈 날을 그리며

고요해진 마음이 마냥 즐겁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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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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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날씬해서 부러운 몸매가 아니라 가난해서 비쩍 마른 몸이다. 잘 씻어도 얼굴이 어딘가 지저분해 보이고, 여름에 반바지와 러닝셔츠를 입고 대자로 뻗어 낮잠을 자는 모습은 꼭 밭에서 방금 파낸 흙 묻은 우엉 같다.

좀 더 편한 일도 있을 텐데 엄마는 자기를 괴롭히듯이 일한다.

 

 

 

 

하나의 엄마는 홀로 하나를 키운다.

그녀의 직업은 막노동. 남자들 틈에서 홀로 일하는 강단 있는 엄마다.

개처럼 먹어대지만 절대 살이 찌지 않는다.

늘 반값 딱지가 붙은 음식들만 사 먹지만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하나는 엄마에게 유도 질문을 해보지만 절대 알 수 없다.

어쩜 흉악한 범죄자라 어딘가에 갇혀있거나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엄마와 함께

부족하지만 부족하지 않게.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게.

힘들지만 힘들지 않게.

즐겁게, 유쾌하게, 낙천적으로 살아간다.

14살 소녀의 첫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사실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그저 눈물 빼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14살 아이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 그저 미화되었을 거라는 나쁜 편견이 나에게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읽게 된 이야기.

슬슬 읽어가다 이 두 모녀의 진가가 나타나는 대목을 만나게 된다.

안녕. 다나카.

나와는 너무나 먼 사람,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은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같은 수준이나 계급인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법이다.

 

안녕. 다나카는 하루의 짝이 된 신야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하루와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갑자기 신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조금 엉뚱했으나 이것이 진정한 고수의 엉뚱함이었다는 건 다 읽고 나야 느끼게 된다.

신야는 의도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졸지에 변태가 되어 학교 여학생들의 악다구니에 시달리는데 그 위기에서 신야를 구해준 건 바로 하나다.

6학년의 되어 하나와 같은 반 짝이 되었지만 신야는 여전히 하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채 끙끙댄다.

신야는 사립 중학교에 가기 위해 시험을 보지만 모두 떨어지고 신야의 엄마는 그런 자식이 창피하다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엄마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존재라는 이유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신야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난 하나 모녀 덕분에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게 된다.

앞 부분 하나의 이야기의 백미를 장식하는 게 바로 신야의 이야기다.

남의 시선에 비친 하나 모녀의 모습은 가난하지만 즐겁고,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며,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런 엄마 품에서 자란 하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당당하다.

그런 모습이 신야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독자들은 잘 참고 읽어 오다 신야의 이야기에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살아있다. 엄마의 경계선은 늘 거기다. 아무리 크게 실패해도 살아 있다. 수치스럽지만 살아 있다. 죽을뻔했지만 살아 있다.

하지만 기준이 그거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다 오케이이지 않을까?

 

14살 소녀의 시선은 어른들의 꾸며진 시선 보다 훨씬 담백하다.

그래서 그 담백 미가 책을 읽고 난 뒤에서 계속 은은하게 일렁인다.

어째서 천재소녀인지

어째서 사람들이 그녀를 그리 치켜세우는지 읽어 보지 않으면 모를 뻔했다.

꾸밈없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맑은 울림.

세련되지 않은 거 같지만 너무 세련된 표현들이 이 책을 잡으면 놓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는데도 이렇게 딱 떨어질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삶의 연륜이 쌓인 사람만이.

배를 골아 본 사람만이.

죽기를 되뇌이며 살기를 각오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

이 단순할 거 같은 삶의 의미를 이미 깨친 소녀 작가의 글은 다 큰 어른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는 결국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다.

엄마의 과거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의 말에서 그녀의 삶이 너무도 고독하고, 뼈저리게 고달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젓하게 바라보는 하나의 모습을 보듬어주고 싶었다.

삶이 고달플지라도

그걸 알아주는 하나 같은 딸이 있어

엄마의 고단함이 훨씬 수고로움으로 남을 거 같다.

그래서 홀로 떠나간 신야가 안타까우면서도 안심된다.

비로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에 있게 되었으므로.

스즈키 루리카.

그녀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담백하게 쓰여진 이야기의 묘미.

요란한 감정 표현 없이도 담담하게 쓰여진 이야기의 깊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

앞으로가 더욱 기다려지는 작가를 만났다.

기존의 일본 작가에 대한 나의 편견을 씻겨준 작가이다.

