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역사
에밀리 프리들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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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책이다.

제목과 아름다운 표지는 심오한 이야기가 담겼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숲에 사는 소녀와 늑대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를 추측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나는 그런 일을 해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한테서 나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원하던 것을 얻게 해 주는 것이다.



열다섯 소녀.

학교에서 '괴물' '빨갱이'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매들린에겐 친부모인지도 잘 모르겠는 부모가 있다.

한때 공동체 생활을 했지만 모두 떠나고 셋만 남아 각자 자신만의 생각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십 대 소녀에겐 따분하고, 답답하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이었다.

외딴 숲에서 히피 부모와 함께 살며 어딘가에도 소속되지 않는 삶을 사는 소녀의 성장기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갔지만 시간의 순서가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낯설음이 배가 되는 이야기였다.

아동 성범죄자였던 그리어슨 선생과 릴리의 소문들

이웃에 이사 온 젊은 부부와 그들의 아들 폴.

어쩜 사춘기 소녀 인생의 전부였던 그들은 그녀에게 이해할 수 없는 물음표를 남겨두고 떠난 사람들일 것이다.

곱절의 나이를 먹었어도 절대 이해되지 않은 그들의 삶.


 

 

 

그가 특별히 다르기 힘든 아이였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격한 데가 있기는 했다. 그에게는 어딘가에 질서와 혼돈을 가르는 뚜렷한 선이 있었다. 예를 들어 조금이라도 일상이 흐트러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패트라와 폴은 그녀 인생에 찾아온 외지인이었다.

처음으로 깊이 들어가 본 그들의 삶에서 그녀는 행복함과 단란함과 사랑과 엄숙함과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조바심과 공포감도 느끼게 된다.

특별한 종교를 택한 그들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패트라가 대항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아들의 목숨 앞에서, 지켜야 할 신념 앞에서 흔들렸지만 거부하지 못한 패트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녀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잔상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의 삶에 영향력을 미친다.

어른이 되면 이해가 될까?

어른들은 무엇이든 다 아는 걸까?

어른이 되면 그 시절의 흐릿함들이 되살아 날까?

어른이 되면 그때 모호하게 흘려버린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어슨 선생은 자신의 문제가 있었지만 학생을 다른 관점에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한 번은 나도 알지 못하는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

린다에게 그리어슨 선생이 그런 사람이었다.

릴리는 어수룩해 보였지만 영악한 면이 있는 아이였다.

패트라는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갇혀 있는 사람이었고, 레오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사람처럼 보였지만 모든 게 종교 안에서 통제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폴은 아이였지만 아이 같지 않았던 아이였을 뿐이었다.

우리 셋 사이에는 열한 살의 나이차가 있었다. 우리는 네 살, 열다섯 살, 스물여섯 살이었다.



11살의 차이

11이라는 숫자는 결국 각자의 홀로서기를 뜻하는 게 아니었을까?

매들린이라는 이름 보다 린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 아이는 늑대에 대한 발표를 멋지게 한다.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리어스 선생뿐이었지만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

어쩜 린다는 그 이웃 가족의 비극을 예리한 후각으로 이미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린다가 릴리 같은 아이였다면 분명 폴을 위해 그 가족의 중심으로 쳐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을 알았기에 린다는 릴리에게 가죽부츠를 훔쳐다 주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하지 못하는 것을 그녀는 해내는 강단이 있음으로.

불분명하고

미완성이며

용감한 척하지만 겁 투성이인

그저 십 대.

그 시절을 온전히 보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불안정하다.

하지만 그 원인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떤 일은 묻어야 한다.

내가 어쩌지 못한 일들은 시간이 흘러도 어쩌지 못하기 때문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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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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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 역시 그 오래된 집에서 죽은 게 아닐까. 어릴 적 나는 그 집에서 죽었고, 그대로 내가 맞이하러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곳에 그저 죽어 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 할 뿐.

 



비채 X 히가시노 게이고 컬렉션 시리즈.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게이고의 초기 작품이다.

오래전 다른 출판사에 출간된 적이 있으나 이번에 비채에서 새롭게 출간하였다.

 

 

 

[저의 야심작,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게이고 자신이 추천하는 자기 작품이다.

1994년에 출간 이래 일본에서만 75만 부가 팔렸다니 게이고 팬이라면 안 읽은 사람이 거의 없을 작품이다.

 

 

 

사야카는 7년 전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전 여친이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만났지만 별 얘기 없이 헤어졌다.

그러고 며칠 뒤에 사야카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한다.

거절해야 마땅했지만 사야카의 목소리에서 거절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끼고 나는 사야카를 만나러 간다.

 

그녀가 내민 사자머리 모양의 열쇠와 지도.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유물이라 했다. 어릴 적 기억이 하나도 없는 사야카는 이 유품이 자신을 어린 시절로 데려다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자신을 잘 아는 그에게 같이 가달라고 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곳에 있는 별장 같은 집엔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남아있다.

마치 갑자기 어디론가로 증발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집은 출입문도 모두 봉해져있고, 유일하게 지하실로만 드나들 수 있었다.

그 집의 모든 시계는 11시 10분에 멈춰져있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야카의 아버지는 왜 이곳을 드나들었을까?

그 집은 사야카랑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 이야기의 배경은 그 이상한 집이다.

그곳에서 사야카와 나는 그 집을 둘러보며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과거를 파헤친다.

유스케라는 소년의 일기장으로 시작해 점점 알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소름 돋는 이야기들.

 

아동학대와 부모의 강요.

말하지 못할 죽음들.

숨겨진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관점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귀신이 나오거나 끔찍한 참상을 보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대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으시시하고, 뭔가 터질 거 같은 긴장감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무섭지 않은 데 무섭고

겁나지 않는 데 겁이 난다고 해야 하나.

 

마지막에서 터져 나오는 반전의 실타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라 더 소름 끼친다.

상세한 묘사가 없기에 더 상상하게 되는 비극이 이 이야기의 묘미인 거 같다.

제목 때문에 호러물처럼 생각했는데 이것 역시 예상을 빗나갔다.

여러모로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소설이다.

 

 

 

신세가 많았습니다. 나는 역시 나일 수밖에 없다는 걸 믿고 앞으로도 살아가려 합니다.



사야카가 보낸 마지막 편지의 글은 그녀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는 의지였다.

기억의 봉인이 풀어진 지금에야 그녀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맞아들이는 일을 하고 있음이다.

 

가해자는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계속 되풀이되는 시간을 산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를 몰라서 괴로웠던 시간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의 고통을 되씹지 않으며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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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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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일간의 세계여행은 나를 낱낱이 알려주는 '안내자'였다. 어떤 외부적인 요인이나 누군가의 평가도 아닌, 내가 나를 직접 겪고 느끼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가장 느리고도 빠른 길이었다.

 

 

스물다섯의 동생과 서른의 언니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났다.

아주 이상적임과 동시에 언제나 꿈으로만 남을 거 같은 환상이 현실이 된 걸 보는 느낌이다.

나는 왜 나의 자매들과 저런 여행을 할 생각을 못 했을까?

 

이 책을 읽고 부러워서 동생과 통화하면서 넌즈시 얘기를 꺼냈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동생의 대답은 자기 아들이 대학 갈 때까지 참아라였다.

이제 6살짜리가 대학 갈 때까지 언제 기다릴까.

 

여행길에선 친구가 남남이 되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남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럼 자매들의 여행은 어떨까?

 

한 뱃속에서 나왔어도 제각각인 자매들은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그럼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여행을 계속한다.

생각지도 못한 좋은 숙소에서 환대를 받는가 하면

벌레가 기어 다닐 정도로 관리가 안 된 곳에서 며칠을 기거해야 하기도 한다.

예약 확인을 잘 하지 못해서 비행기를 놓칠 뻔하기도 하고,

서로의 취향대로 각자 알아서 따로 여행지를 둘러 보기도 한다.

 

한두 마디 자매들의 대화가 두 사람의 확고하게 다른 점을 나타내줘서 싱긋거리며 읽었다.

나와 내 동생도 여행을 간다면 저 자매들처럼 잘 다닐 수 있을까?

내심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대단한 무언가를 이뤄야만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떠나온 지금은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곽 찬다. 이렇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좋다.

 

 

 

여행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무엇이든 여행길에서는 깨닫고, 알게 되고, 느껴지는 게 있다.

일상에서와는 다른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일상을 뒤로하고 자꾸 낯선 곳으로 가려 하나 보다.

 

 

 

 

215일간의 여행 경비의 기록들과 함께 짧은 여행기 사이사이 깨알 팁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여행기를 얘기하지만 한 사람의 일방적인 시선만 담겨있다.

상세한 가이드 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소한 여행의 여정이 잘 담긴것도 아니다.

맥락이 끊기는 느낌이 많아서 여행 가이드북으로 삼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많이 아쉬운 느낌이다.

여행하다 보면 나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모든 면을 꺼내게 된다. 예상치 못한 여러 상황과 힘든 시간, 즐거운 시간을 모두 겪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알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되면서 컨트롤하고 다스리며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았다.

 

세계 여행자란 명함을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닌 자매는 떠나기 전의 자신들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시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용기는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녀들의 215일이 그녀들 인생에 가장 값진 날들인 것만은 바꾸지 않겠지..

유럽 사람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선에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참 자유롭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보다는 '나의 행복'을 더 중요시하는 것. 배우고 싶고, 배우고 있는 마인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땅에서 탈피한 그녀들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행기를 쓴 사람이 언니라 그런지 동생에 대한 평가가 냉정(?) 하다.