루리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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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제본사
브리짓 콜린스 지음, 공민희 옮김 / 청미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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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니라, 에밋.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가져와서 제본하는 거야. 사람들이 담고 있을 수 없는 것들.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들 말이지. 우리는 그 기억을 가져와서 더는 해를 끼치지 못하는 곳에 둔단다. 그게 책이란다.

 

 

기억을 제본하는 제본사.

제목만으로 나는 판타지를 상상했다. 뻔하게도.

누군가의 읽어서는 안되는 기억을 읽어버려서 생겨나는 온갖 문제들을 가열차게 해결해가는.

 

에밋 파머.

건강하던 그가 이유 없이 아프고 병이 나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된다.

부모는 에밋을 근처의 제본사의 도제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에밋은 가기 싫었지만 자신의 허약한 몸이, 그리고 제본사가 될 운명이라는 부모님의 말에 숲속의 마녀로 불리는 제본사 세레디스의 도제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세레디스는 아직 때가 안되었다는 말만 하고, 간단한 일들만 시킬 뿐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정신을 이끌고 간단한 작업만을 하던 어느 날.

젊은 남자가 그곳을 찾아온다.

그를 보는 순간 섬뜩하면서도 알 수 없는 증오심과 두려움과 짜릿함이 에밋을 당황하게 만든다.

본적 없지만 왠지 아는 거 같은 그 남자.

 

 

이 이야기를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는 어느 지점에서 뒤통수를 맞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하지 않다.

신비롭고, 아름답고, 아련하며,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에 대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해했다.

 

 

제본사의 열병. 악몽과 질환. 드 하빌랜드는 그것이 제본에서 비롯되는 병이라고 했다. 그 말이 이해가 갔다. 나는 제본을 당해서 아팠던 것이다. 세레디스가 나를 제본했을 때 완전히 낫지 않았고 그래서 반쯤 미쳤던 것이다.

 

 

자신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했던 에밋은 어느 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발견한다.

제본사의 열병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병이 사실은 제본을 당해서 생긴 병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무엇 때문에 제본을 당했을까?

도대체 어떤 기억을 잊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을까?

 

 

이 이야기는 3부작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시점이 바뀐다.

에밋과 루시안의 시점으로.

 

 

청소년 소설을 주로 써왔던 작가의 첫 번째 성인 소설이다.

문체가 상당히 정교하고 아름답다.

보통의 내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제본당한 소년들.

제본당한 하녀들.

제본당한 사람들.

그들의 기억이 담겨 있는 책들을 사고파는 사람들.

제본한 책은 은밀히 보관되어야 하지만 그 은밀한 기억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권력을 쥐고, 재력을 가진.

겉으로는 신사의 모습으로 우아하고 근엄한 자태를 지니지만 그 겉모습 안엔 천박하고, 잔인하고, 욕망으로 가득 찬 짐승 같은 군상들이 있다.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드 하빌랜드 같은 제본사가 있고, 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약속을 지키는 세레디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세계를 알지 못했던 시골 청년 에밋과 그 세계에서의 천박함에 치를 떨었던 루시안.

이 둘에게 벌어졌던 일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제본당하게 만들었을까?

 

 

책을 읽어감에도, 책을 끝내고도, 특별한 책을 만났다는 생각으로 설렜다.

사람의 기억 속에서 고통스럽고, 잊고 싶은 기억들을 제본해서 책으로 만든다는 설정도 새로웠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욕망의 민낯들도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독한 사랑도.

 

 

아름다운 표지만큼 이야기도 아름다웠다.

 

 

비릿한 사랑의 내음과 차가운 열정.

비뚤어진 욕망을 제본으로 지워버리고 계속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구역질 나는 신사도.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명.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시킨 욕심.

금지된 사랑에 대한 용기.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질투.

용납할 수 없었던 것들...

 

 

복합적인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

시점이 바뀌고 배경이 달라져도 어색함이 없다.

압도적이지 않은 문체인데 압도 당하게 된다.

 

 

아마도 올해 내가 읽은 책들과 읽을 책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만고만한 이야기에 지친 당신

색다른 이야기를 찾는 당신

푹 빠져서 읽을 무언가를 찾는 당신

그리고 열려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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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탐하다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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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얼어붙은 정신의 바다가 깨지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순간, 독자는 기꺼이 책의 포로가 된다. 적어도 또다시 그런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293호 열차 C칸.

이 그림을 보는 각자의 시선은 모두 다를 것이다.

느끼는 바도, 생각하는 바도, 감상 포인트도, 눈에 새겨지는 그림 자체도.

표정훈 작가는 그림 속에 들어있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 그림 속에 있는 책은 무슨 책일까?