내 동생이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가 잘생긴 남자들을 보려고'가 확실하다.

작가는 오늘도 용기가 나지 않아 여행을 꿈만 꾸는 사람들에게 찰떡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용기는 생각이 나 고민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 겪으며 얻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준비된 마음과 조금은 철저한 정보 조사입니다.

 

 

나도 언젠간

내 동생과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

각자의 가정이 있어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 힘들겠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으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무엇을 하는 데 있어서 늦은 때라는 건 결코 없음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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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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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테드 창을 통해 미래를 잠시 엿보고 왔다.

내가 여지껏 상상했던 미래와 조금 다른 미래의 이야기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시간을 거스르는 일들을 종종 봐왔는데 그들은 모두 과거든 미래든 자신과 마주치는 것을 경계했다.

테드 창은 자기 자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미래의 자신과의 만남에서 시간 여행을 하는 자들은 조금은 더 현명해지고, 조금은 더 깊어졌을 자신들과 대화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길을 다지고 있다.

물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결국 본인 자신의 선택이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려운 문장들의 나열들이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과학적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테드 창의 이야기는 쉽게 다가서게 한다.

테드 창의 이력은 우리가 흔히 분류하는 이과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어떤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보다 더 감정적이다.

그래서인지 세련된 미래의 문학작품 세계를 접한 느낌이다.

가본적 없는 미래를 마치 가서 눈여겨보고 온 사람처럼 이야기하기에 그의 모든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있으면서 주의를 끌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치에 맞는 행동이다.

 

 

거대한 침묵에서 우주로 자꾸 신호를 보내는 인간들은 자신들의 곁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앵무새들에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주가 당혹스런 침묵을 지니는 이유는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다.

많은 문명들이 존재하는 우주에서 자신들을 드러냈다가는 원하지 않는 접촉으로 인해 멸망을 자초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두려움없이 무모하게 자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주로 쏘아 올리는 신호에 들이는 비용을 앵무새를 연구하는 데 쓴다면 앵무새로 인해 다른 종의 동물들과의 소통도 이루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인간의 활동은 나의 동포들을 멸종 직전까지 내몰았지만,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명이 없이도 스스로 진화해가는 디지언트들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가?

단지 프로그램이니까 사용하다 싫증 나면 던져 놓으면 되는 것인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켜 놓으면 스스로 학습하면 발전해가는 그들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읽으면서도 답을 낼 수가 없었다.

 

마르코를 존중하고 싶다면 그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선행 학습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내겐.

알 수 없는 미래에 벌어질 법한 문제들을 미리 예습해 보는 시간들을 지나서 나는 미래가 생각만큼 두려운 시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테드 창 같은 작가들이 그리는 미래의 세계들을 우리가 잘 읽고 계속 상상해간다면 좀 더 현명한 미래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의 행보는 미래로 가는 길목에 있다.

기계가 능한 게 있고, 인간이 능한 게 있다.

기계와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세계가 미래라면, 가상세계 역시도 우리가 가지게 될 하나의 세상이라면

우리는 그 모두를 아우르는 마음과 생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것에 관해서 그 누구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 아름답게 들려줄 사람은 테드 창 같은 감수성을 가진 이성적인 작가일 것이다.

 

어째서 다들 테드 창에 열광하는지 이제야 알 거 같다.

그가 그리는 세계가 결코 어느 하나만을 유리하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한쪽을 통해 양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글쓰기를 잃어버리는 시점에 와 있다.

필사가 유행을 하고, 손글씨로 된 무언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일처럼 생각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미 테드 창의 이야기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건 인간다움이다.

가상의 세계에서도 기계의 세상에서도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것.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건 바로 우리의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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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
우성준 지음, 송섬별 옮김 / 아토포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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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좋아?" 누나가 물었다. 여기라는 것이 이 가게를 말하는 건지, 이 나라를 말하는 건지, 이 지구를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물으려다가 어차피 내 대답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이만하면 됐어." 내가 말했다.

누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12살 대준이는 엄마와 누나와 함께 미국에 도착한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5년 전 먼저 건너와 자리를 잡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페들러스 타운에 동양 상점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대준에서 데이빗이 된 12살 어른 꼬마의 좌충우돌 이민사! 라고 생각했는데, 읽어가는 내내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까지 아우르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뜨끈해진다.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와 누나의 피아노 소리가 뒤섞이자 이상하게도 노래처럼 들렸다.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았다. 그냥, 우리 가족 같았다.

 

 

한참 사춘기였던 누나는 준이 보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더 많은 외로움을 느꼈다. 자주 싸우는 부모님과 누나의 예민함에 가려져 준이는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마이 굿 선~"

아빠가 이렇게 준이를 부를 때마다 준이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낀다.