이 호기심에 상상력을 가미하고, 살을 보태고, 추측을 함으로써 새로운 읽을거리를 창작해내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작가의 지식의 끝은 어디인가!

 

이 책을 읽으면 그림을 볼 수 있고, 그림 속에 감추어진 책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의 시대 배경과 화가, 그들이 살았던 세상에 대한 사건 사고들도 알 수 있다.

하나의 그림에서 상상력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림이나 책에서 끝나지 않고 시대와 역사를 아우른다.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도대체 이 많은 걸 다 알려면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하는 걸까?

내가 왕이 된다면, 인류의 절반을 봉인하는 악습을 뜯어고치겠다. 나는 여성도 인간의 모든 권리를, 무엇보다도 배움의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이다.

 

 

2부의 주제 그녀만의 방에서는 다양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여성들은 그림 속의 여성이기도 하고, 책 속의 여성이기도 하다.

장시간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져 드러나지 못하고 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떤 종교에 대한 오해와 그 종교를 따르는 이들에 대한 편견은 단지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배제와 차별 때로는 폭력까지 낳을 수 있다.

.

.

사랑하거나 미워하기 전에 우선 제대로 알려고 애쓸 일이다.

 

 

 

이 책 한 권에 세상 모든 이야기가 조금씩 담겨있다.

문화, 예술, 철학, 종교, 차별, 젠더, 속박, 자유 등의 이야기들이 한껏 펼쳐져 있어서 새로운 그림이 나올 때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무언가를 볼 때 주가 되는 것만을 보고 마는 사람이 나였다는 걸 알게 됐다.

꼼꼼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관심의 폭이 적었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그림을 보면서 색채와 구도와 느낌만을 담았지 저 책이 무슨 책일까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작가의 눈이란 매와 같다.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그림도 감상하고, 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며,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공부도 하고,

역사적 사건 앞에서 역사 공부도 하게 됐다.

하나의 작품에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니 정말 상상력과 호기심은 살면서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덕목 같다.

 

익숙한 그림들 보다 생소한 그림들이 많아서 즐거웠고,

시대를 거슬러 온갖 세상을 두루 살펴본 느낌이어서 먼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나는 책을 쓰지 않았다. 사실 책은 쓸 수 없다. 다만 쓸 수 있는 것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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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닮은 너에게 애뽈의 숲소녀 일기
애뽈(주소진) 지음 / 시드앤피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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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소녀 시리즈.

네이버 그라폴리오를 통해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숲 소녀의 작가 애뽈의 최신작이다.
나는 처음 접한 그림인데 그림에 푹 빠져 버렸다.
색감도 풍부하고, 그림 속 소녀의 모습이 굉장히 생동감이 있어 금방이라도 머리칼을 나부낄 것만 같다.

상상력이 가미된 그림은 사막화되어 가는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또 다른 세계로 빠지는 느낌이 썩 괜찮았다.
마치 어릴 적 소녀감성으로 되돌아간 기분으로 이 책을 넘겨 보았다.
그림과 짤막한 글이 한글과 영문으로 쓰여있다.

그림들을 보다가 나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의 그림은 하나의 기억을 소환시켰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많은 느낌들이 되살아났다.

 

 

 

 



천정창을 보며 나중에 저런 천정창을 낸 집에서 살고 싶었던 기억과 함께
촘촘히 박혀 있던 수많은 별들이 버거워 손에 닿을 듯 내려앉았던 밤하늘을 보았던 그 밤을 기억했다.
그런 밤하늘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거 같아서 서글프다.

한 여름 한껏 멋을 낸 숲 소녀의 그림 속에서 점점 생활인이 되어가는 친구의 모습도 떠올랐고,

얽힌 실타래 앞에서 끙끙대다 결국 싹둑 잘라내었던 실망스러웠던 인연들도 떠올렸다.

꿈속에서조차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나게 했던 밤하늘을 나는 고래.
비 오는 날 너른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로망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

나는 어째서 예쁘게 꾸미고 다니지 못하고 보이시하게만 다녔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도 해보고,
루돌프 닮은 반려견도 한 마리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책을 잃다 보면 늘 곁에 두고 가끔 펼쳐보고 싶은 책들이 있다.
그림이 풍부하거나, 사진이 좋거나, 짧은 글이지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들.

내게 그런 책 목록에 넣어 둘 책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림만으로 많은 추억을 떠올리고, 잊었던 감정들을 추슬렀으니...

곁에 두고 마음이 버석거릴 때마다 꺼내 숨 쉬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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