아마도 떨어져 있는 동안 상상했던 아빠와 직접 마주한 아빠는 많이 어색하고 달랐다.

그런 아빠가 자신과 어떡하든 친해져 보려는 모습을 대하는 준이의 자세가 상당히 어른스럽다.

준이 눈에 아빠가 자신을 마이 굿 선~ 이라고 부를 때면 뭔가 요구 사항이 있거나, 난처한 사항에 자신을 밀어 넣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준이지만 이 묵묵한 아이는 아빠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가게는 생각 보다 컸고, 영어가 짧은 아빠는 홍씨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그래도 장사를 잘 해간다.

준과 수는 학교 외에는 늘 가게에서 아빠와 엄마를 돕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페들러스 타운의 가게 주인들의 시선으로 자신들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스피커를 파는 드미트리 포포브. 거울 가게를 하는 테드 맥마너스, 가방 가게를 하는 홍씨 아저씨, 탐정인 밀러씨, 식당 주인 제이크.

이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곁들여지면서 이 이야기는 한 이민자 가족에서 시작해서 다른 세계로 확대되어 간다.

 

이제는 가족이 다시 함께하게 되었으니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 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혼자 남겨진 게 아닌데도 여전히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남편이 변해서인 건지도 몰랐다. 변한 건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라든지 좋아하는 음식처럼 큰 것들이 아니라 자잘한 것들이었데, 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별 것 아닌 것들이 사람의 성격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몰랐다.

 

 

5년이란 세월은 부부 사이에도 넘기 힘든 간극이었다.

게다가 다른 한 사람의 외도는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잦은 부부 싸움에도 그들은 가게에서는 언제나 다정한 가족이어야 했다.

부모의 싸움을 지켜보며 그것에 대처하는 준과 수의 모습.

 

 

솔직히 말하면 최대한 아빠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죄지은 사람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다는 오명을 안는것도 별로인데다가 엄마에게 내가 아빠 편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수는 엄마와 준은 아빠와 한 방을 쓰게 된다.

물론 준은 아빠 편을 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12살 어린 준에겐 부모님의 이혼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일이기에.

 

낯선 곳에서 10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을까?

자신들의 고단함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했던 그들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자꾸만 쓰러지던 크리스마스트리는 그런 그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빠 없이는 몇 년이나 살아 봤지만, 엄마 없는 세상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요즈음 엄마는 엄마 노릇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없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이민자의 이야기엔 늘 부당함이 첨부되어 있다.

그래서 읽기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이야기엔 그런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훈훈하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려 하는 마음들이 페들러스 타운엔 존재한다.

준이의 시선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시선에서 가족 각자의 시선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서로에 대한 편견이 있더라도 각자의 성격대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 객관적인 해석이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

 

 

 

아빠가 왜 그렇게 못되게 구는 지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다. 그럴 수 있어서였다. 처음으로 미국인을 부릴 기회를 얻은 아빠는 그 권력에 취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장사가 잘 되자 그의 면전에서 그를 물건 파는 기계 취급하며 못생겼다고 한국말로 그의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는 아빠의 모습이 어린 준 이에겐 못되게 보였지만 어른이 된 준이는 그때의 아빠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페들타운의 사람들을 이어준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놀랍도록 서로를 이해하는 수준이랄까?

12살 소년의 시선으로 보아지는 이야기는 객관적이고 따스하며 유머러스하다.

억지로 웃기려 작정을 한 것 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서로의 다름이 빛을 발한다고 할까?

페들러스 타운엔 정스런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거 같다.

서로의 사정을 보살피며, 가끔 서로의 민낯을 보게 되지만 기본적인 존중을 가지고 서로를 대했던 그때 그 사람들.

 

이제 허물어져서 흔적도 남지 않은 곳을 바라보며 어른이 된 준이와 수는 그곳에서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곳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고향이었다.

처음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디고 자신들의 터전인 이곳에서 모든 걸 스스로 극복해가야 했던 고달픈 이민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관심과 이해와 존중과 삶을 선사했던 곳 페들러스 타운.

그때 그 어른들은 이제 그곳에 없지만 준이와 수의 마음속엔 살아있으리라 믿는다.

 

모처럼

고달프면서도 서럽고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훈훈하고 따스하게 버무린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다.

수와 준이 잘 자라주었다는 느낌과 페들러스타운을 다시 찾는 그들의 발걸음에서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소리 없는 따스함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다.

지긋지긋했던 곳이라면 고향이라도 두 번 다시 찾지 않았을 것이 사람 마음이라.

그곳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한 어른이 된 두 아이의 추억이 그만큼 따스했으리라 믿는다.

 

 

균형 잡힌 이야기들에 마음이 끌린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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